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바스 드 까몽이스(Luis vaz de Camoes: c. 1524 — 1580)
우리에게 너무나 생소한 까몽이스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일리야드에 버금가는 서사시를 쓴 포르투갈의 대표작가로 숭상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작품은 서사시, 서정시 그리고 세 편의 희곡 등이 있으나 그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이 바로< 우스 루지아다스 Os Lusiadas>라는 대서사시이다.
까몽이스의 생애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부분들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그가 태어난 해는 1524년이라는 설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한 몰락한 귀족집안의 아들로 태어났고 꼬임브라(Coimbra) 대학(포르투갈 꼬임브라에 위치한 대학으로 유럽의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학들 중 하나이다.)에서 얼마간 공부를 하였다. 그러다가 북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군복무를 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치룬 전투에서 한쪽 눈을 잃게 된다.
1550년 경에는 수도 리스본에 머물면서 의회에 출입한 기록들이 남아있고 1552년에 왕의 관리를 공격한 죄로 감옥에 가 1553년이 되서야 풀려난다. 하지만 그는 국외로 추방되어 17년 간의 기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그 기간동안 아프리카, 아시아의 포르투갈 식민지를 전전하다가 중국의 포르투갈 식민지 마카우(Macau)에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와 돈 주앙 3세가(D. JoaoⅢ)가 세상을 떠난후 1570년이 되어야 포르투갈로 돌아온다. 그때 이미 그의 대서사시인 <우스 루지아다스 Os Lusiadas >가 완성되어 있었고 1572년에 첫 판을 발간한다. 그는 1580년 6월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여기서 그의 대표작인 <우수 루지아다스 Os Lusiadas >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572년에 첫 발간된 포르투갈어로 된 대서사시이다. 크게 10개의 절(Cantos)로 1102개의 절(estrofes)로 각 절(estrofe)는 8개의 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방대한 크기 뿐만 아니라 그 시적 가치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우스 루지아다스 Os Lusiadas>라는 제목은 까몽이스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안드레 드 헤젠드(Andre de Resende)라는 인물의 서한에서 얻은 것이라 한다. Lusitania(옛 포르투갈을 지칭한 말)인와 같은 luso라는 단어에 기원을 둔 것이다. 그 내용은 포르투갈이 대항에 시대에 인도항로 개척해서 동양의 포르투갈왕국을 건설하는 과정을 그린 시이다. 까몽이스는 포르투갈의 정복과, 포르투갈 항해사들의 영광, 그리고 지난 왕들의 업적, 즉 다시 말하자면, 포르투갈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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