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 op.61 - Henryk Szeryng, violin

리차드 강 2011. 11. 27. 06:44

Violin Concerto D Major OP. 61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D major op.61

Ludwig van Beethoven 1770 - 1827

제2악장 라르게토 (Larghetto) - 1악장 - 3악장

Henryk Szeryng, Violin

Amsterdam Concertgebow Orchestra
Bernard Haitink, conductor

 

 

작품설명

1806년 그가 3세 때에 작곡한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명 바이올리니스트 클레멘트를 위해 쓴 것이다. 베토벤은 여기서 바이올린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구사했으며 오케스트라와의 융합을 이루어 교향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다. 그 당시 오스트리아는 프랑스군에 점령당한 때였지만 불멸의 연인 테레제와의 희망에 찬 교제가 한창이었으므로 그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규모가 큰 구상에 풍부한 정서, 찬연하고 어려운 기교 등으로 보아 그의 독특하고 힘찬 정열을 가진 작품이다.

베토벤, 멘델스죤,브람스 이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3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 부른는데 그중에서도 베토벤과 멘델스죤 의 작품을 아담과 이브의 협주곡이라고들 한다. 베토벤의 협주곡은 남성적이고, 멘델스죤은 여성적이라는 의미지만, 아무튼 베토벤의 작품은 고금의 바이얼린 협주곡을 통하여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곡은 1806년 베토벤의 나이 36세때 작곡되었으며, 교향곡 5번 <운명>, 6번<전원>을 쓰기 2년전인 절정기의 직전에 해당 된다고 한다.

1806년 은 베토벤의 생애 중 가장 행복한 시기 였다고 한다.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 테레제와 그해 5월 (베토벤의 나이 36세) 에 약혼 하고 그 기쁨을 가눌 길이 없어 쓰고 있던 교향곡 5번을 중단한 채 제4번교향곡을 단숨에 작곡했고 이어 같은 해에 바이올린 협주곡도 완성했다. 헌데 최근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연애상대는 테레제가 아니고 동생 죠세핀(Josephine)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어떤 백작과 결혼했으나 이때는 미망인이 되어 있었다. 언니인 테레제의 일기에도 이무렵의 동생과 베토벤의 특별한 관계를 "죠세핀은 미망인 이었을 때 왜 베토벤과 결혼하지 않았을까? 그편이 슈타크베르크 백작과 재혼 한 것 보다 훨씬 행복 했을텐데 ~ " 라고 긍정적으로 적고 있다. 죠세핀과의 뜨거운 사랑은 맑게 정화된 에로티시즘을 내뿜는 바이올린협주곡 제2악장의 그지없이 아름다운 선율에 짙게 반영되어있다.

그리고 이곡은, 비엔나출신의 名바이올리니스트 프란츠 크레멘트(Franz Clement) 를 위해썻다고 하며, 독주부분은 클레멘트의 조언을 들어 가면서 썻다고 하는데, 그는 당시 안데어-비인 극장의 콘스트마스타 였으며, 1806년 12월23일 클레멘트의 독주로 초되었다고 한다."바이올린협주곡의 황제"라고 불리는 이 대걸작은 1868년 당대의 名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하임(Joseph Joachim)의연주와 멘델스죤의 지휘로 더욱 유명 해지게 되었다. 베토벤은 바이올린협주곡을 단 한곡 밖에 작곡하지 않았지만, 이 곡은 바이올린音樂史에 빛나는 이름을 남긴 곡이며, 베토벤 바이올린음악의 집대성된 작품 이라고 한다.

베토벤이 쓴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이면서 이 장르 최고의 걸작이다. 장대한 스케일과 역동감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가운데 깊고 뜨거운 열정이 강렬한 힘으로 뿜어져 나오는 곡. 팀파니의 5번의 연타로 시작되는 첫 악장부터 불꽃이 튀는 듯한 마지막의 론도 악장에 이르기까지, 꽉 짜인 곡의 구조와 악기간(독주와 오케스트라)의 균형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들에 비해 남성적 강인함은 덜한 편이지만, 정(靜)과 동(動)의 교묘한 공존에서 빚어지는 긴장감은 엄청난 힘을 발한다.

작품구성

제1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d장조 4분의4박자 소나타형식

갑자기 팀파니가 P로서 시작되며 이러한 시작은 지금까지의 작품에서 찾아보기 힘든 리듬인데, 이 리듬은 전 악장을 통해서 중요하게 연주되고 있다. 제 2소절부터 목관이 제 1주제를 제시하고 이 주제는 선율적이어 부드러우며 평화롭고 웅대한 맬로디 입니다. 제 2주제도 목관으로 제시되며 간단하면서도 친밀한 멜로디인데 현악기군에 넘겨져 되풀이 됩니다. 다시 경과부를 거쳐 특징있는 코다의 주제가 제 1바이얼린으로 여리게 나타나 관현악만에 의한 연주로 전주부분을 마치게 됩니다. 재현부는 ff로서 제 1주제부가 다시 연주된 다음 독주 바이얼린이 눈부시게 연주되며 제 2주제가 제연됩니다. 그후 카덴짜가 시작되며 그 뒤 독주 바이얼린은 제 2주제를 부드럽게 노래하기 시작하나 점점 여려져서 pp까지 되어 이윽고 크리센도 되어 ff로서 힘차게 주화음을 전합주로 연주하고 끝마칩니다.

 

제2악장 라르게토(Larghetto) G장조 4분의4박자 변주곡형식

유연한 가요 가락의 악장 , 현악합주의 부드러운 울림 사이로 바이올린의 아름다운선율이 흐른다. 숭고한 신에 대한 감사의 노래로 숭고한 감명을 받게됩니다. 아름다운 주제가 pp로서 mute를 사용한 현악기군만으로 제시되며 안식에 넘치는 아름다운 선율입니다. 제 1변주에서는 클라리넷이 주제를 연주하며 독주 바이얼린이 장식적으로 그 사이를 누비며 흐릅니다. 제 2변주에서는 주제의 선율이 파곳으로 연주되며 이것은 극히 드문 예이며, 독주 바이얼린이 장식적으로 그 사이를 누비며 흐릅니다. 제 3변주는 독주 바이얼린을 제외한 관현악만의 f로 연주됩니다. 그 뒤 독주 바이얼린이 카덴짜 풍으로 높고 낮게 춤추듯이 새로운 맬로디를 칸타빌레로서 연주합니다. 그리하여 화려한 변주 부분이 있은뒤 지금의 새로운 맬로디로 새롭게 단장되어 이윽고 여려져 pp가 되어 꺼질듯이 사라집니다.

 

제3악장 론도 알레그로 D장조 8분의6박자 론도형식

바이올린이 G 선으로 론도 주제를 제시, 끈덕진 느낌을 주는 인상적인 선율입니다. 페르마타가 있은 뒤 독주 바이얼린은 높이 올라 두 옥타브 위에서 같은 주제의 반복합니다. 또 페르마타가 있은 뒤 독주 바이얼린을 제외한 관현악의 전합주로 ff에서 이 주제가 힘차게 되풀이 됩니다. 그 뒤 독주 바이얼린이 sf로서 부주제의 맨처음 것을 유도해 가는데 이것 역시 인상적인 선율입니다. 그 뒤 다시 독주 바이얼린의 론도 주제가 두 옥타브 위에서 되풀이 된 다음 관현악의 전합주로 론도 주제가 재연되다가 다시 독주 바이얼린에 의한 부주제가 처음 것으로 되풀이 됩니다. 눈부신 기교를 보이며 드디어 마지막 솜씨를 보이는 카덴짜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끝나면 론도 주제의 주요주제를 바탕으로 하여 늠름하고 힘찬 론도가 계속 되며 , 멋진 기교와 함께 찬란한 클라이 막스에 이른다.

 

 

 

 

헨릭 쉐링(Henryk Szeryng, 1918 - 1988)

폴란드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 헨릭 쉐링은 멕시코 음악계의 중진으로서 온 국민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엇지만 그는 폴란드 태생이다. 미국의 아이작 스턴, 벨기에의 아르투로 그뤼미오와 더불어 전세계 바이올린계의 정상에 군림했던 인물이었다. 그의 연주는 해가 거듭될수록 더욱 기교적 원숙미와 심오한 음악성이 더욱 빛을 발했던 대가였다.

헨릭 쉐링은 1921년 파데레프스키(Ignacy Paderewski, 1860-1941)가 수상으로 있던 시기에 폴란드 바르샤바 근교에서 태어났다. 7세 때, 같은 폴란드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후베르만의 권고로 바이올린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 후, 후베르만의 추천으로 베를린으로 가서 13세 때까지 카알 플레쉬(Carl Flesch)에게 사사했다. 그리고 바르샤바, 부쿠레시티, 비인에서 공개 연주회를 가졌다. 그런 뒤로 파리로 가서 쟈크 티보(Jacques Thibaud, 1880-1953)에게 바이올린을, 나디아 블랑제(Nadia Boulanger)여사에게 작곡을 배우는 한편, 소르본느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그가 독일-헝가리派의 주법과 프랑스-벨기에派의 주법 양쪽을 다 수업한 것이 후에 그의 예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의 연주 스타일은 단정하고 엄격하면서도, 우아하고 유려하다. 그와 같이 상반된 요소가 그의 연주속에서 훌륭히 유지되고 있는 것은 특히 주목할만 하다. 그의 바탕은 리리시즘이지만 그것이 잘 억제되어 있기 때문에 정서과잉에 빠지는 일이 결코 없다.

또 그 억제가 지나쳐서 지적으로 차가워지는 일도 없다. 그의 연주는 아주 품위가 높고 따뜻하다. 그렇기 때문에 바하나 모짜르트의 연주에서 뛰어날 뿐만 아니라, 브람스나 바르톡의 작품에 있어서도 발군의 연주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동시에 6개 국어에 능통했던 쉐링은 망명 폴란드 정부의 연락장교로 영국에 주재했다. 그때 약 300회의 위문연주회를 가졌으며, 1942년 폴란드의 난민이주계획을 교섭하기 위해 멕시코로 건너가서 작곡가 마뉴엘 폰세(Manuel Maria Ponce, 1882-1948)와 알게 되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2차대전 후에 멕시코 시립음악에 음악부가 창설되면서 쉐링은 교수로 초빙되어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때 그는 멕시코에 영주하기로 결심하고 시민권을 획득했다.

1954년, 멕시코를 방문한 아르투르 루빈쉬타인(Artur Rubinstein, 1887-1982)은 같은 폴란드 출신의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 쉐링을 발견하고 협연하게 된다. 그런 연유로 멕시코의 한 음악원의 교수로 평생을 마쳣을지도 모르는 쉐링이 전 세게로 알려지면서 오늘날의 명성을 얻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파리와 베를린에서 수학했던 쉐링의 레퍼토리는 매우 넓다. 독일, 프랑스, 러시아, 고전, 현대에 이르기까지 폭 넓게 연주를 잘하는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는 1734년製 스트라디바리우스(이자이, 샤를 뮌시가 원소유자라는 유서 깊은 명기이다.)와 1743년製 과르네리의 두 바이올린 명기를 애용하였다.

헨릭 쉐링은 루빈슈타인에 의해 세계 각지에 헌신적으로 소개되었다. 이유는 단 하나, 그의 연주의 완성도가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그의 연주가 언제 그렇게 완성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깊었다. 그때까지 그에게는 하잘 것 없는 콩쿠르 입상 경력 하나 없었고, 초절기교를 드날리던 젊은 시절도 없었으며, 변변한 레코딩 하나 없었다.

최근에 아를레키노 레이블을 통해 소개되는 그의 젊은 시절 녹음들은 협주곡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어 그가 실은 남 못지 않은 연주력의 소유자였고, 젊은 시절부터 뛰어난 균형감과 남다른 조절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세상에 소개되어 나가자 그의 연주는 높은 평가를 얻게 된다. 특히 음반을 통할 경우 그의 안정감있고 정확하며 전체적인 흔들림없는 연주는 더욱 빛나게 되었다. 또한 초절기교를 요하는 곡들과는 거리가 먼, 바이올리니스트로서는 아주 드문 존재로서 인식되었다.

헨릭 쉐링이 남긴 레코드는 많다. 또 같은 곡도 2-3회 녹음하고 있는데, 최근에 레코딩한 것일수록 녹음이 좋을 뿐만 아니라 그의 연주 자체도 해가 거듭됨에 따라 더욱 좋아지고 있어서 늦게 나온 레코드일수록 더 훌륭하다.

 

with Ion Voicu and Henryk Szeryng

 

 

낱낱히 다 들 수는 없지만 그중에서 명연으로 꼽히는 대표반으로는 다음과 같다.

우선 헬무트 발햐(Helmut Walcha, 1907-1991)와 협연한 바하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 6곡>,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피터 라이바(Peter Rybar, 1913-2002)와의 협연한 바하의 <두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그리고 그 자신이 빈터투르 음악원 관현악단을 지휘하면서 연주한 바하의 <바이올린 협주곡 전집>, 그 자신이 초연했고, 또 세계 최초의 레코딩인 알렉산더 깁슨(Alexander Gibson, 1926-1995) 지휘, 런던 교향악단 연주에 의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 3번> 등이 명반이다.

그리고 잉그리드 헤블러와 협연한 모짜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알렉산더 깁슨 지휘,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연주에 의한 모짜르트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 전집>, 하이팅크 지휘,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의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같은 콤비에 의한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에두아르드 반 레모르텔(Edouard van Remoortel, 1926-1977) 지휘, 몬테카를로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의한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 라벨의 <찌간느>, 얀 크렌츠(Jan Krenz, 1926- ) 지휘, 밤베르크 교향악단 연주에 의한 비에냐프스키와 시마노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하이팅크 지휘,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야노스 슈타르케르(Janos Starker, 1924- )와 협연한 브람스의 <이중 협주곡>, 엘리아후 인발(Eliahu Inbal, 1936- ) 지휘,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클라우디오 아라우(Claudio Arrau, 1903-1991), 야노스 슈타르케르와 협연한 베토벤의 <3중 협주곡>, 빌헬름 켐프(Wilhelm Kempff, 1895-1991), 피에르 푸르니에(Pierre Fournier, 1906-1986)와 협연한 베토벤의 <피아노 삼중주 제 7번, 대공> 등은 모두 정평높은 명연반들이다.

 

Pianist, Emil Gilels and Violinist, Henryk Szeryng

 

글 출처 : 빈들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