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덴 성 십자가 소년 합창단(Dresdner Kreuzchor)
독일을 대표하는 세계 최정상의 소년 합창단 - 독일을 대표하는 700년 전통의 소년 합창단
독일을 대표하는 세계 최정상의 소년 합창단인 드레스덴 성 십자가 합창단(드레스트너 크로이츠코어: Dresdner Kreuzchor)가 얼마 전에 드디어 한국을 방문했다.
성악가 페터 슈라이어, 테오 아담, 올라프 베어를 배출했으며, 같은 작센 주에 위치하고 올해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공연을 가진 바 있던 라이프치히 토마너코어(Thomanerchor Leipzig)와 양대 산맥을 형성하는 독일의 대표적인 합창단으로 크리스마스 성가곡과 아름다운 종교적 협주곡 연주로 유명한 드레스덴 성 십자가 소년 합창단 !!
한국에는 크리스마스를 한 달 정도 앞 둔 때에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에서 드레스덴 성 십자가 소년 합창단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주로 공연하는 저녁 성가 곡들로 가득했었다. 드레스덴 자체가 유럽에서 손꼽히는 크리스마스 도시이기에 이들은 크리스마스 예배 때 성극을 공연하기로도 유명하다. 의상과 무대 장치 등을 통해 드레스트너 크로이츠코어의 교회 크리스마스 예배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시켜 아름다운 도시 드레스덴의 크리스마스 풍광을 미려한 선율에 담아 전하였다.
■. 드레스트너 크로이츠코어 (Dresdner Kreuzchor)
드레스트너 크로이츠코어는 우리나라에 성 십자가 합창단(Holy Cross Choir)이란 이름으로 더 친숙한,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독일 프로테스탄트 교회 소속 소년 합창단이다.
9세부터 19세까지 150명의 소년들로 이루어진 드레스트너 크로이츠코어에 주목해야 할 사실은 성인남성 파트와 어린 소년들로 이루어진 합창단이라는 점인데 대부분의 독일의 소년 합창단들은 드레스트너 크로이츠코어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드레스트너 크로이츠코어 단원(Kruzianer)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아름다운 성악 발성이 요구되는데, 반드시 6세에서 9세 사이의 어린 소년이어야 한다. 또한 입학시험을 통해 음악적 수련에 적합한 인성에 관한 개인성도 평가된다.
■. 크로이츠코어의 해외 연주 활동
예배의 전통에 깊이 뿌리를 둔 드레스트너 크로이츠코어는 독일을 비롯한 전 세계 교회와 콘서트 홀에서 게스트 합창단으로 활약을 해오고 있다. 그들의 해외 연주 활동은 1920년 이래 독일과 유럽의 경계를 벗어나 일본, 이스라엘, 캐나다, 미국 등지로 뻗어 나가고 있으며 한 해 3회 정도의 대규모 투어 활동을 벌이고 있다.
■. 크로이츠코어의 역사
1234년 헨리 왕의 오스트리아인 부인이 드레스덴으로 가져온 십자가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성직자들과 소년합창단은 예배시간에 성가를 불렀으며 라틴어를 주 언어로 사용하던 그들의 성 십자가 교회 기숙 학교(Kreuzschule, 정식 이름은 Evangelische Kreuzgymnasium)에 대한 첫 기록은 13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루터의 종교 개혁이후 성 십자가 교회가 루터파 프로테스탄트로 전향하게 되면서 합창단도 프로테스탄트 음악의 대표주자로 나아가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17세기부터는 드레스덴 궁정 악장들과 밀접한 교분을 갖고 그들의 음악을 연주하였는데 이 시기 대표적인 음악가로, 현재 드레스트너 크로이츠코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프로테스탄트 음악의 거장 하인리히 쉬츠를 들 수 있다.
17세기 이후 합창단은 계속 여러 오페라 하우스 무대에 섰으며, 19세기 말까지 소피아 교회(Sophienkirche)와 프라우엔 교회(Frauenkirche)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가져왔다. 그러던 중, 1945년 2월 세계 제 2차 대전 공습으로 바로크 양식에 빛나는 아름다운 도시 드레스덴은 화염에 휩싸이고 결국 11명 단원이 목숨을 잃는 비극을 맞는다.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됨과 동시에 라이프찌히 토마너코어와 드레스트너 크로이츠코어는 공산주의가 지배하던 동독에 편입되었는데, 이는 그들의 부재를 아쉬워하던 합창지휘자들이 서독에 그들을 모델로 한 합창단을 창단케 하는 기폭제가 된다. 1945년 공습 이후 수십 년이 지난 후까지도 합창단은 보금자리를 되찾지 못했으나 합창단의 전설적인 지휘자 루돌프 마우어스버거와 그의 계승자 마틴 플래미히의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크로이츠코어는 공산주의 동독 사회에서도 기독교 전통을 유지하면서 예술적인 발전을 거듭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실제 합창단은 1955년부터 매년 쉬츠 주간을 개최하여 그의 진수 높은 성음악을 보급하는데 큰 업적을 남겼다.
소년, 소녀 합창단 중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소화할 수 있는 합창단들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소수로 알려져 있다. 태고부터 크로이츠코어의 악장(Kreuzkantor)들은 합창단 자체적으로 음악을 작곡해 레퍼토리를 풍부하게 만드는 데 주력했다. 20세기에 들어서 음악 장르의 확장과 여러 회에 걸친 공연을 통해, 드레스트너 크로이츠코어는 지속적으로 주목 받으며 세계 유수한 평론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 왔다.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와 칸타타를 비롯해 독일의 저명한 오케스트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의 브람스 레퀴엠에 이르기까지 매년 성 십자가 교회(Kreuzkirche)에서 벌어지는 음악의 향연을 통해 이 젊은 노래꾼들은 전 세계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글 출처: <서울예술기획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