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988 - Aria - Simone Dinnerstein

리차드 강 2014. 10. 29. 01:08

The Goldberg Variations in G Major, BWV988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988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1. Aria & 32. Aria da capo

Simone Dinnerstein - Aria & Ragna Schirmer - Aria da capo

     

밤의 숨결을 깨우는 피아노의 정수

1742년 바흐는 "클라비어 연습곡집(Clavierubung book) 제4부"로서 "2단 건반 달린 클라비코드"를 위한 여러가지 변주를 지닌 아리아"로 출판 했습니다. 뒤에 이 곡집은 "골드베르크변주곡"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현재에도 바흐의 클라비어곡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언듯 부제만 보더라도 이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요즘은 피아노에 맞게 교정된 악보로 연주를 합니다.

이것은 그의 제자이며 드레스덴 주재 러시아 대사 카이절링크 백작의 쳄발리스트인 골드베르크(Johann Gottflied Goldberg)를 위하여 작곡하였습니다. 바흐의 좋은 후원자였던 백작은 불면증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 동안 자신을 위로해 줄 음악을 작곡하여 달라고 바흐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태어난 것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던 겁니다. 실상 백작을 위하여 밤에 연주를 하여야 했던 사람은 바로 골드베르크였죠.

이 곡에 선택된 테마는 "안나 막달레나를 위한소곡집"에 들어 있는 사라방드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30번 변주곡에는 두 개의 대중적인 멜로디인 "나는 배추와 담배에 질렸어요"와 "오래전부터 나는 너와 함께 있지 못하였네"를 삽입하였습니다. 백작은 이 곡을 무척 사랑하였으며 바흐에게는 프랑스 금화 100냥으로 금술잔을 만들어 사례하였습니다. 덕분에 "골드베르크변주곡"은 다른 모든 작품보다 바흐에게 가장 많은 결실을 안겨다 준 곡이 된 셈이 되었습니다. 이 곡은 주제를 처음과 끝에 두고 그 사이에 30개의 변주를 질서정연하게 배열하여 전체를 두 부분으로 나눈다는 논리적인 구성이 잡혀 있습니다. 각 변주가 모두 상상력이 넘치는 것으로서 변주곡 사상 불멸의 걸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1. 개설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바흐의 가장 매력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흔히 바흐는 딱딱하고 어려우며 뭔가 고루한 느낌의 음악인 것 같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접하게 된다. 그러나 골드베르그 변주곡의 아름다움, 특히 주제곡인 아리아의 단순하면서도 명상적인 선율 속에 숨어있는 무한한 아름다움을 한번 맛보게 되면 이와 같은 편견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인간이 만들어낸 변주곡 중에서 이와 같은 위대한 작품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매우 회의적이다. 그 누구도 단순한 아리아 한 곡을 바탕으로 이렇게 다양하고 생동감 넘치며 변화무쌍한 작품을 만들어 내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만약 바흐의 다른 곡을 모두 없애버리고 이 한 곡만 남겨둔다 하더라도 그의 이름은 음악사에서 여전히 불멸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의 아름다움에 심취하고 그 다양한 변화의 조화로움에 감탄하였던가.

음악학자 가이링거(K.Geiringer)는 바흐가 이 변주곡에서 클라비어 음악의 여러 가지 분야를 총결산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거대한 작품은 작곡자의 끝없는 상상력과 최고의 기술적 수완이 발휘된 작품으로서, 18세기의 클라비어 변주곡 중 이와 견줄만한 것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2. 구성

이 변주곡은 장중하면서도 아름답고 명상적인 사라방드 스타일의 G장조 주제와 그에 이어지는 30곡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리아' 라고 이름 붙여진 G장조 4분의 4박자의 주제곡은 1725년에 작곡된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에 실려있는 '사라방드'에서 취해진 것이다.(이 모음곡에는 영화 <접속>에 인용되어 유명한 '미뉴엣'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어지는 30개의 변주곡 중에서 세 곡은 G단조이고 나머지는 모두 G장조이다. 각각의 변주곡은 32마디의 저음부를 공유하면서 이것이 다양하게 변주되는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멜로디 라인이 저음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구사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아리아의 선율보다는 베이스 라인에서 변주의 소재를 취함으로써 각 변주의 멜로디나 곡의 형식은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바흐는 이 곡에서 사라방드, 푸가, 토카타, 트리오 소나타, 코랄, 아리아 등의 여러 가지 형태의 곡들을 자유롭게 배열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여러 곡들이 무작위로 배열된 것이 아니라 세곡 단위로 묶여져 있으며 각 묶음의 첫곡은 항상 카논(돌림노래형식의 일종) 형식인데, 이 각각의 카논들은 한 음정씩 증가하는 규칙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를테면 3변주는 1도 카논, 6변주는 2도 카논, 9변주는 3도 카논..... 27변주는 9도 카논 하는 식으로). 그리고, 마지막 제 30변주에는 그 당시 유행하던 민요 두곡의 멜로디가 인용되어 있는데, 이 곡의 가사내용은 "나는 오랫동안 너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돌아오라,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다오" 라는 내용이다. 이 마지막 변주가 끝나면 다시 처음과 동일한 아리아가 반복되는데, 이는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간청에 못 이겨 아리아가 다시 나타나는 것 같은 재미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바흐는 이와 같은 음악의 구조 내에서의 수학적인 질서를 매우 중요시하였는데, 골드베르그 변주곡 뿐만 아니라 B단조 미사나 마태 수난곡 등의 대곡에서도 아주 정교한 수학적 규칙에 따라 음악이 구성되어 있어서 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물론 이 곡은 갖가지 수수께끼와 많은 일화들을 간직하고 있으나 우리는 거기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단순함 속에 포함되어 있는 다양함과 다채로움, 그리고 무한한 생명력, 음으로 이루어지는 정신세계의 위대함, 이러한 것들이 이 곡에 숨어있는 진정 위대한 보물들이며 바흐 음악의 진면목이 이 한곡에 집대성 되어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곡과 에피소드

이 곡은 '골드베르그 변주곡'이라고 불리어지게 된 에피소드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1802년에 포르켈이라는 사람이 펴낸 바흐의 전기 속에 이 작품의 작곡경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바흐가 지내던 드레스덴 주재의 러시아 대사였던 카이제를링크 백작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골드베르그라는 쳄발로 연주자를 고용하여 그가 잠들때까지 밤마다 옆방에서 쳄발로를 연주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의 불면증은 점점 더 심해져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된 백작은 그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바흐에게 밤에 들을 음악을 작곡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그 요청을 받아 작곡된 것이 바로 이 변주곡이다. 카이제를링크 백작은 이 곡에 몹시 흡족해서 '나의 변주곡'이라 불렀고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골드베르그를 불러서 '나의 변주곡'을 연주해달라고 하곤 했다. 백작은 이곡에 대한 사례로 급잔에 금화를 바흐에게 가득담아 사례하였으며 이는 바흐의 1년 월급을 웃도는 금액으로서 바흐가 평생 받았던 사례비 중 가장 많은 것이었다"

라고 말하면서 포르켈은 이 에피소드를 끝맺고 있다.

이 곡은 이러한 약간은 로맨틱한 에피소드를 배경으로 널리 알려져 왔지만 그 신빙성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변주곡이 출판된 것은 1742년 경이며 작곡시기는 1740년 경으로 추정된다. 이때는 골드베르그의 나이가 불과 13세의 어린 소년이었으며, 과연 바흐가 13세의 소년을 위해 이런 복잡한 곡을 작곡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게 된다. 게다가 1742년의 출판본에는 거액의 사례비를 주었다는 카이제를링크 백작에 대한 헌정사나 감사문은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과연 기존의 에피소드가 사실일까 하는 의문은 더욱 깊어진다.

카이제를링크는 바흐와 평소 친분이 있었던 사람이었으며 바흐가 궁정작곡가의 직함을 가지게 되는데에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바흐는 38세에 성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 (합창장) 로 부임하여 65세에 사망할 때까지 이 직위에 있었다. 이 자리는 여러 가지로 교회당국과의 마찰이 심한 자리였으며 곧은 성미에 주변성이 없는 바흐로서는 시의원들이나 목사들과의 충돌이 잦았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라이프찌히의 통치자인 작센 선거후에게서 1736년 11월에 '폴란드왕 겸 작센 선거후 궁정작곡가' 라는 직함을 수여받게 되어 시의 고위층 인사들과의 접촉시 매우 유리한 입장이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사람이 바로 카이제를링크 백작이었다. 바흐는 평소 그와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번은 새로 제작된 쳄발로의 성능을 시험하는 자리에서 바흐가 자신이 작곡한 변주곡 전곡을 연주하였었고 카이제를링크 백작은 그 곡을 매우 칭찬하였다고 한다. 이에 바흐는 이 곡이 출판되면 한 권을 보내드리겠다고 말하였다는데, 아마도 이 일화와 평소 두사람의 친분을 바탕으로 하여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에피소드가 각색되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최근의 이론이다.

이상은 웹진 'Go! classic'에서 인용함.

글: 김태우 (go! classic)

     

     

곡해설

바흐: 이탈리아의 선율

바흐의 라이프치히 음악감독 전임자인 요한 쿠나우는 1689년 “새 건반 연습곡집 Neuer Clavier-Ubung”을 출판했다. 글자 그대로는 ‘건반 연습’ 이라는 말이다. 바흐도 쿠나우의 선례를 따라 1726년부터 1741년 사이에 네 가지 악보를 출판했다. 이 전집은 여섯 곡의 파르티타로 시작된다. 둘째는 콘체르토와 춤곡이 딸린 서곡이다. 셋째는 전주곡과 푸가로 구성된 오르간을 위한 코랄 프렐류드이다. 그리고 네 번째가 바로 여기 소개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혹자는 바흐가 의도했던 ‘학습 의도’를 가볍게 취급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말하는 ‘학습 의도’에 대한 이해를 넓힐 필요가 있다. 단순히 “교습생에게 어떻게 건반 연주를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제한적인 의미가 아니라 넓은 의미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즉 바흐의 키보드 음악은 작곡을 어떻게 할지, 감상을 어떻게 할지에 국한 하지 않고, 인생 자체의 질서, 대칭, 패턴, 변화 그리고 심지어 인생의 본질은 물론 정서 표현을 조정하는 방법까지를 망라했기 때문이다.

원래 표제는 매우 길다. “음악애호가들의 정신을 새롭게 하기 위한, 다양한 변주곡과 아리아로 구성된 2단 하프시코드를 위한 키보드 연습곡”이라고 되어있다. 새로운 표제에 얽힌 뒷이야기는 바흐의 전기를 쓴 요한 니콜라우스 포르켈이 1802년에 출판한 책에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카이저링크 공작은 작센 선제후 궁에 파견되었던 전직 러시아 전권 공사였고 임지인 라이프치히에 자주 거주했다. 당시 그는 골드베르크를 데려 왔는데..... 바흐로부터 음악을 교습 받게 하였다. 공작은 허약했고 자주 불면증으로 시달렸다...... 공작은 바흐에게 클라비어 곡을 골드베르크에게 작곡해 주되, 조용하고 경쾌한 곡이면 이 곡을 듣고 불면증을 어느 정도 견뎌 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바흐는 공작이 바라는 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음악이 변주곡이라 생각했다. 계속적으로 비슷비슷한 기본적인 화음이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바흐는 변주곡의 작곡을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바흐의 음악은 당대 예술의 표본이었으며, 이 변주곡들 역시 바흐의 손에 의해 완성되었다. 이 작품은 바흐가 후세에 남긴 유일한 변주곡이 되었다. 그 후로 공작은 이 곡을 부를 때 반드시 ‘그의’ 변주곡이라고 부르게 했다. 공작은 결코 이 곡에 싫증을 느낄 때가 없었고 오래 동안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때면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해 보게.” 하고 주문했다고 한다. 바흐가 이 곡을 작곡해 받은 보수는 다른 어느 경우보다 많았다. 공작은 바흐에게 황금 술잔에 금화 100루이를 채워 주었다고 전한다.” 번역. A. C. F. Kollmann (1820)

요즈음 학자들은 위의 이야기에 대해 회의적이다. 출판 악보는 카이저링크에게 헌정된 것이 아니고 또 포르켈이 주로 자료를 제공받은 빌헬름 프리데만과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도 당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도 들은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꾸민 것이라 본다. 이 곡이 출판된 때 골드베르크는 열네 살에 불과했고, 작곡되고 바로 연주했다면 정말 발달이 빠른 조숙한 연주자였을 것이다. 변주곡의 구조는 공작이 요구한 것과 매우 달랐기에 위의 이야기가 사실이 되기 위해서는 원래 골드베르크를 위해 작곡한 변주곡 몇몇을 기초로 해 좀 더 복잡하고 정교한 곡을 추가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포르켈은 바흐가 젊었을 때 다른 변주곡을 작곡한 것을 모르고 있었고, 1725년에 작곡된 바흐의 안나 막달레나를 위한 음악노트에 아리아가 포함된 것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이 아리아는 변주곡들에서 장식된 형태로 베이스에 위치하는데, 이 베이스는 바흐가 화성과 함께 전통적으로 변주곡에서 매우 중요시 여겼던 요소이다. 그러나 바흐가 중요시 했던 이러한 변주 방식은 그 이후로 쓰이지 않게 되었고, 그리하여 포르켈은 이러한 또 다른 예를 들 수가 없었다. 처음 여덟 마디에 쓰인 베이스 라인은 셀 수 없이 많은17세기 작품들에서 쓰여온 것이며(즉흥곡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반종지(5도로 맺는 종지)로 이어지는 다음 여덟 소절 또한 독창적이라 할 수 없다. 두 번째 부분인 관계 단조로 끝나는 마디 24의 종지는 예측하기 힘든 진행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이 곡의 기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테마가 가지고 있는 견고한 화성학적 구조가 우리를 바흐의 위대한 대위적 기술과 멜로디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이 중요하다.

당시 키보드 음악은 악기를 특별히 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흐는 이 곡의 악기를 분명히 밝혔다. 아무 하프시코드라도 괜찮은 것이 아니고, 반드시 두 단의 건반이 있는 하프시코드라고 정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소리를 각각 다르게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연주도 쉬웠다. 손이 꼬이지 않게 했고 악구와 악절을 좀 더 쉽게 연주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바흐는 건반이 단벌인 키보드 악기의 경우 양손을 교차시켜 연주하도록 지시했다. 그가 살고 있을 당시 포르투갈 및 스페인에서 건반 양식을 현저하게 발전시킨 스카를라티처럼 바흐도 양손으로 건반의 최대 범위까지 활용하도록 했다.

이 변주곡들을 순서대로 살펴보면, 확실히 다른 곡과 구별되는 특징을 볼 수 있다. 매 세 번째 변주마다 카논의 도입부를 두었고, 동음의 카논(한 성부가 다른 성부를 같은 음정으로 모방)부터 9도 카논(두 성부가 옥타브와 한 음 더 떨어진)까지 가게 된다. 곡 전체는 두 부분으로 나뉘었고 두 번째 부분은 프랑스풍 서곡으로 시작한다. 아마 이는 15번 변주 뒤 잠깐의 휴지를 염두에 둔 것 같다. 마지막 변주에는 베이스에 몇 개의 통속 선율을 엮었다. 이것은 ‘Ich bin so lang nicht bei dir’ (나는 너무 오랫동안 너와 떨어져 있었네)와 ‘Kraut und Ruben’ (양배추와 무)인데, 이는 이 작품을 너무 심각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이다.

그럼 이 곡의 구조 속에 음악 외적인 의미는 없는 걸까? 단순히 어떤 이는 30이 의미하는 바는 신, 구약성서의 상징인, 십계와 삼위일체의 산물이라 한다. 좀 더 복잡한 논쟁으로는 고전 수사학을 동원해서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천동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바흐는 말미에 아리아를 되풀이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저녁을 정돈되게 마무리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바흐는 여러 절을 거쳐 처음으로 다시 돌아오는 노래들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혹자는 이를 영원성의 상징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피렌체에서 태어난 페루치오 부조니는 열 살 때에 오스트리아로 건너갔고, 10년 뒤에는 독일에 정착했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서로 다른 음악적 전통 사이에서 해법을 찾지 못했던 그는 리스트 이후의 피아노 테크닉의 발전과 신고전주에 대한 신념 사이에서도 지속적인 갈등을 겪게 된다. 그의 바흐 편곡은 생산적인 투쟁의 산물이다. ‘샤콘느’는 이탈리아를 통해 독일에 들어 왔고, 부조니는 이 바흐의 비범한 바이올린 변주곡(골드베르크 변주곡보다 간단한 저음 주제임에도)을 비르투오조를 위한 피아노곡으로 재창조하였다.

배정은 대리(je.bae@yourst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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