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로드 르 죈 (Claude Le Jeune, 1527~1600) ■
활동년도 : 1527경 (프랑스 에노 부르고뉴 발랑시엔)
16세기 후반 활약한 프랑스 작곡가로 뮤지크 므쥐레의 주된 주창자이며 프랑스 세속음악은 물론 종교음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전 유럽에 마드리갈의 태풍이 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는 16세기 후반까지도 샹송의 전통이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그러나 1560년부터 1575년까지의 기간에는 프랑스에도 플랑드르와 이탈리아로부터 어느 정도의 음악적 영향이 미쳤는데 그 영향의 주요 역할을 맡았던 사람은 역시 국제파 음악가인 오를란도 디 라소였다. 이 시대 프랑스의 대표적 샹송 작곡가로는 죈(Claude Le Jeune,1528~1600)을 들 수 있다. 프랑스는 이탈리아의 어려운 마드리갈보다는 빌라넬라와 발레토를 더 많이 모방하였다. 한편 이 시기 프랑스 샹송은 르 죈의 곡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가사의 장음절에는 긴 음표를, 단음절에는 짧은 음표를 배치하는 정률(定律) 음악(musique mesuree)이란 작곡 방식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1530년경 네덜란드 지역의 발렌치엔에서 태어났는데 이 지역은 당시 종교개혁의 구심점이 된 지역이었으며, 그 자신은 프랑스 선교도 위그노(Huguenot)의 강한 신봉자로 프로테스탄트 교회음악 분야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564년부터 바이프, 롱사르 등의 시인과 협력하여 뮤지크 므쥐레 음악을 전개해 갔다. 가톨릭에 강한 적의를 들어낸 그는 1590년 파리가 가톨릭 연합군에 포위되었을 때 탈출하여 피신하기도 했으나 1596년 앙리 4세가 집권하자 복권되었다.
그는 시편송과 고전 운율을 길고 짧은 음악에 적용한 정량음악(musique mesurée)으로 유명하다. 앙리 3세의 형제인 프랑수아 당주 밑에서 성가대를 지휘하였으며 나중에 앙리 4세의 음악선생이 되었고, 위그노 교도로 죽었다. 그는 피에르 롱사르의 시운을 이론에 따라 고대 그리스어·라틴어 시를 부활하고자 한 시인 앙투안 드 바이프와 손잡고 일했다. 정량음악에 따른 곡에서 가사는 장·단 음절에 각기 길고 짧은 음가를 부여한 정량시(vers mesurés)에 의한 것이다. 그는 또한 칼뱅교도의 시편(Genevan Psalter)을 정량적으로 번역하여 찬송가로 만들었는데 그 찬송가들은 그가 죽은 뒤인 1606년 출판되었다. 그밖의 작품으로는 마드리갈·샹송·모테트등이 있다.
그는 플랑드르 악파의 음악가로 특히 조스캥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한편으로는 파리 악파의 세속음악의 영향도 함께 받았다. 그는 348편의 시편가, 133곡의 에어, 65곡의 세속 샹송, 42곡의 종교 샹송, 43곡의 이탈리아 칸조네타, 11곡의 모테트, 각각 1곡씩의 미사와 마그니피카트를 남겼다. 그 외 3편의 기악 판타지아도 남겼다. 그의 음악은 외기 쉬운 선율, 활기찬 리듬, 우아한 형식과 가사로 특징되는데 후일 그의 뮤지크 므쥐레는 에어 드쿠르 및 발레 드 쿠르로 발전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