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하이든 협주 교향곡 105번 내림 나장조 H.1 - Antal Doráti, cond

리차드 강 2010. 5. 13. 05:09

Sinfonia concertante in B flat, H.I No.105

하이든 협주 교향곡 105번 내림 나장조 H.1

Franz Joseph Haydn 1732 - 1809 오스트리아

1. Allegro - 전악장 연주

Haydn Sinfonia Concertant for Violin, Cello, Oboe and Bassoon & orchestra, in B flat major, H. 1/105 (19:44)

Performer:  László Baranyi (Bassoon), Igor Ozim (Violin), Zoltán Rácz (Cello), István Engl (Oboe)
Conductor:  Antal Doráti
Orchestra/Ensemble:  Philharmonia Hungarica
Period: Classical
Written: 1792; London, England

Release Date: 04/09/1991
Label:  London/Decca Jubilee
Copyright: (C) 2009 Decca Music Group Limited

     

     

Haydn Sinfonia Concertant for Violin, Cello, Oboe and Bassoon & orchestra, in B flat major, H. 1/105 (19:44)

1. Allegro
2. Andante
3. Allegro con spirito

9:04
4:01
6:39

     

     

안탈 도라티 (Antal Dorati, 지휘자)

1906년 4월 9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출생했다. 약관의 나이 18살 때, 부다페스트 왕립 오페라 하우스의 지휘자기 됨으로서 이 오페라단 역사상 최연소 지휘자가 되었다. 22살 때, 드레스덴으로 가서 명장 프릿츠 부쉬(Fritz Busch)의 부지휘자가 되었고, 곧 문스터(Munster) 오페라 하우스의 지휘자로 일하기 시작해서 27살 때까지 이 자리를 지켰다.

1934년∼1941년, 몬테 카를로의 러시아 발레의 음악감독을 지냈고, 1937년엔 뉴욕의 아메리카 발레 디어터(American Ballett Theater)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1947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고, 1945년부터 1949년까지 달라스 교향악단의 음악감독으로 일하면서 이 악단의 기량을 놀라우리만큼 향상시켰다.
1949년엔 미네아폴리스 교향악단의 감독으로 자리를 옮겨 11년간 활동했다.
1963년, BBC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로 취임해서 4년간 지휘했고, 이 기간동안 스톡홀름 필하모니의 감독을 겸임했다.

1970년, 워싱턴 국립교향악단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하고 1977년엔 디트로이트 교향악단의 감독을 지냈다. 또한 이 기간에 로열 필하모닉의 수석지휘자를 겸임했고, 1981년엔 로열 필, 스톡홀름 필, 디트로이트 교향악단 등 3개 오케스트라의 '계관 지휘자'라는 명예를 얻었다. 지휘자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명예로운 칭호를 무려 3개나 얻었으니 1981년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한 해였다.

지금까지 도라티가 발표한 음반은 무려 600종에 이른다. 그 많은 음반들 가운데 32개의 음반은 디스크 대상을 받았고, 특히 하이든의 교향곡 107곡과 8명의 오페라 작곡가의 오페라 전곡을 녹음한 것은 그가 달성한 가장 위대한 작업이자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도라티는 비단 지휘자로서뿐 아니라 작곡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했던 인물이다. 지금도 그의 작품들은 자주 연주되고 있다.
1975년엔 "70년의 노트"라는 자서전을 발표했고, 이어서 "안과 밖의 평화를 위하여"라는 저서를 발표했다. 도라티는 그림 그리기에도 상당한 재능이 있어서 상당한 작품을 남겼다.

그는 헝가리 필하모닉의 명예총재, 4개의 명예박사, 스웨덴의 기사칭호, 명예십자 기사, 프랑스 문화예술원 명예회원, 영국의 기사 등 수많은 작위와 칭호를 받는 참으로 빛나는 생애를 보냈다.

1988년 11월 13일, 스위스의 게르젠시(Gerzensee)의 자택에서 82년의 생애를 접었다.

글 출처 :  곽수근의 음악이야기

     

안탈 도라티는 소위 ‘오케스트라의 조련사’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을 정도로 단원들을 잘 트레이닝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버지가 부다페스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주자였던 관계로 그는 남들보다 일찍 음악 전반에 눈을 뜨게 되었다.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오페라 지휘자 또는 발레 지휘자로서 다양한 경험을 했으며, 리듬의 활기찬 움직임이나 클라이맥스를 향해 직선적으로 밀어붙이는 모습 등은 듣는이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의 이런 지휘스타일은 특히 발레음악에서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생전 많은 양의 음반을 녹음했는데, 그중 미니애폴리스 시기에 머큐리에서 녹음한 차이코프스키의 일련의 작품들은 명연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차이코프스키의 서곡 1812년에서 진짜 대포를 등장시켜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안탈 도라티는 1906년 4월 9일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어릴때부터 Leo Weiner 밑에서 개인 레슨을 받으며 음악 전반에 대한 실력을 연마해 갔다. 그는 부다페스트의 음악원에서 이론과 실기를 쌓고 빈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해 논리력도 다듬어 갔다. 지휘자로서 데뷔한 것은 1924년, 즉 그가 18세 때가 되던 해였다. 부다페스트 국립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로서 활동한 다음, 1928년 드레스덴 국립 오페라 극장의 부지휘자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이 극장의 지휘자는 프리츠 부쉬로 그는 부쉬의 보조 지휘자로서 많은 것을 배우며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 이듬해인 29년에는 뮌스터 시립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이 되었다.

이후 안탈 도리타는 독일 각지에서 객원 지휘를 했으나 나치에게 쫓겨나 결국 영국으로 망명하기에 이른다.

1935년 안탈 도라티는 몬테카를로 러시아 발레단의 지휘자가 되었는데, 이 시기에 그는 발레 지휘자로서의 진수를 펼쳐 보이기도 했다. 이 당시 그가 편곡한 발레 ‘졸업 기념 무도회’(원곡은 J. 슈트라우스에 의함)는 특히 유명하다. 그는 이 발레단을 이끌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45년까지 많은 활약상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후부터 안탈 도라티는 발레가 아닌 일반 공연을 위주로 하는 지휘에 정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45년에 미국의 댈러스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한 후 이 악단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지휘계 전반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49년에는 드미트리 미트로풀로스의 후임으로 미니애폴리스 교향악단(현재 미네소타 교향악단)에 초청되기도 했다. 또한 63년부터 66년까지 BBC 교향악단의 지휘봉을 잡았고, 66년부터 73년까지는 스톡홀름 필하모니, 70년에는 워싱턴 내셔널 교향악단, 그리고 75년 이후로는 런던의 로열 필하모닉 등을 차례로 맡으며 다방면의 솜씨를 발휘했다.

이후 79년부터 디트로이트 교향악단의 음악감독 겸 수석지휘자를 역임하며 말년을 여유롭게 보냈고, 은퇴후에도 종신 명예 지휘자가 되었다.

안탈 도라티는 헝가리의 망명 음악들(헝가리 국립 필하모니, 부다페스트 국립 오페라 극장 관현악단, 부다페스트 방송관현악단의 멤버)로 구성된 필하모니아 헝가리카(1957년 빈에서 조직되어 그 후 본거지를 서독의 마르 시로 옮겼다)와 ‘하이든 교향곡 전집’(로빈즈 랜던의 교열 악보에 의한, 런던)이라는 대규모의 녹음을 완성시켰다. 이 연주에서 그는 음의 합리적인 구성을 중요시하였고, 표현의 다이내믹함을 추구하고 있어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

안탈 도라티는 1988년 11월 13일 스위스에서 죽었다.

글 출처 : 창고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