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vs 차이코프스키
불행한 가정 vs 화목한 가정
라흐마니노프는 비록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모두 잃었으며 이런 경제적 파탄 때문에 부모님들은 갈라서게 되었다. 라흐마니노프는 불행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이 어려운 시기를 잘 넘겼고 음악가가 되기 위한 힘든 시기도 이겨내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차이코프스키는 부유했으며 부모님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비교적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났음에도 어머니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보였으며,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예민한 성격을 보였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의 우울증은 타고난 것으로 보고 있다.
낭만주의 vs 비관주의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을 함께 관통하는 정서라면 러시아적인 서정과 비애, 슬픔일 것이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신경쇠약을 달 박사의 최면요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극복했듯이 그 음악이 가진 내밀한 슬픔은 비교적 건강한 정신을 토대로 한 낭만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극도로 예민한 감성을 타고난 차이코프스키는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다.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의 경제적, 정신적인 도움에 힘입어 창작의 원동력을 얻기는 했지만, 그의 우울은 결코 가셔지지 않는 것이었다. 알려진 대로 그의 죽음이 콜레라이든 아니면 강요된 자살이었든 우울은 그를 마지막까지 따라 다녔다. 때문에 그의 작품에 흐르는 애수의 정조는 라흐마니노프의 애수와는 다른 비관적인 분위기를 한 자락 깔고 있는 것이라 보여진다.
제자 vs 스승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가 처음 만났을 때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 최고의 작곡가였으며 라흐마니노프는 아직 학생이었는데 대 작곡가는 젊은이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라흐마니노프는 이미 교수직에서 물러난 차이코프스키에게서 직접 음악을 배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음악 세계에 일찍부터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은 다름아닌 차이코프스키였으며, 동시에 그는 차이코프스키의 러시아적 로맨티시즘의 진정한 계승자이기도 하다. 그런데다 대 작곡가는 청년 라흐마니노프에게 작곡에 대한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런 차이코프스키가 세상을 떠나자 라흐마니노프는 스승이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을 위해 했던 것처럼 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피아노 트리오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을 써서 헌정하기도 했다.
유부남 vs 독신남
심리 치료로 창작 생활의 위기를 극복한 라흐마니노프는 결혼을 하고 난 뒤에는 더욱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또 지휘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도 그의 결혼 생활은 원만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차이코프스키는 이와는 달랐다. 그가 동성연애자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는 모스크바 음악원 시절 제자였던 안토니나 밀류코바의 사랑을 거절하지 못하고 결혼을 했는데, 그들의 결혼 생활은 곧바로 파경으로 이어졌다. 그 후 차이코프스키는 독신으로 살았다. 물론 작곡가로서 명예를 얻기는 했지만, 그의 음악과 그가 남긴 편지들을 보면 타고난 우울증, 그리고 동성애에 대한 주위의 편견으로 인한 자괴감 같은 것들이 평생 그의 삶을 힘들게 만들었음을 어렴풋이 나마 짐작할 수 있다.
글 : 월간조이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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