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림스키 코르샤코프: 세헤라자데 : 아라비안 나이트(千一夜話) │ 국민파 음악

리차드 강 2018. 4. 4. 15:38

Scheherazade Op.35 after a Thousand and one nights


림스키 코르샤코프 세헤라자데

Nikolai Rimsky-Korsakov (1844-1908)

1. The Sea and Sinbad's Ship - 2. 3. 4악장

 

Rimsky-Korsakov: Scheherazade (1961 Decca)

Lorand Fenyves (violin)
L'Orchestre de la Suisse Romande
Ernest Ansermet, conductor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 "아라비안 나이트"를 읽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릴 적 읽었던 "신밧드의 모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알라딘과 요술램프" 등의 이야기가 아라비안 나이트 속의 이야기이다. 천일야화(千一夜話) 또는 아라비안 나이트라 하는데 왕비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 이후 더 이상 여자를 믿을 수 없게 된 이슬람 제국의 한 칼리프의 광적인 행동인 매일 밤 그와 잠자리를 같이 한 왕비들을 다음날 바로 처형시키는 것을 고치기 위해 자진해서 왕비가 된 대재상의 딸 세헤라자데가 재미난 이야기로 하루하루 죽음의 위기를 넘겨가는 천일(1,000일)하고도 하루 동안의 재미난 이야기 보따리 천일야화 혹은 아라비안 나이트 라는 사실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나 아니면 어린이들이 보는 만화영화에서 맛만 보았지 대부분 이 천일야화를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의 번역본은 17세기 프랑스문학으로 재탄생한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 정본이 있는데 이슬람 사회에서 구전으로 전해오던 세헤라다드의 이야기를 유럽사회에 처음 소개했고, 이 바람은 오히려 이슬람 사회에 역수입되었다. 또 리처드 버턴이 영역한 아라비안 나이트가 있는데 이는 외설적 표현을 그대로 직역하여 19금 도서가 되어있다. 앙투안 갈링의 최초 정본을 문학적 향기로 읽을 것인지 아니면 리처드 버튼의 편역을 읽고 건강한 외설적 에로티시즘을 즐길 것인지는 알아서 판단하기 바란다. 어린이 동화는 어린이가 읽고, 어른의 동화는 어른이 읽어야 좋은 것 아니겠는가. 이번 기회에 전편을 제대로 한번 읽어 보자. 어른들의 건강한 생활을 위하여... 열려라 참깨 !!!!!

     

림스키 코르샤코르의 세헤라자데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이른바 ‘러시아 5인조’ 작곡가 가운데 가장 기술적으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으며, 특히 빼어난 관현악법은 차이코프스키를 비롯한 음악가들의 찬탄을 받았다. 그 가운데서도 [세헤라자데]는 [스페인 기상곡] 및 [러시아 부활제 서곡]과 더불어 이른바 작곡가의 ‘3대 관현악곡’으로 꼽히는 걸작으로, 완숙기에 도달한 그의 관현악법이 실로 찬란한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이들 작품을 끝으로 더 이상 이렇다 할 관현악곡을 작곡하지 않은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그러나 이 곡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단순히 관현악법 때문만은 아니다. 전곡에 걸쳐 짙게 배어 있는 이국적이고도 관능적인 오리엔트 정취와 단순하고도 호소력 짙은 선율미야말로 이 곡을 오늘날의 명성에까지 끌어올린 원동력인 것이다. 물론 이 곡이 누구나 아는 친숙한 이야기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일 것이다.

잔인한 왕과 지혜로운 여인, 그리고 천하룻밤의 사랑

흔히 ‘아라비안 나이트’ 또는 더 적절하게 ‘천일야화’(千一夜話)라고 알려진 장대한 설화집이 정확히 언제, 누구의 손으로 작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워낙 방대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오랜 세월에 걸쳐 아랍 세계 각지의 구전 설화가 모여 완성되었으리라고 추측할 따름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고 어떤 이야기가 이 버전에는 있는데 저 버전에는 없는 등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버전을 관통하는 공통점도 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어느 잔혹한 왕과 지혜로운 여인의 천하룻밤에 걸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샤리아르라는 왕이 있었다. 젊었지만 어질고 지혜로운 왕이었던 그는, 어느 날 왕비가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왕비를 죽여 버린다. 이후로 여자를 믿지 못하게 된 왕은 매일 밤마다 처녀를 데려다 동침한 후 이튿날 아침에 죽이는 나날을 반복하게 된다. 이 무렵, 한 대신의 딸 세헤라자데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탄식을 듣고 왕의 신부가 되길 자청한다. 그녀는 첫날밤부터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고, 왕은 그녀의 이야기 솜씨에 홀려 어느새 천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된다. 세헤라자데의 마지막 이야기가 끝났을 때 샤리아르 왕은 자신이 그녀를 진심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영원히 해로할 것을 다짐한다.

이것이 대강의 줄거리이다. 그러나 림스키-코르사코프의 4악장짜리 대작 교향시를 이해하는 데 이런 이야기를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그의 의도는 특정한 줄거리를 음악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동양적인 분위기 자체로써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있었으니 말이다. 각 악장의 제목이 다소 애매한 것 역시 이런 의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를 통해 이 곡을 알게 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김연아 선수가 피겨 스케이팅 배경곡으로 이 작품을 사용했는데 4분 남짓한 음악은 44분에 이르는 [세헤라자데]의 여러 주제를 솜씨 좋게 편집한 곡이다.

광대한 화폭 위에 펼쳐낸 매혹적인 음의 팔레트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세헤라자데]를 작곡하기 시작한 것은 1888년 초의 일이었다. 작곡가는 그 해 6월 25일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전곡의 초고를 완성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관현악 총보가 완성된 것은 7월 26일이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 곡과 병행해서 작곡한 [러시아 부활제 서곡]은 8월 20일에 완성되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당시에 실로 창작력의 정점에 있었던 셈이다. 작곡가는 이 곡에 착수하게 된 계기에 대해 특별히 밝히고 있지 않으나, 원래부터 환상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고 또 젊었을 때 해군 장교로서 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녔던 경험 역시 작곡가에게 이국적인 것에 대한 동경을 불어 넣었으리라고 추측된다.

     

샤리아르 왕에게 천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세헤라자데

     

작품의 개요 & 배경

교향적 모음곡 《세헤라자데》는「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이야기를 사실적인 묘사수법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아라비아의 설화문학의 보고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이 언제 누구에 의해서 집필 되었는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여러 사람들에 의해 구전되고 집필 되었으리라고 보는데 그 양도 방대하여 온 갖가지 신기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세헤라자데》는 방대한 이야기의 첫 부분에 해당되는 것으로 샤리아르 왕과 그의 동생 샤자만의 이야기를 옮겨 놓은 것이다. 그 대강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원래 샤리아르 왕과 그의 동생 샤자만은 매우 사이가 좋은 형제였다. 그런데 동생 샤자만에게 샤리아르 왕의 왕비가 흑인 노예와 희롱하는 장면이 목격되고 난 뒤부터는 샤리아르의 마음이 크게 변하여 폭군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는 샤리아르 왕은 밤마다 처녀를 불러들여 동침하고 이튿날 죽여버리곤 했다. 그렇게 해서 불려 들어간 처녀 중의 한 사람이 대신(大臣)의 딸 세헤라자데였다. 세헤라자데는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어서 샤리아르 왕에게 이야기로 즐거움을 안겨줌으로써 죽음을 모면해 나갈 궁리를 짜냈다.

세헤라자데는 원래 대단한 독서가였기 때문에 각국 왕들이 전설이나 민족의 역사 등에 정통해 있었다. 게다가 이야기를 재미나게 엮어 가는 재주가 뛰어나, 샤리아르 왕은 그녀의 다음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하루 저녁 이야기가 끝나면 어느새 다음날 저녁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세헤라자데는 목숨을 부지해가며 천일 낮과 밤을 계속하여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아라비안 나이트」를 「천일야화(千一夜話)」라고도 부르는 것은 이런 연유 때문이었다.

땅 위의 모든 여자를 미워하고 저주하던 샤리아르 왕도 세헤라자데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 결국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고, 마침내 왕비로 맞아들여 훌륭한 명군(名君)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교향적 모음곡《세헤라자데》는 그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네 개를 골라 음악으로 만든 것이다. 따라서 이 곡의 제목으로 쓰고 있는 《세헤라자데》는 네 개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화자(話者)의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즉 곡의 직접적인 내용과는 아무런 관계를 갖지 않고,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에 불과한 것이다.

림스키-코프사코프가 이 곡을 쓰려고 마음먹은 것은 1887년이다. 43세가 된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이 때 창작열이 원숙의 경지에 올라서 있었으며 그의 관현악법에 대한 자신감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을 때였다. 그는 세헤라자데가 샤리아르 왕에게 들려준 무수한 이야기 가운데 네 개를 골라서 4악장 형식의 모음곡으로 작곡했다. 약 2년 간에 걸친 작업 끝에 1888년 말쯤에 완성을 본 것이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나중에 이 곡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회술 한 바 있다.

"나 자신의 공간과 거의 같은 방향으로 듣는 이의 귀를 돌리기 위해 곡의 내용을 암시하는 표제를 달아보았다. 만약 청중이 이 곡을 교향곡으로 즐기려 한다면 네 개의 악장에 공통된 주제를 바탕으로 한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에 접근하는 듯한 그런 인상을 주지 않으면 안된다."

이 말에서처럼 《세헤라자데》모음곡은 철저하게 표제적 내용을 가진 교향곡이라고 볼 수도 있다. 주제의 일관된 흐름이나 템포의 전개 등이 전통적인 4악장의 교향곡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림스키-코르사코프 자신은 이 곡을 교향곡이라고 하지 않고 '교향적 모음곡'이란 두리뭉실한 표현으로 성격을 지워 놓았다.

그가 「아라비안 나이트」중에서 택한 네 개의 이야기는 제1곡 「바다와 신밧드의 항해」제2곡「칼랜더 왕자의 이야기」제3곡「젊은 왕자와 젊은 공주」제4곡「바그다드의 축제」이다. 4개의악장 사이에 내용적인 관련은 없으나 전편을 통해 트럼본 저음으로 나타나는 험악하고 잔인한 샤리아르의 테마와 부드럽고 아름다운 바이올린 독주의 세헤라자데 테마가 주요 역할을 한다.

어느 곡이나 그 이야기에 걸맞는 사실적이면서도 섬세한 관현악의 표현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이와 같이 완벽한 묘사음악의 예는 음악사 전체를 통 털어서 결코 흔치 않는 일이다. 이처럼 설화문학의 재미를 멋진 음악의 향연으로 옮겨놓은 것이 교향적 모음곡 《세헤라자데》이다.

     

신드바드의 배를 공격하는 바다의 거인들

     

작품의 구성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소재를 얻어 작곡, 여주인공 이름을 따 붙인 교향조곡 세헤라자데는 1888년 초에 착수하여 그 해 8월7일에 완성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나 자신의 공상과 거의 같은 방향으로 귀를 기울이게 하기 위해 작품의 내용을 암시하는 표제를 붙여 보았다. 만약 청중이 이곡을 교향곡으로 즐기려 한다면 네 개 악장의 공통된 주제를 통하여 기이한 이야기에 접하는 듯한 인상을 가져주기 바란다." 고 말하고 있다.

"아, 다복한 왕이시여, 제가 들은 바로는 ......" 이라고 세헤라자데가 이야기를 시작하고, 다시 이야기가 끝날 때면 " .........세헤라자데는 아침 햇살이 비쳐 드는 것을 보고 다소곳이 입을 다물었다" 고 마무리한다. 각 악장에 나타나는 세헤라자데의 바이올린 독주의 주제는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맺음을 암시한다. 교묘한 구성이다.

제1악장 「바다와 신밧드의 항해」Largo e maesteso-allegro non troppo

"바다와 신밧드의 배"라는 이 악장은 ‘라르고 에 마에스토소’(아주 느리고 장중하게)로 지정된 서주에서 두 가지 주제가 등장한다. 맨 첫머리에 제시되는 위압적인 금관 주제는 샤리아르 왕을, 템포가 렌토로 바뀌면서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처연하고 애소하는 듯한 선율은 세헤라자데를 묘사한 것이다. 이 두 주제는 전곡에 걸쳐 등장한다. 이어지는 주요부를 여는 파도가 넘실거리는 듯한 선율은 별개의 주제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왕의 주제를 변형한 것이다. 머잖아 신밧드의 주제가 플루트로 조용히 제시되고, 다시 독주 바이올린이 세헤라자데의 주제를 화려하게 장식한 형태로 연주한다. 이후에도 왕과 세헤라자데, 신밧드의 주제가 서로 얽히면서 자유롭게 전개되어 나간다.

제 1악장은 "바다와 신밧드의배(The Sea and Sindbad's ship)이다. 위협적인 샤리야르왕의 주제가 나온 뒤에 세헤라자데의 주제가 나타난다. 이 서주가 끝나면 알레그로 논 트로포(E장조)의 주부로 들어가 웅장한 바다의 모습을 그려낸다.‘바다와 신밧드의 배’에서 뱃전을 위협하며 우르릉대는 바다의 묘사. 힘차고 웅장한 샤리아르와 부드러운 세헤라자데의 테마가 어우러지고 흔들리는 듯한 대양의 리듬이 나타난다.

먼저 Largo e maestoso(매우느리고 장엄하게) 마단조 2/2박자로 위협적인 샤리아르 왕의 주제(악보 1)가 힘차고 위엄있게 나타난다.

 1

속도는 Lento(아주느리게)로 되고, 바이올린 독주로 부드럽고 표정이 풍부한 셰헤라자드의 주제(악보 2)가 나타난다.

 2

주요부에서는 셰헤라자드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셈이다. Allegro non tropo로 속도가 바뀌고, 목관으로 배가 흔들리는 듯한 동기가 나타나고(악보 3), 다음에 풀륫이 신밧드의 선율(악보 4)을 가볍게 노래한다.

 3

 4

- 먼저 굵직하고 위협적인 유니즌의 총주로 샤리아르 왕의 주제가 등장하고 나면 가냘프고 아름다운 선율의 바이얼린 독주로 세헤라자데의 주제가 레치타티보로 등장합니다. 이는 모든 아라비안 나이트의 이야기 서두마다 대개 “아, 은혜로우신 임금님...제가 들어온 바로는......”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왕비 세헤라자데의 머리말이 들어가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죠.

그런데 세헤라자데의 말을 샤리아르 왕은 잘라버리려고 합니다...처음에는 그녀를 처형하기 위함이었겠죠...하지만 어느새 음악은 넘실거리는 바다의 파도와 배의 요동같은 것으로 바뀌고 왕의 주제는 조급한 모습으로 토막토막 반복해서 나오지만 어쨌든 신밧드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것을 암시하는 플륫의 가벼운 연주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세헤라자데의 주제가 다시 바이얼린으로 나타나면서 점차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합니다. 바다의 파도는 점점 높아지고 바순과 트럼본, 튜바가 최고조에 달하면 파도가 가라앉으면서 클라리넷에 의한 배의 주제가 연주됩니다. 오보와 플륫으로 이어지던 이 주제는 세헤라자데의 바이얼린 주제가 클라리넷과 비올라를 달고 등장한 후 다시 고조되는 파도의 모습으로 전개가 됩니다.

이 곡 뿐만 아니라 다른 곡들에서도 림스끼-꼬르사꼬프의 파도가 넘실거리는 묘사의 음악은 정말이지 매우 사실적이고 뛰어난 것인데, 이는 그가 3년간 실제 원양항해를 하며 겪었던 바다의 모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최고조에 달했던 파도는 서서히 가라앉으며 조용해진 왕의 주제와 세헤라자데의 주제가 나타나고서 조용한 화음으로 끝을 맺는데, 이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매일매일 이야기 끝부분이 ‘...이때 세헤라자데는 아침 햇살이 퍼지는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입을 다물었다.’라고 하는 것과 일치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 이야기를 더 해달라고 재촉하는 것까지도...

     

     

제2악장 「칼랜다 왕자의 이야기」 Lento-andantino

"칼렌다 왕자의 이야기"라는 이 악장은 ‘칼렌다’는 이슬람의 탁발승을 말하는데 작곡가가 구체적으로 어느 이야기를 지목해 음악화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서주에서 독주 바이올린이 세헤라자데의 주제를 연주한 뒤 바순이 탁발승 왕자의 주제를 연주한다. 이 선율을 익살스럽다고 묘사한 글이 많지만 개인적인 느낌을 밝혀도 된다면 차라리 애절하게 들린다. 이 주제가 여러 악기를 거치면서 점차 고조된 뒤 새로운 주제가 금관으로 힘차게 연주된다. 이 주제를 바탕으로 해 중간부가 다채롭게 전개된 뒤 다시 왕자의 주제로 되돌아가 화려하고 박진감 있게 마무리된다.

제2악장은 "칼렌다 왕자의 이야기(Story of the Kalendar prince)"이다. 칼렌다는 여러 나라를 헤매고 다니는 떠돌이 수도승을 말하며, '아라비안 나이트'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먼저 세헤라자데의 주제가 흐르고 나서 안단티노의 주부로 넘어가면 바순(Basoon)의 유머러스한 동양적 주제가 고개를 든다. 중간부는 왕의 분노를 나타내는 듯한 거친 선율이 휘몰아치다가 다시 처음의 선율을 되풀이 하며 끝이 난다. 적막한 초원지대를 묘사하는 듯한 고적한 바순의 독주가 일품. 자유롭고 유머러스한 왕자의 모험 이야기에 샤리아르가 노여움을 풀고 웃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 칼렌다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탁발승인데,「아라비안 나이트」속에는 탁발승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므로 어느 이야기를 가리키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서주부는 Lento 4/4박자로 독주 바이올린이 셰헤라자드의 주제(악보 2)를 연주하고, Andantino의 주요부로 들어가 바순(파곳)이 유머러스한 느낌의 동양적 선율인 칼렌다 왕자의 주제(악보 5)를 연주하고 오보에로 이어지며 각 악기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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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부에서는 Allegro molto가 되어 왕의 분노를 나타내는 듯한 거칠은 선율(악보 6)이 금관(트롬본)으로 나타나 화려하게 전개되고, 다시 왕자의 주제(악보 5)가 재현되며 곡은 더욱 화려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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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렌다(칼란다르)는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는 탁발승인데, 아라비안 나이트에서는 이러한 탁발승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먼저 세헤라자데의 바이얼린 선율이 1악장과 조금 다른 카덴차 부분을 지니고 등장한 후 경쾌하면서 약간은 환상적인 듯한 칼렌다의 주제가 바순에 의해 나타납니다. 다른 악기들이 차례로 받아 연주하며 활기를 띠어가다가 첼로에 이르면 조용해지면서 무엇인가를 묻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조용하게 진행하며 하프가 등장하면 이윽고 곡은 대단히 거친 폭풍우를 암시하듯 알레그로 몰토로 진행됩니다. 이때 등장하는 경고하는 듯한 주제는 이 2악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 주제가 발전하면서 최고조에 도달하면 칼렌다의 주제가 다시 등장하면서 클라리넷의 ad libitum이 3회 반복됩니다.

음악은 다시 비바체 스케르짠도로 바뀌면서 모든 주제들이 차례로 등장하며 스케르초로 발전한 다음, 박자가 바뀌면서 트럼펫을 필두로 해서 행진곡풍의 음악이 나오고 이어서 재현부가 여러 목관악기들을 끼고서 나타난 후 첫 칼렌다 주제가 목관과 현에 의해 나타나고서 곡은 코다로 치닫게 됩니다.

     

     

제3악장 「젊은 왕자와 젊은 공주」 Andantino quasi allegretto

"젊은 왕자와 젊은 공주"라는 이 악장은 현악기의 관능적인 선율이 샤리아르 왕과 세헤라자데의 사랑을 묘사한다. 중간부에서는 작은북의 독특한 리듬을 타고 경쾌한 주제가 클라리넷으로 연주된다. 최초의 주제가 다시 등장하고, 왕과 왕비의 주제를 거쳐 다시 중간부 주제가 재등장한 뒤 목관이 세헤라자데의 주제를 귀엽고 익살스럽게 암시하면서 끝난다.

제 3 악장 '젊은 왕자와 공주(The Young prince and the young princess)' 는 두 주제의 성격이 흡사하여 쌍둥이 같은 카르마 알 자만(초승달)왕자와 부드르(보름달)공주의 사랑을 다루지 않았나 추정된다. 곡은 안단티노 콰지 알레그레또이며 현악기가 동양적인 우아한 주제를 펼치기 시작한다. 어딘지 관능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주제가 돋보이는 명품이다. 중간부에 들어가면 경쾌한 리듬이 되어 쾌활한 주제로 바뀐다. 그리고 다시 앞의 주제가 되살아났다가 세헤라자데의 주제와 함께 차츰 꺼지듯이 사라진다. ‘젊은 왕자와 젊은 공주’의 유려하기 그지없는 현악 선율 등 그 무엇이든지…. 굳이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의 한 형태라고 보자. 가장 인기 있는 악장으로서 왕자와 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우아하고 이국적인 색채로 그려진다.

이것도 어느 이야기를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그런데 이 속에서 나타나는 주제가 매우 비슷한 점으로 미루어 쌍둥이 같은 카마르 알 자만〔초생달〕왕자와 브두르 〔보름달〕공주의 사랑을 다룬 것이 아닌가 보는 견해도 있다. 이 악장은 2개의 민요풍의 주제를 기초로 아라비아의 밤을 그린 것이다.

곡은 안단티노 콰지 알레그레토. 현악기에 의한 동양적인 부드러운 주제(악보 7)로 시작된다. 약간 관능적인 느낌이 드는 이 주제는 전곡을 통해 가장 뛰어난 선율인데 젊은 왕자를 나타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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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부에 들어가면 클라리넷의 쾌활한 주제(악보 8)가 젊은 왕자에 대한 공주의 응답처럼 나타난다. 이 두 주제가 번갈아 계속되며 사랑의 무드를 조성하고, 이것이 끝나자 셰헤라자드의 주제(악보 2)가 나타남으로써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그녀의 것임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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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하지는 않으나, 원작소설에 나오는 ‘카마르 알 자만(초승달) 왕자와 브두르(보름달) 왕녀의 이야기’가 바탕이 된 듯합니다.두도막 형식의 로만짜로 이루어진 음악은 교향곡에서 서정적인 악장을 대신하고 있다고 보면 될 듯합니다.

먼저, 동양풍의 아름다운 사랑을 호소하는, 애조를 띤 선율이 등장하고서 세헤라자데의 주제가 잠시 삽입되어 나타납니다. 첫 번째 주제는 목관과 첼로에 의하여 서서히 뚜렷해지면서 발전해나가게 되는데, 클라리넷의 반음계적 오르내림을 지나서 일단 완결되게 됩니다.

이후 약간 템포가 빨라지면서 탬버린의 가벼운 리듬을 타고 클라리넷이 두 번째 주제를 연주합니다. 이 주제는 1주제와 많이 흡사하며, 첫 번째 주제가 왕자의 것이라면 이것은 왕녀의 주제라 할 수 있고, 이들이 서로의 사랑에 호응한다는 듯한 느낌을 주게끔 설정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 목관악기와 바이얼린의 가세로 주제의 발전이 있고 관현악법상 다채로운 발전이 나타나면서 마지막에는 금관을 끼고 다이나믹한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이어서 1주제의 재현부가 나타나고 템포의 자연스런 변형을 가지고서 제시되는 파도의 주제나 여러 동기들이 뒤섞여 나타난 후 관현악이 침묵하면서 바이얼린 독주로 세헤라자데의 주제가 잠시 등장합니다. 카덴자는 파도의 너울처럼 펼쳐지도록 설정되어 있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이후 1주제의 재현부가 나타나고 이것이 환하고 힘차게 발전되면서 사랑의 승리를 나타내어주게 되는데, 이후 2주제도 재현, 전개되다가 진정되면서 바이얼린 독주로 2주제가 아름답게 연주되며 조용히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제4악장 「바그다드의 축제」 Allegro molto-lento

"바그다드의 축제-바다-난파-종결"이라는 이 악장은 이전 악장들의 여러 주제가 번갈아 가며 등장해 일대 축제를 벌이는 마지막 악장이다. 먼저 왕의 주제가 성급하고 퉁명스럽게 제시된 뒤 이를 무마하듯이 세헤라자데의 주제가 등장한다. 두 주제가 변형된 형태로 한 번씩 더 등장한 다음 악상이 일변해 급박하게 전개되는 리듬을 타고 바그다드의 축제가 펼쳐진다(도중에 탁발승 왕자의 주제도 나온다). 이어 1악장에서의 바다 선율이 더 큰 스케일로 펼쳐진 뒤 배가 난파하고 나면 2악장의 중간부 주제와 3악장 서두 주제(목관으로 연주된다)가 등장한다. 이런 식으로 변화무쌍하게 전개되다 흥분이 가라앉고 나면 독주 바이올린이 세헤라자데의 주제를 약음으로 가녀리게 연주하고, 이어 저음현이 왕의 주제를 차분하게 연주한 뒤 양쪽이 어우러지면서 두 남녀의 진정한 결합을 알린다.

연주자들은 이 곡의 연주를 그리 반기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몇 개의 단순한 주제를 음색만 바꿔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은 고역이라는 이야기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은 아니나, 바로 그렇기에 이 곡이 위대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천하룻밤에 걸쳐 이어진 왕과 왕비의 이야기만큼이나 면면히 흐르는 아름다운 선율은 듣고 또 들어도 결코 질리지 않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렇듯 어느 잔혹한 왕과 아름답고 지혜로운 아가씨의 사랑은 우리에게 세계 문학사상 불멸의 걸작뿐만 아니라 세월을 뛰어넘어 사랑받았고 앞으로도 사랑받을 음악도 남겨 주었다.

제 4 악장은 '바그다드의 축제, 바다, 청동기사가 서있는 바위에서 파선한 배, 종곡(Festival at Bagdad, The sea, The ship is wrecked on a rock surmounted by a bronze warrier, Conclusion)이라는 긴 표제이다. '청동기사 이야기'는 '신밧드 선원의 모험'에서 청동 기사상이 서있는 커다란 바위가 자석이기 때문에 그 근처를 지나가는 배는 모두 끌려들어가 파선한다는 신기한 내용이다. 먼저 샤리야르왕의 주제에 이어 세헤라자데의 주제가 흐르고 나면 곧 알레그로 몰토의 '바그다드의 축제'로 넘어간다. 신선한 리듬의 화려한 곡이다. 다음은 바다의 부분이며 제1악장의 주제가 다시 나타나 차츰 고조되어 가다가 드디어 처절한 파선 장면에 이른다. 이부분의 생생하고도 색채감이 넘치는 관현악법은 압도적이다. 이윽고 넋을 잃을 정도로 고조 되었던 흥분은 썰물처럼 가라앉는다. 그리고 바이올린 독주로 세헤라자데의 주제가 조용히 이어지다가 꿈결처럼 아득히 사라진다. 바그다드의 이교풍 축제와 해양의 높은 물결에 뒤집히는 신밧드의 배를 묘사하고 있으며, 고요해진 바다이후 샤리아르와 세헤라자데의 테마가 다정스럽게 얽히며 행복하고 화목한 생활을 암시하듯 조용히 끝난다.

이 가운데서「청동기사의 이야기」는「신밧드의 이야기」와 더불어 동화에까지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제9야에서 제 18야까지 계속되는 「짐군과 여인들의 이야기」가운데 나타난다. 청동기사의 상이 서 있는 큰 바위가 자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근처를 항해하는 배는 죄다 끌려들어서 난파하고 만다는 괴상한 이야기다.

이 악장은 새로운 주제(악보 9)외에도 이제까지 나타났던 몇 개의 주제들을 재현시켜 전체의 클라이맥스를 형성하며 종결하고 있다.

먼저 곡은 알레그로 몰토로, 샤리아르 왕의 주제(악보 1)가 힘차게 나온 다음, 이어 세헤라자드의 주제(악보 2)가 독주 바이올린으로 응답하고 , 다시 왕의 주제(악보 1)가 이어지고 카덴차를 거쳐 「바그다드의 축제」(악보 9)에 들어가는데 목관은 (악보 8)을 연주한다. 세헤라자드의 주제(악보 2)가 얽혀 클라이맥스를 구축하면, 다시 (악보 9)가 론도풍으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멋진 관현악 기법을 보여준다. 생기발랄한 리듬이 약동하는 화려한 음악이다.

다음에는 「바다」의 부분인데, 여기서는 왕의 주제(악보 1)가 재현되고 점차 고조되면서 처절한 난파의 장면이 묘사된다. 이 언저리의 색채적 오케스트레이션은 정말로 멋지다. (악보 6)이 클라리넷과 트롬본으로 강조되고 이윽고 (악보 3)이 목관으로 나타나면서 흥분은 썰물처럼 가라앉는다. 그리고 세헤라자드의 주제(악보 2)가 바이올린 독주로 조용히 연주되면 저음현이 왕의 주제(악보 1)를 연주하며 융화되어 꺼질 듯이 끝난다. 샤리아르 왕도 여기서 잔혹한 생각을 버리게 된다.

 9

- 이 이야기는 ‘신밧드의 모험’만큼 잘 알려진 ‘청동의 기사 이야기’로서, 원작 소설의 9일째 밤에서 18일째까지 이어지는 ‘짐꾼과 여인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기사의 상이 서있는 바위가 바다에 있는데, 이 바위섬은 자석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근처를 지나던 배들은 모두 여기에 끌려들어가서 난파를 당한다는 줄거리를 거진 것입니다.

먼저, 1악장의 ‘바다’를 나타내는 동기가 등장하게 됩니다. 일단 다음으로 제시되는 세헤라자데의 주제 때문에 잠시 중단되지만, 다시 변형된 음형으로 타악기와 금관악기의 가세로 힘을 더하게 됩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세헤라자데의 주제가 카덴짜로 연주된 다음 바그다드의 축제 풍경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축제는 비올라의 리듬에 이끌린 플륫의 주제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 주제는 점차 활발하고 탄탄해지면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게 되는데, 춤의 리듬과 동기가 등장하여 조금씩 변형되면서 발전이 이루어지고 나면 3악장의 2주제를 정답게 연주하는 부분이 나타나게 됩니다. 한참 이 주제는 발전적인 전개를 보이며 중요한 역할을 하다가 축제의 주제가 재현되고 전개됩니다. 3악장의 2주제가 다시 잠시 고개를 내밀고 나면 리듬이 바뀌는 경과부를 지나 파도의 동기가 펼쳐집니다. 금관악기들이 가세하여 폭풍우가 몰려오고 있는 듯한 거친 바다를 그려내고 곡 전체적으로 마지막임을 생각하며 최고의 화려한 관현악 기법으로 멋진 전개를 펼친 다음, 마침내 조용히 가라앉으면서 코다로 들어갑니다. 세헤라자데의 아름다운 주제가 독주 바이얼린으로 연주되고 남아있는 바다의 여운이 낮은 현악기 음형으로 지속되다가 목관의 아름다운 화음으로 종결되면서 세헤라자데의 기나긴 이야기가 드디어 마쳐짐을 알리게 됩니다.

-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 / 안동림

     

     

환상, 모험, 그리고 사랑의 채색화 - 세헤라자데

성서(bible) 다음으로 영향력이 가장 큰 동양문학의 거봉(앙드레 지드)으로 불리우며 아랍문화권을 넘어 당대 아시아의 사회적 문화적 참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최고의 문학작품인 ‘아라비안 나이트(The Arabian Night's Entertainment)’ - 원래는 ‘천하루의 밤(Alf laylah wa laylah)’라고 불리워지는, 180편의 긴 이야기와 108편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된 이야기이다.

6세기 경부터 인도로부터 들어왔던 여러 가지 설화들이 사산 조(朝) 페르시아와 아랍권 내에서 자신들의 이야기와 우화, 교훈적 이야기들이 함께 어우러지고 윤색을 거듭하여 15세기까지 전해져 오던 민중 구비문학적 형태의 것들이 커다란 하나의 틀 속에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그 틀이란 것이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이야기가 펼쳐지게 되는 다른 또 하나의 이야기인 『샤리아르 왕과 동생 샤자만의 이야기』인데, 이것이 이 장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게 되는 시작점이자 또한 결말인 것입니다. 많은 나라에서 이 책을 번역, 번안하여 내놓으면서 조금씩 이야기가 틀린 형태로 나오지만, 원래의 이야기 줄거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샤리아르와 샤자만은 사이가 좋은 형제였으며, 샤리아르는 인도와 중국을 지배하는 왕이었고 샤자만은 사마르칸드의 왕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현명하고 뛰어난 왕으로서 백성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어느 날 동생인 샤자만이 형의 나라를 방문하려고 길을 나섰다가 선물로 준비를 했던 보석을 두고 온 것을 알고서 급히 궁전으로 돌아왔더니 그가 평소에 가장 사랑하던 왕비가 자신의 침소에서 흑인 노예와 동침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게 되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샤자만은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의 목을 베어버리고 상처받은 마음을 안고서 형의 나라로 가게 된다.

샤리아르 왕은 안색이 좋지 않은 동생 샤자만 왕을 걱정하며 그 이유를 묻지만 샤자만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샤리아르 왕이 사냥을 나간 사이에 형수인 왕비도 역시 흑인 노예와 놀아나는 것을 보게 되었으며, 그제야 동생은 형에게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과 함께 이 사실을 고해바친다. 역시 분노가 치민 샤리아르 왕은 왕비와 노예를 함께 베어버린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로 샤리아르 왕은 밤마다 처녀들을 불러들여서는 이틑날 처형을 해버리는 행각을 벌이게 되었고, 과거의 명군이 폭군으로 바뀌어버렸다. 이같은 소행이 3년이나 지속되자 백성들은 공포에 떨면서 혼기에 접어든 딸들을 다른 나라에 피신시키는 바람에 나라에 처녀들이 남아나지 않게 되었다.

샤리아르 왕의 현명한 신하였던 자파는 어느 날 왕의 명령에 따라 새로운 처녀를 물색하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의 두 딸이었던 세헤라자데와 두니아자데는 재색을 겸비한 여성이었는데, 특히 언니인 세헤라자데는 많은 책을 읽어 세상의 모든 일들에 대하여 사리가 밝고 화술 또한 뛰어난 사람이었다. 두 자매는 아버지의 얼굴빛을 보고서 스스로 자신들이 왕의 여인으로 궁전에 들어가겠다고 자원을 하였다.

두 사람은 그날로 샤리아르 왕의 여인이 되었는데, 첫날밤을 지내고서 동생인 두니아자데는 언니인 세헤라자데에게 언니를 지켜주는 알라신에게 맹세코 이 밤이 즐거워지도록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청하고 언니는 자신의 당연한 의무로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한다. 처형을 준비하던 샤리아르 왕은 처음에는 탐탁치 않게 여기면서 죽기 전에 소원을 들어주는 척하며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지만 곧 세헤라자데의 뛰어나고 교묘한,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와 화술에 이끌려 들어가게 된다.

언니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동생이 맞장구를 치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오지만 가장 재미있는 대목에서 세헤라자데는 다음 이야기를 들으시려면 오늘밤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바람에 왕은 그녀들을 살려두게 되었고, 이러한 것은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이어지면서 어느새 샤리아르 왕은 여인들을 처형하는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게 된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실제와 허구, 모험과 사랑, 신비와 마술, 중국으로부터 이베리아 반도에 이르는 먼 나라로의 여행과 이국적 풍습, 그리고 교훈에 관한 것들이 잘 어우러져 있었는데, 길고 짧은 200여 편의 이야기들이 ‘다음 저녁에 계속...’하는 식으로 이어진 지 어언 1000일이 지나자 샤리아르 왕은 그녀의 이야기를 통하여 자신의 악행과 세상을 다스리는 지혜를 다시금 깨달으면서 또한 세헤라자데를 사랑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녀와 동생을 왕비로 삼으면서 나라를 잘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거의 총망라된 최고의 이 이슬람 기서(奇書)는 1703년 프랑스의 A. 갈랑(Galland)이 불어판을 내면서 유럽과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알라딘의 요술 램프’ 이야기와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등의 이야기는 원전에 없던 것이었지만 이때 갈랑에 의하여 첨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방대한 이야기를 감히 음악으로 엮어낸다는 것을 생각하기란 대단히 힘든 것이었으나, 이국취미를 좋아하며 화려한 색채감을 지닌 음악을 작곡할 수 있었던 한 사람의 작곡가에 의하여 - 원 이야기에 비한다면 - 짧지만 이 이야기가 주는 강렬한 인상을 그대로 우리들에게 전해주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러시아의 작곡가 니꼴라이 안드라예비치 림스끼-꼬르사꼬프가 쓴 교향적 스케치 ‘세헤라자데’이다.

     

     

그의 음악적 세계관 가운데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 몇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민족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이국취향이다. 그는 러시아와 주변 슬라브의 역사와 민족적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으며, 이러한 것들이 그의 음악적 토대가 되었던 것이다. ‘세르비아 주제에 의한 환상곡’이나 ‘러시아 주제에 의한 서곡’, ‘러시아의 부활제 서곡’, 오페라 ‘쁘스꼬프의 소녀’, ‘크리스마스 이브’, 고골리 소설을 바탕으로 한 ‘5월의 밤’ 등은 모두 이러한 토대에서 나온 작품들이라 할 수 있으며, 그는 나중에 ‘대(大)슬라브주의’를 찬성하는 국수주의적인 민족주의적 행동을 취하기도 하였다.

또 하나, 그를 대표하는 음악적 특징은 바로 이국적인 취향(exotisism)’이었다. 그가 어렵게 연마한 작곡과 관현악법의 이론은 표제적이고 묘사적인 그 어떠한 음악적 표현에도 잘 들어맞는 것이었다. 그가 평생 동안 라이벌이자 친구로 여겼던 차이코프스키는 천부적인 음악적 재질에다 극히 개인적이면서 인간의 내면적 성격을 음악으로 표현해내는데 뛰어났던 반면, 림스끼-꼬르사꼬프는 화려하고 묘사적인 것에 잘 들어맞는 음악을 쓸 수 있었다. 바로 그러한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국정취’였다.

그가 두 번째 교향곡 - 혹은 교향적 모음곡 - 인 ‘안따르’를 쓰면서부터 동방의 이국적이고 이교도적인 선율과 몽환적인 분위기, 그리고 신비롭고 동화에 가까운 설화적인 이야기들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써내려 갔었는데, 여기에는 오페라 ‘술탄 왕의 이야기’나 ‘금계(金鷄)’, ‘스페인 기상곡’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바로 이 ‘세헤라자데’가 바로 이를 대표하는 것들이다.

그의 창작기가 절정으로 들어가게 되는 1888년 여름 림스끼-꼬르사꼬프는 루가 부근의 체레멘쯔꼬이 호숫가에 자리잡은 네쥐고비치 별장에서 이 음악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1887년부터 그는 차이코프스키가 제의해왔던 모스끄바 음악원 교수직까지도 거절해가면서 선배였던 알렉산드르 보로딘이 미완성인 채로 남기고 세상을 떠난 오페라 ‘이고르 공’을 완성시키는데 글라주노프와 더불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갑자기 중단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이 ‘이고르 공’을 손질하면서 림스끼-꼬르사꼬프는 이국적인 분위기와 선율에 많은 자극을 받게 되었으며, 스페인의 여러 가지 선율들을 사용하여 대단히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스페인 기상곡’ 작곡에 착수하면서 이듬해부터는 이 ‘아라비안 나이트’의 분위기에 맞는 음악들을 쓰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가 특별히 이 이야기를 택하게 된 정확한 동기 같은 것은 별로 알려진 바가 없지만, 결국 색채감있는 관현악법에 대한 자신감을 이러한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그리고 풍경화 같이 묘사적인 것으로 나타내어 보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는 6월 25일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곡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오늘 4개의 악장으로 된 모음곡의 초고를 완성하였다네. 그 제목은 아마도 ‘세헤라자데’가 될 것 같은데, 특별한 표제는 없다네. 1악장은 ‘전주곡’(E장조)이고 2악장은 ‘이야기’(B단조), 3악장은 ‘몽상’(G장조), 그리고 4악장은 ‘동방의 축제와 춤, 바그다드의 풍경’(E단조-E장조)라네...”

초고는 7월 26일에 이르러 거의 전체 관현악화 되었으며, 8월 20일이 되어서는 완전히 완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 악장마다 곡의 표제가 부여되어 첫 인쇄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알려져 있는 각 악장들의 제목이다.

1. 바다와 신밧드의 배(Море и корабль Синдвада)

2. 칼렌다 왕자의 이야기(Рассказ царевича Календера)

3. 왕자와 왕녀(Царевич и царевна)

4. 바그다드의 축제(Багдадский проздник) / 청동기사가 있는 바위에서의 난파

하지만 이러한 표제는 두 번째 인쇄판이 나올 때 삭제되어 버렸습니다...그것은 표제가 주는 선행적 암시에 의하여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죠. 대신에 전체적인 내용을 암시하는 문장 하나만 머릿글로 남겨두고 있다.

“술탄(왕) 샤리아르는 여성들이 불신과 부정의 대상이라고 생각했고 누구든지 첫날밤을 보낸 뒤에는 죽이기로 맹세했다. 그러나 왕비 세헤라자데는 왕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어 그의 흥미를 계속 돋게 하였고 그녀를 죽이는 일을 하루하루 미루다가 1,001일만에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결국 잔혹했던 자신의 맹세를 포기하게 되었다. 왕비 세헤라자데가 샤리아르 왕에게 해주었던 이야기들은 이상한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위해 왕비는 시인들의 시와 민요의 가사를 빌려 이야기를 짜맞추었고, 그것을 왕에게 들려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음악은 오늘날 그를 대표하는 음악일 뿐만 아니라 5인조의 음악 가운데서 무소르그스끼의 독특한 작품 ‘전람회의 그림’과 함께 전세계에서 가장 자주 연주되고 녹음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동양적인 선율과 그것이 가져다 주는 아련한 판타지 내지 옛이야기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 그러면서도 한 장면 한 장면 그림과도 같은 뚜렷한 색채감은 차이코프스키마저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표제 음악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되고 있다.

이 곡은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1887년 10월 22일 성 뻬쩨르부르그 마린스끼 극장에서 동 극장 관현악단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이후 림스끼-꼬르사꼬프는 이 곡에 대하여 자신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세헤라자데의 작곡에 즈음하여 내가 더듬어간 프로그램은 ‘아라비안 나이트’ 가운데 관련성이 없는 각각의 에피소드와 정경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었는데, 여기에는 바다와 신밧드의 배, 칼렌다 왕자의 환상적인 이야기, 왕자와 왕녀, 바그다드의 축제와 청동의 기사가 앉아있는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배의 4가지 이야기가 각 악장 속에서 보여지는 것이었다. 독주 바이얼린을 위하여 작곡된 1,2,4악장의 짧은 도입부와 3악장의 경과악구는 통일적인 연관성이 있으며, 세헤라자데 자신이 잔혹한 술탄에게 불가사의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4악장의 결말은 같은 예술적인 목적을 지닌 것이다.

나의 모음곡 중에서 동일한 시적인 이념 혹은 관념으로 맺어진 유도동기(라이트모티프)를 찾아내려 해도 소용없는 것이다. 반대로, 많은 경우에 있어서 모든 명백한 라이트모티프는 순수하게 음악적인 소재 혹은 교향악적인 발전을 위하여 선택된 모티브들인 것이다. 이렇게 선택된 모티브들은 서로 교차되고 얽히면서 모음곡의 전 악장을 통하여 진행되고 침투된다. ...(중략)...이를테면 칼렌다 왕자의 이야기에서 처음 나타나는 여린 음의 트럼본과 트럼펫에 의한 날카로운 팡파르의 모티브는 4악장에서 배가 난파되는 부분의 묘사에 새롭게 등장하는데, 이 에피소드는 칼렌다 왕자의 이야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칼렌다 왕자의 이야기에 나오는 제 1 주제와 3악장에 나오는 왕녀의 주제(클라리넷)는 바그다드의 축제에 나오는 두 번째 주제로 변용될 뿐 아니라 빠른 템포로 나타난다...(중략)...첫 부분에서 세헤라자데의 잔혹한 남편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이는 유니즌의 악구는 칼렌다 왕자의 이야기에서 재현되지만 이 경우에서는 샤리아르 왕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즉, 림스끼-꼬르사꼬프의 또 다른 기록을 빌어 말하자면, 작곡자는 어떤 이야기에 대해 순차적인 묘사에 구애 받지 않고 듣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의 환상을 찾기 위한 실마리가 되는 표제만 부여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앞서 나온 악장의 어떤 부분이 뒤에 나오는 거의 같은 음악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서로 연관된 것이라고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림스끼-꼬르사꼬프가 남긴 수많은 음악들 가운데서도 우리들을 순식간에 마법의 양탄자에 태워 아라비아의 신비한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가듯 해주는 이 곡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 몽환적인 아름다움은 길이길이 남아있을 것이다.

글 출처 : http://www.goclassic.co.kr

 

아름다운 이웃은 참마음 참이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