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웃 종교들이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에서 천주교가 신뢰도, 긍정적 평판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한 마디로 천주교가 가장 믿고 싶고, 갖고 싶은 종교로 인정 받았다는 뜻이다. 특별히 공로가 없는 신자들에게 이런 성적표는 송구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알다 시피 우리교회가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은 백년동안의 박해와 한국전쟁 이후 1980년대까지 낮은 자세로 살아온 덕이다. 특히 요즘의 긍정적 평판은 한국 전쟁 이후 많은 신자들이 많은 이들을 이롭게 한 덕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1960년대 중반 이후 이십년동안 이 땅의 정의와 민주화를 위하여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마음을 모았던 공로가 가장 크다.
당시 천주교는 교세가 그리 크지 않않았음에도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대변하였다. 그 공로로 현재 단일 교단으로는 불교 조계종 다음으로 크고, 한국의 3종교 가운데에서는 지난 10년 사이 가장 큰 성장률을 기록한 종교가 되었다. 한국 종교 인구 성장의 과실 대부분을 우리가 차지하게 된 것이다.
최근 어느 신부님이 "이제까지 순교자들과 앞선 신앙 선배들의 공로로 살았는데 앞으로 우리는 무슨 공로를 쌓아야 할지 모르겠다." 고 말 했다는데 많은 공감을 한다. 과거 교회가 공로를 쌓을 당시 우리에게는 돈도, 신자도, 힘도 거의 없었다. 그저 묵묵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난한 이들을 돕고 억울한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작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 많은 이들의 마음을 얻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많은 신자들이 눈이 높아졌다. 약자들의 소리를 듣지도, 그들의 비참한 모습도 보질 못한다. 먹고 살만 해지니 남의 처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게된 것이다.
일예로 "정의", "빈민", "철거민", "세입자", "노동자", "노조" 등의 단어를 들었을 때 공감보다는 두려움, 또는 불편함을 느끼는 신자들이 늘어난 것을 들 수 있다. 오히려 이제는 자신이 가진 집값, 땅값, 펀드를 지키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우리때문에 영향을 받는 이들의 처지는 안중에도 없다. 이처럼 어느 순간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만 급급하다보니 '이웃' 이 우리 눈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처럼 가장 많은 신자와 돈과 힘을 가진 교회가 과거 힘없을 때보다 훨씬 더 허약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복음의 가르침에 비춰보면 간단하다. 낮은 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가장 낮은 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어려울지라도 그렇게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그들의 처지와 내가 동일시 될 때 사랑이 샘 솟고, 자신을 희생할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이 마음이 생겼을 때 나를 주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교회와 우리 자신이 다시 이 사회를 위해 공로를 쌓을 기회가 열리기 시작한다.
*박문수 프란치스코/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부원장 2010년01월24일 인천주보 빛과 소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