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임 키리 테 카나와 Dame Kiri Te Kanawa
뉴질랜드 노스아일랜드의 기스번에서 태어났으며 생후 5주 만에 양녀로 입적되었다. 양부는 생부와 마찬가지로 마오리족이었으며 양모는 생모와 마찬가지로 영국인 이민의 후예였다. 1963년 오클랜드에 있는 가톨릭계 여자대학에 입학했는데 그곳의 수녀들 가운데 유명한 성악교수가 있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졸업 후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개최된 여러 콩쿠르에서 입상했으며 인기있는 가수로 활동하면서 리코딩까지 한 뒤 1966년에는 런던오페라센터의 학생이 되었다.
1971년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 코벤트 가든 무대에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중 백작부인 역을 맡아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데뷔한 이후 세계적인 리릭 소프라노로 자리매김했다. <장미의 기사>‚ <카프리치오>‚ <피가로의 결혼> 등 많은 오페라 작품에서 다양한 표현력과 넓은 음역을 오르내리는 기량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그녀는 오페라뿐만 아니라 레너드 번스타인이 직접 지휘를 맡았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으며, 뮤지컬 음반 <남태평양 South Pacific>‚ <마이 페어 레이디 My Fair Lady> 등 오페라와 가곡을 비롯한 민요‚ 뮤지컬‚ 대중음악‚ 종교음악 등 많은 장르의 레퍼토리를 섭렵하면서 다재다능한 가수로 평가되어 왔다.
1981년 찰스 황태자 결혼식에서 다이애나비 못지 않은 눈부신 자태와 청아한 음성으로 헨델의 <눈부신 천사여 Let the Bright Seraphim>을 결혼 축가로 불렀으며, 이는 TV 방송을 통해 전세계의 6억 이상의 청취자들의 심금을 울렸으며, 이로써 그녀의 명성은 극에 달헀다. 이후, 1982년 영국 왕실로부터 남자의 ‘기사(Knight)’ 작위에 해당하는 ‘데임(Dame)’ 칭호를 받기도 했으며, 1992년 모차르트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Richard Strauss)의 작품을 특히 잘 부르는 리릭 소프라노라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기도 하였고, 그라모폰이 선정한 ‘올해의 음악가상’을 수상했다. 이후 왕실의 특별한 이벤트마다 초청되어 축하공연을 해왔다. 또한, 2000년, 미국의 가장 오래된 생방송 프로그램인 ‘TODAY’ 쇼의 밀레니엄 축하 라이브 공연에 초청되어 노래했고, 이 축하공연이 80여 개국에 동시에 방송이 되기도 하였다. 2004년 2월에 그녀는 ‘키리 테 카나와 재단’을 설립해 뉴질랜드의 성악가들과 음악가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13년 만에 그녀를 다시 만나다
영국이 자랑하는 소프라노이자 뉴질랜드의 국민가수로 불릴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키리 테 카나와가 1994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의 첫 내한공연 이후 13년 만에 두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내한 독창회를 가졌다. 세기의 이벤트였던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비의 결혼식에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소프라노로서 축가를 불러 세계 30억 인구의 눈을 사로잡았던 키리 테 카나와는 그동안 오페라의 백작부인으로 불리며 소프라노계의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해왔다.
또한 그녀는 13년 전 내한공연에서 우리에게는 ‘연가’로 더 잘 알려진 마오리족 민요 ‘포카레카레 아나 (Pokarekare ana)’를 앙코르곡으로 선사하여 많은 청중들이 허밍으로 함께 부르게 한 특별한 추억을 만들었다. 그녀는 클래식만을 고집하지 않고, 뮤지컬, 영화음악, 파퓰러 넘버 등 다양한 장르를 달콤한 목소리로 노래했고, 폴 매카트니의 ‘리버풀 오라토리오’, 맬컴 맥닐과의 듀엣 앨범 ‘Heart To Heart’ 등을 통해 음악이 주는 진정한 즐거움을 많은 이들에게 전했다. 그녀의 2007년 3월 13일 내한 무대는 공식적인 아시아 페어웰 투어로서 이 기품 있는 리릭 소프라노의 진수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