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좋은 정태춘

회상 - 박은옥│ My Favorite Singer

리차드 강 2009. 4. 8. 12:28

회상 - 박은옥

박은옥 1집 회상 (SRB 서라벌 레코드 1978)

박은옥 Park, Eun-Ok 1957~

Track.01 - 회상

 

Introduction

* LP를 능가하는 아날로그적인 사운드
* 당시 실제 녹음상황 무삭제 희귀음반

1978년 녹음 당시 사용된 마스터테입을 입수, 리마스터하여 한층 더 아날로그적인 사운드를 감상 할 수 있으며, 녹음 스튜디오의 녹음과정 등, 실제 상황을 삭제하지 않아 현장감 넘치는 음원을 수록한 매우 진귀한 음반입니다.

     

회상 - 박은옥

작사 작곡 정태춘

해 지고 노을 물드는 바닷가
이제 또 다시 찾아온 저녁에
물새들의 울음 소리 저 멀리 들리는
여기 고요한 섬마을에서
 
나 차라리 저 파도에 부딪치는
바위라도 되었어야 했을 걸
세월은 쉬지 않고 파도를 몰아다가
바위 가슴에 때려 안겨주네
 
그대 내 생각 잊었나 내 모습 잊었나 바위
검은 바위 파도가 씻어주고
내 가슴 슬픈 사랑 그 누가 씻어주리
저 편에 달이 뜨고 물결도 잠들면
내 가슴 설운 사랑 고요히 잠이 들까
 
그대 내 생각 잊었나
우리 사랑 잊었나 그대
노래 소리 파도에 부서지며
내 가슴 적시던 날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또 하루가 가고 세월이 흐를 수록
내 가슴 설운 사랑 슬픔만 더해가리

길과 집 심연과 심연 사이 사랑 그리고 인생

- 박은옥, 흔들림 없는 서정 그 서늘한 아름다움

최창근 | 자유기고가

지상에 한 길이 있다. 길과 길 사이에 또 다른 길이 놓여있다. 길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가없이 펼쳐져 있다. 길은 길로 통한다. 길과 길은 서로 만나거나 또 어긋난다. 길 위에 서면 나는 또 하나의 길이 된다. 한 점에서 시작된 길의 운명은 다른 한 점으로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된다. 길의 출발점과 종착점은 그래서 매번 바뀌지만 돌아보면 늘 같은 자리이다. 인간은 길 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고 길 위에서 죽는다. 집은 길과 길 사이를 연결하는 일종의 통로이다. 처음의 집, 어머니의 자궁에서 최후의 집, 대자연으로 돌아갈 때까지 인간은 쉼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집을 나와서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른 채 무작정 길 위를 헤매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나와 너는 흘러가는 것이다. 길 위의 인생 길 위의 사람들 그리고 길 위의 집. 길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지표는 그것이 전부인지도 모른다.

연전에 노회한 신문기자이자 탁월한 에세이스트인 김성우는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어느 글에선가 길은 가고 싶고 집은 있고 싶다고 그의 날렵한 문체를 빌어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길은 떠나고 싶고 집은 머물고 싶다. 집은 길을 위해 서 있고 길은 집을 위해 가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길을 떠나고 길을 떠나기 위해 집에 돌아온다. 인생이란 하루의 일과처럼 출가와 귀가의 영원한 순환인 셈이다. 그의 말을 다시 빌려 길에 관한 명상을 마무리짓자면 머물러야 할 것인가 가야 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일 따름이다. 이제 길은 쉬고 싶고 집은 걷고 싶다.

 

* 가난한 영혼을 위로하는 길위의 노래

박은옥의 노래는 궁극적으로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의 일대기이다. 그 떠남의 장소는 일정치가 않다. '해 지고 노을 물드는 바닷가'의 '물새들의 울음소리 저 멀리 들리는 고요한 섬마을'(회상)일 수도 있고 '눈물에 옷자락이 젖어도 갈 길은 머나먼' 그리하여 '사공이 나를 태우고 노 저어' 가는 '또 다른 나루'(서해에서)이기도 하며 '고행의 수도승'이나 '사색의 시인'들이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 허위허위 달려가면 당도할 수 있는 '시인의 마을'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의 노래에 등장하는 뭇사람들은 '떠나가는 배'를 타고 '나그네'가 되어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기약도 없이 '강남길로 해남길'로 '바람에 돛을 맡긴' 채 흘러가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백여년 전 당쟁과 모함, 살육으로 얼룩진 이 땅의 정치판을 박차고 나와 죽장에 삿갓 쓰고 괴나리봇짐 하나만 달랑 맨 채 삼천리 조선팔도를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유유히 떠돌던 천하의 가객 김병연처럼 정처없이 길을 나서는 것이다.

그 정처 없는 나그네의 길 위에는 노래를 부른 박은옥 자신의 모습도 투영돼 있지만 곡의 가사를 직접 써 붙였던 정태춘의 젊은 시절 고뇌에 찬 모습도 고스란히 내비치고 있다. 그가 온몸을 던져 질문하고 그 질문에 답하며 괴로워했던 것은 시대적 아픔이라기보다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실존적 명제였을 것이다. 가수 생활 어언 이십 년간을 노래하는 동반자 혹은 동지로서 그 숱한 고해를 거쳐 동고동락하며 오늘에 이른 이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나는 이 자리에서 섣불리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아픔이 한 개인의 실존적 명제보다 앞선다거나 혹은 그 반대의 어떤 단정적인 진술로 때로 부박하기 이를 데 없는 대중음악계의 판도 내에서도 아주 드물고 그래서 희귀하기조차 한 그들 부부의 가치를 어림짐작으로나마 저울질해보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들 내외의 빛나는 음악적 성취도에 대해서는 나 말고도 이 분야의 전문적인 평자들의 입에 의해 여러 차례 상찬된 바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엄밀히 말하면 글을 쓰는 사람이지 음악을 비평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그들의 음악세계에 관해 이렇다저렇다할 입장은 못 된다. 아니, 그런 자격이 처음부터 없다고 하는 쪽이 맞는 말일 것이다. 다만 이 부부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음악활동을 하게 된다면 듀엣으로 음반을 내는 일은 물론이려니와 가끔, 아주 가끔은 한 개인의 이름으로도 솔로 앨범을 발표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품게 된다.

나는 그 어떤 시보다도 정결하고 품격이 높았던 한 가수의 서늘한 목소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는 그 서정적인 노래를 통해 세속의 먼지에 찌든 나 자신의 남루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싶기 때문이다. 박은옥은 노래를 통해 인간의 영혼을 정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몇 안 되는 가수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노래에는 사람의 마음을 거짓에서 참으로, 악한 것에서 선한 것으로, 추한 것에서 고상한 것으로 이끌고 가는 신비스러운 힘이 깃들여있다. 그것은 도저히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차원에선 생각할 수 없는 일상의 범주에서 저만치 떨어져 홀로 존재하는 힘이지만 그러하기에 그 힘은 성스럽고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일상의 노래가 일상적이지 않게 들린다면 그건 성가나 예불가에 해당하는 경지와 진배없는 것은 아닐까.

가령, 우리는 이적지 한번도 가보지 못한 어느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우연히 지명도 잘 모르는 어떤 장소를 지나치게 된다. 그러다가 불현듯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 공간만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이끌림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인간의 언어로는 뭐라고 딱 부러지게 해명하기 곤란한 그 나름의 어떤 고유함, 그런 고유함에는 반드시 신성한 숨결 같은 비물질적인 요소가 따라붙는다. 슬픔이나 기쁨, 노여움이나 반가움들은 그러하기에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의 발산이면서 동시에 그것은 다분히 무한한 자연의 일부분, 살아 숨쉬는 생명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마치 공기 속에 숨어있는 정령의 영혼을 감촉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나는 박은옥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일단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편안함은 거리의 여기저기를 하릴없이 쏘다니다가 우연히 교회나 성당 앞을 지나치게 됐을 때 건물 안에서 새어나오는 찬송가 소리에 마음을 빼앗겨 한참을 그 앞에 서 있게 되는 경우나 한적한 절집의 경내로 들어섰을 때 잔잔하게 밀려오던 풍경 소리와 함께 저절로 내 마음이 숙연해지던 종교적 체험과 다를 바 없다. 해 지는 광경의 아름다움이나 산의 아름다움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고, '아!' 하고 감탄하는 사람은 벌써 신의 일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우파니샤드의 한 구절처럼 나는 박은옥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세상일에 치이고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내 마음의 언저리를 보이지 않는 어떤 이의 손길에 의해 부드럽게 치유받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나는 무신론자다. 무신론자인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신적인 어떤 힘, 불가사의한 자연의 치유능력은 믿고 있다. 신은 믿지 않는데 신적인 어떤 힘은 믿는다니 아이러니컬하지 않은가. 그건 마치 시인은 없다고 주장하면서 시적인 것은 존재한다고 확신하는 터무니없는 믿음과도 같다. 그러나 나는 그런 터무니없는 가치체계의 신봉자다. 자연의 힘은 그만큼 놀랍고 신비롭다. 우주의 어떤 차원에 이르는 자연의 위대함은 중심을 갈구하는 나바호 인디언의 노래에서도 전해진다. '내 앞도 아름답고, 내 뒤도 아름답고, 내 오른편도 아름답고, 내 왼편도 아름답고, 내 위도 아름답고, 내 아래도 아름답다.' 박은옥의 노래는 내게 어떤 종교의 교리보다 더 강하고 진실한 '종교적'인 믿음의 실체가 인간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것이 다름아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근원임을 매번 일깨워주는 것이다.

 

* 길 위에서 길 밖으로 또 다른 집을 찾아서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내밀하게 감춰진 상처 입은 마음과 훼손된 꿈의 흔적을 일깨우고 그러한 일상의 사소하고 자잘한 스침들이 엮어내는 남루하고 무상함, 환멸조차도 실은 우리 생의 찬연한 아름다움일 수밖에 없다는 무섭고도 두려운 통찰을 매번 그는 그의 작품에 올올이 담아내고 있다'. 이 말은 오정희가 후배작가 전경린의 글에 대해 붙여준 수식어지만 그 수식어는 그 자신에게 다시 되돌아온다. 그리고 그러한 오정희의 세계관은 박은옥이 그의 노래를 통해 일관되게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의 내용과 많이 닮아있다.

'행복의 충격'이나 '바람을 담는 집'과 같은 산문집이나 알베르 까뮈와 일련의 프랑스 현대소설의 유려한 번역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살아있는 글, 산문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탁월한 문장가이자 비평가인 김화영 선생의 지적처럼 오정희의 글엔 그래서 '어스름의 미학'이나 '박명의 현상학'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박은옥의 노래도 마찬가지다. 그의 노래는 사위가 어둑어둑해지는 해거름 무렵에 고즈넉하게 흐를 때 그 진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노래엔 그가 오페라를 전공하는 성악가수도 아니고 그저 대중가요를 부르는 한 사람의 음악인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러한 클래식의 세계가 추구하는 고급함과 격조를 훨씬 능가하는 고고한 품격이나 기품 같은 것이 잔잔하게 녹아있다. 박은옥의 노래가 오래도록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까닭은 정태춘의 가사에도 힘입은 바 크지만 바로 그녀 자신의 음색에 깃든 변함없이 고결한 서정성 때문이리라. 그 서정성은 시에서 느껴지는 순결하고 정제된 정서와 맥을 같이 한다.

최근에 현역 시인이나 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음반 - 위승희, 김정란 두 시인은 올해 '사이키/사이렌'이라는 타이틀로 자작시 낭송과 노래부르기를 겸한 공동 앨범을 제작했고 몇 년 전 작가 이제하는 그동안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했던 곡을 한데 모아 통기타 반주에 그의 쓸쓸한 목소리를 얹은 '빈 들판'이라는 판을 비매품으로 내기도 했었다. 그리고 성격은 좀 다르지만 클래식의 대중화를 꾀하기 위해 아트 가요라는 이름으로 최영미, 도종환, 하종오의 시에 이건용이 곡을 붙여 발표한 전경옥의 '혼자 사랑'이라는 앨범이 있다. - 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박은옥은 시에 곡을 붙여 노래로 부를 때 본연의 시가 지닌 멋을 손상시키지 않고 그대로 그 맛을 되살려 자기 것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수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그녀의 바로 앞 세대에 이러한 고품격의 노래를 만인에게 들려준 이는 양희은 - 그녀는 가끔씩 박두진의 시나 고 은의 시를 곡의 노랫말로 따오기도 했다. 대표작이 '하늘'이나 '가을 편지' 같은 곡들이다 - 이었다. 그러나 양희은의 목소리가 가수 자신의 삶의 연륜에 따라 조금씩 더 깊어지고 짙어진다면 박은옥의 경우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그래서 나는 박은옥의 노래를 들으면서 '아, 이 가수는 도무지 나이를 먹지 않는구나!' 하는 착각 아닌 착각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흔들림 없는 서늘한 아름다움이 정태춘의 시정어린 가사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한 폭의 잔잔하고 아련한 수채화를 그려 보인다고나 할까. '바람'은 박은옥 자신의 첫 독집 앨범인 [회상, 78, 서라벌 레코드]과 정태춘과 함께 낸 동반 앨범 [북한강에서/바람, 85, 지구 레코드]에 동시에 수록돼 있다. 앨범을 발표한지 벌써 이십 여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매번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어떤 정경 하나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내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화인처럼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 낯익은 그림. 지친 눈으로 그림 속을 들여다보면 한 아이가 젊은 여자의 등에 업혀 늙은 여자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칠흑처럼 어두운, 캄캄한 밤이었다. 아니, 먼동이 서서히 터 오는 새벽녘이었을까. 사위는 물먹은 솜처럼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고 들리는 건 그들 일행의 다급한 발자국 소리 뿐. 그리고 어디선가 저 멀리서 낮고 길게 기차의 기적 소리가 울렸다.

젊은 여자가 늙은 여자를 향해 말했다. 얘가 춥겠어요, 엄마. 옷을 더 입혀 나올 것 그랬나 봐요. 늙은 여자는 말이 없다. 그저 까만 어둠 속에서 하얀 입김과 함께 건너오는 무겁고 긴 한숨 뿐. 천년보다 더 길고 아득했던 그 침묵의 끝에 늙은 여자는 입을 열었다. 아직, 멀었나? 얼마나 더 가야 되노? 아이는 아직 어리고 어려 혼곤한 잠에 취해 누워있었지만 잠결에 그 말을 다 듣고 있었다. 어딘지도 모르고 그냥 떠밀려가면서 늙은 여자의 등이 따스했다는 느낌만 간직한 채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곳으로 하염없이 흘러가던 그 막막하고 무서운 밤. 그날, 그림 속의 그 가난한 일행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었을까. 그날, 젊은 여자의 품에 안겨 까무룩한 잠의 늪으로 가없이 빠져들던 그 어리숙하고 순한 아이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 그림 속엔 이십 오 년 전의 나의 모습이 녹아있다. 내 유년 시절의 어두운 초상이 조그맣게 숨쉬고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러나 기억할 수밖에 없는. 훌훌 털어내고 싶지만 끝끝내 떨쳐버릴 수 없는. 고무 지우개로 말갛게 지우고 싶어도 그러고 나면 나는, 나의 남은 생은 아예 텅텅 비어버릴 것만 같은.

그렇게 박은옥의 '바람'은 그 뜨거운 여름이 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초가을 어스름이 내려앉을 무렵이면 이제는 얼굴도 까맣게 잊어버린 먼 기억 속의 옛 친구처럼 나를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내 가슴속으로 촉촉하게 스며들어 나를 한참동안이나 아프게 한다. 나는 턴테이블에 그의 노래를 걸고 불도 켜지 않은 채 바닥에 누워 서서히 다가오는 저녁의 어둠을 맞이한다. 함석집 지붕을 세차게 때리던 빗줄기,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낙수를 세며 오지 않는 그 누군가를 기다리던 아이. 진공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오분극 김삿갓 방랑기를 들으며 혼자 뒹굴던 그 좁고 허름한 방. 이층의 안쪽에서 쉴 새없이 쏟아지던 여자들의 비명소리와 부랑자들의 설익은 욕설들, 이층으로 올라가던 그 목조 계단의 모서리에 쪼그리고 앉아 새 같은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 죽여 울던 그때 그곳에서 아무 것도 모르던 아이는 하늘이 보이지 않는 높은 산이 무서웠다. 산에서 쏟아지는 물들은 다들 집으로 흘러들고 그 집에서 까만 사람들을 보며 살던 때. 나도 그 때 새까만 아이였다. 나도 그때 가난한 아이였다. 가난한 자들에게 바치는 가난한 사랑 노래. '바람'은 부석부석한 내 기억의 창고로 그렇게 불어온다.

기도 - 박미선-노찾사

눈을 감고 잠잠히 기도드리라
무거운 짐에 우는 목숨에는
받아 가실 안식을 더 하려고
반드시 도움의 손이 그대 위해 펼쳐지리
그러나 길은 다하고 날 저무는가
애처로운 인생이여 애꿎은 노래만 우네

멍에는 괴롭고 짐은 무거워도
두드리던 문은 머지않아 네게 열릴지니
가슴에 품고 있는 명멸의 그 등잔을
부드런 예지의 기름으로 채우고 또 채우라
삶을 감사하는 높다란 가지
신앙의 고운 잔디 그대 영혼 감싸리
 . . .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그들의 1집 앨범에서 첫 선을 보였던 '기도'와 박은옥의 '바람'은 그러하기에 이 세상 모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들의 병든 가슴을 똑같은 어조로 따뜻하게 보듬어 안아주는 것이다 . . .

바람 - 박은옥

이제는 사랑하게 하소서 여기 마음 가난한 사람들
길목마다 어둠이 내리고 벌써 문이 닫혀요
자, 돌아서지 말아요 오늘 밤의 꿈을 받아요
홀로 맞을 긴 밤 새에 포근하게 잠든 새에
당신 곁을 스쳐갈 나는 바람이어요

이제 곧 어두운 골목길에도 발자욱 소리 그치면
어둠처럼 고이 고이 당신 곁에 갈테요
밤 하늘 구름 저 너머 당신 꿈을 펼치고
못 다한 사랑 이야길랑 내게 말해 주세요
고운 사랑 전해 줄 나는 바람이어요

 

출처 : 가슴 http://www.gaseum.co.kr/

     
     

1980년 4월 어느 신문에 난 기사

가수 정태춘 박은옥 결혼 - 솔로 가수끼리 골인은 우리나라선 처음

가수 정태춘군(27)과 박은옥양(24)이 오는 5월 4일 상오 10시 30분 서울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솔로 가수로서 만나서 결혼에 골인한 것이 국내 가요사상 처음인 이들의 첫 대면은 78년 9월 '서라벌레코드사'에 함께 전속을 하면서였다.

정군은 자작곡 '시인의 마을'과 '촛불'로 젊은층 가요팬들을 사로잡고 박양은 작사, 작곡에 탁월한 솜씨를 가진 정군의 곡 '회상'과 '윙윙윙'으로 박인희, 양희은 계열의 주목할 만한 신인으로 크게 인정받았었다.

첫대면이후 1개월만에 정군의 프로포즈로 사랑을 시작한 이들은 작년에 약혼을 했고 지난 2일 이미 혼인신고를 마쳤으며 서울 수유리에 보금자리를 꾸미고 함께 생활해왔었다.

 

     

 

회상 - 박은옥 (파도소리가 들리는)

     

왜 박은옥만 만났냐고? [ 오지혜가 만난 딴따라 ]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해 노래하는 여가수… 정태춘이 보면 조금 기분 나쁠 이야기를 나누다

박은옥을 만났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사람들은 “누구?” 한다. “정태춘, 박은옥의 그 박은옥” 해야 그제서야 사람들은 “아! 그 박은옥!” 한다. 그러고 또 내게 묻는다. “왜 박은옥만 만나?” 인터뷰 끝에 그녀도 섭섭함을 토로했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듀엣으로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난 한번도 그들을 듀엣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각자 솔로가수이긴 하지만, 다만 박은옥은 노래만 부르고 정태춘은 노래까지 만들며 박은옥의 노래 대부분이 정태춘의 곡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들은 부부인데다 참으로 다행스럽게 음색 궁합이 잘 맞아서 가끔 듀엣곡을 불렀을 뿐이다. 음반을 함께 낸 건 항상 같은 음반사와 일했기 때문일 뿐이고.

그녀의 모습은 언제나 ‘반보 뒤’

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정태춘 노래를 듣고 숙연해짐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없듯이 나 역시 그의 노래는 김민기의 그것처럼 애써 현실을 외면하려 하는 내 얼굴을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다시 쳐다보게 하는, 무서운 힘을 가진 ‘정신’이었다. 하지만 투사가 노랠 하는 건지 가수가 투쟁을 하는 건지 헛갈리는 그에게서 받는 감동 못지않게 가짓수는 부족하지만 <봉선화> <회상> 등의 노래로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던 박은옥의 노래 역시 내겐 ‘정신’이었다. 한데 어찌된 일인지 매스컴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언제나 ‘반보 뒤’였고 인터뷰 속 그녀의 얘긴 정태춘에게 온갖 존경과 찬사를 마친 뒤 부록처럼 간결하게 다뤄질 뿐이었다.

자신은 그저 ‘그’의 ‘반보 뒤’가 편할 뿐이라면서 첫 만남 같지 않게 서로에게 친숙함을 느낀 여가수와 여배우의 대화는 시작됐다. 20년 골든앨범에 수록할 곡들을 고르던 중 그녀는 감히 흉내낼 수조차 없는 예술가로서 남편의 능력을 새삼 느꼈다고 한다. 모차르트를 보는 살리에리 같은 심정이었지만 한편으론 그런 사람의 곡을 받을 수 있고 함께 노래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으로선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을 것 같단다. 이유는 외로움을 느낄 정도로 무뚝뚝한 그의 성격 때문이라고. 세상을 향해선 소리 높여 외치면서 아내를 향해선 칭찬도 비난도 하지 않는 도를 지나친 그의 무던함에 여자로서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결혼이 지독히도 안 어울리는 그에게 왜 결혼했느냐 물었고, 그는 아주 담담히 “상대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잔소리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난 그 가장 큰 선물을 당신에게 줬을 뿐이다”라고 하더란다. 거대한 가인의 거대한 결혼관이다.

정태춘의 노래 중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노래가 많다. 특히 맞벌이 영세부부가 일 나간 사이 불이 나 어린 남매가 밖으로 잠긴 문을 열지 못해 타죽은 사건을 노래로 만든 <우리들의 죽음> 같은 노래는 도저히 끝까지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의 그런 노래들은 사람들더러 즐기라는 건지 열 받고 절망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불편하게라도 해야지 안 그러면 너흰 금방 잊어버리잖아”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이 세상 모든 투사들이 누구누구처럼 변질된다 해도 끝까지 투사로 남을 것 같은 사람 정태춘. 그리고 그의 아내 박은옥. ‘투사’의 아내로 사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 물었다. 다소 불편한 건 있지만 불만은 없다, 오히려 남편이 존경스럽단다. 그러다 이내 장난스레 푹 웃는다. 까닭을 물으니 집안에선 별로 민주적이지 못한 남편이라고 한다. 자기 딴에는 가사노동을 분담한다고 하고 있으나 ‘남자로 누리는 삶’을 교육받아온 한계가 없지 않다는 거다. 그리고 자신 역시 ‘알아서 기는 여자’로 교육받아온 것이 없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살림에 대해 뭐라고 잔소리하는 법도 없고 자신의 일은 다 알아서 하지만 그렇다고 같은 가수의 길을 걷는 아내 박은옥과 비교했을 때 그의 가사노동량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거다. 그래서 그녀는 가끔 “언행일치를 해라”고 농을 한다고 한다.

사진/ 그를 만나며 자신도 훌륭한 예술가였지만 더 훌륭한 예술가와 사랑에 빠져 그저 평생을 그 남자의 그늘에 가리워져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사라져간 수많은 여성 예술가들이 생각났다.

“젊을 때 좀더 치열했더라면…”

게다가 상처 받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노래한다고 말하는 자신을 향해 “위로는 무슨 놈의 위로, 세상을 바꿔야지”라고 타박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박은옥, 그녀 자신은 지금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래를 하는 건 그저 그 사람의 몫일 뿐, 자신은 그런 남편을 믿어주고 바라봐주는 동료이며 앞으로도 전체가 아닌 개인의 상처를 위로하기 위해 노래를 할 거란다. 어느 인터뷰에서 정태춘은 “노래가 현실을 피해간다면 그건 그저 레크레이션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한데 그는 언제나 아내 박은옥에게 ‘현실을 피해가는 노래’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노래들은 전혀 레크레이션 같지 않다. 정태춘은 말은 그렇게 해도 이 세상엔 개인을 위로하는 딴따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 것이다. 전쟁보다 무서운 게 일상이듯이 노래가 마음의 위안이 되는 것 역시 세상을 바꾸는 일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요즘 제일 고민되는 것이 뭔지 물었다. 2년 동안 심적 슬럼프에 빠져 있는 남편을 바라보는 거란다. 내가 남편 얘길 많이 물어보긴 했지만 그녀는 마치 정태춘 대변인인 것처럼 모든 얘길 그와 결부해서 대답했다. 마치 자신은 정말 아무런 ‘스토리’가 없는 사람이라는 듯이. 다시 물었다. 박은옥 자신의 고민을 말이다. “내 개인적인 고민이라…” 잠시 낮은 한숨을 쉰 뒤 그녀는 말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또다시 음악인으로 태어나서 치열하게 음악만 해보고 싶다. 왜 젊었을 때 좀더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다 내 잘못이다. 아무도 방해한 사람 없고 붙잡은 사람 없었다. 그저 내가 스스로 더 이상 나가지 않았을 뿐이다. 일보다 가정을 택한 것도 다 내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하니 후회된다. 다시 태어난다면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그저 미친 듯이 음악만 하고 싶다. 정태춘씨가 그런 것처럼.”

‘까미유 끌로델’을 떠올리다

자신도 훌륭한 예술가였지만 더 훌륭한 예술가와 사랑에 빠져 그저 평생을 그 남자의 그늘에 가리워져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사라져간 수많은 여성 예술가들이 생각났다. 까미유 끌로델 같은 여자 말이다. 박은옥 부부가 먹고 살 일이 난감해졌을 때 정태춘씨는 그저 세상을 어떻게 해야 구원하는지에 대한 고뇌만 하였고 이곳저곳의 밤무대를 보따리 장사하듯 뛰어다니며 노래품을 파는 건 박은옥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정태춘은 남의 노래도 할 줄 모르고 팝송은 더더군다나 할 줄 모르니 방송이건 밤무대건 환영받는 가수가 아니었다. 정태춘 없는 박은옥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박은옥 없는 정태춘 역시 상상할 수 없음이다.

인터뷰 끝에 그는 요즘 회자되는 무속인에 대한 다큐영화 <영매> 얘길 했다. 연신 웃다가 울다가 하며 봤다고 참 좋았다는 거다. 죽은 가족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굿을 한다지만 굿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남아 있는 자들이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벌이는 것이고, 무당은 그 중재자인 것이다. 노래로 상처를 위로해주는 그녀 역시 훌륭한 무당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당골들의 삶이 가깝게 느껴졌을 거다. 난 그녀가 앞으로 더 많은 ‘굿’을 했으면 좋겠다. 혁명?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주는 세상이 진정한 유토피아가 아닐까?

오지혜 | 영화배우
사진 |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출처 : 인터넷 한겨레21 2003년10월23일 제4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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