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에게
난 1등 같은 것은 싫은데,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은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 이 모든 것은 우리 엄마가 싫어하는 것이지. 난 인간인데, 난 친구를 좋아할 수도 있고, 헤어짐에 울 수도 잇는 사람인데 어떤 땐 나보고 혼자 다니라고까지 하면서 두둘겨 맞았다. 나에게 항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기라고 하는 분. 항상 나에게 친구와 사귀지 말라고 슬픈 말만 하시는 분. 그 분이 날 15년 동안 키워준 사랑스런 엄마라니 너무나 모순이다.
순수한 공부를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닌 멋들어진 사각모를 위해. 잘나지도 않은 졸업장이라는 쪽지 하나 타서 고개들고 다니려고 하는 공부 천만 번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고, 그렇게 해놓고는 하는 짓이리고는 자기 이익만을 위해 그저 종이에다 글 하나 써서 모박사라고 거들먹거리면서 나라, 사회를 위해 눈곱만치도 힘써 주지도 않으면서 외국에서 하라는 대로 따라하는 따위 공부만 해서 행복한 건 아니잖아?
공부만 한다고 잘난 것도 아니잖아?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해 이 사회에 봉사,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면 그것이 보람있고 행복한 거잖아. 꼭 돈 벌고, 명예가 많은 것이 행복한 거ㅔ 아니잖아. 나만 그렇게 살면 뭐해? 나만 편안하면 뭐해?
매일 경쟁, 공부밖에 모르는 엄마, 그 밑에서 썩어들어가는 내 심정을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까? 난 로보트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돌멩이처럼 감정이 없는 물건도 아니다. 밟히다, 밟히다 내 소중한 내 삶의 인생관이나 가치관까지 밟혀버릴 땐, 난 그 이상 참지 못하고 이렇게 떤다. 하지만 사랑하는 우리 엄마이기 때문에.. 아~. 차라리 미워지면 좋으련만. 난 악의 구렁텅이로 자꾸만 빠져들어가는 엄마를 구해야만 한다. 내 동생들도 방황에서 꺼내줘야 한다. 난 그것을 해야만 해. 그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난 그 성적순위라는 올가미에 들어가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삶에 경멸을 느낀다.
"전교 ○등, 반에서 ○등, 넌 떨어지면 안 된다. 선생님들이 널 본다. 수업시간에 넌 항상 가만히 있어야 한다. 넌 공부 잘하는 학생이니까 장난도 치지 마라. 다음번에 ○등 해라. 왜 떨어졌어? 친구 사귀지 마. 공부해! 엄마 소원성취좀 해줘. 전교 1등 좀 해라. 서울대학교 들어간 딸 좀 가져보자. 그렇게 한가하게 음악 들을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공부해."
매일 엄마가 하시는 말씀들. 자기가 뭔데 내 친구 편지를 자기가 읽는 것야. 그리고 왜 찢는 거야. 난 사람도 아닌가? 내 친구들은 뭐, 다 못난 거야? 그리고 왜 약한 사람을 괴롭혀? 돈! 그게 뭐야~ 그게 뭔데 왜 그렇게 인간을 괴롭히는 거야. 난 눈이 오면 한껏 나가 놀고 싶고, 난 딱딱한 공부보다는 자연이 좋아. 산이 좋고, 바다가 좋고 하긴 지금 눈이 와도 못 나가는 걸. 동생들도 그러하고 너무 자꾸 한탄만 했지. 그치? 졸업하면 나는 아예 그 먼 고등학교에 가서는 집에 갇혀서 죽도록 공부만 해야 될 것이다(으~ 끔찍하다).
난 나의 죽음이 결코 남에게 슬픔만 주리라고는 생각지 않아. 그것만 주는 헛된 것이라면, 난 가지 않을 거야. 비록 겉으로는 슬픔을 줄지는 몰라도, 난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줄 자신을 가지고 그것을 신에게 기도한다.
1986년 14월 15일 새벽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