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Variation 3│바흐의 음악

리차드 강 2014. 1. 20. 04:28

Goldberg Variation G Major, BWV988 Variation 3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Variation 3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Andras Schiff, piano

The Goldberg Var G Major BWV988 Andrass Schiff Variation 3

안드라스 쉬프 (피아노)

쉬프의 골드베르크는 여러 가지 면에서 굴드와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일단 쉬프의 음색 자체가 단정하면서 은은한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편인데, 이는 탱글거리면서 톡톡 튀는듯하고 때때로 방정맞은 느낌까지도 주는 굴드의 개성적인 아티큘레이션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게다가 전통적 연주와는 전혀 다른 강렬한 해석, 특히 지나치게 빠르거나 느린 템포 설정이나 예상을 깨는 거친 액센트를 보이는 굴드와는 달리 쉬프의 골드베르크는 단정한 템포를 바탕으로 우아한 기품과 유연함을 언제나 잃지 않는다. 이것은 쉬프가 연주한 바흐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그의 개성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연주는 항상, 그리고 너무나 귀에 달콤하게 들리기 때문에 바흐를 과연 이렇게 연주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다.

 

 

쉬프가 연주한 바흐의 평균율 전집을 들어보면 평균율의 선율이 매우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들리는데, 때때로 도가 지나쳐 평균율의 엄숙함을 저급한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골드베르그 변주곡에 임하는 쉬프의 자세는 어떠한가? 바흐를 대하는 그의 기본적인 태도는 거의 항상 비슷한 것 같다.

중용을 취하는 템포설정과 섬세하고 우아한 아티쿨레이션, 예쁘장한 장식음 등등의 모습들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들이다. 골드베르그 변주곡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아주 성공적으로 작용하여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부담스러운 부분이 없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이러한 연주는 그다지 많지 않다. 단정함에서는 켐프와 비교할 수도 있겠으나 켐프의 연주가 노인의 품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쉬프에게서는 젊은이의 생동감이 강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차이라 할 수 있다. 반복구를 충실히 재현하고자 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첫 부분과 재현부분의 멜로디를 다른 옥타브에서 연주함으로써 마치 쳄발로에서 포르테와 피아노의 두 단을 번갈아 연주하는 듯한 효과를 들려주는 부분이다.

아쉬운 것은 하나의 트랙에 다섯 곡씩을 묶어놓아서 각각의 변주를 독립적으로 듣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 곽규호

 

Rosalyn Tureck, piano

1998 Digital

The Goldberg Var G Major BWV988 Rosalyn Tureck Var 3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

로잘린 투렉 (피아노)

투렉여사는 바흐의 건반악기 작품 연주에 있어서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인물이다. 비록 굴드의 독창적인 바흐 연주가 강렬한 카리스마로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으나 굴드 자신도 투렉의 바흐 연주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할 정도로 투렉은 이 분야에 독보적인 인물이다. 그는 일평생을 바흐 작품의 연구에 바쳤으며 쳄발로 연주 및 오케스트라와 합창지휘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그의 피아노 연주 스타일은 매우 독특한 것으로서 바흐 작품의 음악적 구조를 더욱 명료하게 하기 위해 스스로 개발해 낸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쳄발로 연주에도 몰두하였는데, 당시 프랑스의 음악잡지에서는 이를 두고 "란도프스카 이후 가장 권위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라고 평가하였다.

투렉은 젊은 시절부터 여러차례에 걸쳐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녹음하였으나 젊은 시절의 녹음은 현재로서는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 연주는 1988년의 녹음으로서 나이와 음악적 기량 모두 완숙의 단계에 이미 도달한 시점에서 내놓은 작품이다. 투렉은 이 연주에서 골드베르그 변주곡이 가지는 기하학적인 구조를 거의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는데, 이는 굴드조차도 이루어내지 못한 위대한 업적이다. 또한 곡 전체에 깃들어 있는 사색과 우수어린 해석은 이 곡의 품격을 한층 더 높여주고 있다. 느릿하고 차분하게 시작하는 아리아에서부터 비범함이 느껴진다. 이어지는 각각의 변주들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당당하게 이끌어 나간다.

10년뒤에 DG에서 발매된 새로운 녹음과 비교해서 해석의 차이는 크다고 할 수는 없으나 세부적인 처리에서 이 연주가 훨씬 생동감 있고 역동적이다. 따라서, 이러한 점에 초점을 맞춘다면 DG의 녹음보다는 이 연주에 더욱 호감을 가질 사람들도 많으리라 생각된다. 다만, 투렉이 추구하였던 것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진다면, 그것이 음의 흐름 속에 깃든 무한하고 광대한 영혼의 세계라는 결론을 내린다면 DG의 녹음이 보다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곽규호

 

Stuttgart Chamber Orchestra

The Goldberg BWV988 S.C.Orche var2

The Goldberg Var G Major BWV988 Stuttgart Chamber Orchestra var 3

 

Stuttgart Chamber OrchestraㆍKalman OlahㆍMini Schulz

현대 음악을 연구함에 있어서 바흐의 존재는 특별하다. 바흐의 음악들은 요즘 대중음악(또는 실용음악)을 공부하는 지망생들에게 있어 재조명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많은 팝/재즈 아티스트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나타냄에 있어 바흐의 곡들을 재편곡하여 보여주는 기현상을 낳았고, 결국 바흐의 존재는 꼭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필자를 비롯한 모든 대중이 좋아할 수 있는 음악가로 남았던 것이다. 왜 초중생들이 배우는 음악교과서에 그 이전세대들의 작품들을 뒤로하고 16세기 바로크 음악부터 기재가 되며(이전 음악가들인 기욤 듀파이와 조스켕 데 프레 등의 위대한 음악가들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정도로), 그를 일컬어 '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르는지는 바흐가 남긴 역작들(후세대의 어느 음악가도 따라 올 수 없는)의 세련미와 특유의 종교성에서 기인한다.

본 음반에서 연주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바흐가 당시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카이저링크 백작의 불면증 완화를 위해 만들었던 곡으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마태 수난곡 등의 바흐의 작품과 더불어 가장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바로크 시대의 걸작중의 걸작이다. 그중에서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이야기할 때 간과할 수 없는 특징은, 비록 한 개인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일지언정 바흐가 지니고 있는 특유의 종교성과 장엄함, 세련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크음악을 이야기할 때 가장 큰 특징은, 현악이 중심이 되는 연주와 템포의 변화가 거의 없다는 점 등이 이야기될 수 있겠는데, 이 골드베르그 변주곡도 당시의 전형적인 바로크 음악의 특징을 많이 닮아 있다.

 

 

본 작품은 독일의 칼 뮌힝거에 의해 설립된 독일 슈투트가르트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협주곡 작품 연주집이다. 하지만 단순한 연주작품은 아니다. 곡 중간중간에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만이 연주하는 재즈연주가 담겨 있는데, 이것은 슈튜트가르트 오케스트라의 두 멤버, Kalman Olah(피아노)와 Mini Shulz(콘트라베이스)가 연주하고 있는 멋진 버전이다. 이 듀오는 같은 레이블에서 발표된 또다른 바흐의 변주작품 'Sketches From Bach Cello Suites'라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을 변주한 연주집에서도 멋진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재즈적인 감수성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특히, Mini Shulz의 경우는 국내에서도 몇 번의 내한공연을 통해 재즈매니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크로스오버 재즈밴드 Saltacello의 멤버로서도 유명한데, 그런 음악적인 역량을 음반 전체에 걸쳐 이끌어 나가고 있다. 실로 대단한 시도라 생각하는데, 이것은 클래식 매니아와 재즈 매니아를 동시에 겨냥해보겠다는 오케스트라의 의지가 담긴 시도이고, 그 시도는 일단 좋아보인다. 일부 완고한 클래식 매니아들에게는 사랑받지 못할 수도 있겠으나, 일단 하나의 작품전체를 재즈적인 감성을 넣어서 다루었다는 점에서 필자와 같은 재즈매니아들에게 크게 각광받을 만한 요소가 자리잡고 있다.

또 이 작품에서는 글렌 굴드 등이 지휘한 바흐연주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Aria' 가 맨 첫 번째로 등장한다. 마치 카이저링크 백작에게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속삭이는 차분하고 감상적인 선율은, 이 앨범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강한 메타포이다. 이어지는 연주는 바로 Aria를 피아노와 클래식의 재즈 소품으로 보여주고 있으니, 앨범을 비교하며 감상하는 재미까지 더해준다. 이런 구성들은 비단 클래식에 몸서리를 치는 사람들이라도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든 슈투트가르트 오케스트라의 아량어린 포석이라 할 수 있겠다. 클래식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높은 벽으로 인해 아무리 이렇게 유명한 작품이라도 앨범을 가지고 있는 대중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슈투트가르트 오케스트라는 이 작품을 통해 클래식음악이 주는 어려움의 선입견을 낮추고자 많은 노력을 했고, 그 노력은 이 음반을 통해 고스란히 나타났다.

과거 많은 재즈 아티스트들(Keith Jarrett,Jacques Loussier 등)이 보여주었던 바흐 음악의 해석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그들은 바흐의 멜로디를 재즈화시켜 완전히 재즈로만 연주하는 것 이상을 보여주지는 못했던 것이었다. 그들이 재즈 아티스트인 연유로 재즈 안에서 계속적인 발전을 이루었을 지 모르나, 결과적으로 그 작품들은 클래식 매니아들이나 재즈 매니아들이 모두 외면하는 참패를 당했다던가, 아니면 재즈 매니아들만이 그 음반에 집중하는 벽이 생성되었던 좋지만은 않은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그들의 작품은 그 중심에 바흐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연주자들의 중심은 연주자들 자신이었다. 하지만 이 음반은 바흐가 그 중심에 있다. 그리고 클래식 연주가 주는 어려움의 벽을 허물고자 하는 강력한 오케스트라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마치 "바흐는 클래식 연주자들만이 점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수준에 뒤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작품 전체에 걸쳐 새로운 감성을 입혔고, 정말로 만족할만한 수준이다. 두 연주자의 재즈연주는 이 명작에 환하고, 밝은, 그러면서도 스위티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만이 가지는 종교성, 세련미를 절대 버리지 않고 있다. 재즈버젼에서의 Kalman Olah와 Mini Shulz의 연주는 연주자 자신들이 바흐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탕으로 주관적인 의식의 흐름을 자신들의 연주로서 이야기한다. 본작의 최대 의의는 바흐 음악의 새로운 재해석이자, 바흐 음악의 단순한 편곡이 아닌 바흐 음악의 '확장'이라는 새로운 음악의 미학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앞으로 이 앨범은 앞으로 21세기 클래식 연주자들의 '크로스오버 연주' 음반 또는 연주활동의 지표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최근의 골드베르크 변주집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될 명작이다.

 

Glenn Gould, piano

Recorded June 10.16.1955 at New York City

The Goldberg Var G Major BWV988 Glenn Gould Variatio 3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아리아로 시작해 30개의 변주를 거쳐 다시 아리아로 끝난다. 같은 주제에서 출발했지만 모두 새롭고 한마디 한마디에 무게가 있다. 듣고 있으면 마음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무너져 내린다.

1. 1955년 6월, 녹음 기술자의 증언. "6월이라고는 하지만 찌는듯한 날씨였는데 굴드는 두터운 코트에 머플러를 두르고 베레모에 장갑을 끼고 나타났다. 그리고 식수로 사용할 두개의 물병과 그 유명한 굴드의 의자까지 들고 왔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굴드의 의자는 다리가 모두 고무로 만들어져 연주할 때 몸의 각도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였다. 녹음이 진행되는 동안 굴드는 도취된 상태에서 입을 벌리고 노래를 불렀으며 몸을 앞뒤로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했다. 녹음기술자들은 굴드의 흥얼거림을 녹음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2. 굴드는 1932년 9월 25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났다. 세살 때 이미 악보를 읽고 다섯살 때는 직접 작곡을 하고 연주까지 했다.

3. 캐나다의 소설가 로버트 풀포드의 증언. "어린아이인데도 굴드는 고독했다. 그는 미친듯이 연습했다. 무시무시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는 음악을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그는 자신이 누구인가 그리고 무엇을 해야하는가 잘 알고 있었다."

4. 굴드는 10살 때 토론토의 로얄 콘서바토리에 입학해 정식으로 알베르토 게레로에게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졸업한 뒤 15살 때 첫 연주회를 열었다.

5. 굴드의 스승 게레로의 증언. "새로운 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워낙 개성이 강하고 천재적인 아이라서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당황할 때가 많다."

6. 굴드의 증언. "게레로와 나의 스타일은 완전히 반대였다. 그는 음악을 가슴으로 느꼈지만 나는 머리로 이해했다."

7. 스물두살, 1955년 6월 굴드는 첫 음반을 녹음한다. 바하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이었다.

8. 굴드는 황홀한 표정에 눈을 지긋이 감고 있다가도 갑자기 온통 얼굴을 찌푸리고 입을 크게 벌리기도 하고, 몸을 계속 흔들어 대면서 끙끙거리는 소리로 계속 곡을 흥얼거리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연주 모습을 보여줬다. 중얼중얼 속삭이기도 하고 한손만으로 연주하는 부분에서는 지휘를 하는 듯이 손을 높이 쳐들고 흔들기도 했다.

9. 그가 흥얼거리는 소리는 녹음 기술자들에게는 골치거리였지만 그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는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심지어 굴드의 끙끙거리는 콧소리와 삐걱대는 의자 소리는 오디오 시스템의 상태를 판별하는 기준으로까지 활용되기도 했다.

10. 스물네살, 1957년에 굴드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베토벤의 3번 협주곡을 연주한다. 1960년에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그때만해도 낯설었던 TV에 출연한다.

11. "여러분, 음악이 너무 늘어진다고 느끼셨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굴드가 바라는 템포에 맞추다 보니 그렇습니다." 레너드 번스타인, 1960년 카네기홀 연주회에서.

12. 굴드와 번스타인은 루드비히 폰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4번을 협연하면서 템포 문제를 놓고 말다툼을 벌였다. 결국 힘차고 역동적인 연주를 좋아하는 번스타인이 마냥 느려터진 굴드의 연주에 맞추기로 했다. 번스타인은 불만에 가득차 있었지만 청중들은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13. 굴드의 연주 여행은 가는 곳마다 큰 인기를 끌었다. 소련에서는 그의 음반을 구하느라 사람들이 난리법석을 떨기도 했다. 곳곳에서 그의 음악을 모방하려는 시도도 끊이지 않았다.

14. 그러나 굴드는 청중을 싫어했다. "음악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청중일수록 연주자에 대해 가학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15. "콘서트를 할 때면 나는 희극배우처럼 느껴진다." "콘서트는 고통으로 가득찬 속임수일뿐이다."

16. "나는 수많은 꾀병을 생각해두고 있어요. 콘서트를 취소할 핑계로 써먹을 생각입니다." 번스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17. 굴드는 식성도 까다로웠다. 고기는 물론 야채도 즐겨먹지 않았고 거의 크래커와 오렌지 주스 같은 것들로 끼니를 떼웠다.

18. 음악의 취향도 분명했다. 굴드는 쇼팽과 슈베르트를 연주하지 않았다. 브람스도 녹음을 몇일 앞두고 못내키는 듯 성의없는 연습을 조금했을 뿐이다. 모차르트와 베토벤도 시들했다. 실제로 연주도 별볼일 없었다. 가끔 쇤베르크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나 남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윌리엄 버드와 오를란도 기본스를 연주하기도 했지만 굴드가 가장 잘 알고 가장 열심히 연주했던 음악은 바하뿐이었다. "모짜르트가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났다는 세간의 말은 옳지 않다. 오히려 그는 너무 늦게 세상을 떠났다."

19. 굴드는 서른두살, 1964년 4월 10일 LA에서 마지막 연주회를 가진다. 그때부터 그는 녹음 작업에만 매달렸다. 그 뒤로 그는 죽을 때까지 결코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지 않았다.

20. 굴드는 같은 음악을 여러차례 되풀이해서 녹음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최상의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굴드는 짜집기를 전혀 거북해하지 않았다. 굴드는 연주회의 청중을 떠나 녹음실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수많은 음반을 만들어냈다. "테크놀로지야말로 나와 음악과 바깥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고리다."

21. 토론토 대학 철학과 교수 제프리 페이전트는 글렌 굴드 평전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굴드의 모든 레코딩은 그의 에세이, 필름, 작곡, 기고문, 다큐멘터리가 모두 그러하듯이 다양한 차원의 미학을 공유하기 위한 굴드 자신의 예언자적 노력의 결실이다. 굴드야말로 철학자와 시인, 그리고 음악가를 한몸에 지녔다는 옛 전설의 재현인 것이다." 굴드는 이 평전에 대한 서평을 썼다. "페이전트 교수가 이 책에서 쓰고자 했던 것은 한 피아니스트의 전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때때로 건반을 통하여 이야기되는 일련의 음악적 사고일 것이다."

22. 굴드의 연주는 가끔 지나치게 빠르거나 어이없을만큼 느리다. 다른 연주자들이 4분 남짓한 동안 연주하는 음악을 10분이 넘도록 늘여 연주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남들의 절반밖에 안되는 시간에 연주를 마치기도 한다. 굴드는 늘 독특한 해석을 내놓았다.

23. "혼자 있으십시오. 은총이라고 할만한 명상 속에 머무르십시오." 1964년 토론토 왕립 음악원 강연에서.

23.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늘 혼자서 보냈다. 그건 내가 비사교적이기 때문이 아니고, 예술가가 창조자로서 작업하기 위해 머리를 쓰기 바란다면 자아 규제, 바로 사회로부터 자신을 절단시키는 한 방식이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한 작품을 산출하고자 하는 예술가라면 누구나 사회 생활면에서 다소 뒤떨어진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글렌굴드, 피아노 솔로' 가운데.

24. 굴드는 에어컨이 켜진 식당은 결코 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잘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전화 통화를 하다가 상대방이 감기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전화를 끊어버리기도 했다. 굴드의 노이로제 증세는 꽤나 심각했다. 연주를 하기 전에는 뜨거운 물을 세수대야에 붓고 20분 가까이 손을 담그고 있었다.

25. 나중에는 악수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 손을 내밀면 "올해는 악수 안하는 해로 정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26. 피아노를 고치러 온 스타인웨이의 조율사가 등을 가볍게 툭 쳤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기도 했다. 굴드는 왼팔과 등에 통증이 있고 왼손 넷째 손가락과 다섯째 손가락이 마비되었다며 스타인웨이를 상대로 30만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27. 굴드는 스타인웨이에서 나온 CD318 피아노를 썼다. 굴드가 연주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피아노 연주라고 보기 어려울만큼, 마치 쳄발로 연주처럼 가볍고 맑다. 그때까지만 해도 바하의 건반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굴드의 연주는 충격과 함께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28.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그때만 해도 지루하고 변화없는 음악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아무도 이 음악을 연주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굴드가 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됐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이제 가장 바하의 대표 작품 가운데 하나 꼽힌다.

29. 굴드는 1981년 한번 녹음한 음악은 다시 녹음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26년 전에 녹음했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다시 녹음한다. 새로운 해석을 새로운 기술로 담아낸 굴드 최고의 음반이었다. 굴드는 수많은 음반을 남겼지만 시작과 끝은 모두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다.

30. 굴드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세번 녹음했다. 첫번째는 1955년 굴드의 첫번째 녹음. 굴드는 반복되는 부분을 과감하게 빼고 남들이 한시간 가까이 연주하는 음악을 33분만에 끝냈다. 두번째는 1958년 잘쯔부르그 페스티발에서 연주한 실황 녹음. 두번째는 첫번째와 거의 같다. 세번째는 1981년 굴드의 마지막 녹음. 모두 51분, 첫번째 녹음보다 무려 두배 가까이 길다.

31. 굴드는 마지막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한 다음해 1982년, 50세 되던 해 10월 4일 심장발작으로 죽는다.

32. "음악은 내 안에 있고, 나는 음악 안에 있다.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내부에서 외부로, 내면이 된 외부로 나아감이다. 마치 내면에 외부가 존재하는 양. 음악은 신의 자질들을 지니고 있어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듯이 보존하면서 채운다. 그것은 에워싸고 조여 온다. 그러면서도 귀로 올라오는 기쁨, 혹은 첨예한 고통으로서, 아주 작은 부분이 되어 내부에 머문다."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가운데.

참고 : 글렌 굴드의 홈페이지.

아름다운 이웃은 참마음 참이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