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avorite Pop

Swiss Boy - Lou Sern│ 돌아갈 수 없어 더 그리운....

리차드 강 2010. 6. 9. 11:26

Swiss Boy - Lou Sern

Swiss Boy (Esquire Records 1985)

Lou Sern

Track A. Swiss Boy

 

     

Time is ticking and there's nothing I can do
My heart is aching and my love is all for you
Fighting time isn't the right situation
Bite your mind now my heart is broken
I can't find my way
Now I'm kicking 'cause I'm think I'm losing you
I feel like bitching but I'm always nice to you
He knows the way using his infatuation
Every day spending all his money
Just to make you stay
Swiss boy, you're in love with a Swiss boy
I don't know what I'm gonna do
Swiss boy, spend your time with a Swiss boy
You don't know what I'm going through
Cuckoo clocks are the best things he can do
When he talks he can yodel like Swiss do
Took his time changing the old situation
You're not mine now I've really lost you
I can only pray

 

유로댄스 그룹으로 1988년 국내에서 빅 히트한 곡.


 

Track B. Cuckoo Clock (Instrumental)  5:03


     

조다쉬 입고 ‘로라장’가고 싶어라~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돌아올 수 없어 더 그리운 80년대의 추억

» 영화 <품행제로>

작년·재작년만 해도 얼굴 달아오르던 ‘촌티 패션’이 어엿한 최첨단으로 돌아왔지만 돌아올 수 없어 더 그리운 것들도 있다. 80년대의 10대들을 열광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사로잡았던 그 시대의 아이콘들을 추억해보자.

⊙ 롤러스케이트장 | 약칭 ‘로라장’. 기본적으로는 스포츠 시설이나 80년대 후반까지 10대들의 복합사교문화공간으로 널리 애용되었다. 남녀공학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 로라장은 작업의 장이자 데이트 공간이었으며 최신 댄스 팝송을 발 빠르게 선보였던 트렌드세터이기도 했다. 교육당국 공식 지정 청소년 유해업소였으나, 과잉 축적된 2차성징기의 호르몬을 감당할 수 없었던 10대들에게 로라장은 유일한 해방구였다. 짝 있는 이들은 그곳에서 삼삼오오 앞사람 허리를 붙잡고서 기차놀이를 했고, 작업에 목숨 건 남학생들은 ‘백 스텝’ ‘지그재그 스텝’ 등의 고난도 기술을 과시하며 구애의 춤을 추었다.

⊙ 메이커 의류 | 교복 자율화의 시대, 메이커는 학생들 사이에서 부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였다(아직 ‘명품’이라는 단어는 도착하지 않았다). 부모님을 졸라 ‘하이포라’ 방수 점퍼에 조다쉬 청바지, 100미터 방수를 자랑하는 돌핀 손목시계에다 나이키 조깅화 한 켤레까지 얻은 다음날이면 쓸데없이 보폭이 커졌다. ‘siazenger’, ‘nice’ 등 짝퉁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았던 가짜 메이커의 범람도 80년대의 또다른 풍속도. 감쪽같은 짝퉁들이 판치는 오늘날에 비하면 나름 예의와 겸손이 통용되는 시대였던 것이다.

⊙ 카세트테이프 | 라디오 겸용 카세트 하나면 나만의 최신가요 혹은 팝송 컴필레이션 테이프를 만들 수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라디오 디제이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전주가 나온 후에도 지루하게 멘트를 읊조리는 이는 차라리 양반. 진정한 충격과 공포는 무사히 녹음에 성공했다고 안도하는 순간 간주에서 터져 나오던 멘트 복병의 기습이었다. 이 노동집약적 작업이 번거로웠던 이들은 곡목을 적은 메모지를 들고 인근의 레코드가게를 찾았다. 그렇게 완성된 나만의 컴필레이션과, A면이 끝나면 자동으로 B면이 재생되는 ‘오토리버스’ 기능의 마이마이 미니카세트는 학력고사 세대의 몇 안되는 위안거리 중 하나였다.

» 소피 마르소

⊙ 코팅 책받침 | 80년대 아이돌 스타의 산실은 문방구였다. 오늘날 컴퓨터 모니터와 휴대폰 바탕화면을 꾸미듯, 당시의 청소년들은 문방구에서 사진을 코팅하는 것으로 스타에게 애정을 표했다. 그렇게 만든 책받침에는 행여 자국이라도 남을까 필기조차 조심스러웠다. 80년대 초반에는 브룩 실즈, 소피 마르소(사진), 피비 케이츠의 여배우 트로이카와 듀란듀란을 비롯한 미남 뮤지션들이 책받침계의 왕좌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 권세는 채 10년을 이어지지 못했고, 80년대 후반 장국영, 유덕화, 왕조현 등의 중화권 신진사대부 스타들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 자필 통신 | 워드, 휴대폰도 없었으며 집전화는 ‘용건만 간단히’였던 시절, 일상의 커뮤니케이션은 손글씨를 통해 이루어졌다. 여학생들은 라디오에 신청곡을 보내기 위해 관제엽서를 사서 굴려 쓴 필체와 색연필 그림으로 개성을 발휘했다. 남학생들은 포켓판 최신가요 책에 실려 있던 펜팔 주소록의 얼굴 모를 여학생을 위해 수십 장의 편지지를 휴지통으로 던져 넣곤 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자필 메시지는 중요한 통신수단이었다. 학교 앞 서점의 알림판 메시지만으로도 유목민들이 북극성을 따라 길을 찾듯 그날 밤의 술자리를 어김없이 찾아갈 수 있었다.

조민준 객원기자 2009-04-22 ⓒ 한겨레 (http://www.hani.co.kr).


동대문, 길동, 천호동, 성남... 로라장 돌아다니던 학창시절 생각난다. 이성과 손잡고 한번 타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막상 손잡고 타는데 왜 이리 손에 땀이 나는지... 상대편도 내 손에서 배어나오는 땀을 의식했으리라... 나중에 손을 놓고 가서 않아 있는데 등이 따갑게 느껴지고 쪽팔리고...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놈의 땀 때문에. OTL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