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

앨범: Cheap Thrills - Big Brother & The Holding Company (1967 CBS)

리차드 강 2014. 1. 3. 07:55

Cheap Thrills - Big Brother & The Holding Company

 

 

A1. Combination Of The Two
A2. I Need A Man To Love
A3. Summertime
A4. Piece Of My Heart

B1. Turtle Blues
B2. Oh, Sweet Mary
B3. Ball And Ch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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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Cheap Thrills (1967 CBS)

Big Brother & The Holding Company

Side A1. Combination Of The Two

     

     

Album Title: Cheap Thrills
Artist: Big Brother & The Holding Company
         James Gurley (Lead Guitar)
         Sam Andrew (Guitar)
         Peter Albin (Bass)
         Dave Getz (Drums)
         Janis Joplin (Vocals)

Format: Vinyl, LP, Album
Country: US
Released: 12 Aug 1968
Label: Columbia Records / CBS Inc.
Copyright: (c) 1967 Columbia Records / CBS Inc.
Genre: Rock
Style: Folk Rock, Blues Rock, Psychedelic Rock

     
     

남성 중심의 세계에 던져진 세이렌(Sirens)의 마녀

록 음악이 대중음악의 한 주류로 자리잡은 시기는 불과 5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으며 그 기간 동안 록 음악의 역사는 위대한 저항과 승리의 시간이자 동시에 패배와 굴종의 시간이기도 했다. 많은 음악평론가들이(특히 국내에서는 '강헌' 같은 음악평론가에 의해) 록(rock)이 마치 민중가요이자 저항가인 양 높이 추켜세워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어쩌면 꿈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록 음악이 반항적 메시지 전달자로서의 전성기는 사실상 60년대로 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후 니르바나(Nirvana)의 커트 코베인 같은 인물은 일종의 오파츠(Out Of Place ARTifactS)적인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철저히 상업적이고 체제 내 반항적인 구두선(口頭禪)에 멈춰 있었다. 그 대단했던 록의 황금기를 빛낸 록커들 중에서도 사람들은 압축해서 '3J' 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3J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그들은 앞서 이미 다룬 바 있는 The Doors의 짐 모리슨(Jim Morrison),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그리고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제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미국은 아직 대통령 선거의 승자가 누구인지 결정되지 않았다. 이른바 미국판 '고부갈등(고어와 부시)'이라고도 할 수 있을 이번 선거는 미국이란 나라가 아직까지 WASP가 지배하는 사회이자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 사회 내의 마이너리티(Minority)들에겐 아직도 그 문호가 닫혀있는 사회라는 것을 엿볼 수 있게 한다.(이 부분은 나중에 기회가 닿는 데로 '바람구두의 세상읽기'에서 다룰 것을 약속드린다.) 대통령 후보 중 한 사람으로 미국 백인사회 주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인물이자 보수적인 미국사회에서도 보수적인 지역인 텍사스 주지사 출신인 부시 후보를 살펴보는 것으로 제니스 조플린을 이해하는 한 축으로 삼는 것 역시 재미있을 것 같다.

미국에서 가장 완고하고 보수적인 남부의 한 주인 텍사스주에서는 작년(1999년)에 일단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흑인을 차에 매달아 찢어 죽이는 사건이 있었다. 이는 미국이란 사회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바라보는 것보다도 훨씬 더 보수적이고, 전근대적이자 소수에 대해서 관용적이지 못한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의 일단에 불과하다. 제니스 조플린은 그런 미국 텍사스의 소도시 포트 아더(PORT ARTHUR)에서 태어났다.

 

텍사스에서 가장 못생긴 계집애에서 발퀴레로

텍사스 대학 시절 그녀는 교내에서 가장
못생긴 남학생으로 선정된 적이 있었다.
남학생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욱 가슴아프게 했다고 한다.

제니스 조플린은 생전에 그녀 특유의 개방적 성격 탓에 성장기에 그곳의 완고한 분위기 로 인해 많은 갈등과 불만을 가지고 살았다고 회고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유난히 보수적인 텍사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조플린은 어려서부터 별난 아이로 취급받기 일쑤였고, 그녀가 어린 시절을 보낸 텍사스는 남성중심의 사회(가부장적)였다. 그림 그리기와 시를 좋아했으며 오데타와 레드벨리 같은 흑인 음악을 즐겨 들었다. 자신의 말대로 "주말이면 남자애들과 어울려 영화 보러가고 콜라나 좋아하는 텍사스 여자 아이들" 속에서 그녀는 언제나 혼자였다. 그녀는 또래 친구들로부터 늘 따돌림을 당했고, 거기에는 못생긴 그녀의 외모도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친구 말을 들어보자.

"순진한 애라서, 아마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경험이 없었을 거예요. 조플린이 고등학교를 돌업할 때까지는 처녀였다고 확신해요. 그런데도 그 애는 무슨 대단한 경험이라도 해본 것처럼 굴었어요."

그녀는 그럴수록 점점 더 자기 속으로 파고들었다. 조플린은 이때부터 이 세상에 기댈 곳은 없다고 생각했으며 평생 이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점차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는 것에 익숙해졌다. 제니스 조플린은 18세 되던 61년 고향 텍사스를 떠나 휴스턴에서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5년간 여기저기 떠돌며 일하고 노래하는 고된 시절을 경험했다.

그녀는 이 기간 동안 세상살이의 힘겨움과 더러움을 절감했고 세상이 점차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아예 저버리게 되었다.(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믿음마저 없는 사람들은 체념하고 현실순응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그것은 또한 자본주의가 바라고 또한 적극 퍼뜨리는 인간상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진보의 이상은 어둡다.) 희망을 버린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더러운 세상을 저주하거나 술과 약물에 젖어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것뿐이었다. 이것은 당시 록음악계 역시 남성중심의 세계였던 탓도 역시 크게 작용한다. 그녀의 말투는 점점 거칠어졌고 행동은 공격적으로 변해갔다. 오직 노래만이 그가 완전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불멸의 진주(Pearl), 제니스 조플린

그녀는 죽기 전에 세스 모건이란 뉴욕
출신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버클리
대학생과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가정
을 갖고자 하는 그녀의 열망은 대단한
것이어서 이제까지 삶의 방식을 송두리
째 바꾸고자 했다. 그러나 제니스 조플
린은 지미 핸드릭스가 세상을 떠난지
며칠 후인 70년 10월 4일 할리우드의
한 호텔에서 사망했다. 급하게 결혼식
을 서두르고 있던 중에 생긴 일이었다.

최초의 백인 여성 록커로 평가되고 있는 그녀는 최고의 백인 여성 블루스 싱어로 이름을 남기고 있다. 10대 때부터 블루스(BLUES)와 포크뮤직(FOLK MUSIC)에 심취한 그녀는 61년 텍사스에서 시작된 CLUB 생활을 62년 샌 프란시스코로 옮겨 활동 중 대학을 다니기 위해 다시텍사스로 온 뒤 66년 샌 프란시스코에 다시 정착한다. 이때 LOCAL BAND인 <BIG BROTHER & THE HOLDING COMPANY>를 만나 그녀가 VOCAL을 맡아 활동을 시작하였다. 66년 6월에 데뷔 공연을 갖고 소규모 레코드사인 MAINSTREAM과 계약을 맺은 후 이들은 67년 8월 MONTEREY POP FESTIVAL에 참가하여 JANIS JOPLIN의 폭발적인 창법과 육감적인 무대 매너에 의해 인기를 얻었다. 이에 힘입어 주로 DEMO TAPE으로 구성되어 졸속 제작된 첫 앨범이 9월에 발표되어 호평 받았으나 앨범 제작의 질은 형편이 없었다.(이 ALBUM은 71년 COLUMBIA에 의해 재발매 되었다.) 68년 초 새로운 매니저와 함께 COLUMBIA사로 이전한 이들은 곧 2집 ALBUM인 CHEAP THRILL을 발표한다. 여기서 PIECE OF MY HEART가 HIT하고 지금까지도 인기가 있는 SUMMER TIME,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노래한 BALL AND CHAIN등이 수록되어 곧 엄청난 판매가 이루어졌다. 허나 GROUP 해체 설이 나돌더니 그 해 말에 해체되고 말았다. 지금까지 평론가들이 가장 이상적인 조합이라 말하는 <빅 브라더 & 더 홀딩 컴퍼니>와의 결별은 서로에게 음악적인 손실을 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후 고정 BAND 없이 여러 BACK BAND를 구성해 그때그때 공연 및 녹음 활동을 하였다. 이때 KOZMIC BLUES를 취입하여 다시 한번 대성공을 이룩한다. 이후 HOLDING COMPANY와 재결합, 또 결별 후 새로운 BAND "THE FULL TILT BOOGIE BAND"를 구성해 ALBUM <PEARL>의 녹음을 끝냈으나 당시 약물복용과 알콜을 탐닉하던 그녀가 1970년 10월 4일 HOLLYWOOD HOTEL방에서 헤로인 과용으로 사망하고 말아 소위 ROCK & ROLL VICTIM이라는 명단에 오르고 말았다. 그녀 사후에 발매된 이 ALBUM에는 ME & BOBBY MCGEE가 HIT되었다. JANIS의 음악은 보통 SUMMER TIME을 들어보고 좋아지지만 곧 그녀의 다른 노래에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이다. 최초의 여성 ROCKER라 할 수 있는 그녀의 음악은 GREATEST HIT이라도 한번 꼭 들어보기를 강권한다.<싸이키델릭 블루스의 여왕. 닉네임 "Pearl"(그녀의 대표앨범 수록곡을 따서) 66년 샌프란시스코로 진출."Big Brother & The Holding Ccompany"  에 가입. 68년 솔로활동 병행, 베트 미들러 주연의 'The Rose'는 그녀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불후의 여성 록 보컬리스트>

 

백인 여자, 흑인 블루스를 만나다. 혹은 록이 블루스를 만나다.

그녀는 시대를 앞서간 여장부로서 뿐만 아니라
세계 대중음악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여성 록 아티스트였다. 스물아홉이라는 길지
않은 생을 그야말로 불꽃처럼 살다간 예술가이
자 반역자이기도 했다. 그녀의 등장 이후 록음
악을 하겠다는 모든 여성은 그녀를 뛰어넘고자
하는 이나 그녀를 무시하고자 하는 이나 상관
없이 모두 제니스 조플린이란 거대한 그림자와
비교되거나 싸워야만 했다.

1968년에서 69년 사이 팝계에서는 얼핏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 퍼졌다. 흑인의 블루스를 백인이 노래하고 연주하는 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일명 '블루스 리바이벌' 혹은 '화이트 블루스'라는 것이 그것인데 '블루스 리바이벌' 시대 최고의 스타는 누가 뭐래도 역시 제니스 조플린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백인이 흑인 블루스를 부르게 되었는가? 블루스 음악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역으로, 설명해서 이해시키는 것은 가능한가? 그 역시도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해란 말에는 이미 어느 정도의 계산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블루스는 이해할 수는 없어도 느낄 수는 있다. 어디까지가 블루스인지 속 시원히 말할 수는 없지만 억지로 짜 맞추자면 "블루스는 슬픈 음악이다" 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그 시원(始原)이 그렇지만 블루스는 뭔가 삶이 고달프고,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가 있는 그런 음악이고 그런 사람들이 연주하고 듣는 음악이다.(아니면 말고) 오늘날 우리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블루스계의 거물들은 공장에서 일하면서 하루를 살아가던 하층 흑인들이었다.

 

 

 

 

조플린은 이내 자유와 금지되지 않은 것,
거침없음의 상징이 되었다. 그녀는 블루
스를 통해 열정과 절망, 저항을 한꺼번에
표현했고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강력한
힘과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 쾌락에 대한
갈망을 노골적으로 담아냈다. 샌프란시스
코의 필모어 극장이나 애벌런 볼룸 같은
곳에서 하늘을 찌르는 인기를 누리고 있
었지만 그녀의 실제 생활은 고독했다. 약
물중개상은 그녀의 돈을 갈취해갔고, 친
구들은 그녀를 속였다. 그녀의 삶은 블루
스 그 자체였다. (사진은 우드스탁 페스
티벌)

남북 전쟁이 아직도 노예제를 반대하는 인간적인 북부 미국인들과 노예제를 찬성하는 남부 농장주간의 전쟁이었다고 믿는 이들이라면 이 글을 더 읽으실 필요가 없겠다. 결국 남북전쟁은 미국이 신흥 자본주의 공업국가로 성장해 가기 위해 남부 노예를 북부의 저임금 노동자로 고용하기 위한 일종의 구조조정이었기 때문이다. 노예는 아니었지만 그 생활이란 암담하고 아무런 희망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음악 세계 속에는 당연히 고달픈 삶과 그 애환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었고, 미국 흑인들의 삶이란 대부분 그런 수준이었다. 사회적 약자이자 백인 주류 사회의 소수파였던 흑인들이 그들의 정서를 록과 같이 발산하는 음악을 통해 분출할 수 없었기 때문에 탄생하게 된 것이 블루스라고 할 수도 있다. 이토록 억압당하고 억누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들의 한(恨)을 안으로 삭이고 풀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백인들에게도(엄밀히 말해서 미국의 백인들을 말한다. 왜냐하면 브리티쉬 인베이션은 블루스를 받아들인 영국의 록그룹에 의한 것이었다. - 그들이 영국의 오랜 노동계급이었음은 당연한 결과) 블루스가 크게 각광받게 된 것은 블루스 종주국이었던 미국이 이를 타국(특히 영국)에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큰 이유는 미국이란 사회가 이 60년대를 기점으로 팍스 아메리카를 구가하던 미국에서(50년대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나라였다.

동양은 아직 깨어나지도 못했고, 유럽은 식민지들의 잇따른 독립과 제2차세계대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은 이들 모두를 먹여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점차 사회적 계층 분화가 심각하게 일어나던 시기라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백인이란 이유 하나로 보장받을 수 있었던 여러가지 혜택들이 사라져가고 백인들 중에서도 사회적 하층민이 양산되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전을 통해 세대간의 갈등은 그 정점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고 미국이란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꿈을 꾸게 되고 많은 희망과 절망이 뒤범벅된 상태가 된다. 바로 이 때 안으로안으로만 한을 삭이던 블루스 음악이 젊은이들의 발산하는 에너지인 록 음악을 만났다. 그 폭발력은 과연 대단한 것이었고 그 폭발의 불꽃 한 가운데 서 있던 록커가 바로 제니스 조플린이었다.

 

절망의 끝에서 불타오르다

이제까지의 존 바에즈나 주디 콜린스 같이 맑고
고운 소프라노 음색이 여가수의 전부인 줄 여겼
던 당시 사람들에게 조플린의 목소리는 충격 그
자체였던 거이다. 갈라진 벽 너머로 쏟아지는
얻어맞으며 절규하는 여자의 갈라진 목소리 같은
, 노래라기 보다는 절규나 비명에 가까우며 몸
속의 고성능 화약을 폭발시키는 듯한 엄청난 에
너지는 도무지 여자 가수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시대를 앞서간 여장부로서 뿐만 아니라 세계 대중음악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여성 록 아티스트였다. 스물아홉이라는 길지 않은 생을 그야말로 불꽃처럼 살다간 예술가이자 반역자이기도 했다. 그녀의 등장 이후 록음악을 하겠다는 모든 여성은 그녀를 뛰어넘고자 하는 이나 그녀를 무시하고자 하는 이나 상관없이 모두 제니스 조플린이란 거대한 그림자와 비교되거나 싸워야만 했다. 조플린은 68년 타임지와 같은 인터뷰에서 "나는 노래할 땐 마치 아주 강한 약을 먹은 듯한 기분이 된다"고 털어놓았다. 이 말은 그가 이미 강한 약의 느낌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증거인 동시에 그에게 노래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말이다. 또한 자유기고가 필립 제이콥스는 그녀의 노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녀의 고통스런 외침은 단지 노래부르기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그것은 귀신쫓기 의식이었다."

제니스 조플린은 1966년 블루스 밴드 Big Brother & The Holding Company에 가입하고 활동 무대를 샌프란시스코로 옮겼다. 이때부터 그녀는 샌프란시스코 록계의 스타였다. 당시 그녀는 겨우 23세였지만 고향인 텍사스로부터 든든한 블루스 음악의 토대를 지니고 왔다. 그리고 이듬해 몬터레이 페스티벌을 통해 조플린 신화의 막을 올렸다. 그녀의 등장은 이제까지 소파에 누워 듣던 음악인 백인 여가수의 노래가 아닌 광란의 이미지였다. 이제까지의 존 바에즈나 주디 콜린스 같이 맑고 고운 소프라노 음색이 여가수의 전부인 줄 여겼던 당시 사람들에게 조플린의 목소리는 충격 그 자체였던 거이다. 갈라진 벽 너머로 쏟아지는 얻어맞으며 절규하는 여자의 갈라진 목소리 같은, 노래라기 보다는 절규나 비명에 가까우며 몸 속의 고성능 화약을 폭발시키는 듯한 엄청난 에너지는 도무지 여자 가수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몸 안의 모든 힘을 일시에 쏟아져 내는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헝클어진 긴 금발머리를 미친 듯이 흔들어대는 무대 위의 모습 역시 여자처럼 보이지 않았다.(뭐 요새는 남자 가수들도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헤드 뱅잉에 열심이긴 하다. 그러나 헤드 뱅잉만 한다고 록은 아니다.) 아주 가끔 느린 블루스를 부를 때 보이는 육감적인 목소리와 몸놀림에서만 그가 여자임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껍데기를 벗고 느껴보라" 고 외쳤다. 그가 말하는 껍데기란 위선과 가식 뿐 아니라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도덕 관념이나 상식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켜 나갔다. 누구도 어떤 것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그녀는 베시 스미스의 음악을 가슴 속 깊이 새겨두고 있었으며 별 어려움 없이 베시의 스타일을 모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우상과 자신의 미래가 비슷하게 될 것이란 사실은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하고 싶은대로 말하고 행동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여자가 섹스를 언급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그의 노골적인 섹스 얘기는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여자가 말한다는 것 자체로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그녀는 공공연히 무수한 남자와 성관계를 갖고 있다고 밝혔으며 실제로도 그랬다. 그녀는 폭음과 환락을 마구 즐겼다. 폭음과 환락이 그녀의 인생을 망칠 것이라는 충고에도 그녀는 "술에 취하는 것이야말로 못난 내게 가장 잘 맞는 행위"라고 응수하곤 했다고 한다.) 조플린은 이내 자유와 금지되지 않은 것, 거침없음의 상징이 되었다. 그녀는 블루스를 통해 열정과 절망, 저항을 한꺼번에 표현했고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강력한 힘과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 쾌락에 대한 갈망을 노골적으로 담아냈다. 샌프란시스코의 필모어 극장이나 애벌런 볼룸 같은 곳에서 하늘을 찌르는 인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실제 생활은 고독했다. 약물중개상은 그녀의 돈을 갈취해갔고, 친구들은 그녀를 속였다. 그녀의 삶은 블루스 그 자체였다.

이제 펄(제니스 조플린의 애칭)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여가수였다. 그러나 조플린은 대중 속에서 더욱 진한 고독을 느꼈다. 그녀는 "나는 무대에서 2만5천명의 사람들과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갈땐 늘 혼자다"라는 말로 자신의 고독을 드러내곤 했다. 조플린은 자신이 거대한 남성 사회에 갇힌 불쌍한 괴물임을 알지 못했다. 조플린은 68년 빅 브라더를 탈퇴함으로써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사실 조플린은 다른 밴드의 여성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그 중요도에 걸맞는 위치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남성 위주의 록계에서 몇 안되는 여성 록 가수들이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했던 구조적인 문제였다. (그녀는 이에 대한 반발로 새로 조직한 Kozmic Blues Band를 자신의 백밴드로 한정했다. 그러나 빅브라더의 탈퇴는 그녀에게 더한 고통을 주었을 뿐이었다. 빅브라더는 제니스 조플린을 제니스 조플린답게 해주는 그 무엇이 있었다. 제니스 조플린의 음악을 들으면 프로가수라기 보다는 어딘가 설익은 아마추어의 느낌이 난다. 빅 브라더&홀딩 컴퍼니는 그 생생함과 함께 그녀의 극단적인 감성의 표출을 일정 부분 자제하게 해주고 악기와 선명한 대비를 이뤄 보컬을 뒷받침해 주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제 그녀는 혼자서 현실에 맞서게 되었던 것이다.) 70년대 이후 활동한 모든 여성 로커들은 제니스 조플린을 모델로 삼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할 정도였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 마저 불행했던 여인

그녀의 인생은 마지막까지 극단을 달렸다.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관계를 맺었고, 크리스 크리스토퍼슨과도 잠시 사귀었다. 제니스 조플린은 마치 자신이 관계를 갖은 남자들을 정복이라도 한 것처럼 말했지만 대개의 남자들은 자신이 너무나 술과 마약에 너무 취한 탓인지 다음날 아침엔 그녀와의 관계 사실 자체를 까맣게 잊곤 했다. 조플린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렇게 투덜댄 적이 있다. "기차에는 165명이 타는데, 나는 65명하고밖에 잠을 못잤어!" 라고 말이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변했다. 그녀는 죽기 전에 세스 모건이란 뉴욕 출신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버클리 대학생과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가정을 갖고자 하는 그녀의 열망은 대단한 것이어서 이제까지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고자 했다. 그녀는 꿈에도 그리던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평온한 가정을 일굴 수 있다는 소망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몸을 혹사하던 블루스록, 사이키델릭 록의 열창일변도에서 벗어나 소울 발라드를 시도하려 했고 그 음반이 현재까지도 불후의 명반으로 기억되고 있는 <진주(Pearl)>이었다.

그녀 자신도 자신의 이런 시도와 음반의 완성도에 대해 흡족해 했다. 그러나 제니스 조플린은 지미 핸드릭스가 세상을 떠난지 며칠 후인 70년 10월 4일 할리우드의 한 호텔에서 사망했다. 급하게 결혼식을 서두르고 있던 중에 생긴 일이었다. 그녀의 사인은 헤로인 과용이었지만 실제 그녀의 죽음은 자살이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제니스 조플린 자신은 행복해지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거나 두려워했는지도 모른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 재학 시절 학생들 사이에서 "캠퍼스의 가장 못생긴 남자"로 뽑혔던 못생긴 백인 계집애. 제니스 조플린! 그녀는 불안하고 즉흥적이며 이기적인 동시에 자기파괴적이었던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제니스 조플린, 그녀가 입을 떼는 순간 이제까지의 노래부르기 역사는 사기였음이 드러났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그녀가 록 음악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크다.

제니스 조플린은 그 음악과 인물이 같은 비중으로 중시되는 몇 안되는 록 스타이자 넘쳐나는 물질적 풍요 속의 빈곤을 보았고, 자유의 여신으로 대변되는 미국 주류사회의 폭력성을 이론이 아닌 감성으로 깨우쳤으며 갖은 반항과 대담한 실험을 통해 개인적인 자유와 문화 혁명을 꿈꾸었다. 그녀는 플라워 무브먼트의 역사와 신화였으며 남성 중심의 사회와 록 음악계 속에서 성 해방까지 포괄하는 여성의 자유를 공개적으로 소통될 수 있도록 했다. 비록 제한된 틀 안에서나마 기성 사회의 성을 맹공한 페미니스트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 제니스 조플린은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냈다. 기존의 남성과는 별도의 여성 록이라는 개념을 처음 만들어냈고 이후 모든 여성 록 가수들은 크든 작든 조플린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제니스 조플린의 디스코그라피

I Got Dem of' Kozmic blues again Mama!era (69.10)
Pearl (71.1)
Janis Joplin in concert  (72.5)
Janis(early recordings from 63-65) (75.5)
Farewell Song(recording from 68-70) (82.2)
Janis Joplin's Greatest Hits (73.7)

 

참고사이트 & 참고 도서

 『록의 시대 - 저항과 실험의 카타르시스』/ 알랭 디스테르 지음/ 성기완 옮김/ 시공 디스커버리 038/1996년
- 서울대 출신 시인이자 음악컬럼니스트, 그 자신이 인디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는 성기완이 프랑스의 록음악 전문 칼럼니스트인 알랭 디스테르의 책을 번역하여 옮긴 것이다. 책의 중간중간에 우리로서는 다소 생소한 프랑스 록음악과 록그룹에 대한 이야기가 사족처럼 끼어든다는 사실을 제외하곤 풍족한 사진 자료와 함께 우리들로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록음악의 역사를 읽어볼 수 있다.

 『은밀한 사전』/ 카탸 두벡 지음/ 남문희 옮김/ 청년사/ 2001년
- 가끔 남의 배꼽 아래의 역사에 대해서 파헤친 르뽀 성격의 글들을 읽을 때, 그 사람이 점잖은 척하는 인물일수록 충격이 클 때가 있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심리치료 카운슬러로 일하고 있는 카타 두벡이 서구 역사상 이름만되면 알법한 인물들의 배꼽 아래 역사를 추적해 사전처럼 엮은 책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의 저자가 자신이 다루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 그다지 애정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케네디의 경우, 여자 꽁무니만 따라다니느라 공무는 언제 보았을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는 항상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말아야한다. 그러지 않고는 흥미위주로 전락하기 쉽다.(어쨌거나 재미는 있다. 가십은 항상 씹을 만하지 않은가? 미장원이든 이발소든 간에 말이다.)

 『록 음악의 아홉가지 갈래들』/ 신현준 지음/ 문학과 지성사/ 1997년
- 록 음악은 그 하위 장르가 많기로 유명한 음악 장르이기도 하다. 앞의『록의 시대 - 저항과 실험의 카타르시스』의 경우가 록음악사에 관한 책이라면 이 책은 록 음악의 장르에 대한 책이다. 블루스로부터 펑크 음악까지 록 음악의 다양한 장르를 두루 섭렵하고 있다.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임진모 지음/ 창공사/ 1994년
- 클래식에 <이 한 장의 명반>이 있다면 팝에는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이 있는 셈이다. 오랫동안 팝컬럼니스트로 활동해 온 임진모 씨가 만든 책답게 내용이 충실하다. 한 가지 단 점이 있다면 시대사나 사회사적인 접근이 부족하여 그 음반이 어째서 시대를 빛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적당한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니스 조플린 공식 사이트 - 링크가 워낙 잘 되어 있는 탓에 그리고 바람구두의 게으름 덕에 요거 하나만 소개할께요.

글 출처: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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