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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 시인과 촌장 │ 音樂의 美學

리차드 강 2013. 11. 4. 12:42

고양이 - 시인과 촌장

시인과 촌장 2집 <푸른 돛> (1986 SRB)

시인과촌장 2기 Siinkwa Chonjang 1985-

Track No.3 - 고양이

 

<수록곡>
1. 푸른 돛(작사 작곡 하덕규)
2. 비둘기에게(작사 작곡 하덕규)
3. 고양이(작사 작곡 하덕규)   5:58
4. 진달래(작사 작곡 하덕규)

5. 얼음무지개(작사 작곡 하덕규)
6. 사랑일기(작사 작곡 하덕규)
7. 떠나가지마 비둘기(작사 작곡 하덕규)
8. 매(작사 작곡 하덕규)
9. 풍경(작사 작곡 하덕규)
10. 비둘기 안녕(작사 작곡 하덕규)

프로듀서 시인과 촌장

     

     

Introduction

"모두 억척스럽게도 살아왔어 / 솜처럼 지친 모습들 / 하지만 저 파도는 저리도 높으니 / 아무래도 친구, 푸른 돛을 올려야 할까봐."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이 80년대 중반의 새로운 질풍노도의 역동적인 선동이었다면, 내성적인 두 청년으로 이뤄진 '시인(市人)과 촌장(村長)'이 제시한 앨범 <푸른 돛/사랑일기>는 머릿곡 <푸른 돛>이 은유하듯이 이 도도한 흐름의 아기자기한 내면 풍경이다.
그러나 그 내면 풍경은 새털 구름 같이 날렵하지만 팽팽하기 이를 데 없는 긴장감으로 응축돼 있다.

그 긴장의 음악적 주인공은 바로 기타를 맡고 있는 함춘호이다. <비둘기에게>와 <떠나가지마 비둘기>에서 몽환적으로 미끄러지는, 또는 <고양이>의 서주와 간주에서 보여주는 투명한 어쿠스틱 기타의 악절은 90년대에도 조동익 밴드의 일원이자 일급의 세션 기타리스트로 자리잡게 되는 그의 위치를 결정짓는 것이다.

함춘호와 짝을 이루는 싱어송라이터 하덕규는 1983년에 솔로 앨범을 내놓은 바 있지만 그의 시대를 맞기 위해선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러는 중에도 그는 남궁옥분이 불러 알려진 <슬픈 재회>와 양희은의 80년대 걸작 <한계령>을 만듦으로써 허무주의적인 울림으로 가득한 또 하나의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재능을 알리기 시작했다.
진지한, 그러나 무겁지 않은 이 기타리스트와 싱어송라이터의 만남 뒤엔 나중에 '조동진 패밀리'로 불리게 되는 음악가들의 숲이 있었다.

조동진은 이 앨범이 넘어서고자 하는 그림자를 눈에 보이지 않게 제공하는 은자였으며, 그의 동생인 베이시스트 조동익은 이들의 충실한 음악적 동료였다.
이들은 본능적인 연대와 신뢰를 바탕으로 거품 같은 시장의 논리로부터 자신의 음악적 태도를 보호했다.
그리고 이 '비폭력적인 저항'의 태도는 자신의 음악 토대인 서구 대중음악의 문법을 토착화하는 음악적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비둘기'라는 화두가 전면에 깔린 이 비상한 앨범은 포크와 발라드, 록, 사이키델릭, 그리고 극히 부분적으로는 퓨전에 이르는 서구 대중음악의 자생적 토착화 과정을 진지하게 보여준다.
위태롭게 여겨질 정도로 섬세한 (그래서 80년대 후반에 이르면 기독교의 지평으로 날아가 버렸는지도 모르지만) 하덕규의 노래말 포착과 선율의 구성 감각은 함춘호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 완벽하게 벼려진다.
특히 앞면의 <고양이>와 뒷면의 <매>는 이들이 도달한, 아니 이 시대의 싱어송라이터들이 도달한 가장 지순한 경지이다.

시인과 촌장은 '아름다움'이 화장을 하고 거리로 나서는 풍속도 안에서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찾아 폐허의 뒷골목을 걸어가는 음유시인의 뒷모습이다. 그리고 이들이 찾아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바로 뒷면의 <풍경>에서 가장 단조로운 선율과 화성으로 응답하듯이 "모든 것들이 제 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다.....

     

     

그대는 정말 아름답군 고양이
빛나는 두 눈이며 새하얗게 세운 수염도


그대는 정말 보드랍군 고양이
창틀 위를 오르내릴 때도 아무런 소릴 내지 않고


때때로 허공을 휘젓는 귀여운 발톱은
누구에게도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을테지


캄캄한 밤중에도 넘어지지 않는
그 보드라운 발 아픔없는 꼬리
너무 너무 좋을테지


그대는 정말 아름답군 고양이
고양이
아~


높은 곳에서 춤춰도 어지럽지 않은
그 아픔없는 눈 슬픔없는 꼬리
너무 너무 좋을테지


캄캄한 밤중에도 넘어지지 않는
그 보드라운 발 슬픔없는 두눈
너무 너무 좋을테지


때때로 허공을 휘젓는 귀여운 발톱은
캄캄한 밤중에도 넘어지지 않는
높은 곳에서 춤춰도 어지럽지 않은

     

시인과 촌장의 [푸른 돛]은 그들의 2집이면서 80년대 한국대중음악의 르네상스 시대의 보물같은 앨범이다. 동아기획 소속으로, 직접적으로 조동진으로부터 포크의 영향을 받았으며, 어떤날과 함께 이후의 모던 록 계열의 밴드(언니네 이발관, 델리스파이스, 미선이 - 델리스파이스는 시인과 촌장과 같이 연주하기도 했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도 한 시인과 촌장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어떤날', '따로 또 같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고의 듀오이다. 동화 같은 가사에 하덕규의 여린 목소리가 덮어지고 그 사이를 ‘함춘호식 기타톤’이 관통한다. 작품의 기본 골격은 하덕규의 곡 쓰기에 있지만 함춘호의 독창적인 기타톤이 없었다면 ‘고양이’와 ‘얼음무지개’ 같은 명곡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80년대 특히, 85년?86년은 한국대중음악사가 정점에 있었던 시기였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들국화 1집, 어떤날 1집, 김현식 3집, 이정선 7집, 시나위 1집, 부활 1집, 우리 노래 전시회. '명반의 시대', '명반의 홍수', 등 어떤 수식어도 부족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 당시를 10대 시절로 보냈던 1970년 전후 출생자들은 한국대중음악사에서 최고의 수혜자였다.

많은 명반들 중에서, 나는 들국화, 어떤날, 시인과 촌장의 앨범을 ‘1980년대’ 한국대중음악의 3대 명반이라 부른다/부르고 싶다. 신중현, 김민기, 한대수, 산울림, 조동진의 배려(?)가 있다면 한국대중음악사의 3대 명반이라고 해도 ‘역사왜곡’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믿고싶다.(90년대 모던록 잡지 sub의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특집 기사에서 이 세 앨범은 10위 권 안에 모두 들었다.)

들국화의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어떤날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 ‘너무 아쉬워 하지마’ 등처럼 ‘고양이’, ‘얼음무지개’, ‘매’, ‘비둘기 안녕’도 처음 들으면 머리카락이 곧게 서는 전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독창성과 완성도면에서 당대 최고의 작품성을 자랑한다. 들국화가 ‘청년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아냈다면, 어떤날은 ‘문학소년’의 여린 감수성을 노래했다. 두 음악집단과 다른 지점에서 시인과 촌장은 ‘동화적 상상력’(전 sub, 현 plastic people, 김민규)을 통해 세상과 자아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속삭였다.

그 중에서 시인과 촌장은 상대적으로 두 밴드에 비해서 관심을 덜 받았다. 아마도 하덕규가 종교에 귀의함으로써 대중들 앞에 사라진 점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한편으로 시인과 촌장은 들국화가 가진 ‘록밴드’로서의 이데올로기를 가지지 못했고 째즈와 포크를 자연스럽게 넘나들었던 어떤날의 ‘고급스러움’을 가지지 못했다. 두 밴드에 비해 시인과 촌장은 소박하고 촌스럽다.

그러나 시인과 촌장의 동화(또는 동요)같은 가사는 전대미문의 가사쓰기 미학이며, 함춘호의 기타 플레이는 다른 기타리스트와 구별짓는 아우라를 만들어냈다. ‘고양이’에서 어쿠스틱 기타 연주, 삶의 치열함을 대변하는 듯한 ‘얼음무지개’ 중반부의 전투적인 기타 프레이즈, 특히 '매'의 슬라이드 기타 연주와 '떠나가지마 비둘기'에서의 일렉트릭 기타 솔로는 당대 최고의 기타리스트 이정선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만큼 훌륭하다. (이후 함춘호는 특유의 기타톤tone으로 90년대 탁월한 기타세션맨으로 활약한다.)

첫 곡(푸른 돛)부터 "우리 너무 숨차게 살아왔어....아무래도 친구 푸른 돛을 올려야 할까 봐"라고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본 작품은 비둘기시리즈(비둘기에게-떠나가지마 비둘기-비둘기 안녕)를 기본골격으로 해서 (푸른돛을 제외하면) 인간 이외의 생명을 매개체로 노래하고 있다. 시종일관 하덕규는 세상과 자아에 대한 고민을 다른 매개체를('비둘기', '고양이', '진달래', '매')을 통해 나타내고 있으며 그 내면 상태의 변화 또한 변화무쌍하여 듣는이의 감성을 여러 통로로 자극한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사랑일기', '풍경'도 훌륭하지만, 고양이가 노래하는 듯한 '고양이', 한편의 짧은 동화를 듣는 듯한 '얼음무지개', 매를 통해 본 비장한 세상과 슬픈 운명의 자아를 노래한 '매', 비둘기 시리즈 후반부 2곡(떠나가지마 비둘기, 비둘기 안녕)은 이 앨범의 백미이다. 하덕규의 곡은 단순히 다른 대상을 묘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예상을 뒤엎는 곡 전개로 자아의 내면을 드러내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컨셉트Concept 앨범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본 앨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고 있는데, 멜로디(하덕규의 목소리), 가사(동화), 기타플레이(함춘호의 목소리)가 중첩되어진 그 흐름이 빚어내는 효과는 10개의 노래를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하덕규는 함춘호와 결별하고 어떤날과 들국화 멤버들을 동원해 시인과 촌장의 또 하나의 명반 [숲]을 발표한다. 하덕규는 [숲]부터 서서히 자신의 노래에 종교적인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그래서 이 앨범에 대한 평가는 찬반으로 나뉘기도 한다. 이후 하덕규는 ccm가수로서 활동하고, 함춘호는 스튜디오 세션 기타리스트로 활약한다. 그들은 다시 합쳐 시인과 촌장의 새로운 앨범[The Bridge](2000)을 발표하면서 녹슬지 않은 실력을 보여준다.

출처 : 만나지 않는 만남

     

     

◆ 시인과 촌장 <푸른 돛>(1986년)

1980년대가 남긴 소중한 음악유산 중의 하나가 서정성의 극치를 보여준 '시인과 촌장'이다. 싱어송라이터 하덕규와 기타리스트 함춘호, 둘의 이상적 제휴가 만들어낸 시인과 촌장은 어지럽고 일그러져가는 시절에 투명한 소리와 시적(詩的)인 메시지로 당대 허(虛)했던 음악 감상자의 가슴을 매만지며 감동의 울림을 빚어냈다.

팀의 작가인 하덕규의 말에 따르면 동시대 록 밴드 '들국화'의 통쾌한 사운드와는 길이 다른 나지막한 사운드의 접근법이었다. (하덕규는 이전에 남궁옥분의 '슬픈 재회' 그리고 1980년대의 수작 포크송으로 기록되는 '한계령'을 써서 이미 싱어송라이터로서 입지를 구축했다) 하지만 그 나지막함은 세태에 굴복하는 패배주의적인 연약함이 아니라 자기성찰을 통해 비상을 꿈꾸는 내면의 꿈틀거림으로 표현되었다. 들국화가 위로 솟구쳐 올랐다면 그들은 속으로 파고들었다고 할까.

많은 사람들이 1986년에 발표된 이 앨범을 시인과 촌장의 처녀작으로 여기지만 실은 하덕규는 오종수와의 라인업으로 이미 1981년에 서영은의 단편소설의 제목을 빌린 '시인과 촌장'의 앨범을 발표한 바 있다. 실제로는 팀의 2집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하덕규는 함춘호와 짝을 이룬 이 회심작에서 그 때까지 자신이 바라던 음악의 정점 이를테면 격동의 1980년대를 살아간 젊은 세대의 고민, 갈등 등 사유 일반의 음악적 결정체를 일궈낸다.

얼핏 그 은은하고 맑고 투명한 아름다움으로 문학적 승화로 기억되곤 하지만, 그 밑에는 리얼리즘의 알레고리들이 도처에 잠복해 해석에 따라선 '저항적 표출'로도 볼 수 있다. 그 시대에 대한 예술적이지만 한편으로 리얼한 기록이기도 한 셈이다. 앨범을 여는 첫 곡 '푸른 돛'에서 이미 그 '더블 판타지'의 프리즘이 확인된다. '모두 억척스럽게 살아왔어/ 솜처럼 지친 모습들/ 하지만 저 파도는 저리 드높으니/ 아무래도 친구, 푸른 돛을 올려야 할까...'

여기에서 하덕규는 수록곡 '비둘기에게' '떠나가지마 비둘기' '비둘기 안녕'이 말해주듯 전체를 잇는 주제어로 비둘기를 삼아, 혼탁한 시절에 무뎌지지 않는 불변의 자아와 지고의 순수를 갈구한다. '비둘기에게'에서 그는 '천진난만하게 사는 나를/ 맥 빠진 눈을 가진 나를/ 부탁해, 부탁해, 부탁해...' 라고 절규한다.

함춘호의 기타연주는 그의 언어를 더욱 설득력 있게 전해준다. '얼음무지개' '풍경' 등의 곡에서 그는 물처럼 흐르면서 살포시 감겨오는 어쿠스틱 연주로, 때로는 강한 톤의 일렉트릭 기타솔로로 전체 사운드를 세련되게 채색해놓았다. '말하는' 기타가 따로 없을 것이다.

하덕규도 나중 “그가 없었다면 2집 앨범은 안 됐을 것이다. 그의 기타가 빛나는 앨범이다. 난 그때 내 노래를 연주와 편곡으로 풀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가 함춘호였다!”고 술회한다. 대중들이 강렬하게 기억하는 시인과 촌장도 2집의 하덕규 함춘호 라인업이었다. 그 대중들의 기억에 부합하듯 2000년, 하덕규와 함춘호는 14년 만에 다시 만나 < The Bridge >이란 타이틀의 컴백 앨범을 만들었다.

'고양이' '진달래' '푸른 돛' '매'와 같은 곡은 하덕규의 단아하면서도 애절한 가사와 멜로디, 함춘호의 기타언어가 완벽하게 결합한 산물이다. 갖가지의 아기자기한 실험들이 돋보이는 '고양이'와 '매' 정도만으로 앨범은 거뜬히 송라이팅의 걸작 서클의 문을 연다.

라디오에서는 '광장을 차고 오르는 비둘기들의 높은 노래 위에...사랑해요라고 쓴다' 하는 익숙한 노랫말이 등장하는 '사랑일기'가 줄기차게 사랑을 받았다. 1988년의 3집 앨범 '숲'에 수록되어 있고 나중 조성모에 의해 리메이크된 '가시나무'와 함께 그들 노래 중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 바로 '사랑일기'다. '풍경'은 2004년 자연을 강조한 한 아파트 CF의 배경음악으로 쓰여 지금의 기준에서도 드높은 서정적 미학이 재확인되었다.

서정성으로 쏘아올린 80년대 내면적 포크의 걸작. 포크는 언어의 예술이며, 시대언어의 장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언어와 어쿠스틱 기타와의 악수라는 포크의 패턴이 갖는 역사적으로 장구한 흡수력을 이만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앨범도 없다. 실로 '노래가 있는 풍경'이다. 마음만 갖춰진다면 지금도 그 고감도 가사와 연주는 어둠 속의 등불처럼 은은히 빛을 발한다. 2005년 9월

출처 : 임진모

     

     

[대중음악 100대 명반]14위 시인과 촌장 ‘푸른 돛’

시인과 촌장의 두 번째 앨범 ‘푸른 돛’은 어른들을 위한 동요다. 고민과 그리움이 함께 하며 섬세한 파장을 만들어낸다. 1985년 발표된 들국화의 데뷔 앨범이 80년대 초반부터 발아했던 언더그라운드의 포효라면 1년 후 등장한 이 앨범은 언더그라운드의 성찰이자 번뇌다. 사회와 직접적으로 맞닿으며 부대끼던 그 이전의 모던 포크와는 달리, 맞닿되 피하지 못하는 괴로움을 이 앨범은 담고 있다.

80년대라는 시기 못지 않게, 하덕규의 성장기도 상처투성이였다. 초등학교 때 부모의 이혼을 경험했고 아버지의 사업실패를 겪었다. 고등학교 때는 여러 번 가출을 해서 고향인 설악산에 텐트를 치고 살았다. 미술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미대에 입학한 건 몇 번의 좌절을 겪은 후였다. 그런 과정에서 그가 그리워한 것은 고향인 동해바다였다. 그 곳에서 뛰어놀던 어린 시절은 그의 이상향이었다.

그는 미술 못지 않게 음악을 좋아했다. 중3때 손에 넣은 기타를 독학으로 익히고, 훗날 화실을 경영하며 틈틈이 작곡을 했다. 서영은의 단편 제목에서 따온 시인과 촌장을 결성하고 81년 첫 앨범을 냈다. 그러나 기획사의 횡포로 그의 본래 의도는 사라지고 상업적 결과만이 남았다. 하덕규는 음악산업계를 떠나려 했다. 현실에서 적응할 수 없어 예술로 피했지만 돈이 결부된 예술은 더 이상 그의 은신처가 아니었다. 설악산에 올라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 때 만든 노래가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이다. 그 무렵 교류하던 김민기, 김창완, 전인권 등 새로운 음악을 모색하고 있던 뮤지션들과의 만남이 그에게 계속 음악을 하게 했다. 84년 함춘호를 만나며 다시 시인과 촌장을 시작했다. 다음해 컴필레이션 ‘우리 노래 전시회 1집’에 수록한 ‘비둘기에게’가 라디오를 중심으로 사랑 받으며 86년 ‘푸른 돛’을 냈다. 당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산실이자, 유일한 해방구였던 동아기획을 통해서다. 모든 노래를 하덕규가 만들고 함춘호는 연주를 맡았다.

이 앨범을 낼 당시에도 하덕규는 행복하지 않았다. 줄담배를 피워대고 위스키를 마셔야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괴로움을, 하덕규는 직설적으로 내뱉지 않는다. 서정적 은유만으로, 노래한다. ‘푸른 돛’ ‘고양이에게’ ‘사랑일기’ ‘진달래’ 같은 동화 속 단어들의 제목은 그에 걸맞은 단어들로 이뤄진 가사와 함께 엮인다. 하덕규는 고해성사대에 선 소년처럼 파르라니 떨리는 목소리로 그 단아한 단어들을 노래한다. 스스로의 괴로움을 잊고자 애써 뽑아냈을 밝고 차분한 멜로디들은 함춘호의 기타 연주와 함께 서정성의 극치를 획득한다. 하지만 그 밑에 깔려 있는 건 괴로움이다. 가사의 행간에는 지금은 없는 희망에 대한 갈망이 숨어 있다.

그런 답답함은 결국 마지막 곡 ‘비둘기 안녕’에서 폭발하고야 만다. 노래의 중반부, 그는 그동안의 미성을 벗어던지고 일그러진 목소리로 “비둘기 안녕”이라 외친다. 비둘기는 이 앨범에서 가장 자주 희망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존재다. 결국 그는, 앨범의 화자는 희망을 찾는 데, 구원 받는 데 실패한 것이다. 함춘호도 빛나는 기타 솔로로 그런 울분에 힘을 더한다. 흔히 ‘푸른 돛’과 시인과 촌장은 80년대 서정주의 포크의 대표작이라고 평가 받는다. 그러나 이 앨범의 가치는 그런 단순한 문장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고양이’의 조바뀜 부분, ‘진달래’의 은근한 엘레지, 그리고 ‘비둘기 안녕’은 이 앨범을 은유와 억압과 해방의 서사로 자리매김하기 충분하다. 한 시대의 양지와 음지가 이 앨범에 묻어있다.

▶‘시인과 촌장’ 프로필

·결성 : 1981년

·구성원 : 하덕규(보컬)/함춘호(기타)

·주요활동

-1981년 1집 ‘시인과 촌장: 짝사랑/님타령’
-1986년 2집 ‘시인과 촌장: 푸른돛/사랑일기’
-1988년 3집 ‘숲’
-1991년 베스트 음반 ‘1981-1991 Best’
-1997년 베스트 음반 ‘Best’
-2000년 4집 ‘The Bridges’
-2001년 라이브 앨범 ‘12년 만의 만남(Live)’

〈김작가|음악평론가/선정 기획|가슴네트워크〉200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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