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첵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동양적 느낌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는 야나첵의 사실상 유일한 바이올린 소나타로 그의 실내악 작품 중 제2기 말미를 장식하는 역작이다. 1880년대 이미 두 곡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했지만 후대에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야나첵은 1913년 곡의 주요 심상을 착상하고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대략적인 곡의 골격을 잡았다. 전쟁의 여파로 곡은 7년이 지난 1921년에 완성됐다. 1악장은 전쟁의 포화가 시작되기 전의 고요함을 상징하기 위해 서정적인 발라드가 쓰인다.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평화로운 농촌 마을의 모습이 1악장의 동기 부분에 민요적인 선율로 나타나고 1914년 헝가리를 침공한 러시아군의 총성이 3악장에서 트레몰로(활을 빨리 상하로 움직여서 음을 되풀이하는 주법)로 나타난다. 레오슈 야나첵(Leos Janacek, 1854-1928)는 체코 오페라의 완성자로 일컬어질 만큼 평생 성악에 몰두한 작곡가이다. 물론 기악 분야에도 많은 걸작을 남겼는데, 야나첵의 기악 어법은 대개 그의 성악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아 체코어 특유의 악센트와 억양이 강하게 배어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14년 처음 완성한 바이올린 소나타는 두 개의 현악 4중주와 함께 야나첵의 실내악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선율이 부드럽게 이어지다가도 갑자기 단절된다든지, 강렬한 악센트가 다소 비논리적으로 등장하는 품은 베토벤이래 내려온 바이올린 소나타의 전통에 빗겨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앞서 말했듯 성악 스타일을 모방한 기악 작법으로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작곡가가 처했던 시대 상황과 작곡가의 의식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20세기 초 체코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애국심이 강했던 야나첵은 어렸을 때부터 독일-오스트리아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안티-저먼 정신'은 작곡가를 친 러시아 문화인으로 만들었고, 많은 작품에 슬라브의 의식과 표현 양식을 주입시킨 계기가 되었다. 러시아군이 1913년 체코 이북까지 내려왔을 때 야나첵은 러시아에 의해 체코가 독립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고, 바이올린 소나타는 그러한 희망 속에 작곡된 것이다.
2. Ballada-Con Moto - 3. Allegretto - 4. Adagio 현재 연주되는 야나첵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1914년에 나온 첫 번째 버전을 공개를 하지 않고 미루다가 1921년 최종적으로 손질한 것이다. 1922년 12월 12일 프라하에서 발표되었다. 전체는 4악장. 1악장은 언뜻 소나타 형식이 기본 골격처럼 보이지만 멜로디는 불투명하다. 반복되는 제시부를 지나면 그 다음 흐름은 종잡을 수 없이 복잡해진다. 2악장은 발라드("Ballada")로서 추상적인 서주부를 지나면 작품을 통틀어 가장 기억하기 쉽고 아름다운 '가락'이 피아노의 재잘거리는 듯한 반주를 배경으로 흐른다. 중간 중간 랩소디 풍의 짧은 악구들이 삽입되면서 서정적인 노래를 단절시킨다. 3악장은 체코의 거친 무곡을 연상케 하는 리듬이 지배적이며 중간에 위치한 트리오는 이와는 반대로 내성적인 악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야나첵은 4악장에 아다지오를 배치함으로써 이제까지 그가 시도했던 실험적인 악장들을 마무리한다. 여기서 피아노의 선율 위로 굵은 방점을 찍는 바이올린의 반복 악구에 주의를 기울일 만하다. 주선율과 갈등을 일으키는 단편적인 음의 조각은 야나첵이 즐겨 사용했던 대비와 집중의 한 방법이다. 작곡가는 고전적인 음악 어법을 바탕으로 자신이 가진 개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청자들에게 보다 깊은 여운을 남기려 한다.
야나첵의 휴머니즘 단순히 작곡자의 출생 년으로 낭만주의와 모더니즘을 구분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런 좋은 예로 1854년에 태어난 모더니즘의 대가 야나첵은 낭만주의의 마지막 수호자들보다 훨씬 연장자다. 그는 말러보다 여섯 살이 많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보다는 열 살이 연상이다. 그가 스트라빈스키와 바르톡과 같은 현대음악 작곡자들과 나란히 거론되곤 하지만 그는 그들보다 삼사십년 연상인 것이다. 이는 그가 젊은 시절 낭만주의적인 작품들을 써오다가 겪은 창작의 벽에서 수없이 악보를 찢어버리고 결국 그의 나이 육십을 넘긴 20세기 초부터 모더니즘적인 자기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출해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낭만주의와 현대음악이라 불리우는 모더니즘의 가름하는 경계는 무엇일까? 더 이상 소나타형식을 쓰지 않고 반음계나 무조성의 음악을 쓴다고 해서 모두 모더니즘의 카테고리에 넣을 수 있을까? 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단순한 형식의 차이만으로 구분되지 않듯이 형식을 그릇이라면 그 그릇에 담는 내용이 무엇이냐에 더 큰 비중을 두고 모더니즘을 차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모더니즘의 주요한 화두 중의 하나로 휴머니즘을 들고 싶다. 스트라빈스키로 대표되는 감성적이지 않은 냉정한 음악 역시 모더니즘의 중요한 소재가 되겠지만 사회를 이뤄가는 구성원으로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 느끼는 연민의 정과 측은지심을 한마디로 줄여 휴머니즘이라고 부른다면 많은 현대음악은 그런 휴머니즘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사로운 개인의 이상이나 감정 표현이 주가 되는 낭만주의와 구별된다. 모더니즘 작곡가들이 도입한 형식적인 혁신들은 어디까지나 뜻한 바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데 필요한 수단으로서 도입되었지 형식 그 자체가 목적이지 아니지 않았을까? 휴머니즘이 소재인 대표적인 작품으로 지난 달에 언급했던 베르크의 오페라 "보첵"이나 쉰베르크의 "정화된 밤"과 같은 작품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20세기 최고의 현대 오페라 작곡가 레오스 야나첵의 작품들도 이런 휴머니즘적인 측면에서 그의 음악을 주저하지 않고 현대음악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생각된다. 지금 소개할 야나첵의 말년의 대표작인 두 현악 4중주에서도 우리는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밀란 쿤데라의 해설 체코 출신의 유명한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던지 "불멸"과 같은 소설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에 남다른 일가견이 있었는데 지난 달에도 잠시 언급했던 그의 수필 "Les testament trahis" (국내 번역서명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 김병욱 옮김, 청년사)에서 그는 조국 출신의 현대 작곡가 야나첵을 향한 애정을 아낌없이 표현하고 있다. 필자가 야나첵의 작품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바로 쿤데라의 능청스런 야나첵 찬양에 귀가 솔깃해졌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위대한 예술가가 가진 엄청난 영향력이 새삼 놀라울 뿐이다. 그는 특별히 수필의 한 장을 통채로 빌어서 프랑스의 음반가게로 찾아나선 야나첵 CD 사냥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데 야나첵의 두 현악 4중주를 일컬어 "야나첵의 절정; 그의 표현주의의 정수가 거기, 총체적 완벽성안에 집약되어 있다"고 찬양한다. 좀더 그의 설을 인용하면
김태형 글 쓴 날짜: 1999/05/06 야나첵 (LEOS JANACEK 1854- 1928)
체코 작곡가. 오스트리아령 모라비아지방 후크발디 출생. 11세 때에 집을 떠나 모라비아의 중심도시 브르노의 수도원 성가대에 들어갔으며, 1872년 그곳의 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뒤 프라하의 오르간학교와 라이프치히음악원·빈음악원에서 배웠다. 81년 브르노에 오르간학교를 창설하고 교장이 되었으며, 81∼88년 필하모니협회의 지휘자를 지냈고 1919년 신설된 프라하음악원 브르노분교에서 작곡을 가르치는 등 모라비아지방의 음악문화 발전에 공헌하였다. 일찍부터 창작활동을 하였는데 작곡가로서 명성이 높아진 것은 1904년의 오페라 《예누파》 초연 이후이며, 16년의 프라하 초연과 2년 뒤의 빈 초연에서 비로소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로부터의 10년간이 창작의 절정기이며 오페라 《카탸카바노바(1919∼21)》 《교활한 새끼여우(1921∼23)》 등 대작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작풍은 젊은 시절에 강한 관심을 가졌던 모라비아민요의 연구성과에 바탕을 두고 민족적 요소를 단순한 이국취미적 장식으로서가 아니라, 서유럽 근대음악의 어법과 융합하여 발전시킨 점에서 대단한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작품을 만들었으며 민요 편곡도 많다. 중요한 것은 9개의 오페라로서 말의 억양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독자적인 양식을 만들었으며, 위의 3작품 외에도 마지막 작품 《죽음의 집에서(1927∼28)》가 뛰어나다. 종교작품 가운데에는 고대 슬라브어의 텍스트에 의한 《글라골 미사(1926)》가 유명하고, 기악곡에서는 B. 스메타나와 A.L. 드보르자크의 영향과 함께 말년에 인상주의적 경향을 볼 수 있는데, 특히 관현악곡 《타라스불리바(1915∼18)》와 《심포니에타(1926)》가 전작품 가운데 가장 잘 알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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