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송

Help Yourself - Tom Jones│1968

리차드 강 2009. 9. 22. 18:29

Help Yourself - Tom Jones

Help Yourself (Decca UK 1968)

Sir Thomas Jones Woodward (1940 - )

Side. A - Help Yourself

Love is like candy on a shelf You want to taste and help yourself The sweetest things are there for you Help yourself, take a few Thats what I want you to do.

Were always told repeatedly The very best in life is free And if you want to prove its true Baby Im telling you This is what you should do

Just help yourself to my lips To my arms just say the word, and they are yours Just help yourself to the love, In my heart your smile has opened up the door

The greatest wealth that exists in the world, Could never buy what I can give Just help yourself to my lips To my arms, and then lets really start to live

Allllllllll right. yeah

My heart has love enough for two More than enough for me and you Im rich with love, a millionaire Ive so much, its unfair Why dont you take a share

Just help yourself to my lips To my arms just say the word, and they are yours Just help yourself to the love, In my heart your smile has opened up the door

The greatest wealth that exists in the world Could never buy what I can give So help yourself to my lips, to my arms And then lets really start to live Just help yourself to my lips To my arms just say the word, and they are yours Just help yourself to the love

In my heart your smile............[fade]

사랑은 선반 위의 사탕 같은 거예요 당신이 맛 보기를 원하면 저절로 그렇게 되지요 당신을 위한 가장 감미로운 것이에요 당신이 했으면 하고 내가 원하는 바로 그것이기도 하고요

우리는 항상 되풀이 해서 말했죠 인생에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자유라구요 그게 사실인지 당신이 증명하기를 원한다면 이거야말로 당신이 해야 할 일이리고 말하는게예요

내 입술을 마음대로 가지세요 나를 마음대로 안으세요 그것들이 당신 소유라는 말이에요 나의 사랑을 마음대로 누리세요 당신의 미소가 닫힌 문을 열었어요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 가장 위대한 행복은 내가 드릴 수는 있어도 결코 돈으로 살 수 없어요 내 입술을 마음대로 가지세요. 나를 마음대로 안으세요 그러면 진정한 삶이 시작되는 거예요

내 가슴엔 두 사람에게 충분한 사랑이 있어요 나와 당신을 위해 충분히 님칠만큼 말이에요 난 사랑으론 부자예요. 백만장자 난 너무 많이 가지고 있죠. 불공평하게도 말이에요 당신은 왜 나눠가지지 않는 거예요.

내 입술을 마음대로 가지세요 나를 마음대로 안으세요 그 말은 그것들이 당신 소유라는 말이에요 나의 사랑을 마음대로 누리세요 당신의 미소가 닫힌 문을 열었어요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 가장 위대한 행복은 내가 드릴 수는 있어도 결코 돈으로 살 수 없어요 내 입술을 마음대로 가지세요 나를 마음대로 안으세요 그러면 진정한 삶이 시작되는 거예요.

     

     

TOM JONES 1940년 영국 남부 웨일즈지방의 광산촌에서 태어난 탐 존스는 본명이 토마스 존스 우드워드(Thomas Jones Woodward)였다. 타고난 노래 실력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성가대 활동을 했던 그는 17세에 이미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있었으며 가족 부양을 위해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1963년에 결국 Tommy Scott And The Senators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한 그는 고든 밀스라는 음반 업계 관련자의 눈에 들어 런던으로 오지만 그의 창법과 무대매너가 너무 마초적이라는 이유로 메이저급 레코드사들은 그의 음반 취입에 난색을 보인다.

그러나 결국 64년 데카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그의 최대 히트곡이랄 수 있는 'It's Not Unusual'을 발표한다. 이후 그의 인기 행진은 별다른 슬럼프 없이 지속되었으며 88년에는 프린스와 함께 발표한 'Kiss'가 전 세계를 강타한다.

     

     
     

:::: Tom Jones ::::

1940년 영국의 사우스 웨일즈 지방의 광산촌에서 태어난 톰 존스(Tom Jones, 본명;Thomas Jones Woodward)는 10대 시절(17세)에 결혼을 해 생계의 방편으로 한 때 막노동꾼, 재단사, 선술집의 가수 등 갖은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로컬 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정식 싱어로서 팝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자신이 결성한 토미 스코트 앤 더 시내어터스(Tommy Scott And The Senators)라는 밴드를 통해서였다.

이 그룹에서 활동하던 중 그를 눈여겨본 뮤지션 고든 밀스(Gordon Mills)라는 음반업자의 도움으로 솔로로 전향, 당시 인기있던 영화제목을 따 이름을 톰 존스로 바꾼다. 하지만 당시 그의 창법과 무대매너가 너무 마초적(남성우월주의)이라는 이유로 메이저급 레코드사들은 그의 음반 취입에 난색을 보인다. 그러다 결국 데카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1964년 첫 싱글 [Chills And Fever]를 발표했고 이듬해 그의 최대 히트곡인 'It's Not Unusual'을 발표한다. 'It's Not Unusual'이 영국차트 정상과 미국차트 탑텐에 오르면서 그는 본격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며 'What's New Pussycat', 'With These Hands', 'Thunder Ball', 'Little Lonely one' 등이 히트행진을 이어나갔다.

당시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를 연상시키는 열정적인 무대매너와 테너에 가까운 풍부한 성량의 보컬을 구사하며 뭇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60년대 브리티쉬 인베이전의 물결 한가운데에 그는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면 수많은 여성팬들이 속옷을 벗어서 무대위로 던지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66년경부터 그는 이미지 변신을 시도해 'Green Green Grass Home', 'Detroit City' 등 컨트리 히트송을 발표한다. 최전성기였던 60년대 말에는 미국 TV에도 진출, 3년간 [This Is Tom Jones]라는 쇼프로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이후 라스베가스로 거점을 옮긴 톰 존스는 라이브 무대 활동에 전념하는 한편 [Help Yourself], [Tom Jones Live In Las Vegas] 등 히트앨범을 발표하면서 80년대 초반까지 꾸준히 인기를 유지해갔다.

1988년 그는 또 한번의 이미지 변신을 감행한다. 프린스(Prince)의 히트싱글 'Kiss'를 리메이크하면서 일렉트로닉 댄스 스타로 거듭난 것이다. 그의 노래는 클럽가를 강타하며 다시 한번 톰 존스의 명성을 공고히 다졌다. 93년에는 영국의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모습을 드러내는 등 5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파워풀한 보컬과 무대매너로 청중들을 열광시켰다. 94년에 댄스팝 앨범 [The Lead And How To Swing It]을 발표한 데 이어 최근에는 후배 뮤지션들과의 듀엣으로 엮은 리메이크 앨범 [Reload]를 발매, 노장의 저력을 과시했다.

팝, 록, 컨트리, 댄스, 테크노 등 장르를 넘나들며 변신을 거듭해 온 톰 존스는 'Jones The Voice'라는 별명대로 바리톤에서 테너의 음역까지 아우르는 놀라운 보컬의 소유자이다. 이제는 60을 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나이를 잊게 만드는 열정적인 무대 매너와 쇼맨쉽으로 음악팬들을 만족시켜주고 있다. [ From Changgo.com ]

     

     

톰 존스의 목소리는 크다. '타이거 톰'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포효하는 그의 넓고 거칠은 창법은 헤비 메틀계의 데이비드 리 로스와 견줄만하다. 만약 그가 70년대에 음악을 시작했더라면 최고의 메틀 보컬리스트가 되었을 것이다.

교회 성가대화 중학교 합창단 시절 톰의 큰 목소리는 늘 선생님의 지적을 받았다. 전설적인 재즈 트럼펫터 바디 볼든의 연주가 1마일 밖에까지 들렸다지만 톰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그의 고향 웨일즈에서 런던까지 울려 유리창이 깨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한 목소리가 미국시장으로까지 전파된 것인지 톰은 클리프 리처드가 '영국의 엘비스'에 국한된 인기를 얻는 동안 미국에서 세계적인 수퍼스타가 되었다.

사우스 웨일즈의 폰티프리드 태생('40.6.7. 본명: Thomas Jones Woodward) 톰 존스는 걷기 시작하면서 성가대에서 노래할 정도로 조숙했다. 그래서인지 정규 교육을 마친 16세에 결혼까지 했다. 그러나 철도 들기전에 가장이 된 톰은 생계를 위해 공자상의 막노동에서 외판원까지 다양한 종류의 직업을 전전해야 했다.

그러던 시절에 톰은 가수의 꿈을 키우며 그룹 Tommy Scott And The Senators를 조직하여 63년에는 어느 정도 이름을 날릴 수 있었고, 이듬해에는 고든 밀스를 만나게 되어 성공가로에 들어서게 된다. 고든은 톰의 동향 4년 선배로 보컬 트리오에서 활동하다 작곡가와 매니저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면서 톰이 이끄는 그룹의 공연을 보게된 것. 그는 톰에 이어 잉글버트 험퍼딩크 등을 키워낸 영국 뮤직 비즈니스계의 대부이다.

톰의 매니저가 된 고든은 우선 톰의 이름을 63년 영국 영화의 제목 그대로 톰 존스로 고쳤고, 런던의 유명의 클럽 무대에 서게 해주었다. 그러나 악을 쓰듯 너무 날카로운 톰의 목소리와 세련되지 못한 율동으로 런던에서의 시작은 순조롭지만은 않았는데, 하지만 곧 대 히트는 시작되었다.

톰의 첫 히트곡은 B.S.차트에도 10위('65.4)를 기록한 'It's Not Unusual'로, 이 곡은 원래 고든이 다른 여가수에게 써주었으나 반응을 얻지 못했는데, 톰이 다시 레코딩하여 히트시킨 것이다. 이후 톰의 히트곡은 계속 쏟아져 'What's New Pussycat?'이 B.S.차트 3위('65.6)까지 오른 것을 비롯, 65년 한해에만 5곡이 히트를 기록했다.

고든은 처음에 톰을 십대 팬들을 겨냥한 스타로 키우려 했다. 그러나 톰의 모습이 너무 위압적이며 저돌적이어서 십대들이 두려워 한다는 판단아래 곧 성인 취향으로 전환했다. 톰이 엘비스처럼 으리으리한 턱시도의 정장을 하고 엉덩이를 휘둘러대며 등장하자 사람들은 곱슬 거리는 검은 머리와 호랑이 눈처럼 투기가 서려있는 눈을 보고 '호랑이 같은 톰'(Tiger Tom)이라는 별명을 붙혀주었다.

이즈음 톰은 내시빌의 작곡가인 컬리 풋맨의 곡 'Green, Green Grass Of Home'을 불러 영국 차트 3주 정상과 B.S.차트 11위('66.12)를 기록하며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이후 톰은 66년부터 71년까지 매해마다 3-5곡을 히트시켰는데, 그중에서 B.S.차트 15위('68.3)곡 'Delilah'.67년 9월에 49위까지 올려 놓았다가 다시 69년 12월에 6위를 기록하는 'I'll Never Fall In Love Again'. 5위('69.12)곡 'Without Love(There Is Nothing)'.14위 ('70.8)곡 'I(Who Have Nothing)'.2위('71.2)곡 'She's A Lady'.41위 ('71.10)곡 'Till'등이 우리에게도 커다란 반응을 불러 모았다.

한편 톰은 리메이크의 명수이기도 했다. 장르를 가리지 않은 톰의 가창력은 발라드는 더욱 진하고 감동적으로, 록은 터질듯한 박력으로 처리하여 오리지널을 능가하는 곡으로 만들었다.

72년부터 톰의 전성기는 지난듯 했으나 TV쇼 프로그램의 사회자와 라스베거스 무대에서의 인기는 식을줄 몰랐다. 그리고 고든 밀스의 지휘를 받으며 레코딩 활동을 계속했는데, 76년 앨범 「Say You'll Stay Until Tomorrow」의 타이틀 곡을 15위('77.1)에 올려놓으며 건재를 과시했다. 타이틀곡과 함께 이 앨범에는 'Proud Mary'.'Papa'.'My Way'.'Anniversary Song'.'Ebb Tide'등이 수록되어 올드 팬들에게 반가운 선물이 되었다. 이어진 77년 앨범 「What A Night」 역시 타이틀곡과 'No one Gave Me Love'.'I Wrote This Song(To send My Love To You)'등이 히트했다.

톰의 80년대 활동은 계속되는 라스베거스 무대와 함께 'All The Love Is on The Radio'와 'Give Her All The Roses'를 히트시킨 85년작 「Love Is on The Radio」까지 컨트리 스타일로 일관했다. 86년에는 영원한 음악적 동반자인줄 알았던 고든 밀스가 타계하는 슬픔이 도래했으나, 이듬해 타이틀곡과 'A Boy From Nowhere'를 히트시킨 앨범 「Matador」로 스스로의 발판을 다졌다.

88년에는 이색적으로 테크노 팝 그룹 아트 오브 노이즈와 함께 프린스의 곡 'Kiss'를 레코딩하여 B.S.차트 31위('89.1)에 올려놓았고, 이듬해에는 「Move Closer」를 발표하며 끊임없는 활동을 계속했다. 톰의 근작은 자이브에서 크리셜리스로 이적하여 91년에 내놓은 「Carrying A Torch」로, 반 모리슨이 프로듀스.작곡.연주 등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이 앨범은 아일랜드 출신 반 모리슨과 웨일즈 출신 톰이 경지에 이른 기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내한공연을 가졌던 83년에 큰 아들 마크가 아들을 낳아 43세의 나이로 할아버지가 된 톰은 87년에 손녀를 보았고, 92년 52세의 어엿한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의 음악적 열정은 아직도 20대에 머물고 있다. 현재 톰 존스의 가족은 모두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