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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르작 사후 100주년 / 2004년 | 音香 클래식

리차드 강 2005. 7. 5. 09:57

작곡가 드보르작 사후 100주년

 

2004년 5월 1일은 체코 출신의 국민적인 작곡가인 안토닌 드로브자크(Antonin Dvorak)가 1904년 5월 1일에 사망한 지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그는 국민주의 음악 운동의 선구자로서 스메타나와 함께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저명한 작곡가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그의 음악들은 1세기 이상 그의 조국 뿐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특히 그의 사후 100주년 기념일인 5월 1일은 체코 공화국이 EU에 가입하는 뜻깊은 날이기도 해서 이 역사적인 순간에 울려퍼지는 드보르자크의 음악은 체코에서 각국으로 보내는 최고의 메시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체코 정부도 그 어느 때 보다 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그를 기념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이날 프라하에서는 드보르자크 사후 100주년 기념 행사와 함께 위대한 작곡가의 삶과 음악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기념 전시회들이 열립니다. 5월 2일에는 100주년 기념 음악회가 프하라 성과 드브로자크 홀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개최됩니다. 모든 음악회는 드보르자크를 기리는 연주회로, 이들 콘서트는 체코 라디오와 텔레비젼을 통해 중계될 예정입니다.드보르자크는 19세기 낭만주의 작곡가로, 서정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음악들로 민족의 애환을 노래하여 조국으로부터 문화계의 원로로 예우를 받는 등 최고의 영예를 누렸으나 말년에는 자신의 많은 곡들을 팔아야 할만큼 궁핍한 생활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브람스, 스메타나, 챠이코프스키 등과 함께 활동했으며, "루살카(Rusalka)"를 비롯해 "신세계(From the New World)"로 알려진 제9번 E단조 교향곡 등 9개의 교향곡과 10개의 오페라, 오케스트라곡, 실내악, 가곡 등 수많은 곡들을 작곡하였습니다.

Symphony NO. 9 in e minor “from the New World” op. 95 中 4악장

Humoresque Op.101, No.7

Slavonic Dance In E Minor. Op46 No.1

 

드보르자크 사후 1백주년 기념 행사

2004년 5월 1일

14:30 - 드보르자크 기념관 추도행사, 루돌피늄(Rudolfinum) 앞
15:00 - 추도 음악회, 루돌피늄 드보르작 홀
15:30 - 제9번 E단조 교향곡 "신세계(From the New World)" 자필 악곡 전시회 개관

 

드보르자크 사후 1백주년 기념 음악회

2004년 5월 2일

11:00 - '슬라브인 드보르자크(Dvorak the Slavonic)'

-"슬라브 무곡(Slavonic Dances op. 46,72)"
-프라하 성 근위병 악단
-프라하 성

14:00 - '국민 드보르자크(Dvorak the National)'

-"프라하 왈츠(Prague Waltzes)"

"로맨스 F단조(Romance in F minor)"

"마주르카 E단조(Mazurka in E minor)"
-프라하 필하모닉
-스페인 홀, 프라하 성

17:00 - '종교인 드보르자크(Dvorak the Spiritual)'

-"슬픈 성모(Stabat mater)"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 -스메타나 홀(Smetana Hall)

19:00 - '세계인 드보르자크(Dvorak the Cosmopolitan)'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G단조 협주곡(Concerto for Piano and Orchestra in G minor)",

제9번 E단조 교향곡 "신세계(From the New World)"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루돌피늄 드보르자크 홀

21:00 - '내면의 드보르자크(Dvorak the Intimate)'

-성가, 해학곡,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네 주요 모음곡
-보후슬라프 마르티누 홀(Bohuslav Martinu Hall)

 

안토닌 드보르자크 (Antonin Dvorak, 1841-1904)

안토닌 드보르자크는 1841뇬 9월 8일 프라하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보헤미안의 작은 마을 넬라호제베스(Nelahozeves)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수육점과 여관업을 겸업하는 치터 연주자로 가난했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집안이었습니다. 1858년부터 프라하의 오르간 학교에 들어가 2년간 공부하였고, 작은 교회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일했습니다. 졸업 후 레스토랑, 호텔 등에서 비올라 연주자로 불안정한 활동을 해오다 1862년에야 신설된 프라하 가설극장(1866년 스메타나가 이 극장의 지휘자로 취임)의 상임 비올라 연주자로 고용되었습니다. 1860년대에는 재정확보를 위해 교향악, 합창곡, 오페라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곡들을 쓰면서 진지하게 작곡을 시작하였으며, 1873년에는 할레크의 애국적 시에 의한 혼성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찬가 "빌라 호라의 후계자들(The Heirs of the White Mountain)"이 호평을 받으며 첫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 후 그는 브람스의 인정을 받아 국가에서 주는 연금을 추천해 주기도 했습니다.

"슬라비아 무곡(Slavonic Dances)"에서는 애국적인 색채를 더욱 강하게 풍겼고, 이 곡은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만들었습니다.

1880년대에는 영국의 여러 단체와 행사 등에서 주문이 줄을 이으면서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때 버밍엄 페스티벌의 주문으로 "유령의 신부(The Spectre's Bride, 1885)", "미사곡(Requiem Mass, 1891)"이, 리즈 페스티벌의 주문으로 "성 루드밀라(St Ludmilla, 1886), 런던 필하모닉의 주문으로 "7번 교향곡(Seventh Symphony, 1885)"이 작곡되었습니다. 1891년에는 프라하 음악원 교수가 되었고, 1892년에는 2년 동안 뉴욕의 국립 음악원 원장으로 초빙되어 도미했습니다. 그는 1892년과 1895년 미국에서 두차례 머물렀는데, 이때 미국에서의 신선한 인상을 소재로 교향곡 9번 "신세계(From the New World)"과 현악4중주 제12번 F장조의 일명 "어메리칸(American)", 그리고 첼로 협주곡을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1895년 4월 프라하로 돌아온 후로 10년동안 창작에 전념하였으며, 1901년에는 프라하 음악원 원장이 되었고, 오스트리아 정부는 그를 상원의원에 임명하는 등 음악가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습니다. 1901년 오페라 "악마와 케이트, 루살카(The Devil and Kate and Rusalka)"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그의 마지막 오페라인 "아르미다(Armida)"에서는 그 열정도 식고 맙니다. 이 오페라의 초연이 있은 지 5주 후인 1904년 5월 1일 63세를 일기로 뇌일혈로 사망하였습니다. 체코 국민들의 슬픔 속에 국장으로 치뤄진 장엄한 장례는 드보르자크 자신의 진혼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엄수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이웃은 참마음 참이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