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ham Nash
우리나라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밴드의 이름으로 정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윤도현밴드도 있고, 예전에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서태지와 아이들 등등이 얼핏 기억이 난다. 외국에는 특히 이름으로 밴드명을 정하는 팀들이 많다. 포크계열에선 500 miles나 Puff the magic dragon 등으로 유명한 Peter, Paul & Mery가 있고. 얼마전에 Super Natural이라는 앨범을 내서 그레미를 쓸어버리는 노익장을 과시한 카를로스 산타나의 산타나도 있고, 헤일런 형제의 반 해일런도 있고, MSG로 불리는 마이클 쉥커 그룹도 있고, 알란 파슨즈의 알란 파슨즈 프로젝트도 있고...머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정도록 많은 팀들이 있다.
그 중에서 오늘은 Crosby, Nash and Young으로도 활동했었고, Crosby, Stills, Nash and Young으로 활동하고, 하여튼 머 한두명이 더 들어갔다가 빠진고하던 팀이 있었다.
David Crosby, Graham Nash, Neil Young 등이 그 멤버들이고, 특히 닐영은 다들 이름 정도는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한다.
포크계열의 음악이 상당히 암전한 음악으로 치부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과 그 발상을 비교해보면 참 놀랍기 까지 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 포크 음악은 우디 거슬리에서 시작했다고 보는게 통상적인 내용인것 같다. 그 뒤로 많은 포크가수들이 나오구요, 이를 대중적인 음악가들로 다시 나누면 우리가 잘 아는 사람들의 이름이 속속 나온다.
발딜런, 존바에즈 등이 그러하죠. 이들은 한때 반전 음악, 또 반사회적 음악의 기수들인양 불려졌다. 이런 이들과 나란히 어깨를 했던 피터, 폴 앤 메리는 약간 방향이 틀렸다.
그래험 내쉬나 닐영도 당시의 사회가 사회였던지, 반사회적인 경향이 있었던가 보다. 미국의 60년대말은 우리나라의 80년대와 비슷한 시기였던가 보다. 아래는 모 사이트의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오하이오 주의 켄트 스테이트 대학에서 있었던 반전 시위 도중 경찰이 발포하여 4명의 학생이 사망한 사건이 있던 시기에 크로스비, 스틸즈, 내쉬 & 영의 주된 두 멤버였던 데이빗 크로스비와 닐 영은 캘리포니아 주의 국립공원 내에 있는 한 오두막에서 칩거하고 있었다. 생필품을 사러 나갔다 온 데이빗 크로스비의 손에는 사건의 내용을 담은 사진이 담긴 라이프지가 들려 있었고 그것을 받아든 닐 영은 그저 멍청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닐 영은 갑자기 기타를 집어들고 서성대다가 분노와 한이 가득담긴 소리로 노래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곧 이어 코드도 가사도 바꾸지 않은채 4명의 멤버들은 녹음을 시작했고 그것을 바로 라디오 방송국으로 보냈다. 그리고 나서 데이빗 크로스비는 흐느꼈다. 이 곡이야말로 반전을 갈구하던 미국인들의 마음에 불을 당겼고 록 음악 역사상 가장 정치적인 저항 운동의 표본이 되었던 곡이다.
'60년대 영국의 제1차 British Invasion을 주도했던 또 다른 그룹인 Holies에서도 그래햄 내쉬가 활동을 했었다.
글 출처 : 치지직 LP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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