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

김민기 4집 봉우리 / 날개만 있다면 (1993년)│어린이를 위한 노래

리차드 강 2010. 7. 2. 07:54

김민기 4집 (1993년) 어린이를 위한 노래.

4 집 : 봉우리 / 날개만 있다면 (1993)

김민기 金敏基 / Kim, Min-Ki 1951-

No.1 - 봉우리 (트랙전곡듣기)

 

     

1. 봉우리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죽한 봉우리 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 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텐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오르고 있었던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 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 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냐 저 위에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거기 부러진 나무 등걸에 걸터 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말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 하면서 주저 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같은 것이 저며 올때는 그럴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뿐이라구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 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

 

2. 아하 누가 그렇게

아하 누가 푸른 하늘 보여주면 좋겠네
아하 누가 은하수도 보여주면 좋겠네
구름 속에 가리운 듯 애당초 없는 듯
아하 누가 그렇게 보여주면 좋겠네

아하 누가 나의 손을 잡아주면 좋겠네
아하 내가 너의 손을 잡아주면 좋겠네
높이 높이 두터운 벽 가로놓여 있으니
아하 누가 그렇게 잡았으면 좋겠네

아하 내가 저 들판의 풀잎이면 좋겠네
아하 내가 시냇가의 돌멩이면 좋겠네
하늘 아래 저 들판에 부는 바람 속에
아하 내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네

 

3. 백구

내가 아주 어릴 때였나 우리 집에 살던 백구 해마다 봄가을이면 귀여운 강아지 낳았지

어느 해에 가을엔가 강아지를 낳다가 가엾은 우리 백구는 앓아 누워 버렸지나하고 아빠 둘이서 백구를 품에 안고 학교 앞의 동물병원에 조심스레 찾아갔었지

무서운 가죽끈에 입을 꽁꽁 묶인 채 멍하니 나만 빤히 쳐다 봐 울음이 터질 것 같았지 하얀 옷의 의사 선생님 큰 주사 놓으시는데 가엾은 우리 백구는 너무 너무 아팠었나 봐

주사를 채 다 맞기 전 문 밖으로 달아나 어디 가는 거니 백구는 가는 길도 모르잖아

긴 다리에 새하얀 백구

학교 문을 지켜 주시는 할아버지한테 달려가 우리 백구 못 봤느냐고 다급하게 물어 봤더니 웬 하얀 개가 와서 쓰다듬어 달라길래 머리털을 쓸어줬더니 저리로 가더구나

토끼장이 있는 뒤뜰엔 아무 것도 뵈지 않았고 운동장에 노는 아이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줄넘기를 하는 아이 팔방하는 아이들아 우리 백구 어디 있는지 알면 가리켜 주렴아

학교 문을 나서려는데 어느 아주머니 한 분이 내 앞을 지나가면서 혼잣말로 하시는 말씀이 웬 하얀 개 한 마리 길을 건너 가려다 커다란 차에 치어서 그만...

긴 다리에 새하얀 백구

백구를 안고 돌아와 뒷동산을 헤매이다가 빨갛게 핀 맨드라미 꽃 그 곁에 묻어 주었지 그 날 밤엔 꿈을 꿨어 눈이 내리는 꿈을 철 이른 흰 눈이 뒷산에 소복소복 쌓이던 꿈을

긴 다리에 새 하얀 백구

내가 아주 어릴 때에 같이 살던 백구는 나만 보면 괜히 으르렁하고 심술을 부렸지

 

4. 작은 연못 (연주곡)

 

5. 날개만 있다면

저 산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왜 난 여기에 이렇게 있는 것일까
왜 저 시냇물은 저리로 흘러만 갈까
왜 이 세상은 넓기만 할까

날아가고 싶어 날아가고 싶어
시냇물을 건너 푸른 들판 지나
날개만 있다면 가보고 싶어
잣나무 수풀 저 산 너머로

 

저 나뭇가지 위 떠가는 흰구름
구름 저편에 눈부신 해님은
왜 저 위에서만 외롭게 떠 계실까
파란 하늘은 얼마나 먼 곳일까

오르고 싶어 오르고 싶어
나뭇가지 위로 해님 계신 곳까지
날개만 있다면 가보고 싶어
넓고 높고 또 먼 저 곳에

오르고 싶어 오르고 싶어
나뭇가지 위로 해님 계신 곳까지
날개만 있다면 가보고 싶어
넓고 높고 또 먼 저 곳에

넓고 높고 또 먼 저 곳에

 

6. 작은 연못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 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푸르던 나뭇잎이 한잎 두잎 떨어져 연못 위에 작은 배 띄우다가 깊은 속에 가라앉으면 집 잃은 꽃사슴이 산 속을 헤매다가 연못을 찾아와 물을 마시고 살며시 잠들게 되죠

해는 서산에 지고 저녁 산은 고요한데 산허리로 무당벌레 하나 휘익 지나간 후에 검은 물만 고인 채 한없는 세월 속을 말없이 몸짓으로 헤매다 수많은 계절을 맞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7. 인형

아가옷을 입힐까 색동저고리 입히지
치만 뭘로 할까 청바지로 하지
청바지에 색동옷 입고
하하하하 바보 인형아
색종이를 오려서 예쁜 인형 만들어
선생님께 보이고 엄마한테 드려야지

아가 신을 만들까 뾰족구두 만들지
모잔 뭘로 할까 예쁜 고깔 씌우지
뾰족구두에 고깔을 쓰고
하하하하 바보 인형아
색종이를 오려서 예쁜 인형 만들어

아가 입을 그릴까 웃는 입을 그리지
그럼 눈도 그려 봐 우는 눈은 어떨까
......
하하하하 바보 인형아
색종이를 오려서 예쁜 인형 만들어

 

8. 고무줄 놀이

살찐 송아지 한 마리 어어 철뚝길로 뛰어가요 새끼 염소도 한 마리 송아지만 쫓아가요 얘야 얘야 누렁아 기차오면 다친다 얘야 얘야 할배야 누렁이 한테 깔릴라 꽃 따줄게 이리와

내 말 안듣고 가더니 흐응 기차한테 받혔지 촐랑거리고 가더니 흐응 누렁이한테 깔렸지 그러길래 뭐래든 글루 가면 안된댔지
어떡할래 어떡해 나도 인젠 모르겠다 아이구 아이구 속상해

살찐 송아지 한 마리 어어 철뚝길로 뛰어가요 새끼 염소도 한 마리 송아지만 쫓아가요 그러길래 뭐래든 글루 가면 안된댔지
어떡할래 어떡해 나도 인젠 모르겠다 속상해서 죽겠네

 

9. 천리길

동산에 아침 햇살 구름 뚫고 솟아와
새하얀 접시꽃잎 위에 눈부시게 빛나고
발 아래는 구름바다 천리를 뻗었나
산 아래 마을들아 밤새 잘들 잤느냐

나뭇잎이 스쳐가네 물방울이 날으네
발목에 엉킨 칡넝쿨 우리 갈길 막아도
노루 사슴 뛰어간다 머리위엔 종달새
수풀 저편 논두렁엔 아기 염소가 노닌다

가자 천리길 굽이굽이쳐 가자
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간다

쏟아지는 불햇살 몰아치는 흙먼지
이마에 맺힌 땀방울 눈가에 쓰려도
우물가에 새색시 물동이 이고 오네
호랑나비 나르고 아이들은 촐랑거린다

먹구름이 몰려온다 빗방울도 떨어진다
등 뒤로 흘러내린 물이 속옷까지 적셔도
소나기를 피하랴 천둥인들 무서우랴
겁쟁이 강아지는 이리저리 뛰어 다니다

가자 천리길 굽이굽이쳐 가자
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간다

동산에 무지개 떴다 고운 노을 물들고 하늘가 저 멀리엔 초저녁 별 빛나네 집집마다 흰 연기 자욱하게 덮히니 밥 냄새 구수하고 아이들을 부르는 엄마소리

가자 천리길 굽이굽이쳐 가자
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간다

출렁이는 밤 하늘 구름엔 달 가고 귓가에 시냇물 소리 소골소골 얘기하네 졸지말고 깨어라 쉬지말고 흘러라 새아침이 올 때까지 어두운 이 밤을 지켜라

가자 천리길 굽이굽이쳐 가자
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간다

     

     

김민기4 + 아침 - 김민기 넷

시인 김민기가 부르는 인간주의적 아포리즘

마지막을 장식하는 4권은 80년대의 작업과 70년대 초반의 작품들이 엇갈려 배치되어 있다. 그 서장을 열어 젖히는 노래는 85년 양희은의 컴백 앨범에 실리기도 했던, 시인으로서의 김민기의 인간주의적인 아포리즘이 비등점을 이루는 ‘봉우리’이다.

84년 LA 올림픽의 입상 탈락자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의 주제곡으로도 사용되었던 이 노래는 고난 속에서도 좌절하거나 소리 높여 과장되게 몸부림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역사적 임무를 감내한 그의 생애의 초상이나 진배없다.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 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 지도 몰라….’

이 앨범엔 어린이와 같이 듀오를 이룬 곡이 네 곡 있다. 바로 72년 양희은이 불렀던 ‘백구’와 ‘인형’, 그리고 [개똥이]의 주제곡 ‘날개만 있다면’과 대미를 장식하는 ‘천리길’. 그의 예술의 궁극은 바로 가장 고귀한 순수로서의 어린이의 투명한 눈이라는 것일까?

그래서 ‘늙은’ 그가 부르는 자신의 동요 ‘고무줄 놀이’는 더욱 아련하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 들어온다. - 대중음악 평론가 강 헌. [김민기 디스코그래피] 중에서...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