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송

Amsterdam - Jacques Brel│샹송

리차드 강 2011. 7. 22. 18:46
Amsterdam - Jacques Brel
Enregistrement Public À L'Olympia 1964
Jacques Romain Georges Brel (1929–1978)
1. Amsterdam (Live Olympia 1964)
October 16-October 17, 1964 / Chanson / Barclay Records / Universal Records
   
Amsterdam - Jacques Brel
Dans le port d'Amsterdam
Y a des marins qui chantent
Les rêves qui les hantent
Au large d'Amsterdam
Dans le port d'Amsterdam
Y a des marins qui dorment
Comme des oriflammes
Le long des berges mornes
Dans le port d'Amsterdam
Y a des marins qui meurent
Pleins de bière et de drames
Aux premières lueurs
Mais dans le port d'Amsterdam
Y a des marins qui naissent
Dans la chaleur épaisse
Des langueurs océanes
Dans le port d'Amsterdam
Y a des marins qui mangent
Sur des nappes trop blanches
Des poissons ruisselants
Ils vous montrent des dents
A croquer la fortune
A décroisser la lune
A bouffer des haubans
Et ça sent la morue
Jusque dans le cœur des frites
Que leurs grosses mains invitent
A revenir en plus
Puis se lèvent en riant
Dans un bruit de tempête
Referment leur braguette
Et sortent en rotant
Dans le port d'Amsterdam
Y a des marins qui dansent
En se frottant la panse
Sur la panse des femmes
Et ils tournent et ils dansent
Comme des soleils crachés
Dans le son déchiré
D'un accordéon rance
Ils se tordent le cou
Pour mieux s'entendre rire
Jusqu'à ce que tout à coup
L'accordéon expire
Alors le geste grave
Alors le regard fier
Ils ramènent leur batave
Jusqu'en pleine lumière
Dans le port d'Amsterdam
Y a des marins qui boivent
Et qui boivent et reboivent
Et qui reboivent encore
Ils boivent à la santé
Des putains d'Amsterdam
De Hambourg ou d'ailleurs
Enfin ils boivent aux dames
Qui leur donnent leur joli corps
Qui leur donnent leur vertu
Pour une pièce en or
Et quand ils ont bien bu
Se plantent le nez au ciel
Se mouchent dans les étoiles
Et ils pissent comme je pleure
Sur les femmes infidèles
Dans le port d'Amsterdam
Dans le port d'Amsterdam.
암스테르담 항구에는
꿈을 노래하는 선원들이 있다
암스테르담 해변을 따라
그들은 꿈에 쫓기운다
암스테르담 항구에는
잠을자는 선원들이 있다.
적막한 제방에 줄줄이늘어선
깃발처럼 그들은 잠을 잔다
암스테르담 항구에는
죽어가는 선원들이 있다
동녘에 첫 햇살이 잦아들 때
맥주와 비극에 절어 죽어간다
그러나 암스테르담 항구에는
소생하는 선원들이 있다
대양의 우수에 두터운 열기가 서리고
그들은 그 속에서 태어난다
암스테르담 항구에는
너무 새하얀 식탁보 위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생선을
씹어먹는 선원들이 있다
그들은 당신에게 내보이는
그 이빨로 운수를 깨어 물고
달을 이지러지게 베어 먹고
또 밧줄을 잘라 먹는다
감자튀김을 더 내오라고
그들은 커다란 손을 휘휘 젓고
내어온 튀김 그 어느 곳을 먹어도
신원불명의 시체 냄새가 배어 있다.
그리곤 태풍을 예견하는 웅웅 소리에
호탕하게 웃으며 일어선다
바지춤을 다시 비끌어 매고
트림을 하며 밖으로 나선다
암스테르담의 항구엔
선원들이 춤을 춘다
여인의 배위에 올라
배와 배를 비비며 몸을 출렁인다
그리고 몸을 돌리며 춤을 춘다
역한 기름내가 풍기는 아코디언
찢어질 듯한 그 소리에
마치 태양빛을 퉤 밭아 놓은 것처럼
서로의 웃음 소리를 더 잘 들으려
그들은 목을 비틀어댄다
아코디언 소리가 어느 순간
퍽하고 꺼져 버릴 때까지
그들의 몸짓은 육중하고
눈에는 자긍심이 가득하고
옛 네덜란드의 영광을
한 가득 다시 가져온다
암스테르담 항구에는
술 마시는 선원들이 있다
술을 마시고 또 마시고
거기다 또 한 잔 더 걸친다
건강을 위해 건배하고
암스테르담과 함부르그와
다른 모든 곳들의 창녀를 위해, 또
마지막으로 부인들을 위해 건배한다
금화 한 닢을 주기만 하면
예쁜 몸과 정조를 내어주는
그녀들을 위해 술을 마신다
얼근하게 술이 취하면 그들은
하늘에다 코를 박고
별을 향해 코를 푼다
내가 바람난 여편네들 때문에 소리내 울듯
그렇게 그들은 쏴아 오줌을 눈다
암스테르담 항구에는
암스테르담 항구에는
가사번역 : 사라
   
   
Introduction
벨기에 출신으로 프랑스에 활동했던 Jacques Brel은 그의 감정선을 자극하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시인으로 기억될 정도로 뛰어난 가사를 쓴 가수이다. 죽은지 30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그의 노래는 사람들 속에서 흘러다니고 있다. 그의 섬세함과 열정을 동시에 느낄수 있는 Amsterdam.
'폭발시키는 마지막 전통 샹송 창법' 이라고....... 브렐은 그 대상의 심장에 파고 들어 함께 우는 듯. 이 곡 Amsterdam은 브렐이 처음으로 올림피아 공연장(이곳에 서는 것이 성공의 척도란다.)에 섰을 때 즉석에서 만들어낸 노래라고 한다.
     
     
Jacques Brel
‘쟈크 브렐’은 1929년 4월 28일. 브뤼셀(벨기에의 수도)에서 태어났다. 그렇지만 부모 모두 남부 프랑스 사람들이었기에 프랑스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부모님은 꽤 커다란 제지 공장을 경영하고 있어서 ‘쟈크 브렐’의 어린 시절은 풍요롭고 부유한 생활환경안에서 자랄 수 있었다.
Jacques Brel은 학교에서 상업과 경영에 대한 공부를 하고, 졸업을 한 후에는 거의 5년간 아버지의 제지 공장에서 회계 일을 맡으며 일을 배워나갔고, 곧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아, 사장인 경영자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Jacques Brel에게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감성과 고독이 넘치는 정신세계가 있었다. ‘쟈크 브렐’은 매 일요일마다 친구들과 함께 양로원이나 병원 등을 찾아가 기타를 치며 위문공연을 하는 것에 커다란 행복과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 시절부터 샹송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Jacques Brel은 평범한 부자들이 모여 나누는 지루한 이야기 들 이라던가, 파티를 즐기는 상류사회에서의 살아가는 방식을 참을 수 없어했다. ‘쟈크 브렐’은 결혼도 했고, 세 딸을 두기도 했고, 부모님의 풍부한 재산 때문에라도 다복한 프랑스 상류사회의 확실한 장래를 보장받고 있었는데도, 그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Jacques Brel은 스스로 만든 샹송과 기타연주로 노래하는 인생길의 문을 열게 된 것이다. 가족을 남겨두고 홀로 파리로 나온 것은 가수가 되기 위한 1952년 20대의 청춘이 빛나고 있을 때 였다. 처음부터 샹송가수로 성공하기란 어려운 일이었고 ‘쟈크 브렐’은 고생에 고생을 거듭하며, 식당에서 점원으로 일하기도하고, 접시 닦는 일도 하면서 무명가수로서의 긴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드디어 1957년  Jacques Brel의 노래 'Quand on N'aque L'amoure는 전 유럽을 통해 알려졌고 인기를 얻게 되었고 그 뒤  순조롭게 부와 명성을 쌓았다.
그러던 중 돌연,  Jacques Brel은 은퇴를 선언하게 되어 팬들을 충격속에 빠뜨린다. 은퇴의 이유는, 자신이 계속 노래를 부른다면, 같은 소리, 같은 몸짓을 되풀이하게되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음악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가 사라질 것 이라는 이유였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대중가요계를 휩쓸고 있던 ‘서 태지’가 이와 비슷한 이유로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잠적해 소식을 절대 알리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다. 어쩌면 그 보다 원조 격이며 서태지보다 오랜기간인, 10년이나 잠적해 있었으니, 우리나라에서는 서태지에게서 처음 접할 수 있었던 최정상에서의 돌연 은퇴선언의 오리지널 판권은  Jacques Brel에게 있겠다.
10년 만에 자신이 작곡한 샹송들을 가지고 다시 돌아와 음반을 발표한  Jacques Brel의 곡들이 실린 컴백앨범은 무려 120만부 이상이 팔려나가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대중들은 흥분하기 시작했지만 사실  Jacques Brel은 어쩌면 자신에게 닥칠 운명의 파도를 이미 예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의사들로부터 ‘암 인 것 같다’는 진단을 받은 후, 잠적생활을 마치고 음악적으로 생을 마감하기위해 파리로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하기도 한다.
1978년 10월9일.  Jacques Brel이 ‘암 으로 투병 중 사망했다’는 뉴스가 발표되자 프랑스 국영 텔레비전 방송은 모든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Jacques Brel의 추모 특집을 급히 마련해 방송했고 신문들도 1면 톱기사로 ‘쟈크 브렐’의 사망소식을 전했다. 수많은 샹송 팬들이  Jacques Brel이 돌아왔을 때, 반기고 환영했지만 실제 그는 이미 죽어가고 있는 ‘암 환자’였고 되돌아와 앨범을 성공적으로 발표한 지 1년 후, ‘쟈크 브렐’은 암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나이 49세 때의 일다.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