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도와준 기적의 날씨… 무지개 여신에게 기도를?!
4월 25일, 크랭크인하여 약 1개월 반에 걸친 <무지개 여신> 로케이션은 8mm 필름에 의한 극중영화 의 촬영부터 시작했다. 무지개가 상징적으로 쓰이고 있는 <무지개 여신>은 쾌청한 날씨가 아닌, 우박이 내리는 파란과 함께 막을 올렸다.
스텝들의 노력없이 <무지개 여신>의 완성은 있을 수 없었다. 아오이가 다니는 대학에서 총 3회 촬영을 했는데, 독립영화 쫑파티 씬은 5월의 화창한 날씨였고 나머지 2회는 비가 내렸다. 장면 연결이 안될수도 있다는 걱정에 비닐 시트로 지면을 덮는 등 전스텝이 총동원되어 우천 대책을 세웠고 본 촬영 직전까지 땅바닥을 기어서 물 웅덩이를 닦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변덕스러운 하늘 때문에 기도를 하게 되는 장면도 있었다. 토모야와 아오이가 무지개를 보는 중요한 씬이 촬영된 날에는 하루중에 푸른 하늘, 구름 낀 하늘, 밤에는 폭풍우가 치는 등 날씨가 제멋대로 변했고 촬영장소도 쿠마자와 감독의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 당일이 되어서야 결정되었다.
세개의 씬을 찍어야만 하는 빠듯한 스케줄 속에서 날씨 회복을 비는 마음으로 기다리다 구름 사이로 태양이 비치는 찬스를 노려 촬영 개시, 서쪽 하늘에 '천사의 사다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무지개가 나올까?' 하는 기대를 하게 할 정도의 하늘이었다. 이 장면 촬영이 끝나자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수시간 후, 이 지역 일대가 천둥번개와 큰 비에 휩싸였던 것을 돌아보면, 정말로 큰 기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바다를 건너야 했던 8미리 필름에 대한 추억
<무지개 여신>에 사용된 8mm 필름에 대한 생각은, 독립 영화제작에 집중하여 대학 시절을 보낸 쿠마자와 감독과 이와이 슌지 프로듀서에게 있어 공통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극중에 사용된 스프라이서나 에디터라 불리는 8mm 기자재는 쿠마자와 감독의 추억이 담긴개인의 물건이다. 또한 극중에 아오이의 촬영수법으로서 등장하는 "ZC1000와 코다크롬 40의 경연"은 실제로 그 필름 색에 반해버린 이와이 프로듀서가 학창시절에 시행착오를 거쳐 개발해낸 최강의 방법이었다. 원래라면 8mm 카메라 ZC1000에는 코다크롬 40의 커트리지는 장치할 수 없지만 별도의 커트리지를 끼워 넣어 장착하는 방법을 사용. 극중영화 는, 실제로 이러한 방법으로 촬영된 것이다.
하지만 가 완성되기까지는 상상 이상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암실 속에서 정성들여 작업을 하지 않으면 힘들게 만든 필름이 못쓰게 돼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그것을 현상하기 위해서 그 필름은 스위스나 미국으로 바다를 건너가야만 했다.
반송된 필름은 OK장면을 골라서 가위로 네가편집을 한 후 디지털 테이프로 변환되었고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오랫동안 편집작업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35mm로 필름 레코딩이 이루어졌다.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지금은 복고풍이라 불리는 부류인 8mm 필름 는 그 필름의 질감을 최대한 중시하여 만든 매우 손을 많이 들인 공정을 거듭하여 완성된 것이다.
<무지개 여신>을 빛낸 두배우. 그곳에 실제 토모야와 아오이가 있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작품 <릴리 슈슈의 모든 것>으로 데뷔한 토모야 역의 이치하라 하야토는 환하고 명랑한 밝은 모습으로 현장 분위기를 띄워주었다. 보통 때는 소년 같은 모습의 그이지만 촬영이 들어갔을때의 집중력은 스텝의 숨을 막히게 한다.
조금 전까지 해맑게 웃던 얼굴이 배우의 진지한 표정으로 바뀐다. 촬영 중에 대본을 손에 드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오로지 감독이 하는 말을 흡수하는 듯 조용히 끄덕이며 듣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토 아오이의 우에노 쥬리는 '아오이라면 이렇게 말하겠지, 이렇게 행동하겠지' 자신과 아오이와의 갭을 줄이기 위해 납득할 수 있을때까지 감독과 대화를 나누고 적극적으로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은 영화를 만드는데 정열을 쏟는 아오이의 모습과 겹쳐진다.
이번 영화에서 카메라를 들고 촬영할 기회가 많았던 우에노 쥬리는 카메라 앵글에도 영화감독을 목표로 하는 아오이의 모습에 집착을 보였다. 크랭크업 하던 날, 남의 눈도 의식하지 않고 소리내어 우는 우에노 쥬리의 모습이 보였다.
촬영 중간중간 이치하라와 우에노가 토모야와 아오이로 겹쳐 보이는 순간이 있었다. 공원에서의 촬영중 어미를 잃은 새끼 고양이를 보며 마음 아파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마도 자기들이 할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란히 땅바닥 앉아 오래도록 고양이를 바라보는 모습은 영화의 장면에는 없는 마치, 학창시절의 토모야와 아오이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픔을 뒤늦게 쫓아가는 추억담 <무지개 여신>
글 : 강병진 | 2006.11.29
함께 영화보고 술마시고 밥먹기만 하던 그 친구. 이제 그의 손을 잡고 싶다면 볼 만한 영화

짝사랑 상대에게 부담없는 이성친구임을 자처하는 것은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일이다. 고속도로변 “만남의 광장”만큼이나 부담없는 친구인 탓에, 다른 사랑으로 기뻐하고 아파하는 그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친구와 연인 사이의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동안 고백은 자꾸 연기되고 아픔의 무게만 늘어난다. 영화 <무지개 여신>은 그런 아픔을 ‘뒤늦게’ 쫓아가는 추억담이다. 항상 같이 있으면서도 알아채지 못했던,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했지만 알 수 없었던 친구의 아픔이다.
아오이(우에노 주리)에게 토모야(이치하라 하야토)는 야속한 이성친구다. 토모야는 아오이를 통해서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마음을 전하고 러브레터를 대신 써달라고 부탁하지만, 사실 아오이는 토모야를 향한 사랑을 에둘러 감추고 있다. 하지만 눈치없는 토모야는 언제나 그녀를 좋은 친구로만 여길 뿐이다. 대학 졸업 뒤 유학을 결심한 아오이는 내심 토모야가 잡아주길 기대하지만, 이때도 역시 토모야는 그녀를 무심히 떠나보내고 만다. 이후 각자의 생활에 충실히 살고 있던 어느 날, 아오이가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토모야는 그녀의 집을 찾아가, 그곳에서 대학 시절 아오이에게 대필을 부탁했던 러브레터를 읽게 된다.
<무지개 여신>은 이와이 순지 감독이 기획, 각본, 제작을 맡은 작품이다. 학창 시절의 짝사랑, 뒤늦게 배달된 편지 등의 모티브는 그의 전작인 <러브레터>와 <4월 이야기>에서도 봤음직한 것들이다. 하지만 연출을 맡은 구마자와 나오토 감독은 이와이 순지의 후광 아래에서도 뒤늦은 사랑의 발견과 그로 인한 애틋함을 화사하게 수놓는 것에 집중하지 않았다. 두 남녀가 마주선 공간은 여전히 생기있고 아련하지만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는 일은 없다. 첫 만남에서 사랑을 예고하는 무지개 역시 그저 물웅덩이에 수줍게 비칠 뿐이다. 대신 감독은 이들이 나누는 속깊은 대화와 아기자기한 유머 그리고 고백이 혀끝까지 차오른 여자와 그것을 헤아리지 못하는 남자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긴장과 설렘을 밀도있게 채우고 있다. 이들을 가장 위태롭게 만드는 것은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이별보다도 토모야의 농담 같은 프러포즈다. 진심일까? 농담일까? 섣부른 기대마저 상처가 되고 마는 이 순간에도 아오이의 속내는 과장되지 않는다. 우에노 주리의 연기는 영화의 자연스러운 매력을 한층 더 포개놓는다. 숨겨둔 사랑에 아파하면서도 꿋꿋한 모습을 섬세하게 포착한 그는 아오이를 옆에 두고 토닥여주고 싶은 친구로 살려냈다.
글 : 강병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