Piano Concerto No.3 in C major, Op.26 | |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 Op.26 S. Sergeyevich Prokofiev, 1891~1953 3. Allegro ma non troppo - 2.1 전악장 연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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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ha Argerich, piano - 1998, November 30 (Beppu/live) Myung-Whun Chung - Toho Gakuen Orchestra | |
아르헤리치가 선사하는 곡은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 현란하고 기교적이면서도 토속적인 러시아 민요풍의 넘칠듯한 생명감이 돋보이는 ‘피아노 협주곡 3번'은 프로코피예프의 5개의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아르헤리치는 지난 98년 이 곡을 전 남편인 지휘자 샤를르 뒤투아와 함께 녹음해 EMI 레이블로 출시하기도 했다. 아르헤리치는 이 앨범으로 미국 최고의 음반상인 그래미상(최고 오케스트라 협연 솔리스트 연주 부문)을 수상했다. 08년 한국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55)과 아르헤리치가 만난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지난 96년부터 일본의 온천 도시 벳푸에서 열리고 있는 아르헤리치 음악제(Music Festival Argerich's Meeting Point in Beppu) 등을 통해 돈독한 우정을 과시해온 정명훈과 아르헤리치가 국내에서 한 무대에 오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르헤리치와 정명훈은 이번에 선보일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지난 98년 일본 벳푸와 이탈리아 로마에서 함께 연주해 찬사를 받기도 했다.
프로코피에프는 다섯 개의 피아노 협주곡들을 작곡하였는데, 그 가운데 제3번(다장조, Op.26)이 가장 유명하다. 이 곡은 그가 러시아를 떠나기 전인 1918년경에 구상에 들어갔으며 미국으로 건너간 후인 1921년에 완성하여 발표하였다. 이 협주곡에서는 화려하고 현란한 피아노 적인 기교가 자유 분방하게 넘쳐 나고 있으며, 판타지와 시적인 면 그리고 역동적인 면과 매력적인 면이 잘 어우러져 있다. 이 제3번 협주곡은 신고전주의 풍도 신낭만주의 풍도 아니기 때문에 현대적인 감상자들이나 보수적인 감상자들이 음악회장에서 바르톡의 협주곡들이나 스트라빈스키의 작품들과 더불어 즐겨 감상하는 곡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프로코피에프의 러시아적이며 독특한 정서적인 악상이 잘 나타나고 있는 제3번 협주곡은 차이코프스키의 내림마단조 협주곡과 라흐마니노프의 다단조 협주곡과 더불어 러시아의 3대 피아노 협주곡으로까지 불린다. 프로코피에프가 세상을 떠난 후에나 초연 되었던 피아노협주곡 제4번(내림 나장조, Op. 53)은 1931년에 전쟁에서 오른손을 잃은 파울 비트겐슈타인(Paul Wittgenstein)의 요청으로 왼손만을 위한 곡으로 작곡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미 슈트라우스와 라벨로부터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받아 연주하여 대성공한 것과는 달리 이 프로코피에프의 협주곡은 단 한 번도 연주하지 않았으며, 그 후 1956년에 와서야 이 협주곡은 베를린에서 역시 전쟁에서 한 손을 잃은 지그프리드 라프(Siegfried Rapp)에 의해서 초연되었다.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 Op.26 작곡 연도: 1917년에 착수하였으나 망명 등의 이유로 중단되었다가 1921년에서야 완성 작곡 장소: 페트로그라드에서 착수하여 파리에서 완성 출판/판본: 1923년 라이프찌히의 구트헤일 출판사 초연 연도: 1921년 12월 16일 / 초연 장소: 시카고 초연자: 작곡자의 피아노, 스토크 지휘의 시카고 교향악단 악기 편성 독주 피아노,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트럼펫 2, 혼 4, 트럼본 3, 팀파니, 큰북, 캐스터네츠, 탬버린, 심벌즈, 현 5 부
악장 구성 1악장 Andante - Allegro, C장조, 4/4박자,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 클라리넷 독주로 시작되는 서주주제. 주부는 알레그로. 비올라에서 바이올린으로 이어지는 스타카토 음형에 인도되어 피아노가 5도 하강과 2도 상승의 짜임의 주제를 연주. 2주제는 오보에로 제시되어 클라리넷으로 연결, 피아노로 이어지며 대위법적 처리. 고조된 제시부가 전개부로 이어지는데, 현의 트레몰로 반주위에 플루트와 바이올린, 피아노, 파곳과 플루트가 카논풍으로 주제들을 전개. 재현부의 말미에는 피아노의 글리산도를 전환점으로 하여 1주제부의 악상을 소재로한 코다가 오고 고조하여 종결. 2악장 Andantino, E단조, 4/4박자, 변주형식 주제는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유니즌으로 제시. 1변주는 피아노 독주로 주제를 화성적으로 연주하고 목관이 이를 받으면 피아노는 트릴로 장식. 2변주는 알레그로의 트럼펫, 3변주는 알레그로 모데라토로 4/4박자의 관현악의 주제에 12/8박자의 피아노로 장식되어 연주. 4변주는 안단테 메디타티보, 5변주는 알레그로 지우스토로 피아노가 저음의 리듬을 연주하기 시작하여 점차 고조됨을 반복하고 무곡풍의 주제를 혼과 바이올린이 연주. 코다로 들어가면 확대된 주제가 오케스트라로 연주되고 피아노는 카덴짜를 맞으며 마무리. 3악장 Allegro ma non troppo, C장조, 론도형식 A - B - A'- C - A". 제시된 주제가 관현악과 피아노 사이를 오가며 연주되고 첫번째 에피소드가 정점을 만든 후 포코 피오 모소로 A가 복귀. 두번째 에피소드 C는 목관, 현, 피아노의 순으로 정적인 악상으로 연주. 알레그로의 주부로 돌아와 충분히 전개하고 최후 강렬한 리듬에 코다로 종결.
백건우 '프로코피예프' 전곡 연주회 '피아노의 구도자' 명성 그대로 정말 훌륭한 최상급 연주여서 갖은 찬사의 말을 다 바치고 싶건만 자꾸만 말문이 막힌다. 연주자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을밉을밉’속에 품고 있으면 좋을 느낌을 굳이 말로 표현해 늘어놓으면 부박하고 누추해지지 않을까 두려운 것이다. 23일 LG아트센터에서 펼쳐진 백건우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 전곡 연주회 첫째날을 다녀온 소감이 이것이다.
견인주의자(堅忍主義者) 백건우를 지칭하는 별칭이 ‘피아노의 구도자’이다. 상찬의 모자치고는 좀 구식풍이지만 그의 음악 여정에 비추어 볼 때 딱 들어맞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상업주의 스타십이 널을 뛰어온 지난 30년 세월을 흡사 구도자처럼 한발 비켜난 자세로 묵묵히 관통해 왔다. 라벨, 무소르그스키, 스크리야빈, 라흐마니노프 등의 피아노 곡 집중탐구, 전곡연주의 자기 성채를 쌓아가면서. 그리고 10년 전 그가 도달한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레코딩은 당시 최고의 찬사와 주요 음반상을 휩쓸기에 이르렀다. 그 공력의 후일담을 무대에서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틀 간의 사이클링에서 첫날엔 1번, 4번, 3번 순으로 연주되었다. 피아노 협주곡의 세계는 정말 눈부시다. 개인적으로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산맥에서 한발 빠져나와 개척한 신천지가 바로 바르톡과 프로코피예프의 작품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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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적으로 엄청 두들겨 부수는 스타일이고 (그래서 작곡가가 피아노를 타악기로 간주했다고 설명되며, 연주자에게 무지막지한 체력을 요구한다), 3번이 특히 사랑 받는다. 모더니즘 작풍의 전범으로도 규정된다. 그동안 프로코피예프의 경우 나는 미셸 베로프의 연주집을 그야말로 LP 소리골이 닳도록 들어왔었다. 공연장에서 어쩔 수 없는 비교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백건우, 베로프 둘 다 장쾌하거나 혹은 다소 센티멘털하다는 의미에서의 러시안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었다. 직선적인 소비에트 풍은 물론 아니었다. 세련된 섬세함과 급박한 폭발성을 오가는 와중에 서정의 진공지대를 만들어 놓았다고 할까. 하지만 베로프가 다소 신경증적인데 반해 백건우의 연주는 훨씬 여유감이 있었다. ‘청중과의 교감’을 가장 중시한다는 평소의 언명대로 백건우는 어떤 기괴한 악상에서도 그것이 흡사 자연스러운 호흡인 양 편안하게 연주를 이끌었다. 그런 점에서는 우리에게 낯선 지휘자 루카 파프가 이끈 서울시향도 백건우의 의도를 무리 없이 잘 받쳐주었던 것 같다. 빠르고 변화무쌍한 템포를 따라잡는 것이 프로코피예프 협주곡을 즐기는 주요 포인트인데 간혹 관악이 뒤처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신감 있는 하모니를 들려주었다. 여하튼 마지막 곡 3번 3악장이 거의 절규에 가까운 “우와” 소리로 객석이 파묻히며 끝나는 순간 나는 ‘프로코피예프는 이렇게 연주하라’하는 한 규범을 만나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음악칼럼니스트 김갑수>
프로코피예프와 그의 음악에 대해 : 백건우
프로코피예프는 20세기 음악가 중 유일하게 다섯 개의 방대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해 냈습니다. 스트라빈스키가 심포니에 주력했다면 그는 라흐마니노프, 스카리아빈 등과 함께 피아노 음악의 세계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피아노의 새로운 테크닉과 음색을 창조해 냈으며 바르톡과 함께 피아노의 타악기적 특성을 구현해 낸 작곡가였습니다. 프로코피예프의 가장 큰 ‘힘’은 바로 이 타악기적 특징을 최대한 살려낸 ‘리듬’이라고 생각됩니다. 나는 프로코피예프가 가진 다양한 음악적 언어와 그 언어로 표현해 내는 인간의 여러가지 모습들을 사랑합니다. 그의 음악은 현실에의 날카로운 풍자를 드러냄과 동시에 유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탄탄하게 짜여진 음악적 구조 속에 아름다운 멜로디가 빛을 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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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코피예프의 협주곡 중에서는 특히 2번을 사랑합니다. 1911년, 협주곡1번을 작곡할 때 프로코피예프는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 악보를 직접 콩쿨 심사위원들에게 나누어주며 내 작품을 연주하겠노라고 말했을 정도로 자기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2년 뒤에 발표한 협주곡 2번에서는 눈에 띄게 성숙한 프로코피예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친구의 자살을 목격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작곡했습니다. 1악장에는 피아노 역사상 어느 곡에서도 볼 수 없는 긴 카덴차가 있습니다. 이는 한 인간이 목숨을 끊기 전 자기 인생을 뒤돌아보는 고통스러움을 화면으로 보듯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악장에서는 자기 중심적이었던 사고가 인류에 대한 폭넓은 사랑으로 확대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15살에 미국, 드미트리 미트로폴러스 콩쿨에서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처음 연주했었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는 프로코피예프는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운 작곡가였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나 다시 프로코피예프에게 돌아와 보니 이전에 무소로그스키, 스크리아빈, 라흐마니노프 등 많은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했던 것이 프로코피예프로 향하는 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제는 인생의 고통을 숨김없이 드러내면서도 인류를 사랑하는 그의 뜨거운 가슴을 이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프로코피예프 [ Prokofiev, Sergei Sergeevich ]1891∼1953 소련의 작곡가. 국적 : 소련 활동분야 : 예술 출생지 : 소련 예카테리노현 손초프카(현 우크라이나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주요작품 :《3개의 오렌지에의 사랑》《로미오와 줄리엣》《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예카테리노현 손초프카(현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출생.
아버지는 유대인 대지주이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음악과 친숙해져 5세 때 《인도풍(風)의 갤럽》을, 9세 때 피아노반주가 딸린 오페라 《거인》을 작곡하였다. 1904년 페테르부르크음악원에 입학, A.K.리아도프, A.N.체레프닌, N.A.림스키코르사코프 등에게 사사하여 작곡 ·음악이론 ·피아노 ·지휘 등을 배우고 1914년에 졸업하였다. 이 사이에도 《제1피아노협주곡》을 비롯하여 많은 곡을 작곡하였으며 또 1908년에는 ‘현대음악의 저녁’이라는 모임에 참여하여 이때부터 유럽 근대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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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런던에서 S.P.디아길레프에 게 발레음악 작곡을 권유받아 귀국 후 《알라와 롤리》를 작곡하였으나 이 작품은 상연되지 않은 채 《스키타이모음곡》으로 개작되었다. 러시아혁명을 계기로 1918년 미국에 망명, 오페라 《3개의 오렌지에의 사랑》 등을 발표한 다음 유럽으로 건너가 유명한 《피아노협주곡 제3번》을 포함한 많은 곡을 작곡하였다. 1933년 소련의 여러 차례에 걸친 귀국 종용으로 조국으로 돌아가 당국의 비판을 받아가면서도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알렉산드르 네프스키》《교향곡 제5번》 등을 완성하고, 스탈린의 사망과 같은 해에 죽었다. 작풍은 초기의 원시적인 격렬함에서 점차 고전적 경향으로 이행하여 감미롭고 간소한 스타일을 취하였다. 8개의 오페라, 7개의 발레, 각 10곡의 교향곡과 협주곡 외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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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웃은 참마음 참이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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