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stakovich: The Jazz Album | |
쇼스타코비치 재즈모음집 Dmitrii Shostakovich (1906∼1975)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dir. Riccardo Chail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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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Title: Shostakovich: The Jazz Album Composer: Dmitri Shostakovich (1906 - 1975) Conductor: Riccardo Chailly Performer: Ronald Brautigam (Piano) Peter Masseurs (Trumpet) Orchestra: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Audio CD (February 16, 1993) Number of Discs: 1 Format: Audio CD, Album, Repress SPARS Code: DDD Recorded in: Stereo Country: Europe Label: London / Decca Copyright: ℗© 1992 Decca Music Group Limited Total Length: 58:27 Genres: Classical Styles: Orchestral, Concerto, Modern, Neo-Classic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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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Suite for Jazz Orchestra No. 1, Op. 38b (08:12) Composer Dmitri Shostakovich Conductor Riccardo Chailly Orchestra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Period 20th Century Date Written 1934; USSR Format DDD Stereo Live / Studio Studio Date of Recording February/1990 Venue Concertgebouw, Grote Zaal, Amsterdam, Netherlands
01. I. Waltz 02. II. Polka 03. III. Foxtrot |
2:38 1:45 3:48 |
4-7. Piano Concerto No. 1, for piano, trumpet & strings, in C minor, Op. 35 (22:04) Composer Dmitri Shostakovich Conductor Riccardo Chailly Performer Peter Masseurs (Trumpet) Ronald Brautigam (Piano) Orchestra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Period 20th Century Date Written 1933; USSR Format DDD Stereo Live / Studio Studio Date of Recording March/1988 Venue Concertgebouw, Grote Zaal, Amsterdam, Netherlands
04. I. Allegretto 05. II. Lento 06. III. Moderato 07. IV. Allegro con brio |
5:37 8:03 1:43 6:39 |
8-15. Suite for Jazz Orchestra No. 2, Op. 50b (Suite for Promenade Orchestra) (24:44) Composer Dmitri Shostakovich Conductor Riccardo Chailly Orchestra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Period 20th Century Date Written 1938; USSR Format DDD Stereo Live / Studio Studio Date of Recording April/1991 Venue Concertgebouw, Grote Zaal, Amsterdam, Netherlands
08. I. March 09. II. Lyric Waltz 10. III. Dance I 11. IV. Waltz I 12. V. Little Polka 13. VI. Waltz II 14. VII. Dance II 15. VIII. Finale |
3:07 2:38 3:03 3:24 2:36 3:44 3:38 2:29 |
16. Tahiti Trot, for orchestra, Op. 16 "Tea for Two" (3:32) Composer Vincent Youmans (1898-1946)/Autho Conductor Riccardo Chailly Orchestra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Period 20th Century Date Written 1928; USSR Format DDD Stereo Live / Studio Studio Date of Recording April/1991 Venue Concertgebouw, Grote Zaal, Amsterdam, Netherlands Note Work Arranged of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Tea for Two"
Album Reviews Shostakovich jazz music? Taken at face value, this CD is nothing of the sort. Shostakovich's lively and endearing forays into the popular music of his time were just that, and light years away from the work of real jazz masters such as, say Jelly Roll Morton or Duke Ellington And yet they do say something significant about Shostakovich's experience of jazz, as a comparison of these colourful, Chaplinesque Jazz Suite Suites with roughly contemporaneous music by Gershwin Milhaud, Martinu MartinJ, Roussel and others will prove. Shostakovich engaged in a particularly brittle almost Mahlerian form of parody—his concert works are full of it—and that is what comes across most powerfully here. Besides, and as annotator Elizabeth Wilson rightly observes, 'real' jazz was treated with suspicion in Soviet Russia and Shostakovich's exposure to it was therefore limited. The two Jazz Suites were composed in the 1930s, the First in response to a competition to "raise the level of Soviet jazz from popular cafe café music to music with a professional status", the Second at the request of the then-newly formed State Orchestra for Jazz (!). The First will make you chuckle, but it is the Second (subtitled "Suite for Promenade Orchestra") that contains the best music, especially its achingly nostalgic Second Waltz. The instrumentation is light (saxophone and accordion add a touch of spice to a generally bland recipe), while the playing here is quite superb. In fact, there's little to be said about Chailly's direction other than it is good-humoured, affectionate and utterly professional, his Royal Concertgebouw players sound at home in every bar and the recording (Grotezaal, Concertgebouw) is both clean and ambient. Taiti trot came to life when Nikolai Malko challenged Shostakovich to score Vincent Youmans's Tea for Two in an hour, or less—which he did, as a sort of mini-concerto for orchestra, each refrain being dealt to different instrumental forces. Fun that it is, its charm is terminal. Which leaves the Piano Concerto, music that for sophistication and inventive ingenuity is actually closer to what we now think of as jazz than the Jazz Suites (sample the free-wheeling, improvisatory opening to the last movement, on track 7). Ronald Brautigam's instrument is twangy at the bass end, which mightn't seem too inappropriate, but as it was recorded two years before the other items on the disc (1988), I doubt that that was the intention. Still, it's a lively, fairly intense reading, neatly supported by Chailly and trumpeter Peter Masseurs, but ultimately less memorable than Alexeev (CfP) or Jablonski (Decca), not to mention the less refined but notably characterful composer himself (EM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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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의 재즈/댄스/필름 앨범
쇼스타코비치는 고뇌에 찬 표정으로 줄담배를 연달아 피워대는 탄압받는 지식인의 모습으로 우리 뇌리에 박혀 있기 십상입니다. 이러한 인상은 여러 일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소비에트 체제 하에서의 고단했던 그의 삶의 여정 때문이기도 하고, 또 거대하고 격렬하면서도 어딘지 억눌린 듯 비틀린 유머로 가득한 그의 교향곡들이 주는 느낌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쇼스타코비치는 엄청난 양의 소위 ''가벼운'' 음악의 작곡자이기도 합니다. 오페레타나 발레, 영화음악 등의 전반적으로 유쾌하고 덜 진지한 음악을 일컫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진지함과 희유성이라는 두 가지 면모의 쇼스타코비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 장의 음반은 瀏?歐?후자의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증거입니다. 감미롭고 사랑스러운 순간들이 있는가 하면 익살스럽고 위트에 찬 패러디가 있고, 때로는 씩씩한 리듬에 호쾌한 행진곡이 울려 퍼집니다. 눈부신 관현악의 향연에 빠져 들다 보면, 세 장의 음반이 끝날 무렵에는 그동안 지니고 있었을지도 모를 이 천재 작곡가에 대한 왜곡된 일면적인 인상이 상당히 해소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리카르도 샤이가 90년대에 데카 레이블로 차례로 내어 놓은 이 세 장의 음반에는, 각각 Jazz Album, Dance Album, Film Album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습니다. 정통 레퍼토리 뿐만 아니라 현대음악에 있어서 특히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이 유능한 지휘자에 대해 여기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샤이의 음반들은 대부분 곡의 핵심을 꿰뚫은 명연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 역동적이고 눈부신 연주만으로도 하나의 모범이 되는 음반들이 아닌가 합니다. 이 세 장의 쇼스타코비치 음반에서도 각각 콘서트헤보우, 필라델피아, 다시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를 기용하여 빼어난 연주를 들려 주고 있습니다. '가벼운' 장르의 음악이라 하여도 결코 그저그런 이류 음악이 아님은 일단 들어보면 누구라도 공감하지 싶습니다. 데카의 선명한 녹음이 대편성 관현악 감상의 쾌감을 더합니다.
The Jazz Album Dmitri Shostakovich, Jazz Suite #1, Piano concerto #1, Jazz Suite #2, Tahiti Trot. Riccardo Chailly/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1988-91년 녹음, Decca.
'재즈'라고는 하여도 이 음반에 실린 음악들은 사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재즈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재즈 모음곡'이라고 이름 붙은 곡들에서조차도 그러합니다. 그저 가벼운 대중적인 음악 장르 어법의 영향을 받았다는 정도일 뿐입니다. 쇼스타코비치는 폐쇄적인 소비에트 체제의 시각으로 걸러진 재즈를 접했을 뿐이기 때문이죠. 그나마 제1모음곡에서 20년대적인 퇴폐성의 그늘이 좀더 느껴지는 편이라면 제2모음곡 같은 작품에서는 오히려 빈 왈츠의 영향이 뚜렷합니다. (제2모음곡의 한 악장인 감미롭고 향수에 찬 '왈츠2'는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에 사용되었다고 하네요.) 그러나 '재즈' 모음곡이라는 명명이 합당하느냐는 의문을 떠나서, 오히려 이 앨범에 실린 곡들은 눈부시고 위트에 찬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관현악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만합니다. 이 음악들, 특히 그 힘찬 투티 부분들에서 저는 겨우 길들여 놓은 야수와도 같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왈츠'니 '폴카'니 하는 제목들이 악장마다 붙어 있지만, 그러한 추상적인 형식이 잡아 가둘 수 없는 젊은 쇼스타코비치의 역동적인 힘이 느껴지는 음악입니다. 보다 늦은 시기의 음악들이 포함되어 있는 나머지 두 음반들에서도 어느 정도 이런 인상이 계속됩니다.
The Dance Album Dmitri Shostakovich, Moscow-Cheryomushki : suite from the operetta, The Bolt : suite from the ballet, The Gadfly : excerpts from the film music. Riccardo Chailly/Philadelphia Orchestra, 1995년 녹음, Decca.
1995년에 녹음된 The Dance Album에는 각각 오페레타, 발레, 영화음악으로부터의 모음곡 혹은 발췌곡인 세 작품이 들어 있습니다. 초연 녹음이기도 한 코믹 오페레타 Moscow-Cheryomushki 모음곡은 그 원작이 1959년에 상연되었습니다. 익살과 패러디가 뒤섞인 이 신나는 음악은, 원숙에 경지에 오른 50대의 대가 쇼스타코비치가, 소비에트표 정치선전 작품에서 잠시 벗어나 넥타이 풀고 가벼운 마음으로 낄낄거리며 즐기면서 곡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를 가지게 합니다. (참고로 이 곡은 각각 1905년의 민중봉기와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을 다루고 있는 11번(1957) 및 12번(1961) 교향곡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발레 The Bolt 모음곡은 1930년대의 것으로, 젊은 시절의 작품답게 힘차고 호쾌한 관현악이 일품입니다. 원작의 스토리는 상당히 촌스러운 사회주의적 도덕극인 모양이지만, 서곡 첫머리에 등장하는 차이코프스키 4번 교향곡 금관 서주의 패러디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다행스럽게도!) 쇼스타코비치는 극의 내용에 진지하게 반응하기보다는 그저 음악 만들기의 즐거움에 탐닉한 듯합니다. 세번째 곡은 영화 The Gadfly(1955)에 붙였던 음악의 일부인데, 원곡의 형태를 최대한 살린 발췌 음악이라고 합니다. 차이코프스키를 생각나게 하는 상당히 낭만적이고 큰 제스처의 음악이라서 이 음반에서는 가장 쇼스타코비치스러운 맛이 덜하다고 생각되지만 (그래서 다소 맥빠진 느낌도 들지만), 너무도 잘 알려진, 마약처럼 감미롭고 달콤한 바이올린 솔로가 붙어 있는 Romance를 들을 수 있습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기용한 스튜디오 녹음입니다. 그래서인지 콘서트헤보우 Grotezaal에서 녹음된 다른 두 음반과 달리 잔향이 약간 억제되어 건조한 듯한 녹음입니다. 하지만 아주 선명합니다. The Film Album Dmitri Shostakovich, The Counterplan 발췌, Alone 발췌, The Tale of the Silly Little Mouse, Hamlet 발췌, The Great Citizen 중의 장송행진곡, Sofia Perovskaya 중의 왈츠, Pirogov 중의 스케르쪼, The Gadfly 중의 로맨스, Pirogov 중의 피날레. Riccardo Chailly/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1998년 녹음, Decca.
이것도 기획된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세 음반의 연주시간이 59분, 73분, 78분으로 뒤로 갈수록 점점 늘어납니다. 그러니까 이 마지막 음반에는 무려 78분간의 매혹적인 음악이 담겨 있는 것이지요. 흠, 그러니 시간으로만 본다면 더 이상의 속편은 나오기 어렵다고 봐야겠지요...^.^ 사실 쇼스타코비치는 가난한 학생이던 17살 때부터 "영화관에서 피아노를 두드려 대며 근근히 생활을 해 나갔다"고 합니다. 그의 영화음악 작업은 1929년에 처음 시작되어 1967년의 Sofia Perovskaya에 이르기까지 거의 평생 계속됩니다. 이 음반에서도 전체적으로 이전의 두 음반에서와 유사한 분위기의 음악이 계속됩니다. 재치있는 위트와 씩씩하고 호쾌한 행진곡풍의 춤곡이 교차되는 가운데, 감미롭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끼어들곤 하는 식이지요. 예외가 있다면 Alone에서 섬뜩한 음향으로 폭풍을 묘사하는 부분 정도입니다. Dance Album에서 이미 써먹었던 영화 Gadfly의 음악 가운데 유명한 Romance 부분만을 (물론 약간 다른 분위기의 새로운 연주이지만) 또 들려주고 있는데, 아마도 이 서정적인 멜로디의 상업성을 염두에 둔 것이겠지요. 세 장의 음반을 통틀어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심각하고 집중된 정서의 표현이나 비극적 유머를 담은 뒤틀린 아이러니 같은 것이 그다지 드러나지 않습니다. 장난스럽고 상냥한 쇼스타코비치의 웃음이 연상되는,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이 대부분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Romance나 말년의 Sofia Perovskaya 중의 Waltz 같은 놀라우리만치 복고적이고 감미로운 곡들을 가만히 들으면서, 짙은 향수와 쓸쓸한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자료:http://andante.kangnam.ac.kr/ |
쇼스타코비치는 왜 스탈린시대에 비판의 대상이 되었는가? 쇼스타코비치는 러시아 태생으로 그가 삶을 마감했을 때 "공산당의 충성스런 아들인 쇼스타코비치(1906~1975)는 소비에트 음악의 발전과 사회주의 휴머니즘 및 인터내셔널리즘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전 생애를 바쳤다.”라고 소련 공산당이 그의 죽음을 추모했을 정도로 러시아의 대표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스스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음악의 모토로 삼았으며 초기 그의 작품들은 사회주의 건설의 중요한 성과로 간주되어 스탈린상을 수상하는 등 당의 권력에 충실했던 음악가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색깔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영화의 삽입곡으로 가벼운 왈츠곡이 쓰여 그 이름의 독특함만큼이나 그렇게 위험스런(?) 작곡가로 낙인찍히지는 않은 것 같다. 소비에트의 약화와 더불어 봇물처럼 쏫아져 나온 여러가지 이야기들 중에 쇼스타코비치 자신의 자서전과 언급들이 있었지만 사실 위의 소련 공산당의 헌사가 정치적이었던 것만큼이나 그런 이야기들의 유통과정이나 발언의 진위 역시 다분히 정치적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쇼스타코비치의 사상성에 대한 논의는 여기서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며 관심은 쇼스타코비치 자신의 음악에 대한 창작과 고민에 있음을 밝히는바이다. 하여튼 쇼스타코비치는 한마디로 강성한 소비에트 시대에 잘나가던 천재 음악가였다. 그러던 그에게 1934년 초연되었던 오페라 "므쳰스크의 레이디 맥베스" op. 29 가고뇌의 시작으로 다가온다. 인민으로부터는 자유로운 형식미와 표현이라는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지만 스탈린으로부터는 부르주와 취향의 혼돈으로 일관된 작품이라는 신랄한 비판과 함께 상영금지라는 가혹한 처분을 받게 된다. 소스타코비치의 천재성은 다분히 역사적 낙관성에 봉사하는 일률적 형식미에 안주할 수 없었을 것이며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 풍미하고 있었던 소위 아방가르드적 음악으로의 실험적 접목이 시도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 자신만의 천재성에 기인한 무로부터의 창조성이 스탈린의 귀에는 루카치의 지적대로 시민사회의 몰락을 명시적으로 드러내 주는 아방가르드적 혼란으로 밖에 비쳐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 시대에 이미 아방가르드는 초기의 급진 좌파적 색채에서 일탈하여 인간을 탈사회적, 탈역사적 존재로 환원시켜 역사의 부정을 촉발시키는 아방가르드적 존재론이라는 루카치의 이론이 그 정의로 받아들여지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 가혹한 당의 조치에 대해 쇼스타코비치는 아마도 많은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그는 이로 인해 준비되었던 4번 교향곡을 철회하였으며 3년 후에 "정당한 비판에 대한 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창조적 대답"이라는 거창한 부제를 달고 제 5번 교향곡을 발표함으로써 다시금 당과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였고 5번 교향곡은 견고한 구조로써 이전의 자유로운 실험적 형식미를 배제시킨 스탈린의 비판을 그대로 수용한 듯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는다. 당으로부터는 "불명료한 대답"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1940년 제1회 스탈린상을 수상함으로 이전의 사상적 치욕으로부터의 명예 회복을 하게 된다. 쇼스타코비치의 ‘므쳰스크의 레이디 맥베스’라는 작품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놓고 볼 때, 한 개인의 예술적 창작욕이 당파성을 뛰어넘지 못한채 굴복한 한 예술가의 고뇌와 좌절로써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투철한 사회주의 음악가의 한때 예술적 방황을 낙관적이며 희망적이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회개시킨 소비에트의 사회적 승리로 받아들여야할지는 관점의 문제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 시대에 쇼스타코비치에 부여된 자아비판이 단지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음악이 시도되었다는 이유로 아방가르드적 속성을 가졌다는 비판과 무조건적 적대시함에 대한 체념적 반성이었다면, 초기 절대관념에 대한 반항의 시도로써 부르주아 국가관에 철저히 반항했던 아방가르드의 전위로서의 또다른 면은 철저히 무시되어 버린 스탈린 시대의 희생제가 아니였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더 무서운 사실은 이런식의 스탈린 시대의 분류적 오류가 여러곳에 팽배하여 실험적인 것은 예술적인 것이며 예술적인 것은 리얼리즘과 상반되는 반동의 쓰레기라는 낙인을 찍는 작업들이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수행되어져 왔다는 것이다. 물론 그 진위를 가리는 작업은 상당히 지난한 작업이라 생각하고 일개 음악이나 듣고 느낀대로 긁적이는 본인과 같은 필부가 할 작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진위와 상관없이 이런식의 논리적 과정이 이땅에서 음악을 듣고 말하는데 대단히 해악적인 부분으로 작용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다양성의 스펙트럼을 임의대로 재단한다는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은 그 양적인 면에서 세계적인 순위에 위치하고 있지만 그 질적 수준은 한심한 수준에 머물러 있으니 일개 몇몇 메이저 기획사가 음반 판매량을 좌지우지 하고 있으며, 클럽 중심의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은 그 뜻을 펴지도 못한체 나가 떨어져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아마도 천편일률적이고 낙관적인 사랑 노래들의 히트 성향은 스탈린을 다시금 무덤에서 깨울 정도로 다양하지도 실험적이지 못할것이다. . 어떤 작가의 유행과 함께 몰아 닥친 ‘재즈’ 열풍은 거의 모든 카페의 간판을 ‘재즈카페’로 갈아치웠고, 전자음악의 경박한 소리에 온나라가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어 대니 노래방 간판까지 ‘테크노’가 되어버리는 나라….그런데 그런 식의 음악의 장르적 상륙은 모두 대공포화를 맞고 다시금 슬펴시 간판을 내려야 했다. 왜냐하면 재즈의 전통적인 흑인의 저항과 슬픔은 모두다 태평양에 떨어뜨리고 그 분위기에만 취한 청자는 그냥 멋에 겨웠을 뿐이며 테크노의 발생 그 태초의 막대한 실험정신 역시 대륙을 건너며 모두다 땅에 파묻고 오직 들어온 것은 엑스타시에 그냥 주책없이 흔들어대는 천박함만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어는 나라 어느 사회든지 유행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만 세속성에만 의존한채 본래의미로의 접근이 철저히 봉쇄되어 그런 문화가, 그런 다양성이 자리잡기도 전에 사라져버리는 경우는 이땅에서는 아주 흔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대중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의 천박함이 첫번째 원인일 것이며, 돈이 된다면 태양도 팔아먹을 듯한 자본주의의 속성에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었음이 두번째 원인일 것이며, 소위 진보의 탈을 쓴 평론가들이라는 사람들의 절묘한 파시즘이 세번째 원인일 것이다.
이 땅에서 실험적인 음악이 거의 들려지지도 창작되어지 않는 이유는 쇼스타코비치 시대의 스탈린의 유령이 아직도 배회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실험성과 자유로운 형식미를 추구했던 음악은 클라식뿐만 아니라 많은 대중음악들에도 있었고 그런 음악들은 나름대로의 가치를 인정받아 왔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도무지 평론가들의 비아냥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유는 놀랍게도 스탈린의 비판의 논지와 아주 흡사하다. ‘부르주와’라는 단어를 ‘사치’스럽다는 단어로 바꿨치기 했을뿐 스탈린의 논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평론가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이 올바른 음악이다.’라는 편견일 수도도 있지만 그런 식의 오류라면 차라리 감성의 다양성이라는 아량으로 용서가 가능하지만 과거 ‘진보’라는 전력을 가진 몇몇 음악 평론가들이 휘둘러대는 펜에 평가절하되고 매도되어버린 대중음악 장르를 생각하면 고뇌하고 있을 쇼스타코비치의 모습이 떠오른다. 예술주의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싸움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거란 생각이다. 부르즈와 취향의 역겨움과 혼돈이 철저히 배격되어지고 비판받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다양한 인간 감성의 스펙트럼을 1930년식의 스탈린의 논리로 난도질 하는 것은 문화라는 거대한 영역에서 많은 실수의 여지를 남겨 놓는다. 아방가르드(avant-garde)라는 단어 뜻 자체가 전위라는 군대용어로서, 러시아혁명당시 계급투쟁의 선봉에 서서 목적의식적으로 일관된 집단의 정당과 그 당원을 지칭하였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의미는 다양한 양상을 가진다. 결국 문화를 어떻게 수용하고 역사로 옮기느냐는 인간의 실천의 문제이지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참과 거짓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천박한 매체와 자본주의를 차치하고서라도 평론가들의 대중음악에 있어서 실험성에 대한 평가는 다시 이루어져야 하며 그나마 몇권 나와있지 않은 대중음악 관련 서적에 한국대중음악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요소들은 수정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음악이 좋은 음악이고 나쁜 음악이다라는 이야기는 나중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땅에서 음악듣기는 너무나 편협하고 천편일률적인 주입과 나열만이 있을 뿐이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적 인격은 형성되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말하는 다양성이란 ‘베이브복스’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보아’의 음악을 한번 들어보라고 권하는 그런 다양성이 아니다. 서태지가 한국에서 최고의 아티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뫼비우스 스트립’을 발표했던 ‘조윤’이라는 아티스트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문희준이 최고의 보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신아기외 소리”의 김용우’라는 보컬리스트를 소개해 주고, ‘신화’가 우리나라 최고의 그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슬기둥’이라는 매력적인 그룹도 있다고, 또한 ‘Eminem’ 최고의 반항가수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Rage Against The Machine’ 같은 저항그룹도 있다는 사실을, 아니면 ‘Rage Against The Machine’만이 최고의 저항그룹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1970년대 이미 인터내셔날가를 가장 난해하고 실험적이라는 재즈락으로 편곡해서 부른 이태리의 ‘Area’같은 그룹도 있었으며, 실험적인것과 사상적인 것이 양립할 수 없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나름대로 진보적인 우리네 고상한 음악평론가들에게 ‘누에바 깐시온’의 기수였던 ‘Quilapayun’ 같은 실험적 진보그룹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그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자료 : 논문 ‘스탈린과 쇼스타코비치’ 저자 이득재 1992 사회평론 4호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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