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노동 생각하면 노예 떠올라…내 꿈은 노동자가 아니에요” [노동이 부끄러워요?]

리차드 강 2016. 5. 16. 17:05

노동이 부끄러워요?

     

“노동 생각하면 노예 떠올라…내 꿈은 노동자가 아니에요”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2016.04.28)

 

아이들이 그린 ‘노동자 부모의 손’ 지난 25일 서울 강북구 삼양초등학교 6학년5반 학생들이 주말 자율 과제였던 ‘직접 그린 부모님 손 그림’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부모님은 노동자일까, 아닐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서울 삼양초 6학년5반의 ‘노동인권 수업’은 “노동은 어떤 것일까”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옮겨갔다. 배성호 담임교사는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육체노동’을 생각한다”며 질문을 던졌다. “교사는 노동자일까요”라는 물음에 강우진군(12)은 “노동자가 아닌 사람은 자유가 있는데 선생님은 교육부가 내린 지시사항을 따라야 하니 노동자예요”라고 답했다.

 

■ 최저임금? “처음 들어봤어요” “교과서에 없어요”

수업은 노동의 좀 더 세밀한 영역까지 밀고 들어갔다. 배 교사는 “미국에서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파업하는 배우들을 응원한다는 말을 공개 석상에서 하기도 합니다. 메이저리그에는 노동조합도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최저임금은 들어봤나요”라고 묻자 한 학생이 대답했다. “처음 들어봤어요. 교과서에도 없잖아요.” 들어봤다는 한 학생은 “TV 광고에서 봤어요. 6050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1만원은 받아야죠. 너무 적어요”라고 했다. 본인의 장래희망이 노동자인 것 같으냐고 묻자 학생 절반 이상은 “아닌 것 같다”는 답변에 손을 들었다. 이도현군(12)은 “게임하고 돈 버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잖아요”라고 말했다.

배 교사는 “유럽에서는 의사와 청소부의 임금 차이가 크지 않아요. 사회마다 일하는 가치에 대해 다르게 생각합니다. 2학기에는 더 넓은 세상, 다른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독일, 프랑스 같은 다른 나라 친구들이 어떻게 노동에 대해 배우는지 이야기해줄게요”라며 수업을 마쳤다.

 

 

■ 노동은 강제, 괴롭고 싫은 것…63%가 부정적 인식

경향신문이 서울 성북·강북·송파 지역 3개 학교 5개 학급 110명의 초등학생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노동’이라는 말을 듣고 긍정적인 단어를 떠올린 학생은 12명(10.9%)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부정적인 단어를 떠올린 학생은 69명(62.7%)에 달했다. ‘노동’이라는 말을 듣고 떠오른 단어 1위는 ‘힘듦·힘든 일’(53명, 48.1%)이었다. ‘노예/천민’을 떠올린 학생도 7명(6.3%)이나 됐다. 그 밖에 ‘돈·월급’(11명), ‘공사장’(3명), ‘공장’(2명), ‘하기 싫다’(2명), ‘아프리카’(2명) 등의 답변이 나왔다. 비정규직에 대해 안다고 답변한 학생은 56명(50.9%), 최저임금에 대해 아는 학생은 51명(46.3%)으로 집계됐다. 노동조합에 대해 모르는 학생은 56명으로, 안다고 답한 학생(28명)의 2배(무응답 26명)로 나타났다.

학생들의 주관식 답변은 우리 사회의 노동에 대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학생들은 “일은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 노동은 강제로 하는 것” “자신의 직업을 즐겁게 하면 노동이 아닌 보람이고 자신의 직업을 괴롭고 싫다 생각하면 노동”이라고 적었다.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언제 퇴직할지 모르는 사람’ ‘회사 면접에서 합격한 것이 아니고 몇 개월 정도 일하고 나가는 사람’,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노동을 하고 받는 돈의 액수 중 가장 적게 줄 수 있는 것’ ‘알바를 할 때 돈을 조금 주고 일을 시키는 것’과 같은 답변이 나왔다.

배 교사는 “어린 학생들도 실제 삶과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현실을 접하며 우리 사회에서 노동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노동자’ 하면 떠오르는 직업 1순위 ‘아파트 경비원’

초등학생들은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직업 1위로 아파트 경비원(81명), 2위로 마트 계산원(74명), 3위로 은행 직원(37명)을 골랐다. 이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가 중·고등학생 181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27일 발표한 ‘서울대교구 주일학교 청소년들의 노동인식 및 아르바이트 실태조사 결과’와도 비슷하다. 중·고교생들도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직업으로 아파트 경비원(1279명), 농부(1251명), 마트 계산원(1248명) 순으로 답했다. 중·고교생들이 희망하는 직업 1위는 교사였고 의사, 과학자 순이었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희망 직종이 대체로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응답했다.

이수정 노무사는 “‘청소년은 노동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고 그칠 일이 아니다”라며 “청소년 알바, 비정규직 등 현재의 노동 현실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관심을 기울이는 게 먼저이고 변화에 대한 관심은 노동인권 감수성을 키우는 교육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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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일하는 것 어떤가요?… “건방져 보인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2016.04.29)

 

ㆍ청소년들의 몰이해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이 배우는 초등 6-2 사회교과서 54쪽에는 마트에서 계산을 하고 있는 계산원에 관한 두 가지의 그림(사진)이 실려 있다. 하나는 마트 계산원이 의자에 앉아서, 또 하나는 서서 계산을 하는 그림이다. 서 있는 마트 계산원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렇다면 앉아서 일하는 마트 계산원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은 어떨까? 한 교사가 아이들의 생각을 물었다. 학생들 상당수가 “건방져 보인다” “예의 없어 보인다”고 답했다. ‘힘들게 일하는 계산원들을 위한 당연한 배려’와 같은 답을 예상했던 교사는 무척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노동인권을 생각해보라는 취지로 삽입된 내용이지만, 상당수 학생들이 ‘노동자가 아닌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 것이다. 해당 교사는 “‘건방져 보인다’는 답을 한 학생들 대부분이 지극히 모범적인 학생이어서 더 의외였다”며 “손님은 왕이라는 생각이 학생들에게 체화된 것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노동자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 사회 전반의 문제 등이 결합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했다.

또 다른 고교 사회교사도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해당 교사는 2년 전 학생들에게 조를 짜 기업체를 운영해보게 하는 수행평가를 실시했다. 5개 학급에서 6명씩 30개조가 이 수업에 참여했다. 그런데 30개조 가운데 단 한 개조를 빼놓고는 모두 직원들의 임금을 최저임금으로 설정했다.

이 교사는 “수익이나 최대 이윤만 염두에 둘 뿐 그 최저임금으로 노동자가 어떻게 생활을 꾸릴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셈”이라며 씁쓸해했다. 학생들은 노동문제를 노동자의 입장이 아닌 소비자나 경영자의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있었다.

 

■ 학생 대부분 노동자가 되지만…

학생들은 본인들이 노동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지만, 실상 대다수는 사용자가 아닌 노동자로 살아가게 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2015 학교진로교육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학생들 70%가량이 관리직이나 전문직 등을 희망하며 평범한 노동자로서의 미래는 생각조차 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20% 정도만 그 같은 직업을 갖는 것이 현실이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의 실제 취업자 비율을 살펴보면 관리직은 1.5%에 불과했고, 전문직은 19.8%에 그쳤다. 대신, 마트 계산원 등 판매직이 10.7%, 장치·기계조작직 11.9%, 서비스직 10.3% 등 학생들의 희망 직종과는 거리가 먼 직종이 실제 취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의자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계산원들이 바쁘게 일하고 있다. 학생들 대다수가 노동자가 되는 현실에서 학생들은 노동의 가치나 권리는 배우지 못한 채, 노동자보다는 사용자나 소비자의 입장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노동에 관한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노동자로 살아가야 할 학생들이 노동의 소중함이나 가치, 또 노동자로서의 권리 등을 제대로 알아야 성인이 된 뒤 자신의 직업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고, 노동자로서의 행복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노동의 가치·권리 배운 적 없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진로진학 상담교사는 대부분의 중·고등학교에 배치되어 있고(95.3%, 5298개교), 진로와 직업 교과 채택률도 95%가량에 이른다. 이미 진로교육은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은 실제 상황에서 절실한 노동의 가치나 노동자의 권리는 배우지 못하고 있다.

송태수 고용노동연수원 교수가 2013년 전국의 중학생 및 고등학생 5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 노동의식 및 노동교육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동의 가치,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교육이 충분히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동의’하거나 ‘매우 동의’한다고 응답한 학생은 5.5%에 불과했다. 반면 부족하다고 응답한 학생은 61.1%에 달했다. 임금체불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충분히 배우고 있다는 응답은 15.1%, 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의 의미, 사회적 연대 등의 가치에 대해 충분히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응답은 19.2%에 불과했다.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노동시장이나 노사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8.5%에 불과했다.

영국의 교육·고용부 장관실 향상교육진흥위원회의 자문그룹 보고서에는 영국의 필수과목인 ‘시민교육’의 모토가 잘 나타나 있다. 보고서는 시민을 “공동체 구성원이고 소비자이며 가족 구성원이고 평생학습자이면서 납세자이고 유권자이고 노동자”라고 규정하며, 이 중 어떤 한 역할도 빠져선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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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노동'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2016.04.29)

 

“우리 부모님은 노동자일까요, 아닐까요?”

지난 25일 오전 10시 서울 강북구 삼양초등학교 6학년 5반 교실. 배성호 담임교사가 반 아이들에게 물었다. “노동자가 아닌 것 같다”에 2명이 번쩍 손을 들었다. 임아영양(12)은 “굳이 부정적인 표현을 쓸 필요가 없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지난 주말 숙제는 ‘부모님 손 그리기’(사진). 이도현군(12)은 엄마 손을 그린 뒤 이렇게 적었다. “손을 보면서 엄마가 살아온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집안일과 직장일 때문에 힘들었구나’를 알 수 있었다. 정말 고마워요.”

‘부모님 손’을 그려온 학생들은 한결같이 부모의 일(노동)에 대해서는 고마움을 표시했지만 ‘노동’ ‘노동자’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뜻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22명의 반 학생 중 노동이 긍정적인 뜻이라고 답한 학생은 3명뿐이었다. 경향신문이 서울의 초등학생 11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노동’이라는 말을 듣고 ‘힘듦’을 떠올린 학생이 53명(48.1%)에 달했다. ‘노예/천민’을 떠올린 학생도 7명(6.3%)이나 됐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가 중·고등학생 181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27일 발표한 ‘서울대교구 주일학교 청소년들의 노동인식 및 아르바이트 실태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1886년 5월1일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에 시달리던 미국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만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며 파업에 나선 지 130년. 1890년부터 노동절은 세계적인 기념일이 됐지만, 아이들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의 ‘노동’은 이렇듯 뒤틀려 있다. 이수정 노무사(청소년 노동인권네트워크)는 “노동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는 상태에서 보고 느낀 대로 생각하게 된다. 알바 체험을 하며, 비정규직 차별과 부모님의 긴 노동시간을 보며 ‘노동은 힘든 것’이라는 생각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자신의 노동을 긍정할 수 있을까. 배 교사는 “노동을 입에 담는 것이 금기인 사회에서 어릴 때부터 일하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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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아이도 노동자다

송현숙 정책사회부장 (2016.05.01)

 

최근 경향신문 ‘노동이 부끄러워요?’ 기획기사 중 서울 지역 초등학교 6학년 11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경향신문 4월29일 1·2·3면 보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이들은 대부분 ‘노동’과 ‘노동자’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자신들이 희망하는 직업들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2015 학교진로교육 실태조사를 보면 학생들이 장래 갖고 싶은 직업은 전문직(55.7%), 관리직 (10.1%) 등이었지만, 2012~2014년 실제 취업자 비율은 관리직 1.5%, 전문직 19.8%에 그쳤다. 희망과 현실의 괴리가 컸다.

아이들의 생각은 학교에서 더욱 단단하게 굳어지는 듯했다. 현행 교육과정에선 1만 시간이 넘는 초·중·고교 총 교육시간 중 노동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은 고교 선택과목을 모두 택해도 최대 5시간에 불과하다. 턱없이 부족한 분량마저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실업대책은 기업을 운영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는 식의 사용자 편향적 서술이 상당 부분이라고 한다.

더욱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교과서 속에서, 일상생활 속에서 ‘노동’ ‘노동자’라는 단어는 서서히 지워져 가고 있다. ‘노동’에는 불온하다는 색깔까지 덧씌워져, 특별하고 예외적인 경우에 쓰이는 말이 되어 가고 있다. 노동에는 불법, 폭력, 투쟁의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실제로 몇 년 전 경찰은 강력범죄 용의자의 수배전단지에 ‘노동자풍’이라는 단어를 썼다가 노동계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개인적으론 최근 아이의 교과서에서 필자가 ‘노동 3권’으로 배웠던 부분이 ‘근로 3권’으로 바뀐 것이 놀라웠다.

우리 사회는 어떻게 교사들이 노동자일 수 있느냐고 아직도 교사들의 노동조합을 불편하게 바라보고, 사무직·관리직들이 나는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회다. 노동의 가치와 권리에 대해선 체계적인 교육 없이 편향된 교육을 받으며, 노동을 불온시하는 사회 분위기까지 가세하며 아이들은 점점 협소하고 왜곡된 노동 이미지를 내면화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니 대부분이 노동자이면서도 자기가 노동자라는 것을 부인하고, 소비자·사용자 입장에서 노동문제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연대해 자기 몫을 제대로 찾으려 하기보다, 가히 ‘신카스트’로 불릴 만한 물신주의 계급 사회를 저항 없이 받아들이며, 기업이 성공해 많은 몫을 분배해 주기만을 바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계급 배반투표가 이뤄지는 상황과 비슷한 맥락이다. 한국의 노조조직률은 10% 남짓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3%)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최하위권이다.

행복한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의 힘, 자아존중감이 높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임을 부인하며 자기의 본모습을 긍정하지 못하는 개인들이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이유다.

행복에 관한 한 세계에서 주목받는 나라는 단연 덴마크다. 최근 ‘세계행복보고서 2016’에서도 덴마크는 157개국 중 행복지수 1위를 차지했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가 덴마크인들을 심층 취재해 쓴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다시 펼쳐 봤다. 책은 56살 웨이터 페테르센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좋아서 선택한 일을 하고 있고, 40년간 함께한 든든한 노조가 있고, 특별한 걱정 없이 오늘에 만족하고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22살 열쇠수리공 아들 자랑을 꺼내놓으면서는 “얼마나 사회적으로 필요하고 의미 있는 직업이냐”고 말한다. 참으로 부럽다.

지난 1일은 노동절, 사흘 후면 어린이날이다. 부모들은 세계 최장 수준의 노동시간에 시달리면서도, 불안한 미래와 구조조정의 칼날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으면서도, 이날 하루만은 놀이공원도 가고 외식도 하고 선물도 안기면서 아이들에게 행복을 포장해 줄 것이다.

그러나 포장된 행복보다, 무슨 일을 하든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남겨주는 것이 어른들이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 아닐까. 그 첫걸음은 학교와 가정에서 아이들이 노동에 대한 건강한 상을 갖도록 노동교육을 재구성하는 일이다.

블루칼라든 화이트칼라든, 교수든 공무원이든 농부든, 관리직이든 사무직이든, 우리 모두는 노동자라 가르치고, 사회 구성원 대다수인 노동자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도록 노력하자고 가르치는 일이다.

1923년 제1회 어린이날이 5월1일 노동절이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들이 일하는 사람 못지않게 제대로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알리려 노동절을 어린이날로 택했다고 한다.

     
     
     

노조 자료로 학교서 ‘노동권’ 수업…영국 “시민권 발전 위해 필요”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ㆍ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 해외 사례

 

독일노총(DGB)이 지난해 3월 하노버 인근에 위치한 소도시 파이네에 있는 직업학교를 방문해 ‘민주주의와 공동결정’을 주제로 특강을 열고 있다. 파이네 알게마이너 차이퉁 제공

 

“보통 30분이면 가능한 출근 시간이 두세 시간씩 걸리면 시간 허비와 불편으로 당연히 불만의 소리가 나오게 된다. 그런데 이 불평 사이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꼭 있다. ‘우리 이용자가 불편을 겪는다고 지하철 노동자의 파업권을 제한하는 데 동의하면 언젠가 그 제한의 목소리가 바로 우리에게도 닥칠 것이다.’”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이 1995년에 발간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자>에서 지하철 파업에 대한 파리 시민들의 태도를 전하고 있는 대목이다. 프랑스·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한국 사회와 달리 ‘관대’하다. 노동권이 시민권의 핵심적 내용으로 꼽히면서 공교육 차원에서 노동인권교육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한국 사회에 비해 강한 사회적 발언권을 갖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

 

■ 영국, “노동은 시민의 존재 방식이자 지위”

영국의 여러 노동조합이 공동으로 구축해 운영하는 사이트
인 ‘노동조합이 학교 안으로(unions into schools)’.

경기도교육연구원이 지난해 9월 펴낸 ‘노동인권교육 현황 및 발전 방안’ 보고서를 보면, 영국의 경우 교육 및 훈련기관뿐 아니라 노조를 포함한 다양한 시민사회단체가 노동인권교육에 개입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전제돼 있다. 영국 교육·고용부장관실 향상교육진흥위원회가 2000년 내놓은 시민교육 보고서는 직장에서 실습을 하는 학생들을 위해 “고용주들이 시민성의 발전을 위한 교육과정에 노조를 참여”시켜야 한다고 적고 있다.

실습생뿐 아니라 전체 학생에게 시민교육 자료를 제공하는 시민교육협회(ACT)는 교사에게 제공하는 자료 중 노조에 의한 교육을 소개하는 내용도 포함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노동조합이 학교 안으로(unions into schools)’라는 사이트인데 영국 노동조합총연맹(TUC)뿐 아니라 교원노동조합, 공공연맹 등 다수 산별노조도 참여해 만들어졌다.

노동인권교육은 경제교육 과목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영국 비즈니스·혁신·기능부가 2010년 발간한 <출발: 일할 권리와 책임>이라는 책자는 일자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 20가지에 대한 시나리오를 제시하면서 노동자의 권리, 차별 관련 이슈, 건강과 안전, 직장에서의 따돌림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보고서는 “노동을 경제의 하위요소로서가 아니라, 시민의 다양한 존재 방식 내지 지위의 하나로서 다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 독일 ‘모의 노사관계’ 교육

‘노동학’이라는 분과학문이 체계화돼 있을 정도로 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은 독일은 실업, 노동3권 등을 다루면서 교육 방법론으로 모의 노사관계를 결합시키고 있다.

향후 노동시장에 진출할 학생들이 직면할 문제를 피부로 느끼도록 해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중등2과정(실업계) 사회과 교과서인 ‘함께 행동’은 총 340쪽 분량인데 이 중 93쪽(27.4%)을 노동교육에 할애하고 있다. 김나지움(인문계)에서 사용하는 교과서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한 비중인 셈이다.

모든 교과서들의 공통점은 노사관계를 ‘민주주의와 노사 공동결정’이라는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는 (정치영역뿐 아니라) 다른 생활영역에서도 당사자들의 참여가 가능하도록 보장하고 있다. 학급에서는 반장을 선거로 정한다. 기업에서도 선거를 통해 직원평의회(독일의 노사 공동결정 제도에 따른 노동자 대의기구)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 프랑스, 고교 3년간 교과 통해 가르쳐

프랑스의 경우는 일반계와 실업계 고교에서 공통으로 ‘시민-법률-사회교육’이라는 교과를 통해 3년간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노동인권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빈곤과 시민권, 파업의 정치·사회적 역할, 노조와 사회운동, 근로계약서, 임금, 노조 가입 노동자와 미가입 노동자 간 평등 등 폭넓은 주제를 다룬다.

 

■ 미국, 중학교 ‘시민론’ 교과서에 노사관계 포함

미국의 중학교용 ‘시민론’ 교과서에는 정부와 노동이라는 주제 아래 노조의 형성, 노사관계, 노조의 현주소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다만 유럽에 비해 강력한 노동운동이 없었던 만큼 미래의 노동자인 학생들이 구체적으로 노동3권을 인식하는 교육이 이뤄지진 않고 있다. 미국 보스턴에서 초·중·고교를 다닌 임월산 공공운수노조 국제국장은 “간략하게 배우긴 했는데 노동자가 향후 노동시장에서 겪게 될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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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누나 ‘알바’해도 가족 수입 월 300만원…결국 “결혼·저축 포기”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2016.05.01)

 

ㆍ최저임금으로 생활비 짜보니

지난달 28일 전남공업고등학교 임동헌 교사가 노동인권 체험 시간에 ‘최저임금 밥상차리기’를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이 그린 ‘생활비 밥상’을 살펴보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자, 5명씩 조를 짜 한 식구가 되는 거야. 식구끼리 모여 각자 역할을 정하고 한 달을 살아갈 생활비를 한번 짜보자.” 지난달 28일 광주 신창동 전남공업고등학교 1학년 1반 교실에선 왁자지껄 웃음이 쏟아졌다. 이 학교 임동헌 학생부장(42)이 ‘공업 일반’ 시간을 매주 2시간씩 할애해 진행하고 있는 ‘노동인권’ 수업 시간이다. 이날 주제는 ‘최저임금 밥상 차리기’.

임 교사의 말이 떨어지자 아이들은 신나게 웃고 떠들며 사고 싶은 옷과 먹고 싶은 것들부터 손에 꼽기 시작했다. 일단 세금과 집세는 들어갈 것 같고, 인터넷과 게임을 하려면 통신비도 들어가야 할 테고…. 식비와 의류비는 넉넉하게 잡으면서도 공과금은 일주일 난방비도 안 나올 돈을 책정하기도 했다. 자기계발비가 너무 적어 가족당 외출을 한 달에 1~2번밖에 못할 명세서도 등장했다. 그래도 생활비는 꽤 나왔다. 634만원 정도는 준수한 편이었으며 1210만원이 나온 조도 있었다.

 

■ 노동자에게 처우란?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이내 잦아들었다. 두 번째 과제 때문에 골치가 아파진 것이다. 짜인 생활비 예산을 이번에는 정해진 수입에 맞춰 조정해야 했다. 문제는 수입이 최저임금이라는 것. 현재 최저임금은 시간당 6030원, 하루 8시간 노동에 주 5일 근무로 가정하고 주휴수당까지 포함하면 한 달 임금은 124만8210원이다. 아이들은 일단 일하는 사람을 늘려 나갔다. 아빠는 물론 엄마도 일을 나가고, 그래도 감당이 안되자 대학생 아들이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고, 고등학생 딸도 패스트푸드점에 나간다. 하지만 부모님 맞벌이로는 250여만원,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로는 60여만원, 아직 생활비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자 지출을 줄이기 시작했다. 멋진 옷과 군것질을 포기하고, 저축을 그만두고 보험을 해약하고, 차를 팔고 집세가 싼 곳으로 이사를 갔다. 그래도 금액이 안 맞춰지자 애완동물을 팔고, 자녀까지 입양보내는 조도 나왔다.

곧이어 내려진 선생님의 냉정한 평가. “저축을 줄이면 미래에 대비할 수 없고, 늙어서도 일을 해야 한다” “결혼을 포기해야 하고 아이도 못 갖는다” “의료비를 줄이면 수명이 줄어들고 교육비를 줄이면 가난이 대물림된다”는 설명에 시끌벅적하던 교실이 조용해졌다. 선생님은 “노동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처우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단지 기업과 노동자의 관계만이 아닌 사회의 다양한 문제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라며 수업을 마쳤다.

박상영군(17)은 “커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잘 키우고 싶고 저축도 하고 싶은데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며 두렵다고 했다. 정민서군(17) 역시 수업이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TV에서 몇몇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그들에게 고용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일하는 사람에 대한 처우가 왜 중요한지 되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 ‘권리찾기’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이 수업은 학생들에게 노동자의 권리가 왜 중요한지를 쉽게 일깨우기 위해 만들어진 체험학습이다. 수업을 진행한 임 교사는 ‘최저임금 밥상 차리기’를 포함해 ‘모의 단체교섭’이나 ‘노동법 연극’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인권 수업을 매주 1~2차례 정기적으로 진행해왔다. 2003년부터 시작해 벌써 14년째다.

취업 담당 교사였던 2002년, 플라즈마 용접장에 현장실습을 나간 제자가 제대로 된 방진마스크도 없이 일을 하던 모습에 충격을 받아 노동인권 교육을 시작하게 됐다. 임 교사는 “취업 담당 교사인데도 근로기준법을 몰라 업체 사장에게 항의조차 제대로 못했던 자신이 한심해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이후 노동 관계법 등을 공부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지루한 법 교육에 아이들이 흥미를 보이지 않자 아이들과 직접 상황극 동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는 “노동이 왜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지, 노동자의 권리가 왜 중요한지를 아이들에게 제대로 납득시키기는 생각보다 어렵다”며 “어려서부터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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