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988 Aria ~ Var.7 - Gustav Leonhardt
밤의 숨결을 깨우는 피아노의 정수 1742년 바흐는 "클라비어 연습곡집(Clavierubung book) 제4부"로서 "2단 건반 달린 클라비코드"를 위한 여러가지 변주를 지닌 아리아"로 출판 했습니다. 뒤에 이 곡집은 "골드베르크변주곡"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현재에도 바흐의 클라비어곡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언듯 부제만 보더라도 이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요즘은 피아노에 맞게 교정된 악보로 연주를 합니다. 이것은 그의 제자이며 드레스덴 주재 러시아 대사 카이절링크 백작의 쳄발리스트인 골드베르크(Johann Gottflied Goldberg)를 위하여 작곡하였습니다. 바흐의 좋은 후원자였던 백작은 불면증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 동안 자신을 위로해 줄 음악을 작곡하여 달라고 바흐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태어난 것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던 겁니다. 실상 백작을 위하여 밤에 연주를 하여야 했던 사람은 바로 골드베르크였죠. 이 곡에 선택된 테마는 "안나 막달레나를 위한 소곡집"에 들어 있는 사라방드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30번 변주곡에는 두 개의 대중적인 멜로디인 "나는 배추와 담배에 질렸어요"와 "오래 전부터 나는 너와 함께 있지 못하였네"를 삽입하였습니다. 백작은 이 곡을 무척 사랑하였으며 바흐에게는 프랑스 금화 100냥으로 금술잔을 만들어 사례하였습니다. 덕분에 "골드베르크변주곡"은 다른 모든 작품보다 바흐에게 가장 많은 결실을 안겨다 준 곡이 된 셈이 되었습니다. 이 곡은 주제를 처음과 끝에 두고 그 사이에 30개의 변주를 질서정연하게 배열하여 전체를 두 부분으로 나눈다는 논리적인 구성이 잡혀 있습니다. 각 변주가 모두 상상력이 넘치는 것으로서 변주곡 사상 불멸의 걸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1. 개설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바흐의 가장 매력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흔히 바흐는 딱딱하고 어려우며 뭔가 고루한 느낌의 음악인 것 같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접하게 된다. 그러나 골드베르그 변주곡의 아름다움, 특히 주제곡인 아리아의 단순하면서도 명상적인 선율 속에 숨어있는 무한한 아름다움을 한번 맛보게 되면 이와 같은 편견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인간이 만들어낸 변주곡 중에서 이와 같은 위대한 작품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매우 회의적이다. 그 누구도 단순한 아리아 한 곡을 바탕으로 이렇게 다양하고 생동감 넘치며 변화무쌍한 작품을 만들어 내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만약 바흐의 다른 곡을 모두 없애버리고 이 한 곡만 남겨둔다 하더라도 그의 이름은 음악사에서 여전히 불멸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의 아름다움에 심취하고 그 다양한 변화의 조화로움에 감탄하였던가. 음악학자 가이링거(K.Geiringer)는 바흐가 이 변주곡에서 클라비어 음악의 여러 가지 분야를 총결산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거대한 작품은 작곡자의 끝없는 상상력과 최고의 기술적 수완이 발휘된 작품으로서, 18세기의 클라비어 변주곡 중 이와 견줄만한 것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2. 구성 이 변주곡은 장중하면서도 아름답고 명상적인 사라방드 스타일의 G장조 주제와 그에 이어지는 30곡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리아' 라고 이름 붙여진 G장조 4분의 4박자의 주제곡은 1725년에 작곡된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에 실려있는 '사라방드'에서 취해진 것이다.(이 모음곡에는 영화 <접속>에 인용되어 유명한 '미뉴엣'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어지는 30개의 변주곡 중에서 세 곡은 G단조이고 나머지는 모두 G장조이다. 각각의 변주곡은 32마디의 저음부를 공유하면서 이것이 다양하게 변주되는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멜로디 라인이 저음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구사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아리아의 선율보다는 베이스 라인에서 변주의 소재를 취함으로써 각 변주의 멜로디나 곡의 형식은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바흐는 이 곡에서 사라방드, 푸가, 토카타, 트리오 소나타, 코랄, 아리아 등의 여러 가지 형태의 곡들을 자유롭게 배열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여러 곡들이 무작위로 배열된 것이 아니라 세곡 단위로 묶여져 있으며 각 묶음의 첫곡은 항상 카논(돌림노래형식의 일종) 형식인데, 이 각각의 카논들은 한 음정씩 증가하는 규칙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를테면 3변주는 1도 카논, 6변주는 2도 카논, 9변주는 3도 카논..... 27변주는 9도 카논 하는 식으로). 그리고, 마지막 제 30변주에는 그 당시 유행하던 민요 두곡의 멜로디가 인용되어 있는데, 이 곡의 가사내용은 "나는 오랫동안 너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돌아오라,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다오" 라는 내용이다. 이 마지막 변주가 끝나면 다시 처음과 동일한 아리아가 반복되는데, 이는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간청에 못 이겨 아리아가 다시 나타나는 것 같은 재미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바흐는 이와 같은 음악의 구조 내에서의 수학적인 질서를 매우 중요시하였는데, 골드베르그 변주곡 뿐만 아니라 B단조 미사나 마태 수난곡 등의 대곡에서도 아주 정교한 수학적 규칙에 따라 음악이 구성되어 있어서 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물론 이 곡은 갖가지 수수께끼와 많은 일화들을 간직하고 있으나 우리는 거기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단순함 속에 포함되어 있는 다양함과 다채로움, 그리고 무한한 생명력, 음으로 이루어지는 정신세계의 위대함, 이러한 것들이 이 곡에 숨어있는 진정 위대한 보물들이며 바흐 음악의 진면목이 이 한곡에 집대성 되어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곡과 에피소드 이 곡은 '골드베르그 변주곡'이라고 불리어지게 된 에피소드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1802년에 포르켈이라는 사람이 펴낸 바흐의 전기 속에 이 작품의 작곡경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라고 말하면서 포르켈은 이 에피소드를 끝맺고 있다. 이 곡은 이러한 약간은 로맨틱한 에피소드를 배경으로 널리 알려져 왔지만 그 신빙성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변주곡이 출판된 것은 1742년 경이며 작곡시기는 1740년 경으로 추정된다. 이때는 골드베르그의 나이가 불과 13세의 어린 소년이었으며, 과연 바흐가 13세의 소년을 위해 이런 복잡한 곡을 작곡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게 된다. 게다가 1742년의 출판본에는 거액의 사례비를 주었다는 카이제를링크 백작에 대한 헌정사나 감사문은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과연 기존의 에피소드가 사실일까 하는 의문은 더욱 깊어진다. 카이제를링크는 바흐와 평소 친분이 있었던 사람이었으며 바흐가 궁정작곡가의 직함을 가지게 되는데에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바흐는 38세에 성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 (합창장) 로 부임하여 65세에 사망할 때까지 이 직위에 있었다. 이 자리는 여러 가지로 교회당국과의 마찰이 심한 자리였으며 곧은 성미에 주변성이 없는 바흐로서는 시의원들이나 목사들과의 충돌이 잦았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라이프찌히의 통치자인 작센 선거후에게서 1736년 11월에 '폴란드왕 겸 작센 선거후 궁정작곡가' 라는 직함을 수여받게 되어 시의 고위층 인사들과의 접촉시 매우 유리한 입장이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사람이 바로 카이제를링크 백작이었다. 바흐는 평소 그와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번은 새로 제작된 쳄발로의 성능을 시험하는 자리에서 바흐가 자신이 작곡한 변주곡 전곡을 연주하였었고 카이제를링크 백작은 그 곡을 매우 칭찬하였다고 한다. 이에 바흐는 이 곡이 출판되면 한 권을 보내드리겠다고 말하였다는데, 아마도 이 일화와 평소 두사람의 친분을 바탕으로 하여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에피소드가 각색되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최근의 이론이다. 이상은 웹진 'Go! classic'에서 인용함. 글: 김태우 (go! classic)
곡해설 바흐: 이탈리아의 선율 바흐의 라이프치히 음악감독 전임자인 요한 쿠나우는 1689년 “새 건반 연습곡집 Neuer Clavier-Ubung”을 출판했다. 글자 그대로는 ‘건반 연습’ 이라는 말이다. 바흐도 쿠나우의 선례를 따라 1726년부터 1741년 사이에 네 가지 악보를 출판했다. 이 전집은 여섯 곡의 파르티타로 시작된다. 둘째는 콘체르토와 춤곡이 딸린 서곡이다. 셋째는 전주곡과 푸가로 구성된 오르간을 위한 코랄 프렐류드이다. 그리고 네 번째가 바로 여기 소개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혹자는 바흐가 의도했던 ‘학습 의도’를 가볍게 취급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말하는 ‘학습 의도’에 대한 이해를 넓힐 필요가 있다. 단순히 “교습생에게 어떻게 건반 연주를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제한적인 의미가 아니라 넓은 의미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즉 바흐의 키보드 음악은 작곡을 어떻게 할지, 감상을 어떻게 할지에 국한 하지 않고, 인생 자체의 질서, 대칭, 패턴, 변화 그리고 심지어 인생의 본질은 물론 정서 표현을 조정하는 방법까지를 망라했기 때문이다. 원래 표제는 매우 길다. “음악애호가들의 정신을 새롭게 하기 위한, 다양한 변주곡과 아리아로 구성된 2단 하프시코드를 위한 키보드 연습곡”이라고 되어있다. 새로운 표제에 얽힌 뒷이야기는 바흐의 전기를 쓴 요한 니콜라우스 포르켈이 1802년에 출판한 책에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카이저링크 공작은 작센 선제후 궁에 파견되었던 전직 러시아 전권 공사였고 임지인 라이프치히에 자주 거주했다. 당시 그는 골드베르크를 데려 왔는데..... 바흐로부터 음악을 교습 받게 하였다. 공작은 허약했고 자주 불면증으로 시달렸다...... 공작은 바흐에게 클라비어 곡을 골드베르크에게 작곡해 주되, 조용하고 경쾌한 곡이면 이 곡을 듣고 불면증을 어느 정도 견뎌 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바흐는 공작이 바라는 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음악이 변주곡이라 생각했다. 계속적으로 비슷비슷한 기본적인 화음이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바흐는 변주곡의 작곡을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바흐의 음악은 당대 예술의 표본이었으며, 이 변주곡들 역시 바흐의 손에 의해 완성되었다. 이 작품은 바흐가 후세에 남긴 유일한 변주곡이 되었다. 그 후로 공작은 이 곡을 부를 때 반드시 ‘그의’ 변주곡이라고 부르게 했다. 공작은 결코 이 곡에 싫증을 느낄 때가 없었고 오래 동안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때면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해 보게.” 하고 주문했다고 한다. 바흐가 이 곡을 작곡해 받은 보수는 다른 어느 경우보다 많았다. 공작은 바흐에게 황금 술잔에 금화 100루이를 채워 주었다고 전한다.” 번역. A. C. F. Kollmann (1820) 요즈음 학자들은 위의 이야기에 대해 회의적이다. 출판 악보는 카이저링크에게 헌정된 것이 아니고 또 포르켈이 주로 자료를 제공받은 빌헬름 프리데만과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도 당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도 들은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꾸민 것이라 본다. 이 곡이 출판된 때 골드베르크는 열네 살에 불과했고, 작곡되고 바로 연주했다면 정말 발달이 빠른 조숙한 연주자였을 것이다. 변주곡의 구조는 공작이 요구한 것과 매우 달랐기에 위의 이야기가 사실이 되기 위해서는 원래 골드베르크를 위해 작곡한 변주곡 몇몇을 기초로 해 좀 더 복잡하고 정교한 곡을 추가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포르켈은 바흐가 젊었을 때 다른 변주곡을 작곡한 것을 모르고 있었고, 1725년에 작곡된 바흐의 안나 막달레나를 위한 음악노트에 아리아가 포함된 것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이 아리아는 변주곡들에서 장식된 형태로 베이스에 위치하는데, 이 베이스는 바흐가 화성과 함께 전통적으로 변주곡에서 매우 중요시 여겼던 요소이다. 그러나 바흐가 중요시 했던 이러한 변주 방식은 그 이후로 쓰이지 않게 되었고, 그리하여 포르켈은 이러한 또 다른 예를 들 수가 없었다. 처음 여덟 마디에 쓰인 베이스 라인은 셀 수 없이 많은17세기 작품들에서 쓰여온 것이며(즉흥곡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반종지(5도로 맺는 종지)로 이어지는 다음 여덟 소절 또한 독창적이라 할 수 없다. 두 번째 부분인 관계 단조로 끝나는 마디 24의 종지는 예측하기 힘든 진행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이 곡의 기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테마가 가지고 있는 견고한 화성학적 구조가 우리를 바흐의 위대한 대위적 기술과 멜로디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이 중요하다. 당시 키보드 음악은 악기를 특별히 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흐는 이 곡의 악기를 분명히 밝혔다. 아무 하프시코드라도 괜찮은 것이 아니고, 반드시 두 단의 건반이 있는 하프시코드라고 정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소리를 각각 다르게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연주도 쉬웠다. 손이 꼬이지 않게 했고 악구와 악절을 좀 더 쉽게 연주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바흐는 건반이 단벌인 키보드 악기의 경우 양손을 교차시켜 연주하도록 지시했다. 그가 살고 있을 당시 포르투갈 및 스페인에서 건반 양식을 현저하게 발전시킨 스카를라티처럼 바흐도 양손으로 건반의 최대 범위까지 활용하도록 했다. 이 변주곡들을 순서대로 살펴보면, 확실히 다른 곡과 구별되는 특징을 볼 수 있다. 매 세 번째 변주마다 카논의 도입부를 두었고, 동음의 카논(한 성부가 다른 성부를 같은 음정으로 모방)부터 9도 카논(두 성부가 옥타브와 한 음 더 떨어진)까지 가게 된다. 곡 전체는 두 부분으로 나뉘었고 두 번째 부분은 프랑스풍 서곡으로 시작한다. 아마 이는 15번 변주 뒤 잠깐의 휴지를 염두에 둔 것 같다. 마지막 변주에는 베이스에 몇 개의 통속 선율을 엮었다. 이것은 ‘Ich bin so lang nicht bei dir’ (나는 너무 오랫동안 너와 떨어져 있었네)와 ‘Kraut und Ruben’ (양배추와 무)인데, 이는 이 작품을 너무 심각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이다. 그럼 이 곡의 구조 속에 음악 외적인 의미는 없는 걸까? 단순히 어떤 이는 30이 의미하는 바는 신, 구약성서의 상징인, 십계와 삼위일체의 산물이라 한다. 좀 더 복잡한 논쟁으로는 고전 수사학을 동원해서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천동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바흐는 말미에 아리아를 되풀이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저녁을 정돈되게 마무리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바흐는 여러 절을 거쳐 처음으로 다시 돌아오는 노래들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혹자는 이를 영원성의 상징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피렌체에서 태어난 페루치오 부조니는 열 살 때에 오스트리아로 건너갔고, 10년 뒤에는 독일에 정착했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서로 다른 음악적 전통 사이에서 해법을 찾지 못했던 그는 리스트 이후의 피아노 테크닉의 발전과 신고전주에 대한 신념 사이에서도 지속적인 갈등을 겪게 된다. 그의 바흐 편곡은 생산적인 투쟁의 산물이다. ‘샤콘느’는 이탈리아를 통해 독일에 들어 왔고, 부조니는 이 바흐의 비범한 바이올린 변주곡(골드베르크 변주곡보다 간단한 저음 주제임에도)을 비르투오조를 위한 피아노곡으로 재창조하였다. 배정은 대리(je.bae@yourstage.com)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988 이 곡은 아리아와 30개의 변주곡으로 구성되었으며, 조성은 G장조를 기본(g단조는 3부분)으로 하고, 9곡이 캐논형식(돌림노래 형식으로 구성된 음악의 한 형식)이며, 제30번 변주곡은 당시의 유행가를 차용하여 곡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또한 곡의 마지막에는 다시 아리아를 반복하게 하여 서사시 같은 긴 여정을 회고하듯 마무리 짓게 하고 있다. 세번째의 변주마다 캐논을 배치하여 형식상의 일관성을 부여하였으며, 수학적인 느낌이 들 정도의 엄격한 짜임새를 바탕으로 기본주제로부터 무궁무진한 변화를 이루고 있는데, 건반악기가 지니는 표현력을 통해 심오하고 품격 높은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다. 원전연주의 대부로 군림하는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같은 이는 이 곡을 푸가의 기법 (BWV1080)과 더불어 바흐를 향한 관문으로 여길 만큼 높이 평가한다. 사실 음악가에게 그렇게 받아 들여지는 것이 무척 의외이기도 한데, 글쓴이처럼 음악을 감상 목적으로 듣는 많은 분들 중에 이 골드베르그 변주곡 때문에 바흐에 심취하게 된 경우도 많은 듯하다. 고금을 통해 이 변주곡은 건반음악에서 최고의 변주곡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런 형식의 곡으로서 골드베르그 변주곡에 필적할 곡은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정도가 있다고 한다. 이 변주곡은 1741년에서 42년 사이에 출판되었다. 이곡의 본래의 이름은 초판본의 첫 페이지의 악보에 기재된 "2단의 쳄발로를 위한 다양한 변주곡을 가진 아리아" 이다. 전곡을 연주하는데 50분 내외에서 80분(반복연주를 할 경우)내외의 시간이 걸린다. 각 변주는 화성적인 골격을 근간으로 하면서 다채로운 방식으로 성격 변주의 형식으로 곡상을 전개한다. 다만 곡이 지나치게 길고 완만하게 되는 것을 인식하여서 인지 곡의 중반부인 제16번 변주에서는 프랑스풍의 서곡을 배치하여 곡의 지루함을 달래고 있다. 그래서 제16번 변주부터는 전체적으로 새로운 음악이 시작되는 느낌 마저 든다. 이 곡의 골격은 다음과 같다.
구성 주제(아리아)는 G장조 3/4박자. 장중한 사라방드풍의 곡으로 장식음을 비교적 많이 쓰고 있으며 평온함이 넘치는 아름다운 곡이다. 이 선율은 바흐의 작품이 아니라는 설도 있으나, 1725년의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 제2권에서 발견된다. 이곡의 연주에서 가장 개성적인 것으로는 익히 알려진 글렌 굴드나 로잘린 투렉의 느린 연주가 정평이 나있다. 정반대의 시각에서 빌헬름 캠프의 장식음을 땐 빠른 연주도 매력적인데, 마치 옛적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해석이다. 제1변주는 G장조 3/4 박자. 매끄러운 음계진행을 잘 부각시킨 리드미컬하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활발한 변주이다. 쳄발로(개인적으로 제1변주는 랄프 커크패트릭의 연주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 됨)는 별론으로 하고 피아노로는 음악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어려운 변주곡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제2변주는 G장조 2/4박자. 아기자기한 맛을 풍기는 선율이 인상적이다. 구스타프 레온하르트(특히 그의 최후의 레코딩)가 이 제2번 변주곡을 가장 잘 연주한다고 생각한다. 제3변주는 G장조 12/8박자. 이 변주곡은 성부간의 대비감을 또렷하게 연주하면 더욱 경묘한 맛이 우러난다. 특히 왼손의 진행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 곡이다. 우주적인 느낌(글렌굴드의 두 번째 레코딩이 특히 그러한 느낌을 줌)이 들며 매우 온화한 느낌(빌헬름 캠프와 헬무트 발햐의 연주에서 그런 뉘앙스가 풍김) 이 드는 변주이다. 제4변주는 G장조 3/8박자. 경쾌하고 활기 있는 곡으로 비트(굴드나 레온하르트는 이점을 매우 강조하고 있음)있는 선율의 전개가 이색적으로 와 닿는 곡이라 생각된다. 이 4번 변주는 특히 발햐의 부드러운 연주가 이 곡의 특성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제5변주는 G장조 3/4박자. 때굴때굴 구르는듯한 분위기가 뭍혀 나온다. 약간 자기방어적인 느낌도 가져오는 경묘한 곡으로 호기심 어린 소년의 모습도 연상된다. 제6변주는 G장조 3/8박자. 약간 정제된 느낌을 주는 느린 곡이다. 속박된 무언의 억눌림이 느껴지기도 한다. 제7변주는 G장조 6/8박자. 약간 도전적이고 다소간 항의적인 느낌이 감도는 시칠리아나풍의 곡이다. 선율적이고 자조적인 분위기도 느껴진다. 제8변주는 G장조 3/4박자. 2단 건반용의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피아노로는 연주하기 어렵다고 한다. 뭔가 훌훌 던져버리고 싶은 자유스러움에 대한 동경이 느껴지는 활발한 토카타풍의 곡이다. 제9변주는 G장조 4/4박자. 매우 유유자적한 고고한 분위기가 아련히 감도는 변주이다. 시적 감흥에 심취하여 아름다운 시를 쓰려는 시인의 여유로운 산책같은 느낌이 드는 곡이다. 제10변주는 G장조 2/2박자. 막힌데 없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강인한 모습이 떠오르는 변주이다. 앞의 변주곡이 여성적이라면 이 10번 변주는 남성적이라 할 것이다. 장식음을 극도로 자제한 빌헬름 캠프의 연주가 매우 순박하게 와 닿는 곡이다. 제11변주는 G장조 12/16박자. 다시 약간 가라않는 심적 상태를 나타내는 다소 정적인 변주로 토카타풍의 곡이다. 제12변주는 G장조 3/4박자. 뭔가 바라는 아니면 심사숙고하는 뉘앙스가 풍겨져 나오는 서정적이고 약간은 센치멘탈한 분위기가 발현되는 변주이다. 제13변주는 G장조 3/4박자. 지금까지의 변주 가운데 가장 사색적이고 시적 감흥이 넘치는 세심한 심적상태를 표출하는 유미한 선율을 가진 변주이다. 전반부(제1~15변주까지)에서 가장 심도높은 변주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곡의 흐름상 현악기 선율로 표현해도 전혀 이상할게 없는 변주이다. 제14변주는 G장조 3/4박자. 쾌활한 느낌을 주는 전주곡 혹은 토카타풍의 변주이다. 피아노로 연주하면 극명한 해석이 차이를 감지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글렌굴드가 불어넣은 쳄발로 지향의 스타카토를 살린 강렬한 느낌의 연주가 통용되지만 정반대로 레가토를 곡 전면에 포진한 빌헬름캠프의 해석도 웅장하기 이를데 없다고 생각된다. 막힌 속이 후련할 정도로 활기찬 곡이다. 앞뒤 변주와는 대조의 묘미가 다채롭게 느껴진다. 제15변주는 g단조 2/4박자. 단조곡답게 멜랑꼬리한 정서가 감지되는 매우 여성적인 곡이라고 느껴진다. 풍부하고 부드러운 표정의 느리고 우아한 곡이다. 이 변주곡집에서 사용된 단조곡으로 이 15번 변주가 첫째로 스타트를 끊고 있다. 특히 쳄발로가 이변주를 운치감 있게 잘 표현 하는 것 같다. 제16변주는 G장조. 전반은 2/2박자, 후반은 3/8박자로 되어있는 활기찬 곡이다. 이곡은 "서곡"이라고 적혀 있는데, 변주곡이 지나치게 긴것을 의식하여 작곡자 자신이 변주곡에 긴장감을 부여하기 위해 부가한 것으로 보이며 앞의 곡과는 분리되어 제2부를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곡이 발산하는 느낌은 팡파레같은 저돌성이라 생각된다. 제17변주는 G장조 3/4박자. 뭔가 성마르고 조급한 심적 상태를 표현 한 것 같은 뉘앙스가 느껴지는 토카타풍의 곡으로 뒤로 갈수록 약간 격정적인 느낌도 든다. 제18변주는 G장조 2/2박자. 골드베르그 변주곡 가운데서도 가장 리드미컬한 맛이 일품인 곡이다. 무곡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어깨가 넘실댄다. 상당히 당당하고 위엄있는 곡이다. 제19변주는 G장조 3/8박자. 무곡풍의 다소 여유로운 자태도 간직하고 있으며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무심한 느낌을 전달하는 것 같다. 제20변주는 G장조 3/4박자. 화려한 장식음의 묘미가 기교적으로 선뜻 와 닿는 곡으로 이러한 느낌은 세밀한 음조의 쳄발로에 아주 합당 하다고 생각된다 피아노로는 아무래도 약간 허전한 느낌이 든다. 제21변주는 g단조 4/4박자. 이 변주곡에서는 2번째의 단조곡으로 아주 사색적인 곡인데, 멜랑꼬리 하다기 보다는 상념의 바다를 거니는 불면증 환자의 자조같은 느낌이 든다. 쳄발로의 차랑차랑한 잔향이 멋진 운치감을 부여한다. 제22변주는 G장조 2/2박자. 외유내강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변주곡이다. 외관상으로는 온건하지만 음악이 발산하는 뉘앙스는 굳건한 것 같다. 제23변주는 G장조 3/4박자. 대위법의 묘미를 잘 표현하고 있어서 매우 변화무쌍하게 느껴진다. 즉흥적인 요소가 있고 번쩍이는 화려함도 있다. 곡전체는 남성적이고 강건한느낌이 든다. 제24변주는 G장조 9/8박자. 이곡은 내성적인 느낌을 전달하는 부드러운 변주이다. 후반부로 가게 되면 자잘한 표현으로 애조어린 느낌도 전달한다. 제25변주는 g단조 3/4박자. 느리고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느낌을 전달하는 곡으로 이변주곡의 세 번째 단조곡이다. 바흐가 배치한 이 세편의 단조 변주곡들은 장조선율의 평안함에 센치멘탈한 느낌을 부가하여서 한 1시간이 넘는 긴 여정의 선율여행에 활력소 역할을 하게 하는 것 같다. 완만하기 이를데 없는 이곡을 적시는 단비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26변주는 G장조. 전주곡풍으로 18/16과 3/4박자의 선율을 대립시키고 있다. 긴장감이 전편을 휩싸고 있는 화려한 변주곡이다. 제27변주는 G장조 6/8박자. 뭔가 쫓기듯이 앞을 내달리는 사람같다. 별일 아닌데 조급해 하는 그런 느낌이 이변주에서 느껴진다. 제28변주는 G장조 3/4박자. 한음한음 또박또박 연주하는 가운데 규칙적인 트릴의 사용이 곡을 매우 기교적이고 화려하게 돋보이게 한다. 구스타프 레온하르트의 이변주곡 연주는 정말이지 심도가 높다고 본다. 그 정제된 화려함 속에서 세상사의 이치를 깨달은 구도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제29변주는 G장조 3/4박자. 곡 전체가 화음을 잘 사용하고 있는데, 쳄발로로 연주하면 더욱더 풍성함을 맛 볼 수 있다. 곡상은 매우 진취적이고 저돌적인 느낌이 든다. 제30변주는 G장조 4/4박자. 당시의 유행가 선율 두가지(하나는 '캐비지에 순무' 라는 이탈리아 민속 음악이며,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군'이라는 독일 민요)를 원용하여 대위법적으로 재구성한 변주곡이다. 바흐의 음악적 능력을 볼 수 있는 대목이라 생각한다. 바흐는 작곡은 말할 것도 없고 편곡의 달인인 것 같다. 아리아 다 카포는 G장조 3/4박자. 마지막의 제30변주 다음에 처음의 아리아를 다시 한번 반복하여 이 기나긴 음악 여정에 통일성과 여운을 남겨주고 있다. 이 아리아를 듣게 되면 앞의 변주곡이 아련한 옛일처럼 느껴지게 할 것이다. (이상 각 변주곡에 단 간단한 느낌설명 은 구스타프 레온 하르트의 연주를 중심 기술한 것임)
피아노로의 연주가능성 정식 명칭이 그러하듯 이곡은 쳄발로를 위한 곡이다. 그러나 음반을 들어 보면 피아노로도 전혀 손색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손이 크로싱 되는 경우가 많지만 연주자들은 별무리 없이 연주한다. 필자는 음악에 문외한이지만 실황연주를 보면 손이 엇갈리는 장면을 많이 보게 된다. 문제는 연주의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쳄발로로 연주 될때의 폴리포닉하고 풍성한 맛이 피아노로 옮겨지게 되면 실종하게 된다데에 오히려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할 것이다. 따라서 피아노연주는 항상 위태위태한 한계선을 걷는 느낌을 주거나 불안한 시도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항상 실패를 감수해야 될 음악이 또한 이 골드베르그 변주곡인 것이다. 그렇지만 음반으로 확인되는 이곡의 피아노로의 성공은 나름대로 우리에게 시위하듯 다가온다. 이러한 약간 모순적인 현상은 바흐음악의 외형적인 특징과 음악적 내용의 구체화(혹은 감정이입)라는 바흐음악에 내재하는 강한 미학적 메시지와도 연결는 것 이리라! 피아노라는 악기는 악기의 제왕으로서 고전파, 낭만파를 거치면서 인간 감정의 음악적 표출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작곡자들도 피아노의 기능과 역량에 순응하여 작곡하였다. 하지만 바흐시대에는 대표적인 건반악기가 쳄발로 였으며, 피아노는 태생하는 단계였다고 한다. 쳄발로와 피아노의 기계적이고 음향적인 차이로 인해 피아노로 도저히 처리 곤란한 경우도 있을수 있다. 이는 대위법과 화성적인 면을 강조한 그시기의 음악적 특징과도 연계되는 문제일 것이다. 쳄발로라면 쉽게 뚫고나올 음도 피아노는 자신이 만들어낸 화성의 틀에 갇혀 용해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글렌굴드가 스타카토를 전면에 내세워 넌레가토로 음악을 전개하는 이유나, 빌헬름 켐프가 레가토를 견지하면서도 악구를 단순화하고 느린 템포(항상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를 구사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바흐음악 자체의 특성에 기인하는 것 이라고 생각된다.
골드베르그 변주곡의 명반들
글렌굴드의 연주/1981/소니 클래식컬 이 곡을 사랑하는 이들도 역시 그러하겠지만, 글쓴이도 굴드와 켐프의 두 연주 사이에서 어느 것을 첫째에 배치 시킬것인지에 대해서 상당히 고심을 하였다. 이 둘의 연주는 피아노 음악을 넘어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대표하는 최고의 레코딩들이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대로 굴드는 쳄발로 음색을 피아노에 투영시켜서 음악을 일신하는 대혁신을 이루고 있으며, 켐프는 이와는 정반대의 시각에서 정통 피아니즘을 바흐에서 초지일관하고 있다. 이러한 외적 차이에 따라 음악전개의 양상은 많은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이 곡의 녹음이 있었던 1981년이라는 시점은 그의 연주역정에서 전성기가 지나가고 음악적 기예 또한 퇴조하는 시기였다. 음색에서 윤기가 많이 사라지고 시적 감흥도 사라지고 있었다. 이런 내외의 악조건에서도 그의 골드베르그 변주곡 연주는 굴드 자신의 바흐 피아노 연주반 가운데서도 최고의 평가를 받아온게 어찌보면 기적 처럼도 보인다. 사실상 마지막 레코딩이 된 이 음반은 지금까지 바흐 레코딩 가운데에서 대중들로부터 끊임없이 사랑받는 스테디셀러중의 스테디셀러이다. 허밍같은 흥얼거림이 곡 면면을 흐르고 있으며, 사람의 감정을 홀리는 독특한 뉘앙스를 주는 음악이다. 요요마 같은이는 음악의 예수가 재림한 것 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구반에 비해 독백하듯 진행하는 아주 느린 아리아와 변화무쌍한 30개의 변주가 배꽃이 뒤엉겨있는 듯한 아름다움을 주며, 아주 치밀한 전개를 한다. 자로잰 듯한 균형감속에서 느림과 빠름, 부드러움과 강한 비트, 바로크적 생동함과 고전주의적 조화로움과 고독을 지향하는 낭만성이 중층적으로 어우러져 양식상의 면에서도 폴리포니적인 느낌을 준다. 굴드의 연주를 들으면 찬연한 대비감과 파격 때문에 결코 바흐가 애당초 목적한 수면음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바흐, 굴드, 듣는사람 이 3자가 만들어내는 시공을 초월한 교감으로 생긴 사색감과 가슴 뭉클한 예술성은 음악의 존재. 자신의 존재. 현실의 존재마저 잊게 한다. "굴드의 모든 연주가 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특히 그의 바흐연주는 자신의 고독을 확인하고 그것을 더욱 깊게 축척해나가는, 그리하여 자신의 고독을 완성해 나가는 하나의 인생 행위인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고고하고 위대한 예술작품을 낳게 했던 것이다. 굴드의 연주는 단순한 음악을 연주하는 차원이상의 삶 그 자체 였기에 그의 바흐에서는 사색적인 색채짙게 번져 나오고 있다. 굴드의 이 골드베르 변주곡은 독창적이고 고독한 음악이다. (송영님의 평가)" 우스게 소리로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굴드베르그 변주곡이라고 하는 것은 이처럼 해석의 한계를 넘어서는 그의 기발하고 천재적인 음악적 운용을 빗대어 말한 것이리라. 통상 이 음반을 바라보는 시선은 비주류의 바흐로 바라 보는 견해가 많다. 또한 이 골드베르 변주곡에서도 해석이냐 아니면 그것을 넘어선 창조냐 하는 논쟁이 생길 여지는 여전히 있을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서도 굴드는 넌 레가토를 모토로 하고서 쳄발로의 음색을 지향하여 피아니스틱한 면을 도외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다른이는 다다를 수 없는 감정의 명쾌한 이입도 동시에 추구하고 있어서 그와 다른 시각에서 바흐를 바라보는 측에서는 곱지않은 시선일 것이다. 그러나 글쓴이 생각으로는 바흐음악에 있어서는 정통이니 컬트니 하는것은 의미가 별로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곡은 어차피 쳄발로곡이 원형이기 때문에 피아노로 연주하는 과정에서는 두가지 패러다임이 상존한다. 굴드나 투렉식의 접근과 켐프식의 접근이 그러한데, 모두 나름의 타당성을 가지니 말이다. 피아노의 연주 외관만을 문제삼아 이분적으로 나누는 시각은 더구나 더하다. 또한 내용실현(감정이입)에 있어서의 독특함을 문제삼아 정통을 벗어 났다고 하는 것도 설득력이 약하다고 본다. 바흐 음악 자체의 무색투명성을 고려한다면 무조건 바흐는 숭고하고 격식을 차리고 연주하여야 한다는 것 역시 바흐 음악 자체의 영역을 스스로 좁게하여 바로크 음악의 추상적 성격을 무시하는 결론에 다다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빌헬름 켐프/1969/DG 이 음반은 70이 넘은 고령의 나이에 녹음한 곡으로 원숙한 삶의 경지를 정통 피아니즘의 관점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연주하고 있다. 굴드의 연주와는 전혀 반대의 방향에서 이곡을 접근하지만, 양자의 연주를 보면 반드시 대립적인 구도로 볼것은 아니다. 음악의 구체화에 있어서 둘의 연주는 어떤 연주보다도 훌륭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음악을 풀어나가는 방법에서 차이가 날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빌헬름 켐프는 알려진대로 아주 장수한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명인데, 그의 이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들어 보면 왜 그가 오래 산지 알수있을 것이다. 음악에 담긴 흔들림없는 평정심은 아마 그의 일상의 삶 자체에서 기인 한 것일 거라고 보여진다. 독실하고 따스한 인간미를 전하는, 피아니스틱한 바흐의 전범을 그는 여기서 펼쳐 보이고 있다. 앞서 말한 듯이 글쓴이는 이 음반과 굴드의 것중에서 어느것을 첫머리에 둘지에 대해 무척 고심을 했다. 이 두 피아니스트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격조가 높기로 유명하다. 양자에 대한 호불호의 판단은 궁극적으로 사람에 따라 다를수 있다. 필자는 호불호 판단 불가로 잠정적으로 결론내리려 한다. 다만 자신의 삶을 마멸적으로 희생하며, 바흐의 보다 근원적인 이면의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고민한 글렌굴드의 연주위업을 감안하여 그의 골드베르그를 첫째곡으로 하였을 뿐이다. 켐프도 독일 후기 낭만파 음악의 영향을 받아 현대에 전달한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피아노가 노래하는 유연하고 로맨틱한 분위기가 전혀 뜬금없는 것은 아니다. 이 골드베르그에 이으러 켐프의 연주는 부조니의 편곡에 맞추어 단순한 악구의 처리가 매우 순수해서 좋다. 그의 바흐 해석은 높은 품격과 안정감에 기반하여 악상을 숭고하게 만드는데 주안점이 놓여 있다. 일견 들으면 밋밋하게 와 닿을 수 있겠지만 켐프식의 질박하고 단순한 접근이 오히려 골드베르그의 진면목인지도 모르겠다. 캠프는 온화한 음의 전개를 통해서 깊은 정신성을 불어넣을 줄 아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던 피아니스트로 보인다. 들으면 들을수록 뚝배기 국물처럼 진솔함이 우러나오는 음반이다. 레가토를 이토록 지겹도록 견지하면서도 다성음악의 아름다움을 전개시킨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필자는 이 음악을 맨 먼저 듣고 굴드의 연주를 들었는데, 다시 이음반을 들어봐도 켐프의 연주가 훌륭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사실 글쓴이가 빌헬름 켐프라는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진면목을 알수있는 계기가 된것도 이 골드베르그 변주곡 레코딩이다. 이 음반의 아리아 부분은 다른 여타의 곡들과는 다른 곡처럼 느껴지는데, 현재 녹음되어있는 많은 레코딩들이 굴드식의 연주를 따르고 있는데, 이점이 안타깝다. 굴드는 그니깐 가능하다. 다른 연주자의 연주가 맹목적으로 그를 따르려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본다. 그를 본받아야 할것은 외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곡을 체화시키는 내면적 영감이어야 한다. 오히려 외형적인것을 본받아야 할 진정한 연주는 오히려 바로 캠프의 연주인지도 모를일이다. 이 연주도 외관상 낭만적으로 느껴지지만 엄정함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균형성이 매우 뛰어나며, 또한 숭고미가 낭만성과 어떻게 결합할지를 보여주는 곡이다. 바흐음악은 낭만성과는 애증의 관계에 놓여 있다고 보여지는데, 캠프는 표현에 있어서는 기교를 멀리하여 두툼한 색조로 덤덤히 나아가지만, 그가 이곡에 불어넣은 따스한 인간미와 서정성은 필연적으로 낭만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굴드의 연주와 더불어 적극 추천할 이곡의 최고의 명연이라 생각한다.
로잘린 투렉/1988/VAI 2003년 7월 경인가 그녀가 88세(1914.12.14~2003.7.17)로 타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한명의 바흐 전문가가 갔다는점에서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신선함과 청결함이 감도는 독특한 서정미는 그녀의 바흐해석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같은 캐나다 태생이라는 점에서 굴드와 자주 비교되기도 한다. 그녀의 연주도 스타카토를 전면에 내세운 연주라는 점에서는 굴드의 연주와 유사점을 가진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다만 차이가 나는 부분은 음악을 풀어 나가는 방식인데, 굴드는 어떤 연주든 머뭇거림없이 일사천리로 나아가는 반면, 투렉은 매우 신중하게 곡상을 전개해 나간다. 그래서 느린부분의 연주가 주는 명상적인 느낌은 누구도 재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빠른 부분에서도 곡을 음미하듯이 또박또박 연주하곤 한다. 처음 들으면 약간 답답할수 있겠으나, 천천히 음미해서 듣다보면 그녀의 훌륭함에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글렌굴드 스스로도 그녀의 연주를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것을 봐도 그러하다. 굴드는 자기에게 영향을 끼친 피아니스트로 투렉을 거론할 정도로 그녀의 음악을 인정해 주었다. 재 녹음된 1998년판도 훌륭하다고 많은 분들이 이야기 한다. 필자는 직접 듣지 못했으나, 그녀의 원숙미를 생각한다면 훌륭할 것이라 믿는다. 그녀의 이 골드베르그 연주는 별이 내리비치는 하늘아래 기도하는 소녀의 모습이 떠오르는 센치멘탈한 서정성이 돋보이며 명상적인 느낌이 감돈다. 굴드의 연주와 더불어 가을에 들으면 제격인 곡이라고 본다.
원전 쳄발로 연주 구스타프 레온하르트/DHM/1976 구스타프 레온하르트는 1928년 5월 30일 네덜란드 태생의 쳄발리스트로 원전연주분야에서 명실상부한 대부로 군림하는 독보적인 존재 인데, 원전연주분야에서 그를 빼 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레온하르트는 현재의 쳄발리스트 중에서 나이나 실력으로 보나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는 음악가이다. 그의 연주는 실험적인 노력이 곳곳에서 감지되는데, 전세대의 거장인 헬무트 발햐나 랄프 커크 페트릭 등의 현대 쳄발로 연주와 현재 유행하는 원전 쳄발 연주를 잇는 과도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본다. 따라서 그의 연주를 들어 보면 원전 연주이지만 일정한 한도에서 개량 쳄발로의 맛이 서려 있다. 그는 3번 이곡을 레코딩 하였다. 청년시절에 뱅가드(53년)에서 처음으로 녹음하였으며, 그 뒤에 텔덱(65년)에서 다시 레코딩 하였으며, 마지막으로 DHM(79년)에서 세 번째 레코딩을 가졌다. 3개의 음반을 들어보면 음악을 풀어나가는 방식과 추구하는 방향에서는 그다지 편차가 발견되지는 않는다. 다만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더욱 엄정하고 정제된 방향으로 나아간 점이 뒤로 갈수록 심화된 느낌이다. 그의 음악을 듣노라면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구도자의 모습이 생각난다. 날카로운 쳄발로 음색들을 적재적소에 배합하여 대단히 단아하고 높은 정신성을 부여하고 있다. 곡의 진행에 있어서 그의 연주는 대비감을 통한 변화와 대조의 묘미 보다는 철저하리 만큼 곡의 자연스럽고 유유자적한 선율의 흐름을 중시하는 것 같은데 이점은 일반적인 쳄발리스트(특히 요즘의 젊은 연주자)와는 약간 다른 듯 하다. 또한 어느 연주자 보다도 감상자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한 모습이 감지 된다. 이곡을 반복구를 다 넣어서 연주하면 70분대를 훌쩍 넘게 되는데, 인내심 많은 애호가도 지겨울수 있으니 말이다.(사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50분대의 cd가 음악 감상의 집중면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음색상으로 그의 연주를 보면 굴드의 연주태도를 쳄발로에 담은 듯한 느낌도 든다. 다만, 그는 레코딩을 굴드처럼 완결무결하게 하려고 노력은 하지 않는 듯 하다. 제13번 변주의 시작부분의 음이 깨어지는 것을 그는 방치하고 있으니 말이다. 현역 최고의 쳄발리스트라는 말이 전혀 무색하지 않을 거성같은 존재이다. 그는 이 연주에서 최고의 음악성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악기의 선택에 있어서 파르티타를 녹음할 때 사용한 악기로 한번 더 녹음했으면 하는 바램이든다. 굴드가 그렇듯이 그의 최고의 레코딩은 파르티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발 그악기로 한번 더 녹음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피에르 앙타이/OPUS/1992 그의 연주는 음색의 풍요로움이 남다르다. 이는 그가 선택한 악기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또한 쳄발로의 사각거리는 미세한 잔향까지도 생생하게 포착한 레코딩상의 기법에 대해서도 칭찬을 하고 싶다. 통상 쳄발로라는 악기의 날카로운 음색은 음악감상을 가로막을 요소로 작용할수도 있는데, 피에르 앙타이의 연주는 그러한 걱정을 괜한 기우로 떨쳐버릴 아주 매력적인 음악이다. 이러한 탓에 초심자들에게 적극 권장할만한 곡이라고 본다. 프랑스 출신의 음악가 답게 부드럽고 유려한 선율미를 앞세워 연주해 나간다. 다만 곡전체를 아우르는 음악적인 응집력은 스승인 레온하르트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듯하며 전시대 선배들의 순수성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나름 대로 음악을 열정적으로 풀어 나가는 모습은 훌륭하다. 그가 비교적 젊은 40대 인점을 생각하면 그의 음악적인 특징은 이해가 간다. 나이가 들어 성숙해질 그의 모습에 기대가 간다. 여름에 가장 어울리는 시원스런 음악이다. 차랑차랑한 배음처리가 파도소리처럼 귓전을 맴돈다. 그 밖에 케네스 길버트, 스코트 로스 등의 음악도 훌륭하다. 다만 최근의 젊은 연주자들의 연주는 너무 기교적인 느낌이 많이든다. 특히 장식음 운용이 좀 지나치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은것도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바로크시대에는 즉흥적인 장식음의 사용이 폭넓게 이루어 졌다고 하지만, 이러한것도 연주자의 재량사항임을 감안하여 해석이 행하여 져야 할터인데 요즘의 연주는 거의 의무 사항처럼 받아 들여지는 듯 하다. 또한 장식음의 부가가 가능하다면 역의 논리로 안붙이는 것도 바로크음악의 자유스런 곡운용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아닐까? 문제는 바로크 음악이 지향하는 미학과 곡의 형평성을 얼마나 잘 안배하여 표현하는가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본다. 출처 : 인터넷 작성자 불분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