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마우로 줄리아니 기타 협주곡 제1번 A단조 Op. 30 - Pepe Romero, guitar

리차드 강 2013. 12. 22. 13:55

Guitar Concertos No.1 A Major o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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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니 기타협주곡 A장조 op.30

Mauro Giuliani 1781-1829

제1악장 Allegro maestoso - 2 - 3 악장 연속듣기

Pepe Romero, Guitar
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
Sir Neville Marriner, cond

이 음악은 KBS-FM방송국 아침 클래식 방송시간의 시그널 뮤직(Signal Music)으로 클래식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매일 들으시는 친숙한 곡이다. 그러나, 방송을 통해서는 항상 정해져 있는 극히 일부분만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음악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간과되고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는데 오늘 이 아름다운 기타협주곡 전부를 감상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로 시작하는 이 음악의 서주 부분만 흔히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방송에서 시그널 뮤직(Signal Music)으로 만드셨던 분들 중에서는 이 음악이 기타협주곡인지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연주 시간이 10분 가까이나 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 아름다운 매력이 끊이질 않는다. 그래서 많이 들어본 "처음 시작 부분" 에 식상하셔서 감상을 멈추면 이 곡의 진수를 놓치는 것이니, 게시물을 올린 사람의 권유를 받아 들여셔 끝까지 감상해 보기 바란다.

     
   

Giuliani

[작품 해설]

마우로 줄리아니는 모렛티, 카룰리, 카르카시 등 이탈리아 악파 중 가장 유명했던 거장이다. 1781년 이태리 바리에서 태어난 마우로 줄리아니는 정식 음악교육으로 대위법과 첼로를 공부했으나, 곧 기타에 흥미를 가졌다. 독학으로 배웠지만, 단시일내 당대의 가장 탁월한 기타리스트가 될 정도로 기타라는 악기를 완벽하게 마스터했다. 당시 이태리에서는 오페라가 성행했기 때문에 그의 재능을 보여줄 기회가 거의 없어, 유럽으로 연주여행을 다녔으며, 결국에는 음악의 중심부인 비엔나에 정착하기로 결심했었다. 거기서 그는 연주자와 작곡자로써 재능을 인정받았으며, 일련의 대 작곡가들 - 훔멜, 스포어, 디아벨리 등 - 중의 한사람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베토벤이 그를 위해 몇곡의 기타 소품을 작곡했으며, 그는 1813년 베토벤의 제 7 번 교향곡 초연시 첼로를 연주했었다. 러시아를 방문하고나서, 1819년 빈을 떠난 줄리아니는 나폴리로 돌아와 1829년 눈을 감았다. 당시 줄리아니의 죽음에 애도를 금치 못했던 어느 유명한 평론가가 다음과 같이 적고있다. "줄리아니가 울려주는 음색은 기타라는 악기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순수한 것이다. 그의 손에 기타가 쥐어지면 금방 음은 살아 움직이듯 느껴지거나 빛나며 혹은 흐느껴 운다. 그는 느린 악장의 아다지오를 같은 스타카토의 악기인 피아노와 틀리게 멋진 가락의 흐름으로 노래하며 화음을 교묘히 엮어 나간다. 물론 이러한 점은 기타라는 악기가 본래의 특성으로 갖고 있는 독특한 것인지도 모르나 다시금 줄리아니의 끊임없는 연구와 풍부한 열정으로 말미암아 그 특성을 충분히 나타냈던 것이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줄리아니는 기타를 노래하도록 한 것이다."

줄리아니가 기타를 위해 남긴 작품은 아주 대단한 분량이어 200곡이 넘는다. 기타 독주곡, 기타 실내악곡, 그리고 3개의 협주곡 등이 그것이다.

19세기 초, 비엔나에서는 공공연주회가 뿌리깊이 정착이 되었기 때문에 연주자의 재능과 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협주곡 연주가 큰 도구로 작용했었다. 줄리아니의 협주곡 A장조 op.30(비슷한 시기에 작곡한 3개의 협주곡 중 첫번째 작품)은 놀랄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대규모 관현악과 기타를 위해 작곡되어진 이 작품은 모차르트에 의해 정립된 3악장 구성의 고전적 형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본다면 아주 낭만적 요소를 지니 고 있으며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갖는 간결한 구성보다는 차라리 훔멜, 베버 및 롯시니에게서 느낄 수 있는 하모니와 멜로디를 구사하고 있다.

1808년 4월 3일 레두덴살 아카데미에서 줄리아니의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A자오 op.30>이 초연되었다. 그는 작곡 뿐만 아니라 그날 기타로 직접 연주했다.

이 연주장에는 청중의 한 사람으로 베토벤이 있었다. 악성 역시 줄리아니 기타에 도취되어 열광했고 또 "기타는 그 자체가 작은 오케스트라이다"라고 극찬했다 한다.

음악평론가 구스타프 쉴링(Gustav shilling)은 그날 연주평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줄리아니는 매우 비상한 기타 테크닉을 지녔다. 그의 음색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아마 지금까지 활약하는 기타리스트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거장일 것이다.

 

 

작품구성

제1악장 Allegro maestoso A장조 4/4박자의 소나타 형식이다.

총 연주부분에서는 2개의 기본적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제1주제는 매우 상쾌하고 우아하며 제2주제는 서정미에 가득 차 있다. 다음 부가적인 장식음과 카덴자를 가지면서 기타에 의해 다듬어진다. 절정으로 치솟는 발전부와 함께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 뒤, 주요 주제가 다시 반복된다.

 

제2악장 Andantino 3/4박자 E단조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낭만이 서려있다. 마치 실연의 노래같이... 시실리아노풍의 리듬을 내포하면서 영감적인 로만자로 돌입한다.

 

제3악장 Polonaise A장조 3/4박자로 폴로네이즈풍이다.

자유로운 론도형태를 이루는 폴로네에즈이다. 활기띤 즐거움과 리드미컬한 박력감을 느낄 수 있다. 기타의 발달한 멜로디가 일품이며, 아르페지오 역시 마찬가지이다.

 

Mauro Giuliani Italy Volona, 1781 - 1829

줄리아니는 처음에는 바이올린을 공부했으나 후에 기타로 옮겨, 20세 때에는 이미 당대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각광을 받았으며, 유럽 각지를 순회 연주하면서 대성공을 거두었고, 1807년부터는 비엔나에 정착하여 작곡과 교수 생활에 전념하였다.

철저한 단음악 수법과 메카닉할 정도로 질서정연한 형식미를 갖춘 줄리아니는 소르와 쌍벽을 이루는 고전파의 대가로서, 소르의 우아하고 명쾌한 대위법적인 악풍에 비해서 줄리아니는 호탕하고 직선적이며 장엄한 음량의 표현을 특징으로 하는 천부적인 작곡가였다.

마우로 줄리아니는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었으며 19세기 뛰어난 기타 연주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드리아 海를 끼고 있는 이탈리아 Biscegile에서 태어났으며 형과 함께 Barietta에서 음악 공부를 하였다. 첼로로 시작하여 바이올린도 배웠으며, 기타는 부수적으로 독학으로 공부하여 짧은 기간에 높은 연주 실력을 쌓았다. 그가 누구에게서 배웠으며 이탈리아에서 어떤 활동을 하였는지는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Barietta에서 마리아 주세페 델 모나코와 결혼하여 아들 미카엘을 낳았고, 잠시 동안 블로냐와 트리스에서 머물며 대위법을 배웠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는 가족을 남겨둔 채로 떠나 비엔나에서 프로라인 빌무스라는 여인을 만나 1807년에는 딸 마리아를 낳았다. 비엔나에서 정통 기악연주에 익숙하게 된 그는 1807년부터 자신의 곡을 출판하기 시작하였다.

전 유럽으로 연주 여행을 하게 된 그는 대가적 연주로 자신의 음악적 풍취를 소개하여 가는 곳마다 찬사를 받았다. 그의 성공은 대단한 것이어서 19세기 초반에 비엔나에서 활동하던 음악가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그리고 다양한 악기을 다룰 줄 아는 연주자로 명성을 쌓게 되었다. 당시 유럽음악의 정황에서 기타의 새로운 역할을 정립한 줄리아니는 이제 베토벤이나 로씨니 같은 비엔나 최고의 음악가들과도 친교를 맺게 되었다.

1815년에는 피아니스트 훔멜를 비롯한 당대에 이름있는 현악 연주자들과 함께 비엔나의 유서 깊은 Schonbrunn 궁전의 정원에서 일련의 연주회를 열어 입장료를 金貨 (Ducat)로만 받기도 하였으며, ( 이 연주회 들은 후에 "Dukaten Condert"로 불린다) 1875년에는 베토벤의 7번 교향곡 초연에서 첼로 연주자로 참여하였다. 유명 연주자들을 많이 배양하기는 하였으나, 거래를 하였던 츨판업자가 그의 작품의 대부분을 기타를 위한 작품을 위주로 출판하였던 관계로 작곡자로서 줄리아니는 비엔나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1819년 경제적 어려움으로 비엔나를 떠나게 된 그는 트리스테외 베니스에서 잠시 머문 후에 로마에 도착하여 1개의 협주곡을 비록하여 몇 작품을 썼으나 크게 성공치는 못하였다. 1823년부터는 아버지의 병환으로 나폴리를 자주 여행하였는데, 자신의 기타 작품이 인기가 있음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1826년에 부르봉 왕가의 궁정에서 일을 맡게 된 줄리아니는 1828년부터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여 다음 해 5월 8일 나폴리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작품에는 헨델의 주제의 의한 "테마와 변주곡" 기타 독주를 위한 "판타지아" "기타와 현의 5중주곡" 등이 유명하다.

 

Pepe Romero 페페로메로(스페인, 1944- )

기타계의 왕족이라 불리우는 로메로 일가 (LOS Romero)의 둘째 아들인 페페 로메로, 그의 본명은 Jose Gallego Romero이다. 그는 스페인 말라카에서 태어나 오늘날까지 많은이에게 감동을 주는 연주활동을 해오고 있다. 페페로메로는 그의 나이 7살부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그의 이름은 전세계에 퍼져 금세기 최고의 기타연주가요 위대한 예술가로서 평가받고 있다.

연간 240회 공연을 갖는 페페 로메로, 그의 음악업적을 다 기록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뉴욕필하모니, 시카고심포니, 보스톤심포니, 베를린필하모니, 샌프란시스코심포니,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 로스엔젤레스심포니등 전세계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 영국 찰스 황태자를 위한 특별연주회, 백악관 연주, 교황 요한바오로 2세 초청으로 로마 바티칸에서의 연주등 그의 연주활동은 끝이 없었다.

Philips Record사의 전속 연주자이며 다양한 음악과 색채로 그의 뛰어난 예술적 테크닉은 전세계 으막팬들을 매혹시켜 왔다. 로메로의 음반은 50여장있는데, 최근 스페인의 작곡가 로드리고는 페페 로메로에게 "Feasta 축제협주곡"을 헌정하였는데, 뉴욕타임즈는 페페의 연주를 '그의 뛰어난 연주기법과 예술성에 다시한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고 기술하였다.

스페인 정부가 주는 최고 훈장 'Grand Plaza'까지 받았으며, 스페인 말라카에서는 로메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기념관까지 만들어졌다.

"기타가 작은 음량이라는 점만 제외하고는완벽한 협주곡이다"라고 베토벤이 찬사를 보냈다는 일화가 있는 이 곡은 여러 버전으로 연주되고 있으나 이 곡 만큼은 기타 주자인 '페페 로메로'와 성마틴 아카데미 합주단의 협연이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