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ymphony No.4 in B flat Op.60
베토벤 교향곡 4번 B flat Op.60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III. Allegro vivace
Berliner Philharmoniker
Herbert von Karajan |
Beethoven Symphony No. 4 B flat Op. 60 Karajan - 3. Allegro vivace
작품개요 및 구성
이 곡은 1806년 그의 나이 36세때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의 일생중 가장 조용한 시기의 작품이다. 베토벤의 교향곡의 작품번호중 홀수를 투쟁적인 작품이라 하고 짝수를 평화로운 작품이라 말하는 이도 있는데 그럴 듯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은 3번과 5번에 비하면 아주 대조적이다. 그러기에 슈만은 말하기를 이것은 북부 유럽의 신화에 나타나는 2인의 거인 사이에 끼인 그리이스의 미녀라고 했다. 이 곡을 작곡할 즈음 베토벤은 슐레지아의 틀로파우 근교 글렌츠의 리히노프스키 후작의 관사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베토벤은 이 곳에 머물면서 기분 좋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 시기에 그는 요제피네 폰 다임 백작 미망인과 사랑에 빠져있었다. 결국 이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이 시기가 베토벤에게 있어서는 가장 평온하고 행복했던 시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토벤은 교향곡 5번의 작곡을 일시 중단하고 4번을 단시일에 작곡하였으며, 곡 자체가 간결하고 명랑하게 된 것이다. 완벽한 고전적 형식미가 넘치는 명작으로, 전편에 흐르는 상쾌한 행복감과 우아한 표정, 평온한 훈기가 아주 매력적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아홉 곡을 살펴보면, 묘하게도 홀수 교향곡은 대체로 장대하고, 격정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말할 수 있고, 짝수 교향곡은 홀수 교향곡에 비해서, 작은 규모이면서 조금은 밝게 작곡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열을 불태우고, 조금 쉬고, 불태우고, 쉬고 하듯이 말입니다. 제4번 교향곡도 제3번 교향곡 <영웅>과, 제5번 교향곡 <운명>, 이 두곡의 장대함과 웅장함에 끼어 있는 교향곡입니다.
슈만이 왜 그리스의 미녀로 표현했는지 이해가 가시죠. 그리스미녀라는 말의 또 다른 의미는, 3번 교향곡을 작곡하고 몇 년이 지난 후에 쓰여진 곡으로 보기에는, 오히려 1,2번 교향곡과 4번 교향곡이 형식상 더 닮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형식미를 그리스 미녀라고 표현 했으리란 상상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곡의 편성은 플룻이 한 대라는 것 이외에는 1번 교향곡과 같습니다. 제4번 교향곡은, 음악적 내용이 우미하고, 풍부한 시상이 즉흥적으로 흘러나와, <낭만적 교향곡>이라 불리기도 하며, 베토벤의 교향곡 중 가장 아름다운 교향곡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교향곡 제3번 "영웅"을 1803∼1804년에 완성한 베토벤은 그 후 한동안 오페라 창작에 모든 관심을 기 울였다. 그 무렵인 1806년에 교향곡 제4번은 아주 짧은 시일 동안에 완성했다. 초연은 1807년 3월 로 프코비츠 공작의 저택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거행되었다. 곡은 오페루스도르흐(Franz von Oppersdorff)백작에게 헌정되었다.
악기 편성은 플루트,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호른 2, 트럼펫 2, 팀파니 그리고 현악 5부 구성이다. 플루트가 1관이고 호른이 2관으로 구성되는 등 악기 편성이 전작인 "영웅"보다 축소되어 이 작품을 고 전적인 구조로의 회기로 볼 수도 있겠지만, 제1악장에 38마디에 걸친 서주부 등을 살펴보면 "영웅"과도 다른 방향으로 새롭게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제1악장에는 나중에 작곡되는 교향곡 제6번 " 전원(Pastorale)"에서 중요한 몫을 하는 음형과 비슷한 소재가 많이 보인다. 특히 제1악장 주부가 시작되는 9번째 마디에는 목관으로 연주하는 하강 음형이 나오는데, 이것은 베토 벤이 뭔가 연주하는 하강 음형이 나오는데, 이것은 베토벤이 뭔가 신성한 기운이 다가옴을 표현하는 경 우에 즐겨 쓰는 방법이며 "전원"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제1악장 아다지오 - 알레그로 비바체, 소나타 형식 Adagio- Allegro Vivace
Beethoven Symphony No. 4 B flat Op. 60 Karajan - 1. Adagio-allegro vivace
약한 Bb음으로 시작하는 서주는 곧 Bb단조를 불러서 깊은 감정을 나타내는 주제를 제시한다. 이에 대 응하는 주제가 속단조로 하행하는 변질음을 따라 침체된 감정으로 계속 진행된다. 그 뒤에 주제가 다시 나타나고 응답 주제는 반음 높인 f단조로 진행된다. 이 부분에서는 교묘한 엔하모니크(이명 동음) 전환 이 있어 베토벤의 화성법과 전 조법의 비약적인 발전을 보인다.
아다지오의 느린 서주를 지나 바이올린이 몇 차례 솟구치려는 시도를 반복하고 드디어 격렬하게 솟구치면 제시부의 제1주제를 바이올린이 활발하게 수놓는다. 긴장감을 지닌 경과부가 있은 후 목관악기들의 제2주제가 경쾌하고 부드럽게 이어진다. 전개(발전)부는 제1주제를 중심으로 처리하고 있으나 새로운 재료도 사용하고 있다. 악기의 용법에는 특히 팀파니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힘을 더해 정점에 도달하는 순간 재현부가 시작된다. 재현부는 제시부의 재료를 재현시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코다가 나오며 악장을 마무리한다.
제2악장 Adagio 아다지오, Eb장조, 3/4박자, 전개부 없는 소나타 형식
Beethoven Symphony No. 4 B flat Op. 60 Karajan - 2. Adagio
음계 진행에 의한 주제의 가능성 추구가 멋진 결론을 끌어낸 좋은 예이다. 주음에서 도중에 하나의 악센트가 되는 장식을 놓고 순차적으로 하강하여 이번에는 단 2도음 아래의 도입음을 보조음적으로 도입하여 상행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비올라의 반행에 대한 멜로디와 첼로의 5도 하강 동기의 배경이다.
클라리넷이 주도하는 제2주제도 음계적 성격이 강하다.
제3악장 Allegro vivace 알레그로 비바체, Bb장조, 3/4박자
이 악장은 빠르기와 곡상에서 볼 때 , 미뉴엣이라기 보다는 확실한 스케르쪼의 성격이 강하다. 트리오 부분은 운포코 메노 알레그로(Un poco meno allegro)로 약간 박자를 늦추고 있다. 트리오 부분 다음에 5마디의 접속구를 두어 주부에서는 다 카포(Da capo) 하지만, 반복 때는 이 접속구를 생략하여 축소된 제3주부를 진행하는 변칙적인 형식을 갖는다.
스케르초풍의 미뉴엣인 3악장은 몸을 가눌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감정이 깃들어 있는데, 그렇지만 클라이버는 견고한 구조감각으로 건강한 흥겨움을 그려가고 있다.
베토벤은 8번 교향곡을 제외한다면, 이후 미뉴에트를 다시 쓰지 않았습니다. 본질적으로 가벼운 미뉴에트를 거부한 첫 작품입니다.
제4악장 Allegro ma non troppo , Bb장조, 2/4박자. 소나타 형식
Beethoven Symphony No. 4 B flat Op. 60 Karajan - 4. Allegro ma non troppo
몸을 비비꼬게 하는 듯한 16분음표 동기가 바이올린으로 제시되는데, 마치 자연적인 연결의 조합을 바꾼 것 같은 기지와 장난끼가 들어있다. 이들이 차례차례 현악부의 움직임을 바꿔 일으키며 흐르다가, 진행 방향을 돌연 바꾸며 나와 약동감을 자아낸다.
매력이 철철 넘치는 악장이다. 들판에 돌아 다니는 모든 정령들을 모두 휩쓸어가는 회오리바람처럼 세차게 휘몰치는 피날레는 너무 색체적이어서 눈이 부실지경이다.
음원출처 : 블로그 산다는 거
Herbert von Karajan(1908-1989)
카라얀.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음악가’로 그를 꼽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끔은 전혀 엉뚱한 곳에 걸려 있는(예를들어 ‘버드와이저’나 ‘코카콜라’의 포스터가 걸릴 자리에) 그의 포스터를 접하고 놀란사람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점이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다. 20세기 클래식의 상업화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로 자기 현시욕과 재물욕이 유난히 강했던 기회주의자가 음악에 집중할 새가 있었겠냐는 것이 그를 부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자기 자신마저도 상품으로 만들어 팔아치운 ‘자본주의 시대의 파우스트’로서의 짙은 의혹인 것이다. 따라서 그가 20세기 후반, 음악의 몰개성화를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라고 몰아붙인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어쨌든 그는 최고의 악단을 30년 이상 이끌어오면서 높은 완성도의 음반들을 양산해 고전음악의 저변이 확대된 결과를 낳았고, 그의 연주중에는 함부로 ‘싸구려’로 치부해 버릴 수만은 없는 명연들이 역시 즐비하다는 의견이 그것이다. 어쨌든 푸르트벵글러-토스카니니의 시대가 막을 내리자 번스타인과 함께 새로운 시대의 카리스마를 이끈 것이 카라얀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전시대의 ‘절대적 카리스마’와는 조금 다른 ‘다재다능의 카리스마’로.
모차르트의 고향인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 4세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 역시 신동으로 각광받은 그는 빈 국립음악원에서 프란츠 샬크에게 지휘법을 배웠다. 1927년, 19세의 나이로 울름 시립오페라극장의 지휘자가 되었으나 5년 만에 밀려나고 만다. 그래서 카라얀은 1933년 나치 입당의 길을 선택했고,34년 아헨 오페라극장의 지휘자, 35년 음악총감독으로 임명되며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1937년과 38년에 빈 국립오페라극장과 베를린 필·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 무대를 차례로 밟으며 전쟁기를 맞이한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그의 행적은 그다지 거론되지 않는다. 별로 유쾌한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 종전과 동시에 그는 위기를 맞이했다. 47년 해금되었지만 어느 무대도 그를 웃는 낯으로 반기지 않았다. 미궁에 갇힌 그의 손에 면죄부를 쥐어준 것이 EMI의 프로듀서 월터 레그였다. 당시 구성된 레코딩 전문악단인 필하모니아를 카라얀에게 맡겼던 것이다. 49년부터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게 된 것도 그가 숨통을 틀 수 있게 한 사건이었다. 이렇게 지휘무대에 복귀한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푸르트벵글러가 죽은 것이다.
여러 가지 상황이 유리하게 전개 되어 1955년 베를린 필에 입성한 그는 이듬해 종신예술감독까지 요구해 성취했다. 그리고 카라얀의 전성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도이치그라모폰 레이블을 통한 레코딩과 연주여행을 통해 세계 곳곳에 ‘카라얀 포스터’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80년대 들어 베를린 필과의 불화가 대두되기도 했지만 ‘음악계의 황제’로서의 그의 권력은 막강해져만 갔다. 음반뿐만이 아니라 영상물을 통한 음악산업을 육성하며 연출에도 직접 나섰다. 자연자작의 음반과 영상은 아직도 레코드가게의 진열장을가득 채우고 있다. 89년, 죽기 3개월 전에야 그는 ‘종신’이라는 타이틀을 반납하고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의 음악은? 후기 낭만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세련된 다듬기’와 ‘지겨운 레가토’로 특징지워진다. 그래서 고전 레퍼토리보다는 낭만 이후의 레퍼토리에서 빛을 발한다. 그의 음반 중에서도 차이코프스키가 가장 큰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마지막 녹음이 된 브루크너 교향곡 7번(DG)도 명연 중에 하나. 그리고 말러 교향곡 9번(DG), 브람스 교향곡 1번(DG)도 대표적 명반이다. 더 이상 그의 명반을 꼽기는 힘들다. 그의 음반 타이틀 (영상물포함)은 모두 1천에 달하고 전세계적으로 약 1억 2천만장이나 팔렸다. 대중음악시장에서는 흔히 ‘많이 팔리면 뜬다’고 한다. 같은 논리라면 카라얀의 음반들 중 상당수가 ‘뜬 명반’인 것이다. 출처 : 월간객석에서 발췌한 글
Herbert von Karajan의 음악
카라얀의 생애를 지나치게 자세히 들여다본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이제는 그의 음악에 대해서 얘기해볼 차례다. 카라얀은 흔히 완벽주의자로 통한다. 또한 그는 상업주의에 젖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카라얀이 인류 최고의 지휘자라고 평가되기도 하지만 혹자는 카라얀을 싫어한다고 서슴없이 밝히면서 그의 음반들을 비하하는 데 열을 올리기도 한다. 과연 어느쪽이 진실일까?
카라얀에 대한 비판은 많은 부분 그가 지나치게 많은 권력과 부를 누렸다던가, 그의 미숙한 인간관계 등에서 기인한다. 이런 선입견에서 나온 비판외에 순수하게 음악적인 면에서 그에 가해지는 비판은 두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한가지는 그의 연주에서 그 '어떤 것'이 부족함으로 인해 곡의 본질을 빗겨나고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카라얀이 곡의 본질을 너무도 정확히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 카라얀도 만능일 수 없었기에 단순히 그의 연주가 신통찮은 경우를 말함이요, 후자의 경우는 직설적이고 적나라한 것을 싫어하는 일부 평론가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오해에서 나온 말이다. 카라얀을 비판하는 말중에 그가 지나치게 대중의 기호에 편승했다는 지적이 있다. 일단 이 말이 맞으려면 지휘자의 기호가 대중의 기호와 흡사하다라고 고쳐져야할 것이며 무엇보다 대중의 기호는 수준 낮은 것이라는 '잘못된 전제'에서 시작하고 있다. 필자 판단에는 카라얀에 어떤 비판이 가능하다면 거꾸로 카라얀이 확실히 대중의 기호에 편승하지 못하고 후기 낭만주의의 구습을 답습했던 그의 실패작들 때문일 것이다.
카라얀의 위대함은 그가 자신있어했던 곡들은 예외없이 곡의 핵심을 짚어주고 있다는 데 있다. 이는 카라얀 스스로가 탁월한 심미안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 '높은 표준'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의 연주를 평가해가며 만족스러울 때까지 계속 다듬어 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만 그는 위대한 '장인'이었을지언정 훌륭한 '혁명가'는 아니었다. 그는 20세기 초중반의 후기 낭만파 스타일의 연주를 20세기 후반까지 그대로 계승했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새로운 해석을 창조해낸 경우는 바그너의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극히 드물다. 모차르트나 그보다 더 이전의 작곡가의 곡들을 정격연주로 재해석해보려는 시도들은 카라얀 스타일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의 해석은 60년대초 이후 죽기전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는데 이 말은 그가 곡의 이상을 세워놓고 줄곳 오케스트라와 가수들을 더욱 갈고 다듬는데 노력했다는 뜻이다. 그가 죽고 없는 현재의 음악계를 돌아보면 여기저기에서 '혁명가'는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작품의 이상을 향해 매진해가는 카라얀과 같은 높은 식견을 가진 '장인'이 부족하기에 그의 부재가 더욱 커보인다.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그의 연주들을 살펴보도록하자. 카라얀은 근본적으로 교향곡과 오페라 지휘자였다. 그가 협주곡 녹음에 인색했던 것은 협주곡의 성격상 독주자가 지휘자보다 더 부각되는 경우가 많은 데 이를 카라얀은 용납치 않았다. 협주곡 음반이 적고 있다하더라도 그의 입김이 적극적으로 개입되어 왜곡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중 실내악이나 협주곡을 즐겨 들으시는 분들껜 카랴얀은 누군가의 우스개 소리처럼 "헤어스타일만 완벽한" 지휘자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는 또한 모차르트 이전의 바로크 음악에도 소홀했다. 이는 단순히 그가 후기 낭만주의 전통에 바로크 음악에 대한 것을 물려받은 것이 많지 않기 때문으로 전통에 충실했던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먼저 교향곡 지휘자로서 카라얀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보자. 그의 연주중 후대 지휘자들이 넘보기 힘든 높은 경지를 보여준 곡들은 브람스의 교향곡 1번, 베토벤의 홀수번호 교향곡들, 브루크너의 후기 교향곡들, 시벨리우스의 교향곡들 정도다. 또한 카라얀 스스로 차이콥스키 교향곡에 대한 열정이 높았기에 그의 입장에서 필자는 6번 교향곡을 베스트중에 포함시켰다. 위에서 열거한 곡들은 교향곡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곡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치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곡들이며 오케스트라의 명인예와 지휘자의 카리스마적인 통솔력이 없이는 높은 완성도를 보이기가 힘든 곡들이다. 이에 비록 카라얀의 모차르트가 혹은 그의 하이든이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처럼 들릴 지라도 그를 최고의 지휘자로 높이 사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카라얀은 또한 교향곡외의 관현악곡에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그가 지휘하는 춤곡, 오페라 서곡과 간주곡들은 비교대상을 찾기 어려울만치 세련되고 잘 다듬어진 것이라 후배 지휘자들이 음반을 내놓기가 버거울 정도다. 이러한 곡들에선 카라얀이 곡의 재미를 완벽하게 청자에게 전달해주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음을 뚜렷히 확인해볼 수 있다.
그러나 카라얀 스스로는 오페라 지휘자로 추앙받기를 더 원할 것이다. 그것도 가수들의 역할이 지휘자 못지 않게 중요한 이탈리아 오페라들 보다 - 물론 카라얀이 지휘한 훌륭한 이탈리아 오페라는 매우 많다 - 바그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의 독일 오페라 지휘자로 기억되길 원할 것이다. 이는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잘츠부르크 부활절 페스티발의 목표가 바로 바그너의 오페라들을 상연하는 것이었다는 점만 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카라얀의 바그너 오페라를 강한 개성 때문에 싫어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분명 그가 지휘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라인의 황금", "발퀴레", "로엔그린", 그리고 "파르지팔"에는 카라얀의 연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정갈함, 아름다움, 그리고 열정이 있다. 그의 바그너는 푸르트벵글러나 크나퍼츠부쉬등 선배 지휘자들의 해석에서 완벽히 벗어나있어서 교향곡이나 이탈리아 오페라 작품들의 해석이 토스카니니등의 스타일을 일부 계승하고 있다는 것과는 구별되는 업적으로 그의 바그너 오페라 작품들만으로도 카라얀은 능히 그의 이름을 불멸로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글: 김태형
아름다운 이웃은 참마음 참이웃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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