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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ano Concerto Top10 - 2.베토벤 피협 5번 Op.73 황제 | 音香 클래식

리차드 강 2014. 12. 5. 23:46

Piano Concerto Top10 - 2.베토벤 피협 5번 Op.73 황제

   

베토벤 - 피아노 협주곡 제5번 E flat Major

Piano Concerto No.5 in E flat Major Op.73 Emperor 

I. Allegro
II. Adagio un poco moto 8:25
III. Rondo. Allegro  9:44

Leon Fleisher, piano

 

 

George Szell, cond. - Cleveland Orchestra

서양음악사를 망라하여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여러 작곡가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작품들 만큼 작곡 패턴 역시 각기 다른 특징을 갖고 있었다. 가령 바흐나 슈베르트 등은 내용 면에서도 뛰어나지만 그 방대한 양의 작품 수에서 우선 놀라게 된다. 반면에 무소르그스키나 뒤파르크 같은 작곡가들은 소수의 남아있는 걸작들로 우리에게 그들의 이름을 기억시켜주고 있다. 또 샘솟는 영감으로 삽시간에 작품을 완성해 낸 모차르트, 로시니 등이 있었는가 하면 브람스 같은 장고파 작곡가들도 적지 않았던 것을 보면 위대한 음악가가 되는 길은 하나가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에게서 기어코 아주 중요한 공통점을 하나 발견해 낼 수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작품이 각자가 걸어온 인생 역정의 과정과 발자취를 어떤 방법으로든 투사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악성 베토벤이 남긴 많은 작품들은 그의 숱한 고난과 그 역경을 뛰어넘는 더욱 강한 의지로 인해 ‘운명아 길을 비켜라’ 라는 식의 슬로건으로 지금껏 대변해 오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에게 닥쳐온 여러 시련들이 존재했기에 그의 작품이 뜨거운 피가 흐르고 살아있는 심장의 박동이 느껴지는 강한 생명력을 지닐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 ‘황제’도 한시도 바람 잘 날 없었던 베토벤의 인생의 한 고비에서 씌어졌다. 1809년 나폴레옹 군은 1805년에 이어 두 번째로 비엔나를 침공했고 도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포격에 시달리고 있었다. 베토벤의 강력한 후원자이며 학생이기도 했던 루돌프 대공은 피난을 떠났고, 77세의 하이든이 세상을 떠난 것도 이 해 5월이었다. 그 와중에도 베토벤은 외롭게 비엔나에 머물면서 창작에 열중했는데, 이 때 테어난 작품이 이 피아노 협주곡 ‘황제’와 가곡 <피델리오>, 그리고 루돌프 대공과의 이별과 재회를 묘사한 피아노 소나타 ‘고별’ 등이다.

 

 

‘황제’ 협주곡은 안팎으로 혼란스러웠던 당시의 유럽 사회의 한가운데 서 있었던, 다시 말해 낭만과 보수, 개혁과 수구의 중간에서 결코 그 위치를 망각하지 않았던 작곡가 베토벤의 모습을 극명히 나타내준다. 제 4번 G Major아 비교해 더욱 대담해진 악상과 확대된 형식, 카덴차의 파격적인 생략 등은 이 때를 기점으로 하여 그의 예술이 겉과 속, 즉 형식과 내용이 혼연 일치를 이루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작품 전체를 흐르는 그 당당한 승리자적 위용은, 가히 협주곡의 황제라 부를 만 한데, 많은 작품들이 그렇듯 정작 베토벤은 이 표제에 대해 알지 못했다. 곡의 배경 등에서 떠오르는 황제는 아무래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인데 베토벤은 그가 황제에 등극한 뒤부터 그를 폭군이라 부르며 경멸했던 바 있다. 또 베토벤은 오스트리아 출신은 아니었지만 “내가 병법에 대해 대위법 만큼만 알고 있었더라면 오스트리아가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고 알려지고 있는 바, 고집스럽고 타협을 모르던 베토벤의 남자다운 기백이 느껴지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베토벤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적 ‘황제’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인물이었다고 하겠다.

독주 피아노의 솟구쳐 오르는 듯한 본산화음으로 시작하는 제 1악장의 첫머리는 고금의 협주곡 가운데 가장 위엄있는 도입이라고 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의 긴 도입부에 실려 등장하는 제 1주제나 가볍고 명쾌한 제 2주제의 대조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관례이던 1악장 말미의 카덴차가 생략된 것이 특이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피아노의 화려함은 카덴차가 없이도 충분히 발휘되며, 반음계적인 진행과 당시로서는 심한 도약음 등으로 흥미로운 전개를 보인다. 제 2악장은 자유로운 변주곡 형식으로, 지금까지 베토벤이 만들었던 완서 악장 중 가장 가요성이 풍부한 악장이다. 현악기군의 피치카토와 함께 등장하는 피아노의 변주가 보석과 같이 아름답다. 제 3악장의 오프닝은 이미 2악장의 끝부분에서 예견되었으며, 쉬지않고 종악장으로 이어진다. 독주 피아노이 상쾌하고 박력있는 주제는 여러 번 조성을 바꿔 가면서 잔잔하게, 때로는 폭발적으로 반복되는데 이런 큰 스케일을 담을 수 있는 피아니스트의 숨은 역량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또 마지막 코다 직전에 등장하는 팀파니 만의 휴지부 역시 거인적인 규모와 스케일을 가진 이 협주곡의 엔딩을 돋보이게 하는 필요적절한 대목이 되고 있다.

객석 1997년 10월

아름다운 이웃은 참마음 참이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