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국민가수 조용필, 슈퍼스타 조용필, 우리 나라의 가요 역사상 조용필처럼 온 국민의 사랑을 받은 대형 가수는 드물다. 그의 히트곡만을 모아 음반을 낸다 해도 앨범 3-4장은 족히 나올 것이다. 1969년 초 컨츄리웨스턴 그룹인 <에트킨즈>를 결성 음악 인생을 시작한한 조용필을 1971년 3인조 그룹 <김 트리오>를 결성, `선데이컵 팝그룹 콘테스트`에서 `님이여`라는 노래로 최우수 가수왕상을 수상하며 서서히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72년에는 그룹 활동을 접고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발표, 당시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100만장이라는 판매를 기록하며 수퍼스타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1980년에는 `창밖의 여자`가 150만장이라는 판매를 기록하며 본격적인 슈퍼스타의 자리에 올랐고 `단발머리`와 `한오백년` 등의 가요사의 명곡들을 발표한다. 이후 조용필은 여덟번째 앨범 `허공`에 이르기까지 국내 가요상을 모두 휩쓸면서 국내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손꼽는 빅 스타의 자리를 지켜왔다. 조용필은 1994년에 발표한 열다섯번째 앨범까지 정규 앨범 15장, 실황 앨범 2장, 베스트 앨범 3장을 발표해 지금까지 총 1200만장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의 앨범 판매량을 올렸다. 또한 일본에서도 정식 앨범 16장과 싱글 13장을 발표해 600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국내외 판매량은 2000만장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대중음악 100대 명반]29위 조용필 ‘조용필 1집 ’ 1980년대의 대중음악계에서 조용필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를테면 물고기에서 아가미가 차지하는 비중이나 제주도에서 한라산이 차지하는 비중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없으면 그것이 아니게 되는 바로 그것. 조용필이 80년대 한국 대중음악에서 갖고 있는 ‘존재 지분’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조용필은 모두에게 사랑받았다(이 때 ‘모두’란 단지 수사법이 아니다).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를 드러내놓고 미워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기억한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국민가수’였고, 컬러TV 시대 최초의 슈퍼스타였으며, 약 10년 동안을 도전자 없는 왕좌에 앉아 있었다. 그 조용필 신화의 시작이 바로 이 음반이다. 이 음반이 만든 수많은 기록들에 대해 다시 언급하는 것은 지면 낭비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 음반이 조용필의 음악적 역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의의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언급하는 것으로 족하고자 한다. 외적인 흥행 기록을 떠나 조용필의 이 음반은, 음악적인 측면과 전략적(상업적)인 측면에서 조용필이 나아가게 될(그리고 실제로 나아간) 방향을 완성된 형태로 제시한 음반이다. 우선 음악적인 측면.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 음반은 조용필 ‘최초의’ 음반이 아니다. 그는 72년부터 다수의 음반을 내고 활동을 했으며, 76년에 발표한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기록한 뜻밖의 히트로 인해 영광과 몰락의 시기를 겪은 바 있다. 80년대에 ‘부활’하기 전까지 그는 포크 송, 그룹사운드 록, 트로트, 민요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적 배경을 이미 쌓아두었고, 이는 이 음반에서 조용필의 독특한 목소리와 함께 종합적 형태로 모인다. 즉 이 음반에는 애절한 발라드(‘창밖의 여자’), 경쾌한 록(‘너무 짧아요’), 트로트(‘돌아와요 부산항에’), 민요(‘한오백년’)가 고루 들어가 있다. 거기에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신시사이저를 사용한 뿅뿅거리는 디스코(‘단발머리’)까지, 조용필은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패를 올려놓는다. 다음으로 전략적 측면. 이는 음악적 측면에서 파생된 것으로, 조용필 음반의 ‘백화점식 구성’은 결과적으로 연령과 세대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가는 계기가 될 수 있었(고 그것이 먹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근거로 조용필에게 ‘아티스트로서의 일관성’이 부족했다고 비판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그 비판은 당시의 음악산업 시스템 속에서 그가 할 수 있었던 부분과 할 수 없었던 부분을 적절히 고려하고 난 뒤에 가능할 것이다. 다른 종류의 음악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대중음악은 특히 자신이 속한 바로 그 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용필의 이 음반은 80년대 대중음악의 가장 환하게 빛나는 산물 중 하나일 것이다. 아니면 그때 그 시절이 너무 어두웠거나.
PS. 이 음반에 대한 글은 당시 발매되었던 LP를 기준으로 작성했음을 밝힌다. LP와 CD에 실린 곡의 목록에는 차이가 없지만 순서가 일부 바뀌었으며(예를 들어 ‘단발머리’는 LP의 B면 첫 곡이다. LP로 들을 때는 이러한 곡 배치가 A면 첫 곡인 ‘창밖의 여자’와 뚜렷한 대조를 이루게 된다) LP에는 건전가요(군가 ‘너와 나’)가 수록되어 있다. ◇조용필 프로필 ·주요활동 글 출처 :〈최민우|웹진 weiv 편집위원〉ⓒ 경향신문 & 경향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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