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문화

분개하라 Indignez vous! - Stephane Hessel

리차드 강 2011. 2. 11. 12:32

"Indignez vous!"

 

93세 노인의 분노, 프랑스를 사로잡다

3개월 만에 50만 부 넘게 팔린 소책자 <분개하라!>

지난해 말부터 서점가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베스트셀러가 프랑스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분개하라!(Indignez vous!)>라는 제목의 이 책은 30페이지 정도에 불과한 팸플릿 형식의 소책자다. 이 책은 프랑스 남부도시인 몽펠리에에 위치한 작은 출판사에서 작년 10월 말에 8000부가 출간된 후, 불어식 표현을 빌리자면 "작은 빵처럼"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출간된 지 석 달째인 지금까지 50만 부 이상 팔렸고, 출판사에서는 쇄도하는 주문을 커버하기 위해 85만 부까지 계속 찍어내고 있는 형편이다. 이 책은 유럽과 미국, 일본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될 예정인데 그중에는 한국어도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93세의 노인인 스테판 헤셀(Stephane Hessel)이다. 헤셀은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헤셀의 부모는 유대인 출신의 지식인으로서 1950년대 후반 프랑스 영화계를 강타한 누벨바그의 중요 멤버인 트뤼포의 영화 <쥘과 짐>의 모델이기도 하다.

부모를 따라 1925년 프랑스로 이주한 헤셀은 우수한 성적으로 학업(철학 전공)을 마치고 1937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레지스탕스로 활약하다가 1944년 게슈타포에게 체포된 헤셀은 유대인 수용소에 감금돼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수용소 안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레지스탕스의 도움을 받아 사형 직전에 신분을 바꾸는 데 성공, 극적으로 탈출하여 목숨을 구하게 된다. 종전 후엔 유엔 비서직을 맡아 1948년 세계인권선언문 작성에 참가하였으며,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살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좌파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헤셀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일종의 유언장을 남기고 있다. 온몸으로 겪어낸 20세기의 인생경험을 살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가 전하는 유언의 핵심은 책의 제목에 그대로 담겨 있다. "분개하라!"

그러면 무엇이 이미 한 발을 무덤에 걸친 이 노인을 분개하게 하는 것일까? 프랑스 내부적으로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펼치는 외국인 이민자 추방 정책, 퇴직 연령 상승, 사회보장제도 파괴, 기득권층을 위한 배금주의 정책이 헤셀을 분노하게 했다. 대외적으로는 이윤에만 눈독을 들이는 신자유주의 경제,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봉쇄 정책 등이 헤셀의 화를 돋우는 요인들이다.

 

 

"이보시게 젊은이들, 가장 나쁜 태도는 무관심이라오"

헤셀은 <분개하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레지스탕스(저항)의 기본 동기는 분개였다." (11쪽)
"우리에게
있어 저항하는 것은 독일군의 점령, (프랑스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는 알제리 (독립)전쟁이 이어졌다. 알제리는 독립국이 되어야 했다. 그것은 명백한 일이었다. 1943년에 적군을 이끌고 온 스탈린이 나치에게 승리했을 때 우리는 모두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 우리가 이 참을 수 없는 (스탈린) 독재에 항거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미국의 자본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공산주의에 한 귀를 열어놓고 있어야 했던 상황이긴 했어도. 나의 기나긴 삶은 내게 분개할 이유를 끊임없이 제공해주었다." (12~13쪽)

그러나 21세기를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적은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헤셀도 그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오늘날 분개해야 할 이유가 덜 분명해졌고 이 세상이 더욱 복잡해진 것은 사실이다. 누가 명령을 내리고 누가 결정을 하는가?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모든 종류의 흐름을 구별한다는 게 항상 쉬운 일은 아니다. (…) 그러나 이 세상에는 참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보기 위해선 잘 바라보고 찾아야 한다. 난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찾아보시오, 분명히 찾을 것이오.' 가장 나쁜 태도는 무관심이다. '무슨 방법이 없잖아, 나 혼자 알아서 처리해야지 뭐.' 당신들은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서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를 잃고 있는데, 그것은 분개하는 능력과 그 결과로 이어지는 앙가주망이다." (14쪽)

잘못 돌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향해 분개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앙가주망(참여)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충분치 않다는 것이 이 노인의 주장이다.

 

 

▲ 베스트셀러가 된 <분개하라!>를 1면에 다룬 <리베라시옹> 2010년 12월 30일자.

 

가려운 등을 긁어주어 베스트셀러가 되다

<분개하라!>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에 획득한 사회복지가 사르코지 집권 후 여러 방면에서 박탈되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분노를 삼키고 있었던 프랑스인들에게 <분개하라!>가 경종을 울렸기 때문이다.

또한 출판 시기가 선물을 주고받는 연말과 맞아떨어진 점도 작용했다. 지난해 말에는 초콜릿 대신에 이 소책자를 선물하는 기현상이 발생하여 책의 판매부수를 증가시켰다. 한 권에 3유로라는 저렴한 가격도 여기에 한몫했다.

또한 저자 헤셀의 독특한 약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로 작용했다. 레지스탕스 출신으로 세계인권선언문 작성에 참여한 헤셀은 잃어버린 인간의 가치 회복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사르코지의 정책과는 정반대다. 헤셀이 주장하는 것은 희망과 인간의 자긍심을 되찾는 일이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것은 그만큼 프랑스인의 희망과 자긍심이 하락했다는 증거다. <르 몽드>(1월 3일자)는 일간지 <르 파리지엥(Le Parisien)>이 최근 실시한 BVA-Gallup 여론조사 결과 2011년을 보는 시각이 가장 비관적인 이들이 프랑스 사람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53개국의 6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에서 61%의 프랑스인이 올해 경제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이는 다른 나라(28%)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또한 67%의 프랑스인들이 올해에는 실업률이 작년보다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으며, 37%의 프랑스인들이 2011년이 2010년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해가 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지속가능 균형성장'을 지향하는 새 글로벌 경제질서를 결정할 서울 G20(주요 20개국)정상회의 본회의가 열린 2010년 11월 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본회의장 입구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 연합뉴스  G20 서울 정상회의

글 출처: 오마이뉴스

     

분개하라! (Indignez vous!)

"이보시게 젊은이들, 가장 나쁜 태도는 무관심이라오"

93세의 노인인 스테판 헤셀(Stephane Hessel)이 전하는 멧세지

이 세상에는 참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보기 위해선 잘 바라보고 찾아야 한다. 난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찾아보시오, 분명히 찾을 것이오.'

가장 나쁜 태도는 무관심이다.
'무슨 방법이 없잖아, 나 혼자 알아서 처리해야지 뭐.'
당신들은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서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를 잃고 있는데, 그것은 분개하는 능력과 그 결과로 이어지는 앙가주망이다." (14쪽)

잘못 돌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향해 분노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앙가주망(참여)으로 이어지는 분개 (憤慨)가 충분치 않다는 것이 이 93세의 노인의 주장이다.

앙가주망 [engagement] : 원래 계약·구속 등의 뜻으로 정치 및 사회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가리킴.

 

 

Anger in the Streets, (TIME紙)

(1) Greece

위기의 나라로 전락한 그리이스 ....
뉴라운드 노동개혁규약에 반대하며 그리스 국회로 향하던 중에 2만명의 시위대가 경찰 진압에 대항하며 화염병을 던지고 있다.

 

Splattered

2년전 그리스 시위 과정에서 폭압경찰에게 숨진 시위 아테네大 학생을 추모하던 중에, 시위대가  던진 빨강 페인트가 건물 벽에 퍼져있다.

 

(2) 이탈리아의 명박스러운 인간, 벨로루스코니

 

Javelin

로마에 있는 이태리 국회 근처에서 시위대가 반정부 구호를 외치다가 한 시민이 우산을  충돌한 진압 경찰을 향해 던지고 있다.

 

Confrontation

예산 삭감과 국가의 대학 체제의 해체 수리를 반대하며 볼로냐 대학생 시위대가 이태리 경찰과 충돌하던중 한 학생이 경찰과 대면하고 있다.

글 출처 : 인터넷 조선일보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개"다

 

작년 말 유럽의 지인들을 통해 알게 된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분개하라!>(Indignez vous!)에 관한 국내 기사가 올라와 링크를 걸어둔다. 기사는 <오마이뉴스>의 해외리포트 “93세 노인의 분노, 프랑스를 사로잡다”(2011년 1월 6일자)에 실려 있다. 32쪽에 불과한 이 소책자의 필자는 스테판 에셀(Stéphane Frédéric Hessel, 1917~  ). 독일 출신의 유대계 지식인이며 레지스탕스였다가(에셀은 1937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종전 직후 유엔 비서직을 맡아 1948년 세계인권선언문 작성에 참가하기도 했고, 외교관으로 활동하기도 한 노장이다. 이 노장의 분개가 프랑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

 

 

그렇다면 도대체 이 노장은 무엇에 분개한 것일까? 불법체류자(상-파피에르)를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내쫒고, 소수의 이민자들을 죄인시하며, 가난한 자를 무시하고 돈있는 자를 위한 정치를 하고, 갈수록 언론의 자유가 축소되며, 사회보장제도를 파괴하는 프랑스의 현 정치가 이 노장을 분개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윤에만 눈독을 들이는 신자유주의 경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 정책 등도 이 노장의 분개하게 만들었다. 이런 에셀의 분개가 많은 프랑스인들에게 읽힌다는 건 거꾸로 말해서 (구체적인 대상은 조금씩 다를지언정) 그만큼 분개하고픈 시민들이 많다는 뜻이리라.

 

 

이쯤에서 에셀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레지스탕스(저항)의 기본 동기는 분개였다. …… 우리에게 있어 저항하는 것은 독일군의 점령, (프랑스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었다. …… 오늘날 분개해야 할 이유가 덜 분명해졌고 이 세상이 더욱 복잡해진 것은 사실이다. 누가 명령을 내리고 누가 결정을 하는가?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모든 종류의 흐름을 구별한다는 게 항상 쉬운 일은 아니다. …… 그러나 이 세상에는 참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보기 위해선 잘 바라보고 찾아야 한다. 난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찾아보시오, 분명히 찾을 것이오.” 가장 나쁜 태도는 무관심이다. “무슨 방법이 없잖아, 나 혼자 알아서 처리해야지 뭐.” 당신들은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서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를 잃고 있는데, 그것은 분개하는 능력과 그 결과로 이어지는 앙가주망이다.

“출간된 지 석 달째인 지금까지 50만 부 이상 팔렸고, 출판사에서는 쇄도하는 주문을 커버하기 위해 85만 부까지 계속 찍어내고 있는 형편”이라는 이 책은 “유럽과 미국, 일본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될 예정인데 그중에는 한국어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도 곧(!?) 이 책을 한글로 접할 수 있을 텐데, 어느 출판사가 이 책을 낼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양장본으로만 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건 에셀의 의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일 테니.

 

 

우리 출판사 역시 이 책의 판권경쟁에 뛰어들 수 있었는데 그냥 놔뒀다. 왜냐하면 이런 책은 번역되어야 할 게 아니라 이 나라에서, 이 나라 사람에 의해, 이 나라 사람들을 향해 씌여져야 할 책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 수 있는 노장이 우리나라에도 남아 있을까? ‘어른’이란 이럴 때 필요한 것이다.

글 출처: 도서출판 난장

     

프랑스보다 더 '불량국가'인 한국, 우리도 분노하자

 

프랑스보다 우리가 훨씬 더 분개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분개할 현실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분개할 현실은 프랑스보다 우리가 훨씬 더 많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외환위기 이후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대북 문제 등에서는 상당한 발전이 있었다.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걸맞은 패러다임과 게임 규칙을 우리는 확립하지 못했다. 그 결과 많은 중산층 서민들이 시간이 갈수록 큰 경제적 고통을 겪게 됐다. 조금만 살펴봐도 이를 보여주는 온갖 악성 지표들로 가득하다.

비정규직 비율 세계 최고 수준, 극심한 청년실업, 자살률 급증과 출산율 급감, 고령화 속도 세계 1위,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 세계 최고 수준, 세계 최고의 산업재해율과 OECD 최장 노동시간, 소득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주택가격, 경제력 대비 지나치게 높은 생활물가, 공공도서관 수 선진국의 10분의 1 수준, 사회복지 등 공적사회복지지출 비용 OECD국가 3분의 1 수준, GDP 대비 교육재정 투자 세계경제포럼 조사 대상국 127개국 가운데 71위 등 조금만 훑어봐도 정말 일반 서민들이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경제 및 사회 구조를 갖고 있다. 한마디로 전방위적인 불량국가이자, 엽기적인 나라다.

이런 엽기적 현실이 사람들을 좌절에 빠져들게 했다. 엽기적 현실에 따른 고통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주요 지지층인 서민들에게 집중됐다. 서민들은 민생고를 해결해달라고 거듭 아우성쳤지만, 결과적으로 이들 정부는 서민들의 고충을 해소하지 못했다. 변화하는 패러다임에 걸맞은 건전한 경제구조를 마련하지 못한 채 낡은 기득권세력과 상당 부분 타협하고 굴종했다. 물론 그만큼 기득권 세력의 힘이 강고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정부가 대다수 국민들이 바라는 '진짜 개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음은 분명하다.

진짜 개혁의 좌절과 서민 경제의 지속되는 악화는 정치적 반동을 가져왔다. 독일이 1차대전의 전쟁부채에 시달리다 결국 선거를 통해 히틀러를 택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현재 목도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등장 또한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필자는 2007년 대선 결과에 대해 "배가 고프다고 쓰레기통을 뒤진 격"이라고 통탄한 적이 있다. 자산과 소득 양극화에 부동산값 폭등, 비정규직 비율 55%, 청년 실업 200만, 출산율 바닥, 자살률과 근로시간, 산재사고 OECD 최고라는 대한민국의 엽기적인 현실을 생각할 때 현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보다는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같은 우려는 현실이 됐다. 솔직히 필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악화된 형태로 말이다. 사실 현 정부는 아마추어도 이만저만한 아마추어가 아니며,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는 점에서 사기꾼 기질이 유전자에 각인된 정부라고 본다. 이들을 단순히 '실용정부'나 중도 우파 정부라고 본다면 그것은 오해요, 착각이다.

이들은 과격한 '우파 기득권 혁명세력'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들과 지지세력에게 필요한 것은 반드시 관철시키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집단이라는 점이다. 필자도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촛불시위 이후 자신들 세력을 결집하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선전포고하고, 미네르바 등 네티즌 논객을 구속하고 용산참화의 희생자들에게 사과는커녕 테러리스트 진압하듯 물리력을 휘두르는 것을 보면서 이들은 정상적 판단력을 가진 정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결과 현 정부는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이뤄온 민주주의와 인권, 대북정책의 성과를 빠른 속도로 갉아먹고 있다. 국정원, 검찰, 경찰 등은 시간이 갈수록 권위주의 시절 마냥 정권의 주구로 변질되고 있다. 낡은 틀을 벗지 못한 정부 관료들 또한 과거의 낡은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거듭되는 정책실패로 서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사법 체계 또한 삼성에버랜드 사건 대법원 판결 등에서 보듯 법의 잣대를 기득권층에 유리하게 구부리는 경향이 여전하다.

 

현 정권과 유착한 기득권 언론이 정권의 친위대 역할 자처

정치와 더불어 가장 심각한 것은 언론이다. 여전히 신문시장에서 현 정권과 유착한 기득권 언론이 정권의 친위대 역할을 하는 가운데, 현 정부의 집요한 방송장악 시도로 방송의 공정성과 중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 정부는 2010년 마지막 날 '조중동매연'을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채널 사업자로 지정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들을 보수 일색이라 여론의 편향성이 우려된다고 했지만, 이들은 단순히 보수신문이 아니라 재벌광고주들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기득권 언론들일 뿐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아온 이들 언론이 여론시장을 지배하고 이 나라를 베를루스코니 치하의 이탈리아처럼 만들겠다는 기득권 세력들의 기획이 노골적으로 실행되고 있다.

더구나 열심히 땀 흘려 일하고 정직하게 납세하는 사람만 '봉'이 되는 현실은 어떤가.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경제 규모는 7500조 원. GDP로 대표되는 생산경제 규모는 1064조 원에 이른다. 자산경제 규모가 생산경제보다 7배 크지만, 부과되는 세금은 생산경제 쪽이 4배 이상 많다. 근로소득에 불로소득보다 30배 이상 과중한 세금을 매기는 셈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특검에서 4조 500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세금 한 푼 안 냈고, 한화 태광 등 비자금 통한 탈세 소식은 계속 불거지고 있다. 부동산, 주식에서 수천 수억 원 양도차익을 얻은 사람들도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 한 푼 안 내는데, 연봉 수천만 원인 근로소득자는 연간 수백만 원의 세금을 원천징수당한다. 간이과세제를 배경으로 세금계산서 없는 거래를 통해 자영자들의 탈세도 매우 심각하다. 건강보험의 직장 가입자는 고소득자가 많지만, 지역가입자중 고소득자는 멸종위기종으로 보일 정도로 탈세가 만연해 있다. 더구나 부패와 각종 비자금의 온상 건설업계에서는 매년 10조~20조원씩 비자금이 조성돼 수조 원의 탈세가 횡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명박 정부는 부자감세정책으로 오히려 전속력으로 역주행하고 있다. 국세 수입의 3대 축 가운데 법인세, 소득세수는 주는데 모든 국민이 소득수준 상관 없이 내는 세금인 부가가치세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서민경제 지원을 위한 세제 개편안'이라고 떠벌렸던 감세정책 이후 고소득의 경상조세 부담은 확 준 반면 저소득층의 부담은 확연히 늘고 있다. 저소득층 세금 부담을 늘리면서 '친서민'이니 '공정사회'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처럼 정직하고 성실한 납세자들만 '봉'이 되는 현실,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 왜 현 정부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떠나 이 근원적인 불평등과 부조리에 대해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인가.

이처럼 낡고 부패한 정치, 시대착오적인 관료체제, 편파왜곡보도에 찌든 기득권 언론, 서민과 특권층을 차별하고 전관을 예우하는 사법체계, 정직하고 성실한 납세자만 쥐어짜는 불공평한 조세구조를 두고 한국 경제가 건전한 선진경제로 도약하기란 어렵다. 필자가 지속적으로 정부와 정치권의 정책을 비판하고 언론의 왜곡보도를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분개하고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대한민국 전반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연대의 자본집약적 산업구조에서 첨단기술산업 위주로 한국의 산업구조는 확 바뀌었다. 이 같은 경제 및 산업구조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마련해야 한다.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리지 않고 자산경제와 생산경제가 조화롭게 선순환하며 성장하는 나라. 지식정보화시대를 선도하고 창의적인 인재가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는 나라. 공정한 게임 규칙에 따라 출신과 배경이 아닌, 능력과 노력이 성공의 핵심이 되는 나라.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하기 위한 혁명적 변화를 국민 대다수가 갈구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이명박 정부로 대변되는 시대적 반동에 굴복하고 새 희망을 가꾸지 못한다면 한국은 이대로 주저앉고 말 것이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온갖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겪으며 여기까지 전진해온 우리 국민의 저력을 생각하면 이 나라가 쉽게 주저앉을 리 없다고 믿는다.

 

형편없는 정부, 경제 패러다임 확립 못했기 때문

하지만 지금 당장은 무기력감을 많이 느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필자도 눈물을 흘렸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의 마음도 있었지만, 전직 대통령마저 비운에 가야 하는 이 땅의 서글픈 현실 때문에 울었다. 필자는 그를 많이 비판했다.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권위주의와 지역주의 타파 등을 위해 기울인 그의 노력과 열의는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부동산 문제에 관해서는 그의 말과는 달리 건설족 관료들에게 임기 내내 휘둘리는 모습을 보며 한숨짓고 분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필자는 노무현 정부가 지지층에 버림받고 결국 정권까지 놓치게 된 결정적 이유가 부동산 정책 실패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우리는 지금 시대착오적인 정권 치하에 살고 있다.

이처럼 형편없는 정부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건전한 공동체의 토양이 되는 경제 패러다임을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정치권이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확립할 구체적 정책과 대안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정치권은 여야 가리지 않고 '민생'을 외쳤지만, 문제 해결의 근본적 해법은 제시하지 못했다.

'4대강사업'이라는 토건개발사업 말고는 아무런 미래에 대한 비전도 아이디어도 없어 보이는 이명박 정부는 그렇다 치고 국민이 만들어준 과반수 정당의 우위 속에서도 '진짜 개혁'을 추진하지 못했던 민주당(과거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했지만 이를 민주당에 대한 적극적 지지로 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명박 정부보다는 낫다' '그래도 현 정부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는 당장은 민주당을 밀어야 한다'는 여론이 반영된 정도로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박근혜와 일곱 난쟁이 현상'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1월 3일 오전 10시부터 20분간 신년특별연설을 했다. ⓒ 청와대  이명박

 

새해가 와도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게 역사를 퇴보시킨 현 정부와 한나라당은 그렇다 치고 도대체 민주당 등 야권은 뭘 하고 있는 것인가. 일반 가계의 민생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비전과 역량 없이 뭉쳐서 이기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인가. 지금 민주당을 중심으로 기성 야권의 상당수는 정책역량 업그레이드보다는 여전히 지난해 지방선거와 같은 선거구도를 만들면 승리하지 않을까 하는 환상을 갖고 있는 듯하다. 현재의 민생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 없이 정권교체만 하면 서민들의 삶이 자동적으로 개선되는 것인가.

필자는 현 정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강하게 비판하는 사람이다. 이처럼 쓰레기같은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것이 분명 야당의 역할이지만, 집권을 목표로 한다면 유권자의 고충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 비전과 솔루션들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야권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국 사회는 지금 두 가지 핵심 과제에 직면해 있다. 현 정부 들어 퇴보한 민주주의와 인권, 대북정책을 정상 궤도로 되돌리는 과제가 하나라면 집값 거품과 사교육비 부담 등 민생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또 다른 과제다. 현 야권이 집권하면 첫 번째 과제는 일정하게 해결할 수 있겠지만, 두 번째 과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유권자들은 이 물음을 애타게 요구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정권을 이렇게 형편 없는 정부에 빼앗기고 나서도 아직 제대로 된 답을 못 내놓고 있다.

한 번 물어보자. 무지와 무능, 사악함으로 점철된 현 정부가 물러간다고 '믿을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정치 세력이 있는가. 높은 도덕적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지금 한국이 당면한 산적한 과제들을 해결할 문제 해결 역량을 갖춘 정치 세력이 있는가. 선뜻 긍정적인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무기력감과 동시에 결연한 책임감 또한 느낀다. 이 나라와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 정치세력, 기득권 세력들만이 권력과 자원을 독점하는 불공정한 게임 규칙이 아닌 탄탄한 공동체 기반 위에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우뚝 세울 정치세력이 지금 없다면 결국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지금은 당초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많은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의 당선도 혼자 힘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편협함에 빠져 자기들의 지지기반 챙기기에만 골몰했던 부시 행정부에 염증을 느낀 많은 미국 유권자들이 함께 일궈낸 기적이다. 추종자론(followership)의 대가인 바바라 켈러먼 교수의 말을 굳이 빌려오지 않더라도 "좋은 추종자들이 좋은 지도자를 배출한다"는 상식을 여실히 입증한 것이다. 우리라고 못 할 리 없다.

 

20-40대여, 기적의 변화를 주도하라

▲ 기자회견 중인 오바마 대통령 ⓒ 유성호

그러한 변화와 기적을 주도할 수 있는 것은 20대에서 40대 전반의 젊은 세대다. 인류 역사를 통털어 변혁을 주도한 것은 젊은 세대였지, 결코 기성세대가 아니다. 이미 세계 각국에서는 자연스럽게 젊은 세대가 국가 운영을 주도하고 있다. 당장 오바마 대통령부터 47세에 당선된 젊은 대통령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지금 많은 선진국에서는 40대, 심지어 30대의 정치지도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금처럼 급속히 변화하는 시대에 경륜과 관록보다는 스피디한 변화와 창발적인 개혁을 세상은 요구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의 60,70대 '올드보이들'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세상이다. 급변하는 세상에 제대로 대응하고,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고 주도할 수 있는 세대는 젊은 세대다.

더구나 낡은 경제 패러다임과 불공정한 게임규칙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욱 고통받는 세대 또한 젊은 세대다. 이미 수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88만원세대'로 전락하고 있다. 거액의 교육비를 들여 자신을 갈고 닦은 젊은이들에게 낡은 기득권 세력은 '눈높이를 낮추라'고만 한다.

그들의 과오와 탐욕 때문에 젊은이들이 재능을 발휘할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많이 만들지 못한 것은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와 정치권의 반성과 사과는 없고 젊은이들만 눈이 높다고 윽박지른다. 오른 집값에 결혼도 하기 힘든 젊은이들의 초임까지 깎고, 일자리 만든다며 젊은 세대가 나중에 쓸 돈을 끌어와 각종 단기 '알바' 자리를 양산하고서는 생색을 낸다.

경제적 여력이 부족한 30대는 대부분 치솟는 집값을 바라보며 손만 빨고 있어야 한다. 개발연대의 획일적 사고방식에 갇혀 제대로 창의성을 발휘하기도, 자기계발시간도 없이 세계 최장시간의 과로에 시달려야 한다. 향후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노후세대를 부양할 부담은 갈수록 커지는 세대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미래의 재원까지 당겨와 강바닥을 파헤치는 등 대규모 토건사업에 쏟아 붓고 있다. 마구잡이로 시대착오적인 토건사업을 벌인 결과 2009년 이후 410조 원의 공공부채가 증가했다. 이전 10년간 늘어난 공공부채보다 더 많은 액수로 이 나라를 빚더미에 올려놓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을 '빚쟁이 대통령'으로 부끄러워하기보다는 '경제대통령'이라고 온갖 너스레를 다 떨고 있다.

막대하게 늘어난 이 천문학적인 공공부채는 결국 미래세대를 위해 소중하게 쓰일 수 있는 재원을 모두 현재 기득권들의 탐욕을 충족하기 위해 당겨쓰는 것이다. 이처럼 낡은 기득권 세력에 의해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젊은 세대가 왜 판판이 당하고 있어야 하는가.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이 막대한 희생만 강요하는 정책결정을 왜 소수 기성세대가 하도록 빤히 보고 있어야 하는가.

부모세대에게도 호소한다. 필자가 세대 간 갈등과 대립을 조장할 생각이 없다. 필자는 부모 세대가 자식세대의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흘린 피와 땀, 눈물을 잘 안다. 필자의 부모만 하더라도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지만, 뜨거운 뙤약볕 아래 그을리고 손발이 부르터가며 농사를 지어 자식들 교육을 시켰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절대 다수의 부모들이 자식의 성공을 위해 헌신했다. 부모세대의 헌신과 노력의 결과 한국경제가 보릿고개를 넘어 이 정도라도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런 부모세대들이 자식세대가 잘 되는 것을 위해 언제든지 양보하고 물러날 자세가 돼 있다고 믿는다. 소수의 기득권 세력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탐욕에 눈이 멀어 낡은 질서를 유지하려는 것일 뿐이다. 소수의 기득권 세력들 때문에 국민 전체가 바보 취급당하며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자식세대가 끌고 부모세대가 밀어주어야 한다

이제 자식세대가 끌고 부모세대가 밀어주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멀쩡한 국민들을 바보 취급하는 기득권 세력을 타파해야 한다. 전 국민이 합심해 그들을 바보로 만들어야 한다.

필자의 동시대인과 후배들인 젊은 세대에게 호소한다. 제발 정치를 멀리하지 마라. 정치는 더러운 것, 사기치는 것, 뻔뻔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런 생각은 버려라. 필자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유학하는 동안 느꼈던 문화적 충격가운데 하나는 '정치는 고귀한 책무'라는 인식이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정치 선진국에서 온 학생들 대부분은 정치는 개인이 국가와 지역 공동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공공봉사(public service)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케네디스쿨의 교수들도 그렇게 가르쳤다. 물론 공중을 위한 봉사가 늘 정치일 필요는 없다. 몸담은 곳이 언론이든, 시민단체든, 정부든, 또는 기업이든 공중을 위한 봉사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거꾸로 그것이 정치라고 해서 피할 필요가 없다. 정치는 사이코나 철면피, 또는 강심장들이나 한다는 생각을 제발 버려라.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만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정치는 더럽다'는 인식을 더욱 조장한다.  '정치는 더럽다'는 인식 때문에 많은 이들이 정치에 발을 담그는 것을 회피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양상이다. 물론 현실의 한국 정치는 온갖 적폐로 넘쳐나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능하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젊은 인재들이 정치를 멀리하면 할수록 정치의 수준은 더욱 더 떨어진다.

필자가 과거 기자로서 지켜본 정치판 인력(=정치인과 그 보좌진 및 정치인 지망생들)의 질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도덕성으로 볼 때는 한국사회의 평균적 수준을 유지하지도 못한다. 물론 개중에는 매우 능력 있고, 뛰어난 도덕성을 갖춘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더럽고 낡은 기성 정치판에 좀 더 잘 적응하는 인물들일 뿐이다. 왜 당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정치를 무능하고 부패한 사람들의 손아귀에 맡겨놓는가.

한 번 생각해보라. 자신의 각종 생색내기식 개발사업에는 매년 수조 원씩 쓰면서도 우리 초등학교 아이들 친환경 식단으로 골고루 밥 좀 먹이자는 예산 700억 원이 아깝다며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부르짖는 오세훈 서울시장만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겠는가.

용산참사 희생자들에게 '떼잡이들'이라는 폭언을 퍼붓는 반면 1200억 원 짜리 호화 구청사를 턴키로 발주해 건설업자들에게 퍼주었던 지난 용산구청장보다 서민들을 배려하지 못하겠는가. 입법권은 정부가 만들어온 법을 대신 발의하거나 당론에 따른 거수기 투표를 하는 것으로 치부하고, 예산심의권은 지난해말 예산안 날치기 통과 과정에서 봤듯이 지역구 개발사업 따내는 권한 정도로만 생각하며, 때 되면 권력의 향배를 좇아 우르르 몰려다니며 패거리 짓는 다수의 국회의원들보다 당신이 못할 것이 무언가.

우리가 낸 소중한 세금이 왜 겨울방학 동안 결식아동들의 굶주린 배를 채우고  이 땅의 영유아들에 대한 예방접종 기회를 확대하는데 쓰는 대신 '형님'과 '안주인' 예산 챙기는 데만 혈안이 된 한나라당 의원들보다 못할 것이 뭔가. 전례 없는 경기 침체 와중에 87조 원의 부자감세에다 4대강 바닥에 24조 원의 혈세와 공공부채를 쏟아 붓고 이 돈을 뽑아내기 위해 4대강 주변을 '부동산 투기 특별구역'으로 만들어버리는 이명박 대통령만큼 기득권 편향적일 수 있겠는가. 왜 시대착오적인 '올드보이'들이 마르고 닳도록 권력을 누리면서 이 나라를 퇴행의 늪으로 빠지도록 놔두는가.

 

새로운 시대적 감수성과 도덕성 갖춘 인재 필요해

필자가 아내 때문에 2년 전쯤 보게 된 드라마 '시티홀'에서 작은 지방도시의 시장에 당선된 '신미래'가 바로 진짜 정치인이다. 거대한 건설토목사업에 헛돈 쓰지 않고, 작더라도 서민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신미래가 진짜 주민들에게 필요한 정치인이다. 정치술수에 닳아빠지고 지역 토호들과 유착된 정치인보다는 서민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시장 커피 타던 30대 젊은 여성이 더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있다. 검은 돈을 받지 않고, 중앙권력에 줄서지 않으며, 서민들의 민생고를 더 잘 해결해주는 정치인이 될 수 있다.

물론 점점 전문화해가는 세상 속에서 전문적 역량을 대중적으로 검증받은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지금 정치판 인력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역량과 도덕성을 갖춘 많은 젊은이들이 정치를 경원시하는 것은 안타깝다. 새로운 시대적 감수성을 갖추고 도덕성과 전문 역량으로 뭉친 인재들이 지자체와 지방의회, 중앙 정치무대를 주도할 때 한국 사회는 진보할 수 있다. 왜 썩어빠진 낡은 세력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겨놓고서 그들이 우리 뜻대로 안 한다고 욕 하는가. 이제 도덕성과 전문성으로 중무장한 젊은 세대가 정치의 전면에 직접 나서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꿈이 아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미국 젊은이들을 대거 투표소로 끌어낸 것은 오바마로 상징되는 변화요, 개혁에 대한 열망이었다. 미국의 젊은이들도 인터넷을 주무대로 삼아 그러한 희망을 스스로 만들고 참여했다. 그리고 함께 승리했다. 우리 젊은이들도 결코 무기력하지 않다고 믿는다. 지금 젊은이들은 그동안 기득권의 게임 규칙에 갇혀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을 뿐 결코 역량이 없는 세대가 아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세계를 선도할 잠재력을 가진 세대다.

지금 이들 세대들이 주축이 돼 인터넷에서 함께 만들어 내는 집단지성의 힘을 보라. 얼마나 대단한가. 이 힘들을 모으고 축적한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한국판 '오바마 기적'을 이룰 수 있다. 그 기적을 만드는데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가 함께 힘을 모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40여 년 전 '나는 꿈이 있다'고 한 말이 지금 미국에서 현실이 됐듯이, 우리 모두가 함께 꾸는 꿈은 얼마든지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정치를 바꾸어야 경제도 바꿀 수 있다. 그렇게 해야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도 바꿀 수 있다. 

선대인 트위터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

덧붙이는 글 |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경제구조를 만들기 위한 더 깊이 있는 토론과 정보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을 방문해 주십시오.

출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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