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평화의 가요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정의와 평화의 詩노래

리차드 강 2009. 4. 10. 00:05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金芝河) Kim, Ji-ha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 골목의 어딘가
발자국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는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 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영문제목 : With Parching Thirst
· 저자 : 김지하(金芝河) 지음
· 출판일 : 1982년 06월 05일
· 페이지수 : 176    · 판형 : 장46판
· 분야 : [시]창비시선, [청소년]문학

우리 시대가 낳은 세계적인 시인 김지하의 자선 서정시 모음. 1961년에 씌어진 「산정리 일기」에서부터 70년대 중반의 「빈산」 「1974년 1월」 「불귀」 등 시 56편과 「풍자냐 자살이냐」 등 산문 5편을 수록한 이 시집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빼어난 서정시인으로서의 그의 참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김지하(金芝河) Kim, Ji-ha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서울대 문리대 미학과를 졸업했다. 본명은 김영일(金英一)이며, 김지하는 필명이다.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1964년 6.3사태(1964)때 서울대 한일굴욕회담 반대 투쟁위원회에 관계하면서 처음으로 투옥되었고, 1972년 유신헌법이 공포되면서 인혁당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가 형 집행 정지로 10개월 만에 출옥했으나 재수감되어 6년이 넘는 옥고를 치렀다. 1980년 출옥 이후 전래되어 온 민중사상을 독자적으로 재해석하는 생명사상을 전개하고 민중적 실천을 모색하였다. 이후 생명사상이 중심이 되는 생명·평화 운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와 사단법인 ‘생명과 평화의 길’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1969년 <시인詩人>지에 시 「황톳길」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으로 <황토> <타는 목마름으로> <五賊> <애린><별밭을 우러르며> <중심의 괴로움> <花開> <절, 그 언저리> <유목과 은둔>등을 펴냈으며 <밥><남녘땅 뱃노래> <살림> <사상기행> <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 <김지하 사상전집> <김지하의 화두> <흰 그늘의 길>등 산문집과 회고록을 비롯한 여러 저서를 펴냈다.

노벨문학상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으며 로터스 특별상(1975),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1981), 위대한 시인상(1981), 이산문학상(1993), 정지용문학상(2002), 만해문학상(2002), 대산문학상(2002), 공초문학상(2003) 등을 수상하였다.

Perhaps the greatest dissident poet in modern Korea, Kim Ji-ha was born in Mokpo and rose to literary prominence in the 1960s and 1970s by raising a fierce voice against the dictatorial government. In 1970, Kim was imprisoned after the publication of Five Thieves, a scathing parody of corrupt politicians, government officials and business conglomerates sung in the traditional rhythm of ‘pansori.’ His imprisonment raised much outcry both nationally and internationally. Suffering from health problems, Kim continued to devote himself to writing. In 1974, Kim was court-martialed and sentenced to death. National and international efforts to free him culminated in the commuting of his death sentence to life-imprisonment. Around these times, Kim gained international recognition for his poetry and pro-democracy activities and was awarded Lotus Award. In recent years, Kim has been immersed in the “ideas of life”-a thought that rejects “survival of the fittest” as the basic order of existence and instead proposes a life of mutual cooperation and survival rooted in the belief that all life forms are fundamentally interrelated and interdependent.

     

     

●김지하(본성명, 김영일 金英一, 1941- 필명 김형 金灐)

1941년 전남 목포 출생
서울대 미학과 졸업
1969년 <시인>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1970년 시집 <황토> 펴냄
1975년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협회가 주는 로터스(Lotus)상을 받음
1982년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 펴냄
           대설(大說) <남(南)> 펴냄
1984년 이야기모음집 <밥> 펴냄
1986년 시집 <애린> 펴냄

-1995년 9월 17일자 일간지에 김지하 시인은 고통과 수난, 압작의 상징이었던 과거의 '지하'란 이름을 버리고 '김형'이라는 필명(筆名)을 사용한다고 하며, 새롭게 태어난 모습으로 활동하고 싶다고 밝혔다.
1941년 전남 목포 생, 1959년 서울대 미학과 입학, 1966년 졸업
1964년 대일 굴욕 외교 반대투쟁에 가담. 첫 투옥 이후 1980년 출옥 때까지 투옥, 재투옥을 거듭하여 장장 8여년 동안 영어(囹圄)의 세월을 보냄. ( <오적> 필화사건 등 )
1963년 첫 시 <저녁 이야기>를 발표한 이후, <황톳길> 계열의 초기 민중 서정시와 권력층의 부정부패를 판소리 가락에 실어 통렬하게 비판한 특유의 장시(長詩) <오적(五賊)> 계열의 시들, <빈 산>, <밤나라> 등의 빼어난 70년대의 서정시들, 그리고 80년대의 '생명'에의 외경(畏敬)과 그 실천적 일치를 꿈꾸는 아름답고 도저한 '생명'의 시편들을 만들어 냈다.
1975년에는 '로터스(LOTUS) 특별상'을 수상.

첫시집 [황토(黃土)](1970), [타는 목마름으로](1982), [애린]1·2(1986), [이 가문 날에 비구름](1988), [별밭을 우러르며](1989), 대설(大說) [남(南](1982, 1984, 1985) 등의 시집과 '생명사상'을 설파한 산문선집 [생명](1992) 등이 있다.

     

타는 목마름으로 - 감리교청년회전국연합회

점아 점아 콩점아 / 해방가 [live] 1984

감리교청년회전국연합회 공연실황

Track No.5 - 타는 목마름으로(멘트)

 

이젠 가물거리면서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오래 전 기억이다. 내 손 때가 가득 묻었던 편린들을 거의 2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서 다시 맞이하는 감회란! 처음으로 테이프 전체의 구조의 구상, 음악적인 배치와 편곡까지 모두 내 손에서 이루어진, 개인적으론 어마어마한 음악적 성과들을 훈련받을 수 있었던 소품이었다고나 할까? 60분짜리 조그만 테이프였지만 내겐 분신과 같은 소품이다. 원본 테이프를 나도 몇개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몇 번의 이사와 함께 행방조차 알 수가 없다.

작업은 84년에 이루어졌다. 전체 구성에 대한 기본 구성은 상당히 도식적이다. 당시 대학교 4학년의 기획안에서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었겠는가? 우선 한국 사회 모순의 역사적 고찰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84년 현재로 돌아와 농민, 노동자 문제를 병렬적으로 나열하고, 그리고 모순의 폭발과 결단으로 결론을 내리는 형식이었다. 83년 겨울에 메아리 내부에서 워크샾으로 비슷한 테이프 작업을 해 본 적이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이를 바탕으로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시 성원들의 음악적 기본기가 본질적으로 유치한 내용구성을 감싸 안아 힘 있는 내용물로서의 외형을 가능하도록 해 주었다고 본다.

83년 겨울 감리교 청년회 전국연합회 문화선교위원회 산하의 노래팀이 구성되었다. 당시 서울대 음대 성악과를 막 졸업한 고상미 선배와 호흡을 맞추어 83년 감리교 청년회 전국대회에서의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우린 내부 조직 정비 작업과 기독교 청년 운동 내에서의 진보적 역량의 강화와 전파를 위한 음악적 훈련과 각 청년회 지회와 교회들을 돌아다니면서 공연 작업들을 바쁘게 진행하고 있던 터였다. 이런 테이프 작업도 이런 작업의 일환이었다. 테이프 작업에는 6명이 참여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종교단체 산하의 작은 노래팀에 불과했던 이 구성원들이 이후 80년대 노래운동의 주요한 한 축들을 담당하는 주요한 활동가들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서울대 메아리 출신의 81학번인 본인과 서울대 음대 성악과 80학번의 고상미 선배, 그리고 서울대 음대 성악과 82학번이었던 장경선 (이후 노래모임 새벽의 멤버로 활동한다.), 서울대 메아리 출신의 83학번 전지용(노찾사활동, '그리운 이름'의 작곡자), 김삼연(노찾사의 대표적 가수- 노찾사 2집의 '이 산하에'를 부름), 그리고 경기대 83학번이었던 김경화가 내가 기억하는 6명이다. 그리고 녹음과 멘트, 효과 삽입등을 담당했던 당시 감리교신학대학교 방송국 소속의 81학번 친구가 있었다. 지금은 이름을 기억하기도 힘들지만.

반주는 기타 두대와 북, 멜로디언과 같은 중간에 잠깐씩 삽입되는 악기가 있었을 뿐이다. 대부분의 반주는 지용이하고 나하고 담당을 했고, 삼연이가 잠깐씩 도와주기도 했다. 인상적인 합창 부분이다. 편곡은 음악을 전공하지도 않은 내가 고집으로 했다. 하지만 워낙 기본기가 튼튼했던 멤버들이라서 당시로서는 녹음을 끝내고 들어보면서 도저히 6명이 한번에 녹음한 작업이라고 믿기질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들어보니 부실함이 느껴지는 것은 격세지감이라고나 할까? 녹음 하는 여름 내내 비가 억수로 왔다. 84년 여름에 큰 홍수가 있었음을 난 이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쏟아지던 비를 뚫고 서대문 육교 건너서 감리교 신학대학 언덕을 오르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눅눅한 녹음실 갇혀서 우린 그렇게 젊은 시절의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이창학 2003/03/27

     

타는 목마름으로 - 안치환

신개발 지구에서 / 약수뜨러 가는 길 1997

안치환 NOSTALGIA

Track No.11 -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 메아리

대결 / 내일로 트인 길위에서 (1999)

서울대학교 노래패 메아리

Track No.7 -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 김광석

서른 즈음에 / 사랑했지만 2002

COLLECTION : MY WAY, 2002

CD.3 Track No.11 -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 전제덕

아가미 (2006) - 하모니카 연주

Various Artists

Track No.9 - 타는 목마름으로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