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음악

앨범: 팔만대장경 八萬大藏經 - 김수철 (1998 삼성뮤직)

리차드 강 2012. 2. 27. 17:56

팔만대장경 八萬大藏經

팔만대장경 八萬大藏經 (1998, 삼성뮤직)

김수철 1957-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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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 八萬大藏經"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재중 하나인 팔만대장경이 음악으로 만들어 졌다. 서양과 동양의 조화가 어느 앨범 만큼이나 돋보이는 작품. 그의 예술성이 또한 집대성된 음반이다. 전체적으로 신서사이저를 이용한 서양의 소리와 교회음악 연주 때 사용되는 하프시코드, 중국 악기 '얼' 그리고 피리, 아쟁, 태평소, 아쟁, 대금 같은 우리 전통 악기 소리를 조화시켰다.

1. 서곡(序曲) - 다가 오는 검은 구름 (The Gathering Storm)
2. 전장(戰場)에서 (The Tides Od Battle)
3. 구천(九天)으로 가는 길 (Journey To Valhalla)
4. 천상(天上)의 문(門)에서 (At St. Peter's Gate)

     
       

       
     

[1악장 : 서곡(序曲) - 다가 오는 검은 구름 (The Gathering Storm)]

조용하고 평화롭던 고려에 몽고군의 침략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하는 도입부. 전반부에서는 단조로운 멜로디로 평화로운 시기를 표현하였고 점차 전운이 감도는 상황을 일정한 리듬의 타악기로 나타냈다. 1장의 막바지에는 큰 북을 사용해서 전쟁의 불안감, 긴박감, 공포를 표출하여 전쟁이 임박했음에 대한 암시로 비극을 표현하는 장엄한 멜로디가 그야말로 감동의 절정을 이룬다.

 

[2악장 : 전장(戰場)에서 (The Tides Od Battle)]

우리 소리와 서양의 소리의 조화가 두드러진 악장. 우리 악기로는 태평소, 아쟁, 피리, 오고북, 대북 등이, 중국 악기로는 얼후(Erhu)를 사용하였고 서양 음악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교회 음악의 합시코드 소리 및 오케스트라 형식이 조화롭게 구성되도록 작곡되었다. 몽고의 침입, 폭력의 극단적인 표출인 전쟁은 침략한 자, 침략 당한 자 모두의 인간성을 파괴한다. 무명(無明)과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 군상들.

 

[3악장 : 구천(九天)으로 가는 길 (Journey To Valhalla)]

침략한 나라나 침략 당한 나라나 모두 전쟁으로 인한 인간성 파괴를 겪게 된다. 전쟁 과정에서 인간을 해치며 죄를 짓게 되지만, 인간의 본성으로 그에 대한 수치심과 참회로 희망의 싹을 피어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synthesizer를 이용해 우주적인 사운드로 표현하였다. 전반부는 인간의 수치심과 참회를 또 후반부는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 부처님 가르침의 그릇인 '팔만대장경'에는 좋은 세상을 열망하는 고려인의 의지가 담겨있다. 영원한 평화가 없듯 영원한 구속도 존재하지 않는다.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을 찾아내는 것, 이 또한 인간이 일구어낸 자랑스런 역사 중 하나이다.

 

[4악장 : 천상(天上)의 문(門)에서 (At St. Peter's Gate)]

위기와 국난이 극복되고 하늘로부터 다시 기회가 주어졌다. 이 기회를 소중하게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가꿔 나가야 한다. 이 악장은 클래식 장르로 작곡되었고 '참회의 눈물' 부분에서는 우리 악기 '피리' 소리로도 표현되도록 작곡되었다. '사랑으로 극복하자' 는 메시지는 장엄한 오케스트라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팔만대장경의 조성과 그로 인한 평화, 몽고 침략의 와중에 마침내 팔만대장경이 완성되고, 그 결집된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게 되었다. 고난은 새로운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가수 김수철, 팔만대장경 테마음악 완성

해인사, 깊은 산사의 팔만대장경. 그 경판 하나하나엔 장엄한 역사의 소리가 숨쉬고 있다.

이 땅을 침탈하려는 몽골군의 말발굽 소리, 끌려가던 고려 여인들의 호곡(號哭)소리, 국난 극복의 염원이 담긴 기도 소리, 그리고 지상의 모든 어둠을 감싸안고 우주에 울려 퍼지는 부처님의 자비와 평화의 원음(圓音)….

그 대장경 소리의 거룩함이 7백여년 세월을 견뎌내고 여기 이 땅에 찾아왔다.

대중음악계의 ‘작은 거인’ 김수철(41). 그가 팔만대장경을 상징하는 테마음악을 작곡했다. ‘팔만대장경 음악 1집.’

이 작업은 대장경 전산화 작업을 벌이고 있는 고려대장경연구소(소장 종림스님)의 부탁으로 이뤄졌다. 작업 기간 2년반. 불교에 문외한이었던 그에게 이번 작업은 구도(求道)의 길이기도 했다.

지난 겨울, 해인사의 소리를 담기 위해 밤을 지새운 게 몇날 며칠인지 모른다. 살포시 부는 미풍에도 맑게 울리는 풍경 소리, 새벽 3시 세상의 아침을 깨우는 종소리, 비구니들의 은은한 기도 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그의 ‘소리 실험실’이자 ‘구도의 도량(道場)’이었던 서울 강남구 포이동 지하스튜디오. 인류에게 희망과 빛을 주는 팔만대장경의 소리를 찾기 위해 태평소, 아쟁, 오고북, 중국 악기 얼후 등 동서양의 갖가지 소리에 대한 실험이 진행됐다. 하루 열네시간, 자장면으로 식사를 때우는 고독한 작업이었다.

그 긴긴 대장정을 끝낸 14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 드디어 팔만대장경 음반 1집을 부처님께 바치는 고불식(告佛式)이 열렸다. 참석한 3백여 청중들은 장중하면서도 맑고 신비로운 우주의 소리를 들으며 깊은 명상에 잠겼다. “팔만대장경은 불교만의 유산도, 우리 민족만의 유산도 아닌 인류 전체의 유산입니다. 전쟁과 살육의 고난을 평화와 자비의 힘으로 극복하려 했던 팔만대장경의 정신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전승훈기자〉

     
       

       
     

Introduction

대장경이란 ‘부처님의 가르치심’의 총칭으로 경(經), 율(律), 논(論)의 삼장(三藏)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경(經)은 부처님의 말씀이며, 율(律)이란 불교도의 생활규범이며, 논(論)은 경과 율에 대한 조사들의 논문입니다.

대장경은 고려시대에 두 차례에 걸쳐 국가 사업으로 간행되었습니다. 먼저 간행된 구판(舊版) 대장경은 1011년에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거란의 침공을 물리치려는 발원에서 비롯된 것으로써 1087년까지 무려 칠십육년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중국의 정경에 견주어 그 무렵으로서는 내용이 가장 완벽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팔공산(八公山) 부인사(符仁寺)에 봉인된 이 구판 대장경은 고종 19년인 1232년에 몽고군의 방화로 그만 불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오년 뒤인 1236년에 다시 본격적으로 대장경 간행 불사를 추진하여 1251년에 그 완성을 보게 되니, 십육년에 걸친 이 큰 불사의 결실이 바로 지금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고려대장경입니다.

완성된 고려대장경은 처음에는 강화도에 모셨으나 왜구의 노략질이 심해져서 서울의 지천사(支天寺)에 옮겼다가 그 뒤 조선시대 태조임금 떄인 1398년에 해인사로 다시 옮겨 모신 것입니다.

고려대장경을 흔히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까닭은, 대장경의 장경판수가 팔만여장에 이르는 데에서 비롯되기도 했을 터이지만 한편으로는 불교에서 아주 많은 것을 가르킬 때 팔만사천이라는 숫자를 쓰는 용례대로, 가없이 많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만사천 법문이라고 하는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팔만대장경의 첫번째 음악은 팔만대장경이 하나의 종교적 의미를 초월한 세계인류의 문화유산이라는 점에 기인하여 서양의 소리와 우리의 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는 음악을 작곡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각 장의 영문 제목번역은 서양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서구의 기독교 신앙과 북구신화에서 나오는 상징어를 사용했습니다.

98년4월 김수철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 가없이 많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국난극복이라는 민족의 염원과 의지로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이 음악 으로 표현되었다. 팔만대장경의 첫 번째 음악은 팔만대장경이 하나의 종교적 의미를 초월한 세계인 류의 문화유산으로 전 세계인이 함께 들을 수 있도록 우리의 소리와 서양의 소리가 함께 어우러지 는 음악으로 작곡되었다. 전체적으로 신시사이저를 이용한 서양의 소리와 교회음악 연주 때 사용되는 합시코드, 중국악기 '얼후', 그리고 우리 전통악기 피리, 아쟁, 태평소, 아쟁, 대금 등의 소리를 조화시켰다.

- 김수철 공식 홈페이지 -

 

Credits

팔만대장경 pal.man.dae.jang.kyung 高麗大藏經

김수철: producer, all synthesizers, ertu(Chinese Instrument)
김성운: 피리, 태평소
백인영: 아쟁
전병기: programming and samples
강명환: recording engineer
최종문: recording engineer
임창덕: mixing engineer
오현석: mixing engineer
sonic Korea: mastering studio
zho&zho: design

타악기 연주자 여러분들과 그 외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팔만대장경이 음악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아는 팔만소리가 조화로이 움직이는 법계(法界)그 자체입니다. 그 법계의 소리가 온누리에 맑고 깨끗하며 희망차게 널리 울려퍼지길 바랍니다."

송 월주 총무원장(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세계 여러 문화유산 가운데 음악으로 표현되는 팔만 대장경. 이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듣고 아끼며 우리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것입니다."

강원룡 목사(크리스찬 아카데미 이사장)

 

"세계화의 길목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우리는 이제 국난극복의 불심이 낳은 팔만대장경을 소리로 듣게 되었습니다. 김수철님의 정성스런 작곡으로 창조된 한국인의 기원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온 세계인의 마음을 적시게 될 것입니다."

이 어령 교수(전 문화부 장관)

 

"얼씨구 여기 고려대장경이 노래하누나 춤 구누나 함께 노래하고 춤추자꾸나"

고은(시인)

 

"새로이 울려퍼지는 이소리 바로 우리의 소리 입니다. 우리와 함께 세계인이 듣고 즐기는 하나된 소리로 시간과 공간을 묶는 힘이되고 21세기를 두드리는 우리의 소리로 태어나기를 기대합니다."

종림스님(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

 

For centuries, scripture and music have joined in a sacred partnership
It is exciting to see the ancient blocks of the Korean Buddhist canon being celebrated with a modern composition.
This music helps us to experience the wonder of this historic national treasure.

옛날부터 문자와 음악은 신성한 동반자의 관계로 맺어져 왔었습니다.
고려 대장경 연구소로부터 고대 경판의 내용들이 현대 음악으로 표현되어 발표된다는 사실을 듣고는 무척 흥분되었습니다. 이번에 작곡된 음악 작품은 우리들이 세계적 문화유산인 고려 대장경의 경이로운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Lewis Lancaster(U.C. Berkeley 대학교수) 세계전자불전협의회회장

98.4월 제작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유산, 세계기록유산, 그리고 세계무형유산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한국은 최고 수준의 문화선진국이다. 국토의 면적이나 인구에 비해 볼 때 등재된 유산의 숫자가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외국인들은 물론 한국인들에게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유산은 104개국 582건인데, 창덕궁 등 7건을 등재한 한국보다 많은 문화유산을 등재시킨 나라는 18개국 정도이다.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45개국 91건으로, 한국이 등재한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직지심체요절 등 4건 보다 많은 유산을 등재한 나라는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그리고 폴란드 4개국뿐이다. 세계무형유산에 있어서는 한국의 위치가 더욱 빛나고 있다. 한국은 판소리와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을 등재시켰다. 유네스코에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41개국 47건에 불과하며, 한국이 등재한 2건 보다 많은 유산을 등재시킨 나라는 하나도 없다. 다섯 개 나라가 한국과 동일하게 2건씩을 등재시키고 있을 뿐이다.

인류전체를 위해 보호되어야 할 세계 수준의 문화유산, 기록유산, 무형유산을 상대적으로 많이 보유하고 있는 민족이나 국가는 자긍심과 함께 책임감도 느껴야 한다. 즉 이러한 문화유산의 존재와 가치를 세계인들이 제대로 인식하게 하고, 나아가 이들을 보호하는 노력을 함께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국의 역사와 문화가 지닌 독특성이나 우수성은 매우 자연스럽게 세계인들의 머리와 가슴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이 책은 현재 한반도 내에 남아 있거나 혹은 한민족에 의해 창조된 문화적 흔적으로서 유네스코에 등재된 14점을 통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외국인들에게 총체적으로 소개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14점의 문화유산, 기록유산, 무형유산은 선사시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역사 5천년을 균형 있게 보여주고 있다.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로 발간될 이 책을 통해 외국인들의 한국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 수준이 향상되고,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되기를 기대해본다.

 

다섯번째 세계문화유산 "해인사 장경판전(海印寺 藏經版殿)"

해인사 장경판전은 고려 대장경판을 8만여 장을 보존하는 보고(寶庫)로서 해인사의 현존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장경판전은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다. 해인사의 건축기법은 조선 초기의 전통적인 목조건축 양식이다.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은 물론, 건물내 적당한 환기와 온도·습도조절 등의 기능을 자연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9세기 초에 세워진 고려는 외세의 간섭과 도움 없이 독자적인 힘으로 후삼국을 통일하였다(936). 고려의 후삼국통일은 발해의 영토까지 모두 포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주적이었으며 발해 주민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것이다. 또한, 고려의 통일은 20세기 중반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기 전까지 유지되었던 단일한 국가체제의 시작점이었다.

고려 태조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각 지방 호족(豪族)들의 지원과 지지를 얻었다. 이들 호족세력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세습하는 데 유리한 제도를 만들어 귀족화 되었다. 고려사회는 문벌 귀족중심의 사회였으며 이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청자·나전칠기 등의 예술품이 발전하였다. 이러한 고려의 특산품은 인삼·종이 등과 함께 송(宋)으로 수출되었고, 송으로부터는 비단·향료·서적 등이 수입되었다. 고려에는 아라비아 상인들이 오가며 고려라는 국명을 국제적으로 전파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한국의 외국어 명칭인 코리어는 고려에서 유래된 것이다.

고려시기 470여 년은 1170년에 일어난 무신의 난을 기준으로 하여 전기와 후기로 구분할 수 있다. 고려의 문벌 귀족들은 점차 정치권력을 독점하고자 하였고, 그 결과 왕실 및 다른 귀족들과의 충돌이 잦았다. 12세기 초반 일어난 여러 반란사건은 모두 소수 문벌귀족들의 권력독점과 왕권의 약화를 배경으로 하여 나타난 것이었다. 이러한 난을 겪으면서도 문벌 귀족 중심의 사회체제는 모순을 더해갔으며, 문제를 해결하고자하는 적극적 개혁의 시도는 없었다.

문벌 귀족 중심의 정국운영은 문신들의 우대와 무신들의 천시로 이어졌다. 이에 불만을 품은 무신들은 12세기 후반 문신들을 살해하고 정치권력을 장악하였다. 이후 무인들 사이에 다시 치열한 권력 다툼이 벌어졌고, 무신정권은 매우 불안정하였다. 정국의 불안정은 최충헌(崔忠獻)이 정권을 장악하며 해소되었다. 최충헌의 집권 이후 권력은 최씨가문에 세습되어 4대 62년간 최씨 무단통치가 이루어졌다. 90여년에 걸친 무신통치시기에는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민란이 발생하였으며, 천민 등 민중의 저항으로 무신정권의 지배체제가 흔들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체제 개혁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13세기 전반 몽고의 침략이라는 국가적 위기가 닥쳤다. 무신정권은 강화도(江華島)로 수도를 옮기며 40년간 몽고에 항전했으나 결국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무신정권도 무너졌다. 이후 고려의 국정은 원(몽고는 1271년에 元으로 국호를 바꿨다)의 간섭아래 운영되었다. 70여 년간 원의 간섭아래에서 고려사회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원의 영향으로 고려에는 몽고의 풍습이 들어왔고, 원의 필요에 의해 고려 국왕을 교체하는 등 고려 국왕의 지위가 불안해지자 사회모순은 더욱 증폭되며 고려 말의 혼란상을 낳았다.

대장경판은 고려 고종(高宗)때 만든 목판이다. 대장경은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으로서 불교경전의 총서(叢書)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해인사 대장경판은 고려시대에 판각되었기 때문에 고려대장경이라 하며 또한 판수가 8만여 판에 이르고 8만4천 법문을 수록했다 하여 8만대장경이라고도 한다. 11세기 초 고려 현종(顯宗) 때 새긴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 몽고의 침입에 불타버려 다시 새겼다하여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이라 일컫기도 한다. 초조대장경이 불타버리자 13세기 초 몽고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막기 위하여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장도감(大藏都監)을 설치하여 대장경판을 다시 조각하기 시작하였다. 대장경판은 12년 동안 판각하였는데 준비기간을 합치면 모두 16년이란 기간이 걸려 완성된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주로 목판인쇄를 하였는데, 목판인쇄는 동일한 인쇄물의 수요가 많은 곳에서는 매우 편리한 방법이었다. 판각을 한번 해놓으면 인쇄에 편리하고, 비교적 오랜 기간 보관하였다가 다시 인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는 불교나 유교의 각종 서적을 출판하기 위해 신라의 목판인쇄술을 계승·발전시켰다. 이것은 불경 등의 인쇄가 크게 성행하였고, 또한 귀족문화의 영향으로 많은 서적을 수집·보관한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고려의 목판인쇄물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장경이다. 대장경판은 당초 경상남도 남해에서 판각하여 강화도 대장경판당으로 옮기고 보관하였으나, 고려 말 왜구의 빈번한 침범으로 인해 14세기말에 현재의 해인사 장경판전에 옮겨 보관 중이다.

해인사 장경판전은 15세기 무렵 조선 초기에 건립된 후 한번도 화재나 전란 등의 피해를 입지 않았으며, 팔만대장경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장경판전의 건물 배치는 정면 15칸이나 되는 큰 규모의 두 건물을 남북으로 나란히 배치한 구조이다. 장경판전 남쪽의 건물을 수다라장(修多羅藏), 북쪽의 건물을 법보전(法寶殿)이라 하며 동쪽과 서쪽에 작은 규모의 동·서 사간판전(寺刊版殿)이 있다.

건물을 간결한 방식으로 처리하여 판전으로서 필요로 하는 기능만을 충족시켰을 뿐 장식적 의장을 하지 않았으며, 전·후면 창호의 위치와 크기가 서로 다르다. 통풍의 원활, 방습의 효과, 실내 적정 온도의 유지, 판가의 진열 장치 등이 매우 과학적이며, 합리적으로 되어 있는 점은 대장경판이 지금까지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 판전에는 81,258장의 대장경판이 보관되어 있다. 글자 수는 무려 5천2백만 자로 추정되는데 이들 글자 하나하나가 오자·탈자 없이 모두 고르고 정밀하다는 점에서 그 보존가치가 매우 크며, 현존 대장경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문화재이다. 대장경판전은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팔만대장경은 불교의 경·율·논 삼장을 집대성하였기에 세계불교연구의 귀중한 문헌으로, 이 대장경은 일본이 신수대장경(新修大藏經)을 만들 때 표준으로 삼았으며, 중국에도 역수입되고, 영국·미국·프랑스·독일 등 서구에도 전해져 세계불교 연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글 출처 : 한국문화교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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