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聖음악

브람스 독일 레퀴엠 - Ein Deutsches Requiem, Op.45 - Various Artist

리차드 강 2012. 9. 10. 08:45

Ein Deutsches Requiem, Op.45

브람스 독일 레퀴엠

Johannes Brahms : 1833∼1897

Otto Klemperer - Herbert von Karajan

     

2. Denn alles Fleisch, es ist wie Gras

Otto Klemperer - Philharmonia Chorus & Orchestra

Dietrich Fischer-Dieskau, Elisabeth Schwarzkopf

4. Wie lieblich sind Deine Wohnungen

Herbert von Karajan - Wiener Philharmoniker - Wiener Singverein

       

작품소개

본래 ‘레퀴엠’이라는 것은 죽은 사람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한 음악으로서 일반적으로 라틴어 가사에 의해 작곡되지만,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은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1537년 판의 성서에서 취한 독일어 가사로 된 레퀴엠이며 가톨릭의 미사용 음악이 아닌 연주회용 음악이라는 점에서 다른 레퀴엠과는 다르다. 그러나 다른 레퀴엠들과 마찬가지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 역시 7부로 되어있고 내용적으로 조물주의 힘과 인생의 무상함, 심판의 공포, 죽음에의 운명, 위안, 남겨진 자의 슬픔, 그리고 부활의 희망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모차르트나 베르디의 레퀴엠들과 비슷하다.

1868년 성금요일인 4월 10일 브레멘 교회에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 연주회가 열렸을 때, <레퀴엠>이 연주되는 것을 보기 위해 독일 전역에서 수많은 음악애호사와 유명인사들이 몰려들었다. 이번에는 브람스가 직접 지휘봉을 들었는데, 청중 중에는 클라라 슈만 등 그를 아끼는 많은 음악 친구들이 있었고 브람스의 아버지와 새어머니도 끼어있었다. 디트리히는 이날 연주에 대해 “한 마디로 압도적이었다. 청중은 이 음악이야말로 이제까지 세상의 많은 음악 중에서 가장 고결한 음악 중 하나라는 사실을 단번에 인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브람스가 혼성 합창에다 오케스트라의 대규모 조직과 힘을 사용한 작품에 뛰어든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 첫 시도는 너무도 성공적이었다. 그는 이 곡 하나로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응축된 힘을 다루는 데 그 어떤 대가보다도 뛰어난 대가임을 공표하게 되었다.

브레멘 교회에서 대성공을 거둔 후 브람스는 다시 소프라노 독창곡이 있는 악장, 즉 ‘슬픔을 지닌 자들이여’(5악장)를 추가했다. 이로써 이 <독일 레퀴엠>은 오늘날의 7개 악장이 된 것이다. 이 완전한 작품의 초연은 1869년 2월 18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카를 라이네케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이때 이 전대미문의 작품은 그로부터 10년 안에 독일어권 나라에서만 100회 이상이나 연주되는 기염을 토했다. <독일 레퀴엠>은 이제 브람스가 그때까지 썼던 어느 작품보다도 위대했고, 확실히 당대 최고의 작곡가로서 브람스의 이미지와 능력을 보증해주었다.

1875년 빈의 가장 유력한 비평가였던 한슬릭은 이 곡을 “가장 순수한 예술적 수단, 즉 영혼의 따스함과 깊이, 새롭고 위대한 관념, 그리고 가장 고귀한 본성과 순결로 일궈 낸 최고의 작품”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바흐의 와 베토벤의 <장엄미사>를 제외하고 이 분야에서 브람스의 <레퀴엠>과 비교할만한 작품은 없다“고 단언했다.

     

     

독일 레퀴엠

'독일레퀴엠'은 일반적으로 라틴어 가사로 된 레퀴엠과는 달리 독일어로 된 레퀴엠이다. 죽은 자를 위한 미사인 레퀴엠은 대부분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 하기 위한 음악이지만 브람스의 레퀴엠은 가톨릭 교회에서 부르기 위한 곡이 아니라 음악회용으로 작곡되어진 곡이다. 7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조물주의 힘,인생의 무상함,심판의 공포,죽음에의 운명,위안,남겨진 자의 슬픔,그리고 부활의 희망 등을 다루고 잇는 부분들은 다른 레퀴엠과 차이가 없다.

브람스는 이 레퀴엠의 독일어 가사를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1537년판의 신약과 구약 두 성서에서 취하고 있다.독일인으로서의 신앙의 원천을 독일어 성서에서 찾아내고 작곡가로서의 의도에 맞는 어구와 기분 또한 독일인의 관점에서 찾아내고 있다. 이 레퀴엠을 완성하는 데는 약 10년 정도가 걸렸다. 은사인 슈만의 비극적인 최후와 어머니의 죽음 등에서 레퀴엠의 성립동기를 찾는 여러 가지 설들이 있지만 유일하게 작곡된 이 레퀴엠이 삶에 대한 종교적,철학적 성찰이 곡의 주조를 이루고 잇다는 점에서 그 설득력을 잃고 잇다.

1867년 12월 슈베르트 기념 빈 악우회 음악제에서 첫 3곡의 일부가 초연되었고 다음해 수난의 금요일인 4월10일 브레멘에서 제5곡을 제외한 6곡이 연주 되었는데 이때는 브람스가 직접 지휘를 맡고 그의 친구인 쉬톡하우젠이 바리톤 독창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전 7곡이 완전한 형태로 초연 된 것은 1869년 2월 라이프찌히 게반트 하우스에서였다. 악보는 그의 친구이며 브레멘에서의 연주에 감격한 리터 비더만 출판사에서 1968년 출판되어졌다.

     

     

해설

1. Selig sind, die da Leid tragen
2. Denn alles Fleisch, es ist wie Gras
3. Herr, lehre doch mich
4. Wie lieblich sind Deine Wohnungen
5. Ihr habt nun Traurigkeit
6. Denn wir haben hie keine bleibende Statt
7. Selig sind die Toten, die in derm Herrn sterben

Ⅰ 합창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Ⅱ 합창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Ⅲ 바리톤 독창과 합창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소서」
Ⅳ 합창 「여호와여 당신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Ⅴ 소프라노 독창과 합창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Ⅵ 바리톤 독창과 합창 「이 지상에는 영원한 도성은 없고」
Ⅶ 합창 「주님 품 안에서 죽은 자는 복되도다」

     

Christiane Oelze (Soprano), Gerald Finley (Baritone)

La Chapelle Royale Paris, Collegium Vocale

Champs-Elysees Orchestra - Philippe Herreweghe, cond.

     

제 1곡 - F 장조 '아주 천천히,표정을 가지고'

Chor : Selig sind, die da Leid tragen

이 악장은 우선 길고 비통한 한탄으로 시작되지만 그것은 바이올린이 없는 관현악 때문에 어둡다. 그러다가 '환희와 함께 거둬들이리라'라는 절에서 연주되는 하프에 의해 비로소 밝아진다. 사람들은 이 악장 속에서 슈베르트의 '물위의 정령의 노래'와 같은 분위기를 보려고 했으나, 이 정령은 여기서는 슬퍼하는 사람들 위에 입김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마 태복음 제 5장 4절에서의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와시편 제 126편 5절의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등에서 가사를 취하고 있으며 세상의 슬픔을 노래하고 슬퍼하는 자는 나중에 위안을 받을 것임을 전곡의 서두를 이루고 있다.비통한 가운데 신비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테복음 제5장 4절-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편 제126편의 5절-

 

제 2곡 - B단조 '천천히 행진곡풍으로'

Chor : Denn alles Fleisch, es ist wie Gras

이 곡은 '사람은 모두 풀과 같고',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참고 기다리라'에서 차차 '앞뒤의 비가 오기까지'에로 연주될 때 여기서 플루트와 하프가 협력하여 울리는 무지개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 행진곡은 다시 시작되어 힘찬 승리의 합창으로 끝난다. '그들은 마침내 기쁨을 얻으리라. 그리고 그들은 이제 기쁨을 얻었노라!' 우선 관현악으로 유명한 '장송 행진곡'이 연주되는 데 이 2박자의 행진곡이 악보에서는 3박자로 적혀 있다. 전곡 중에서 가장 비장하고 의미심장한 악장이다.

저음현과 파곳의 조용한 전주로 시작되는 장송 행진곡 이다. 소프라노를 제외한 합창이 베드로 전서 1장 24절~25절 에서 취해진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하며 비통한 기분으로 노래 하면서 차차 힘의 강도를 떨어뜨려 트리오에 이르고 야고보서 제 5장 7절 취해진 '형제들아 주가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아라..'가 현으로 노래된다. 플루트와 하프가 아름답고 효과적인 동기를 연주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베드로전서 제1장 24∼25절-

‘형제들아, 주가 강림하시기까지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는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야고보서 제5장 7절-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이사야 제35장 10절-

 

제 3곡 - d단조

Solo (Bariton) und Chor : Herr, lehre doch mich

바리톤은 고통을 호소하며 이렇게 외친다. '여호와여, 바라건대 나의 종말을 알려주시옵소서. 주여, 나는 지금 무엇을 기다려야 하나니까?' 처음에는 이 부르짖음에 대해 아무런 대답이 없다. 관현악은 '레'의 흔들리지 않는 보속음의 뒷받침으로 합창을 마지막 선서, 진지한 영혼의 흔들리지 않은 신앙에로 이끌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의혹과 슬픔이 사라지고 희망과 굳은 신앙을 보여 주는 곡으로 독일 레퀴엠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며 구성적으로도 가장 충실함을 보여주고 잇는 곡이다. 가사는 시편 제39장 4절에서 7절까지로 앞의 2곡의 의연한 환희 뒤에 호른과 팀파니를 앞세워 바리톤이 비애와 밑바닥에서 혼미의 세상을 고루 비치는 광명을 구하듯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어떠함을 나로 하여금 알게 하사 나의 연약함을 스스로 알게 하소서'라고 독창한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사,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 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주하며 제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편 제39편 4∼7절-

 

제 4곡 - E 장조 '적당히 운동적으로'

Wie lieblich sind deine Wohnungen, Herr Zebaoth!

'만군의 여호와'라는 가사로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악장은 사랑스러운 진행 때문에 '장막'을 연상케한다. 관현악의 전주에 이어 합창이 올려나오면서 주님의 집에서 사는 행복이 묘사된다. 이윽고 빛을 예상하는 듯이 다시 첫머리의 스타일로 돌아간다.

이 곡은 짧지만 환희에 넘쳐 끝나는 제 3곡의 뒤를 이어 천국인 평안함을 나타내고 있다. 하늘나라와 천사의 목소리,평화의 찬미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 하다. 맑고 조화로운 관현악들의 울림이 천국의 평화로운 즐거움을 전하며 온화하게 마무리 되고 잇다. 가사는 시편 제 84편 1절에서 4절 에서 취하고 있다.

 

제 5곡 - G 장조 '천천히'

Ihr habt nun Traurigkeit

여기에 인용한 최초의 두 가사는 소프라노 독창으로 불리며 세 번째 가사는 합창으로 부르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합창의 가사와 독창의 가사에 응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즉 두 가지 가사는 어느 경우와 달리 대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모성적인 따뜻한 느낌이 흐르는 곡으로 현의 짧은 전주를 받고 있는 소프라노의 독창이 일관되게 밝은 위안의 감정을 표출하고 잇는 곡이다. 이사야 66장 13절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 즉....'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과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이사야 제66장 13절-

 

제 6곡 - C단조

Denn wir haben hie keine bleibende Statt

가장 규모가 크게 전개되는 이 악장은 물론 전체의 클라이막스를 형성하고 있다. 클라이막스에서 트럼펫이 작열하는 데서는 다소 바그너의 영향도 엿보인다. 이 합창에서 주목되는 것은 헨델도 능가할 만한 깊이와 박력을 지닌 2중 푸가다.

제2곡에 뒤지지 않는 대곡인 이 6곡은 진혼곡에 있어서 '진노의 날'에 해당되는 압도적인 부분으로 최후의 심판의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지고 찬란한 영광이 찬연하게 나타남을 노래하고 잇다. 히브리 제13장 14절'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은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고란도전서 15장 51절~54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 하노니......' 요한 계시록 4장 11절'우리 주 하느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등에서 취하고 있다.

‘우리가 기다리는 영원한 도성(都城)은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히브리서 제13장 14절-

보라, 내가 너회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이며,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고린도전서 제15장 51·52·54절-

우리 주 하느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요한계시록 제4장 11절-

 

제 7곡 - F 장조' 장중하게'

Selig sind die Toten, die in dem Herrn sterben

이 끝의 악장은 다시 첫머리의 악장과 결부된다. 그것은 빛과 안식과 면죄의 황홀감을 풍겨준다.

제6곡의 흥분을 가라 앉고 죽음의 공포는 변용을 위해 사라지고 승천한 사람들은 영원한 휴식으로 들어간다. 첼로가 내는 엄숙한 선율을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모방해서 받으면 소프라노가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고 노래한다.바흐의 종교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장엄함들이 느껴지는 곡이다.

죽은 이는 영원한 휴식으로 들어가고, 승천한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한다.

     

     

독일 레퀴엠은 약 10년에 걸쳐 작곡, 1868년에 완성된 것으로 주님의 품에 안겨 죽는 자를 찬미하는 독일말로 쓰여진 유일한 레퀴엠이다. 여러 작곡가들에 의하여 작곡된 레퀴엠은 거의 다 카톨릭 의식으로서 라틴말로 되어 있다. 그러나 브람스의 '도이치 레퀴엠'은 독일말 번역된 성서를 고스란히 쓰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그러면서도 작곡자 자신은 '도이치'. 즉 '독일의'란 말대신에 '세계의'란 말을 바꿔서도 좋다는 뜻을 비춘 것을 보면 세계성을 지닌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흔히 이 레퀴엠은 브람스가 자기를 몹시도 아껴준 슈만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작곡했다고도 하고 자기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작곡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알고보면 슈만과 어머니가 죽기 이전에 쓰려고 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고 세계 사람들의 죽음을 위하여 작곡했다고 말할 수 있다.

브람스는 크리스찬이 아니면서도 늘 성서를 품에 안고 다닐만큼 어떤 책보다도 아끼며 읽었다고 한다. 오랜 동안 이같이 성서를 읽으면서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순전히 신약성서 속의 감명 싶은 구절들에 곡을 붙이게 된 것이다. 어떤 귀족의 죽은 아내를 위한 모짜르트의 레퀴엠이나 아버지의 죽음을 위한 포레의 레퀴엠이 한결같이 미사곡으로서의 라틴말로 되어 있지만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은 딱딱한 독일말이면서도 죽음을 위한 노래라기보다는 부드러운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브람스가 '독일 레퀴엠'을 발표하자, 누구보다도 깊이 감동하고 기뻐한 사람은 클라라였다. 클라라는 브람스에게 "저는 당신의 '레퀴엠'에 정말 매혹되고 말았습니다. 그 곡이 지닌 이상한 힘은, 듣는 사람을 감동시키고야 맙니다. 그것은 보기 드물게 훌륭한 작품입니다. 장엄하고 시적인 그 음악에는 사람들을 흥분하게 하고 차분히 가라앉게도 하는 그 무엇이 있는 것입니다. "란 글월을 보냈다.

'독일 레퀴엠'은 처음에 최초의 3악장만 연주되었는데, 그때에는 리듬과 박자가 틀린 팀파니 연주자의 실수 때문에 비인에서는 완전히 실패했다. 한편 크게 성공을 거둔 블레멘에서는 곡은 2부로 나뉘어 연주되었다. 이때에는 6악장뿐이었다. 처음의 4악장과 마지막의 2악장 사이에 당시의 관습에 따라 요아힘과 그의 아내 아말리에가 헨델과 탈티니와 바하 및 슈만의 곡을 연주했다.

그런데 이 무렵에 브람스의 어머니는 남편과 헤어져 혼자 살고 있다가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졌다. 브람스는 급히 달려가서 식어 가기 시작한 어머니의 손과 아버지의 손을 맞잡게 해주었다. 어머니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얼마 후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다. 그것은 1865년 2월 2일의 일이다. 이때 브람스는 슬픔에 잠긴 채 '독일 레퀴엠'의 일부를 이루는 구슬픈 선율을 착상했던 것이다. 요아힘은 이 멜로디를 격찬하여 '지극한 효성에 의해 이토록 아름답게 승화된 고상한 작품은 지금까지 없었다'고 말했다.

     

Brahms, Johannes의 독일진혼곡(German Requiem, Op.45)

개설

1861년에서 1868년 사이에 작곡된 브람스의 유일한 레퀴엠이다. 모차르트, 케루비니, 베를리오즈, 베르디 등의 일반적인 레퀴엠과는 달리 라틴어 가사가 아니라 루터의 독일어 성경에서 발췌한 독일어 가사를 쓰고 있고, 그 내용도 망자(亡者)에 대한 진혼보다는 삶에 대한 종교적, 철학적 성찰을 주조로 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곡에서 브람스는 처음으로 성악과 기악의 접합을 시도했고 혼성합창과 독창 그리고 대규모의 오케스트라 콤비네이션도 처음 시도했다. 브람스의 레퀴엠은 일곱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다섯부의 로마 카톨릭양식과 대조를 이루며, 가사도 레퀴엠 통상문을 쓰지 않고 브람스 임의로 성경에서 발췌하여 작곡하였다. 발췌한 가사의 내용은 통상 진혼곡의 중심인 주님의 심판에 촛점이 맞취져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소망에 중점이 있어 브람스 자신의 죽음에 대한 희망적인 개념이 드러난다.

첫째, 둘째, 네째 그리고 마지막 악장은 순수 합창곡이고, 셋째와 여섯째는 바리톤 솔로 다섯째곡은 소프라노 솔로를 위해 쓰여졌다. 브람스 특유의 교묘한 관현악기법이 곡 전반에 나타나 있는데 그 예로 첫 악장은 현악기의 Violin이 없어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조성하며, 바리톤솔로의 두 곡은 푸가 양식으로 끝을 맺고 있다.

브람스의 레퀴엠은 수만이나 멘델스죤같은 19세기의 합창양식보다 쉬츠같은17세기의 다성 성악곡에 더욱 친근한 작곡풍을 나타내고 있으나 하이든의 다이나믹과 유사한 합창기법도 발견되어진다.

현재 국내에 나와있는 음반은 (용산 신나라 기준)각 레이블별로 고루있으며 약 10여종의 연주가 있다. 그중 카라얀의 지휘가 2가지로 가장 많으며 그 외에 저명한 지휘자,연주자로 구성이 되어있다.

브람스가 기초로 한 독일어 성경은 루터가 번역한 1537년 판의 구약과 신약 두 가지 모두였다. 특히 그 가운데서 죽음과 영생, 부활과 관련된 말씀들만 뽑아 이 독일 레퀴엠의 텍스트로 썼다. 따라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의 가사는 1570년에 피우스 5세 교황이 제정한 라틴어의 가사보다도 수 십 년 먼저의 것이다. 브람스는 여기에서 독일인으로서 독일인의 신앙의 원천을 묻고, 그의 작곡가로서의 의도에 맞는 어구와 기분을 독일어의 성서에서 찾아낸 것이다.

총 7곡으로 노래되는 이 곡은 독일어 가사인 만큼 카톨릭 교회의 미사 집전용 음악이 아닌 순수한 연주회용 음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독일 레퀴엠은 형식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레퀴엠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것이 7개의 부분으로 되어있는 것도 모차르트나 베르디, 그 외의 많은 레퀴엠과 공통으로 하고 있는 것이며 내용적으로도 조물주의 힘, 인생의 무상함, 심판의 공포, 죽음에의 운명, 위안, 남겨진 자의 슬픔, 그리고 부활의 희망을 다루고 있다. 보통의 라틴어의 레퀴엠의 마지막 악구와 <독일 레퀴엠>의 마지막 악구 "주(主)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를 보면 뜻이 대체로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이 레퀴엠의 완성에는 약 10년이 걸렸다. 이 곡의 성립 동기는 여러 가지로 이야기되고 있다. 1856년 여름에 은사 슈만이 비극적인 생애의 최후를 닫았는데, 브람스의 슬픔과 사자(死者)에의 명복의 기원이 이 <독일 레퀴엠> 성립 동기의 하나가 되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것은 사실일지도 모르나 '슈만의 유품을 정리하고 있던 브람스가 이 위대한 선생의 계획서 중에 <독일 레퀴엠>의 제목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이 마치 자기에게 남겨진 유언인 것처럼 느끼고 스스로 작곡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브람스의 전기를 쓴 칼베크의 설은 약간 의심스럽다.

1888년 12월 22일자로 브람스가 슈만의 미망인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에는 "지금 나는 칼베크의 아주 아름다운 글을 보았습니다만 당신의 주인이 <독일 레퀴엠>이라고 하는 제목을 썼다고 하는군요! 이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말로 당신도 아마 모르시겠지요"라고 쓰여있었으니 말이다. 또 이 곡이 프러시아·오스트리아 전쟁 전몰자를 위한 레퀴엠으로 쓰여졌다는 말도 있다. 이 설은 아프가 퍼뜨린 것 같은데, 곡 자체가 전쟁 전에 쓰여지기 시작하고 있어 전사자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물론 이것이 프러시아·오스트리아 전쟁(1866년), 프러시아·프랑스 전쟁(1870~1871년)의 좋은 기념이 되었음은 사실이다.

그리고 또 이 곡이 브람스의 노모의 죽음에 강하게 유래한다고 하는 설도 그대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 늙어서 남편과 별거 생활을 하다가 쓸쓸하게 작고하신 어머니를 위해 브람스가 이 레퀴엠의 완성을 서두른 것은 사실이나 이 작곡은 이미 그 전부터 착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엘만도 말하고 있듯이 브람스는 노모의 사후 9주일이 지난 4월에 가서 겨우 이미 9년 전에 슈만의 죽음에서 생각한 <독일 레퀴엠>을 완성하기로 박차를 가한 것 같다.

현재 남아 있는 이 레퀴엠은 전술한 바와 같이 전부가 7개 부분으로 되어있다. 그 중에서 제2곡이 가장 빨리 작곡되었다. 이 제2곡은 1859년에 당시 브람스가 수년 전부터 궁정 피아니스트나 음악교사로 합창단을 지휘하면서 많은 작은 합창곡을 쓰고 있던 데트모르트 시절에 계획했던 칸타타를 위해 쓰여졌다. 그런데 친구인 디트리히(1829~1908년)에 의하면 이것은 그보다 2년 전에 피아노 협주곡 제1번 d단조 Op. 15의 스케르초 악장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결국 이 협주곡에서는 사용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1863년 빈의 합창단 징 아카데미의 지휘자로 초빙되어 합창곡과 친숙해지고 1865년에 어머니가 작고했을 때 브람스는 어느 덧 잊고 있던 <독일 레퀴엠>의 작곡을 다시 서둘러 완성할 것을 마음먹고 어디를 가건 원고를 가방 속에 넣고 다닐 정도였다. 그리고 다음 해 1866년 2월부터 4월에 걸쳐서 카를슬루에에서 제3곡을 푸가의 앞까지 썼고, 5월에는 동기 여행 중 제3곡의 유명한 푸가를 완성하고 여름에도 스위스의 튜리히베르크에서 제1곡과 제4곡을 쓰고, 이어 8월에는 수년 전에 클라라와 즐겁게 여름을 보낸 아름다운 바덴바덴에서 종곡과 그 밖의 것을 썼다. 제5곡은 1868년 5월에 함부르크에서 작곡되어 드디어 전곡이 완성된 것이다.

1867년 12월 1일 슈베르트를 기념하는 빈 악우협회 음악제에서 헬베크(1831~1877)의 지휘로 첫3곡만이 초연되었다. 다음 해 수난의 금요일인 4월 10일 브레멘에서는 제5곡을 제외한 6곡이 연주되었는데, 이때는 브람스가 직접 지휘를 맡고 그의 친구인 슈톡하우젠이 바리톤 독창을 맡았다. 전해의 연주는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으나 이번 연주에서는 호평이어서 같은 해 4월 28일에 라인탈러의 지휘 아래 재연되었다. 전7곡이 완전한 형태로 초연된 것은 그 다음 해 1869년 2월 18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라이네케의 지휘로 베링그라트 바그너 부인과 크뤼클을 독창자로 맞아 이루어졌다.

출판은 작곡가 브람스의 친구로, 이 레퀴엠이 브레멘에서 연주될 당시 깊이 감동 받은 리이터 비더만에 의해 1868년 11월에 이루어졌다.

 

악기배치

독창(소프라노, 바리톤), 혼성 4부 합창, 피콜로, 플루트2, 오보2, 클라리넷2, 파곳2, 콘트라파곳, 혼4, 트럼펫2, 트롬본3, 튜바, 팀파니2, 하프2, 현 5부, 오르간(ad libitum)

 

가사와 해설

제 1 곡 F장조. 4/4박자.

Ziemlich langsam und mit Ausdruck(아주 천천히, 그리고 표정을 가지고)

Selig sind, die da Leid tragen, denn sie sollen getoerstet werden.
애통해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4)

Die mit Trnen saeen, werden mit Freuden ernten.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편 126:5)

Sie gehen hin und weinen, und tragen edlen Samen, und kommen mit Freuden und bringen ihre Garben.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오리로다. (시편 126:6)

Selig sind, die da Leid tragen, denn sie sollen getrstet werden.
애통해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4)

전례 레퀴엠의 입당송과 키리에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는 첫 곡은 모두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오르간의 페달 포인트와 혼의 화성적인 긴 울림 위에 바이올린을 뺀 저음 현악기 들이 p로 위로하듯 시작된다. 가사로 알 수 있듯이 이 부분은 세상의 슬픔을 노래하고 슬퍼하는 자는 나중에 위안을 받을 것이라 하여 말하자면 전곡의 서두를 이루고 있다.

관현악에는 화려한 바이올린은 없고 나머지 저음현이 2성부 또는 3성부로 나뉘어 있다. 피콜로도 클라리넷도 없어 사운드는 상당히 어둡고 신비적이다. 이 동기는 첼로, 비올라로 켜지고 기분을 올려 가지만 이윽고 체념한 듯이 내려간다. 이 오케스트라의 서주는 혼성 4부 합창의 조용하지만 풍부한 감정을 실은 긴 악구 'Selig sind 복이 있나니'로 이어지는데, 합창의 동기는 제1곡만이 아니라 전곡의 기본적인 동기가 된다. 이 첫 부분의 합창은 브람스의 내면세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으로 결미 부분에서 다시 한번 나타나게 된다.

이어지는 중간부는 시편 제126편에서 두 구절을 발췌한 것인데, 곡의 굴곡이 약간 심화되고 박절도 좀더 짧아진다. 그리고 후반부인 'Sie gehen hin und weinen, und tragen edlen Samen'에서는 서주의 테마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마지막 부분은 다시 첫 부분의 합창으로 되돌아가지만 각 성부는 약간 변형된 선율로 노래하고 '위로를 받을 것 getrstet werden'이라는 점을 전 성부에서 강조하며 희망적으로 끝맺음한다.

 

제 2 곡 b♭단조. 3/4박자.

Langsam, marschmaessig(천천히, 행진곡풍으로)

Denn alles Fleisch es ist wie Gras und alle Herrlichkeit des Menschen wie des Grases Blumen. Das Gras ist verdorret und die Blume abgefallen.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도다. (베드로 전서 1:24)

So seid nun geduldig, lieben Brder, bis auf die Zukunft des Herrn. Siehe ein
Ackermann wartet auf die kstliche Frucht der Erde und ist geduldig darber, dis er empfahe den Morgenregen und Abendregen.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오래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야고보서 5:7)

Denn alles Fleisch es ist wie Gras und alle Herrlichkeit des Menschen wie des Grases Blumen. Das Gras ist verdorret und die Blume abgefallen.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도다. (베드로 전서 1:24)

Aber des Herrn Wort bleibet in Ewigkeit.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베드로 전서 1:25)

Die Erlsten des Herrn werden wiederkommen, und gen Zion kommen mit Jauchzen;
Freude, ewige Freude wird ber ihrem Haupte sein; Freude und Wonne werden sie
ergreifen, und Schmerz und Seufzen wird weg mssen.
여호와의 속량함(죄사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여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원한 희락을 띄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라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이사야 35:10)

사라방드를 연상케 하는 장중한 도입부로 시작되는 제2곡은 독일 레퀴엠의 최초의 모티브가 되었던 것으로, 1856년에 타계한 슈만의 죽음으로부터 비롯되었다. Langsam, marschmssig(천천히, 행진곡풍으로)'라고 지정되어 있어 말하자면 장송행진곡이라 할 수 있다. 저음현과 파곳의 조용한 전주로 시작되고 이윽고 전 관현악이 율동적이고 적적한 프레이즈를 낸다.

인생의 허무함과 삶의 덧없음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 비장한 이 첫 부분은 분위기를 바꾸어 밝은 B♭장조가 되지만 그것도 미흡해 끝까지 올라가면 pp로 반종지하고, 저음현과 파곳, 혼의 중개로 재차 어두운 b♭단조로 되돌아간다. 다시 한번 첫 부분의 비통한 선율을 장송행진곡 풍의 관현악을 수반하여 소프라노를 제외한 합창이 'Denn alles Fleisch es ist wie Gras und alle Herrlichkeit des Menschen wie des Grases Blumen. Das Gras ist verdorret und die Blume abgefallen.'을 노래한다. 최초의 관현악 선율이 합창에 더하여 완전히 반복된다. 크레셴도하여 ff로 되면 합창이 비통한 기분으로 'Denn alles Fleisch es ist wie Gras und alle Herrlichkeit des Menschen wie des Grases Blumen. Das Gras ist verdorret und die Blume abgefallen.'을 반복하고 차츰 힘을 떨어뜨려 트리오에 이른다.

트리오는 G♭장조의 온화한 움직임의 선율을 가진 합창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템포는 전보다 빠르다. 여기서는 인내를 가지고 주의 강림을 기다리는 'So seid nun geduldig, lieben Brder, bis auf die Zukunft des Herrn. Siehe ein Ackermann wartet auf die kstliche Frucht der Erde und ist geduldig darber, dis er empfahe den Morgenregen und Abendregen. (야고보서의 5장 7절)'이 주로 현에 의해 노래된다. 그러나 'und ist geduldig darber, dis er empfahe den Morgenregen und Abendregen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의 대목은 내리는 비를 그리듯 플룻과 하프가 아름답고 효과적인 동기를 계속 연주한다. 그리고 끝에 가서 조용하게 합창이 'So seid nun geduldig 그러므로 오래 참으라'하고 노래하고 혼이 답하듯이 이 선율을 되풀이하고 플룻과 하프가 내는 온화한 기분은 여기서 꺼진다. 그러면 제1부가 다시 반복되어 장송행진곡의 리듬이 나타난다.

이 장중하고 엄숙한 재현이 끝나면 곡은 B♭장조로 변하고 갑자기 트롬본의 f와 함께 'Aber des Herrn Wort bleibet in Ewigkeit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로 옮아가면서 장엄한 빛을 발한다. 흥분하는 바이올린, 약동하는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를 따라 곡은 4/4박자 알레그로 논 트로포의 코다로 들어가 베이스가 새로운 선율로 곧 'Die Erlsten des Herrn werden wiederkommen, und gen Zion kommen mit Jauchzen'(이사야 35장 10절)을 노래한다. 합창이 이것을 되풀이하면 각 성부는 대위법을 이루면서 차차 고조되어 드디어 소리를 모아 빛나는 광휘를 발하며 'ewige Freude 영원한 기쁨'을 외친다.

그러나 이내 또 약해지고 'wird ber ihrem Haupte sein'가 온화하게 노래되고 나면 현이 싱코페이션을 쓰면서 상승하고 그 정점에서 소프라노와 테너의 성부는 'Freude und Wonne werden sie ergreifen'하고 노래한다. 'und Schmerz und Seufzen wird weg mssen'에서 소프라노는 오보를 수반하고 테너는 혼에 의해 반주되며, 테너는 소프라노의 선율을 확대한 형태로 진행한다. 저음현의 동기로 차차 빛깔이 변하고 'wird weg 달아나리로다'를 외치며 환호의 합창이 된다. 흡사 가사의 'und Schmerz und Seufzen wird weg mssen.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와 어울려 즐거움과 기쁨을 희구하는 것 같다.

그리고 합창은 4성으로 정묘한 대위법을 펼쳐나간다. 먼저 앞의 'wird weg 달아나리로다'의 대목에서 관악기가 내는 동기를 취하고 소프라노, 테너, 알토, 베이스의 순서로 모방풍으로 'Die Erlsten des Herrn werden wiederkommen und gen Zion kommen mit Jauchzen; Freude'를 노래하며 점점 열기를 띠어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그러나 곧 pp로 반전하고 관악기가 콘트라베이스의 오르겔풍크트 위에서 현의 오블리가토를 수반하여 대위법이 조용하게 나타난다. 합창은 그 중에서 'ewige Freude 영원한 기쁨'을 동경하듯 되풀이하여 노래한다. 이윽고 콘트라베이스의 오르겔풍크트 위에서 현이 상행 음계풍의 프레이즈를 내기 시작하면, 전체는 크레셴도하여 기쁨에 대한 신뢰, 확신을 굳히고 합창의 'ewige Freude wird ber ihrem Haupte sein'에서 곡은 희망에 싸여 끝맺는다.

이 곡은 A(베드로전서 1:24)-B-(베드로전서 1:25)-A-(베드로전서 1:24)-C(야고보서 5:7)-D(이사야 35:10)-D(이사야 35:10)의 구조를 갖는다. 이 곡은 삶의 허무함과 죽음의 필연성으로부터 시작되지만 결국 인내와 믿음을 통해서 영원한 기쁨으로 나아감을 표현하고 있다.

 

제 3 곡 d단조. 2/2박자. Andante moderato

Herr, lehre doch mich da ein Ende mit mir haben mu, und mein Leben ein Ziel hat, und ich davon mu .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年限)이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하여금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시편 39:4)

Siehe, meinen Tage sind eine Handbreit von dir, und mein Leben ist wie nichts vor dir.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서는 없는 것 같사옵니다. (시편 39:5)

Ach, wie gar nichts sind alle Menschen, die doch so sicher leben.
사람마다 그 살아있는 때도 실로 헛될 뿐이니, (시편 39:5)

Sie gehen daher, wie ein Schemen, und machen ihnen viel vergeblicher Unruhe; Sie sammeln und wissen nicht wer es Kriegen wird.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紛擾)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지는 알지 못하나이다. (시편 126:6)

Nun Herr, wes soll ich mich toersten? Ich hoffe auf dich.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편 126:7)

Der Gerechten Seelen sind in Gottes Hand und keine Qual rhret sie an.
올바른 영혼은 주의 손 안에 있어 고통받지 않으리. (외경 '솔로몬의 지혜' 3:1)

이 곡은 <독일 레퀴엠>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며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이며 또 구성적으로도 가장 충실해 있어 지금은 중심적인 부분으로 생각되고 있다. 덧없고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자신의 삶에 부여된 온갖 허상을 깨닫고 신의 의지에 자신의 소망을 의탁함으로써 삶의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이 곡은 전례 레퀴엠의 봉헌송(Offertorium)정도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레퀴엠이 신께 봉헌하는 죽은 자의 영혼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영원히 거두어 줄 것을 기도하는데 비해 브람스의 레퀴엠은 삶의 허상과 인생의 유한함을 깨닫게 하여 헛된 삶을 극복하고 참다운 삶을 찾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좀더 현실적인 소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앞의 제2곡의 의연한 환희 뒤에 오케스트라의 도입부 없이 혼과 팀파니를 앞세워 바리톤이 비애와 우수의 밑바닥에서 혼미의 세상을 골고루 비추는 광명을 구하듯 'Herr, lehre doch mich da ein Ende mit mir haben mu , und mein Leben ein Ziel hat, und ich davon mu '를 독창한다. 선율은 짧게 단절되어 있어 비애에 떨고 숨도 끊어질 듯하여 극히 감명 깊은 효과를 올린다. 번뇌의 나락에서 이를 합창이 모방한다. 독창은 무거운 마음으로 'Siehe, meinen Tage sind eine Handbreit von dir, und mein Leben ist wie nichts vor dir'를 계속하고 합창도 이를 재차 모방하여 받는다. 여기서 갑자기 'mein Leben ist 나의 일생이'이라고 의혹을 담아 강하게 외치고 갑자기 휴지를 두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기다리게 한다. 그러나 곧 절망적으로 탄식하듯 'wie nichts vor dir'를 부른다. 감동적인 서법이다. 'Herr, lehre doch mich da ein Ende mit mir haben mu , und mein Leben ein Ziel hat, und ich davon mu .'가 다시 되풀이되면 곡은 D장조, 3/2박자로 바뀌고 울며 호소하듯 바리톤 독창으로 'Ach, wie gar nichts sind alle Menschen, die doch so sicher leben. Sie gehen daher, wie ein Schemen, und machen ihnen viel vergeblicher Unruhe; Sie sammeln und wissen nicht wer es Kriegen wird.'라고 한탄한다. 관은 앞의 합창 부분의 체념의 동기를 취하고 반주에 가담한다. 그로부터 합창은 불안스러운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이끌고 바리톤 독창의 전반부를 반복한다. 저음현은 체념의 동기를 연주하고 있다.

그러면 이번에는 바리톤이 'Nun Herr, wes soll ich mich toersten?'하고 초조한 바이올린 반주로 비통하게 묻는다. 합창은 다시 이 물음을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의혹과 비탄의 무겁고 괴로운 푸가토가 된다. 그러나 관의 단속음이 나타나면 답답한 느낌은 점차 사라지고 앞의 물음에 대한 답이 나타난다.

이 답이라고 하는 것은 밝고 확신에 찬 D장조로 나타나는 'Ich hoffe auf dich.'라고 하는 부동의 신념이다. 이 신념은 더욱 크레셴도로 굳어지고 'Der Gerechten Seelen sind in Gottes Hand und keine Qual rhret sie an.'를 환호하며 부른다. 19세기 후반에 쓰여진 가장 위대한 악곡의 하나인 경이적인 푸가이다. 신앙과 희망을 갖고 상행하는 주제는 테너-알토-소프라노-베이스로 이어지며 장엄한 결미를 이룬다. 전 푸가는 베이스, 트롬본, 팀파니 등의 낮은 D음의 오르겔풍크트로 지시되어 있어서 화성적으로 제약을 받고 있으나 선율은 자유롭게 흐르게 하고 있다. 브람스의 뛰어난 기교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오르겔풍크트는 빈 초연 때 크게 물의를 일으켰으나 지금은 브람스 레퀴엠의 특징으로 까지 되고 있다. 사실 크레치마르가 말했듯이 신의 옥좌의 평안함과 항구함은 이 오르겔풍크트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충분하게 표현되는 것이다.

 

제 4 곡 E♭장조. 3/4박자. Mssig bewegt(적당히 운동감있게)

Wie lieblich sind deine Wohnungen, Herr Zebaoth!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만군의 여호와여! (시편 84:1)

Meine Seele verlanget und sehnet sich nach den Vorhfen des Herrn;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시편 84:2)

Meine Leib und Seele freuen sich in dem lebendigen Gott.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느님께 부르짖나이다. (시편 84:2)

Wie lieblich sind deine Wohnungen, Herr Zebaoth!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만군의 여호와여! (시편 84:1)

Wohl denen, die deinem Hause wohnen, die loben dich immerbar!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편 84:4)

Wie lieblich sind deine Wohnungen, Herr Zebaoth!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만군의 여호와여! (시편 84:1)

목가적인 제4곡은 의미상으로는 제3곡의 푸가로부터 연결된다. 이 곡은 전체 레퀴엠을 통해서 가장 짧지만 환희에 넘쳐나는 제3곡의 뒤를 이어 천국의 평안함을 표현한다. 행복한 하늘의 집, 사랑스럽고 즐거운 안식처가 이 서정적인 곡에서 풍겨온다. 제5곡과 더불어 목가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며 상쾌한 움직임을 지니고 있다. 관현악에서는 찬란한 트럼펫도 트럼본도 없고 하프도 빠져있다. 그러나 이러한 악기의 취급이 - 특히 이 부분에서 비로소 나타난 E♭혼의 용법은 - 이 곡을 봄날의 아침처럼 맑고 청명하게 만들고 있다. 가사는 시편 84편의 1, 2, 4절을 사용하고 있으며, 구절마다 많은 반복을 포함하고 있다. 이 곡의 구조는 일종의 론도에 가까운데, A(시편 84:1)-[B-C](시편 84:2)-A(시편 84:1)-D(시편 84:4)-A(시편 84:2)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먼저 딸림7화음으로 시작되는 관현악의 전주를 받아 합창이 'Wie lieblich sind deine Wohnungen, Herr Zebaoth!'하고 하얀 새털구름 위의 천사가 노래하듯 우아하게 시작한다. 오보는 얌전한 상행선율을 연주하지만 이어지는 합창에 의해 끊어진다. 이윽고 합창의 테너가 제1바이올린의 새로운 선율을 모방하고 역시 'Wie lieblich sind deine Wohnungen, Herr Zebaoth!'를 노래하고 베이스와 여성 합창이 카논풍으로 진행한다.

이 것이 끝나면 합창은 'Meine Seele'하고 화창(話唱)하고 이어서 저성부부터 차례로 'Meine Seele verlanget und sehnet sich nach den Vorhfen des Herrn;'를 노래한다. 바이올린이 새기는 무곡풍의 리듬이 인상적이나 전체의 느낌은 오히려 장중하다.

이어서 조용하게 최초의 'Wie lieblich sind deine Wohnungen, Herr Zebaoth!'가 반복되고 차차 힘을 더해가면서 'Wohl denen, die deinem Hause wohnen,'에서 f에 이르면 스타카토의 가벼운 바이올린의 반주를 타고 'die loben dich immerbar!'의 2중 푸가토가 나타나 곡의 절정을 구가한다. 이 푸가토는 현의 사랑스런 피치카토를 수반한 조용하고 유려한 합창으로 끝을 알린다. 그러면 소프라노와 테너, 알토와 베이스가 한 조가 되어 각각 유니즌으로 'Wie lieblich sind deine Wohnungen,'이 또 한 번 노래된다. 그러나 선율은 전과 달리 제2곡의 장송행진곡에 관계한 동기를 쓰고 있다. 그리고 곡은 평화로운 즐거움에 만족한 듯 온화하게 끝난다.

 

제 5 곡 G장조. 4/4박자. Langsam(천천히)

Ich habt nun Traurigkeit; aber ich will euch wieder sehen und eure Herz soll sich freuen,
지금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금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und eure Freude soll niemand von euch nehmen.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6:22)

Ich will euch trsten, wie einen seine Mutter trstet.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과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리라. (이사야 66:13)

Sehet mich an: ich habe eine keine Zeit Mhe und Arbeit gehabt und habe gro en Trost gefunden.
보라. 수고하고 일할 시간은 적고 큰 위안을 찾으리로다. (예수시라기 51:35)

Ich will euch trsten.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라. (이사야 66:13)

Ich habt nun Traurigkeit; aber ich will euch wieder sehen und eure Herz soll sich freuen, und eure Freude soll niemand von euch nehmen.
지금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금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6:22)

Ich will euch trsten, wie einen seine Mutter trstet.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과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리라. (이사야 66:13)

소프라노 독창과 혼성 4부 합창으로 이루어진 제5곡은 전체에서 가장 아름답고 따뜻한 정서를 지니고 있다. 총 7곡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완성된 것으로 1868년 브레멘 대성당에서 6곡만으로 공개 초연된 후, 유연하고 감동적인 광채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브람스가 연전에 타계한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담아 작곡해서 보냈다. 'Ich habt nun Traurigkeit'로 시작되는 소프라노 독창은 제5곡을 일관해서 노래하고 있고 밝은 위안 같은 감정을 표출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브람스는 이 곡의 작곡에 있어서 관현악과 합창부분을 만들고 나서 비로소 이 독창 파트를 써넣었다고 한다.

약음기를 단 현의 짧고 조용한 전주를 받아서 소프라노 독창 'Ich habt nun Traurigkeit; aber ich will euch wieder sehen und eure Herz soll sich freuen,'이 시작된다. 현의 피치카토를 수반하고 관에 의해 나타나는 선율은 이 독창 부분을 한층 청초하게 한다. 이윽고 합창이 2마디 앞에 나온 독창의 동기를 확대한 형태로 'Ich will euch troesten, wie einen seine Mutter trstet.'하고 아주 조용하게 노래한다. 이 곡은 근심과 고통에 잠긴 영혼에 대한 위로를 담고 있는데, 최초의 소프라노 독창에게 대단히 높고 긴 음이 주어져있을 뿐만 아니라 풍부하고 아름다운 감정을 요구하고 있어 난곡 중의 난곡으로 알려져 있다. 또 소프라노 독창에 의해 'und eure Freude soll niemand von euch nehmen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가 노래될 때 혼성 4부 합창이 'Ich will euch troesten, wie einen seine Mutter troestet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과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리라'를 노래해 그 의미를 확장시킴으로써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취한 두 약속을 음악에 의해 하나로 결합시키고 있다.

그러면 소프라노 독창은 B♭장조로 변하고 'Sehet mich an: ich habe eine keine Zeit Mhe und Arbeit gehabt und habe grossen Trost gefunden.'을 노래하여 B장조를 거쳐 D장조로 옮겨간다. 그리고 독창과 합창은 서로 응창한다. 그리고 최후에 첫머리의 'Ich habt nun Traurigkeit; aber ich will euch wieder sehen und eure Herz soll sich freuen, und eure Freude soll niemand von euch nehmen. Ich will euch trsten, wie einen seine Mutter troestet.'가 다시 한 번 노래되고 위안에 차면서 끝맺음을 한다.

 

제 6 곡 c단조. 4/4박자. Andante

Denn wie haben hie keine bleiben Statt, sondern die zuknftige suchen wir.
우리가 영구히 머물 도성(都城)은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히브리서 13:14)

Siehe, ich sage euch ein Geheimnis. Wir werden nicht alle entschlafen, wir werden aber alle verwandelt werden; und dasselbige pltzlich in einem Augenblick zu der Zeit der letzten Posaune.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다 변화하리니, 마지막 나팔소리에 홀연히 그렇게 되리로다. (고린도전서 15:51)

Denn es wird die Posaune schallen und die Toten werden auferstehen unverweslich, und wir werden verwandelt werden.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다. (고린도전서 15:52)

Dann wird erfllet werden das Wort, das geschrieben steht: Der Tod ist verschlungen in den Sieg.
이때에 죽음을 삼키고 이긴 바가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에 응하리라. (고린도전서 15:54)

Tod, wo ist dein Stachel? Hlle, wo ist dein Sieg?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지옥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고린도전서 15:55)

Herr, du bist wrdig zu nehmen Preis und Ehre und kraft, denn du hast alle Dinge erschaffen, und durch deinen Willen sie das Wesen und sind geschaffen.
주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요한계시록 4:11)

제2곡에 뒤지지 않는 대곡인 제6곡은 아마도 레퀴엠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부분일 것이다. 이 곡은 전례 레퀴엠의 '진노의 날 Dies Irae'에 견줄 수 있겠으나 최후의 심판의 무시무시한 공포가 아니라 영원한 삶을 위한 부활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주요 부분 앞에는 예비와 같은 긴 부분이 있어 사람의 경우를 암시하는 듯한 통절한 감정이 표출되고 있다.

약음기가 달린 바이올린으로 장엄한 도입부가 시작되고 곧 'Denn wie haben hie keine bleiben Statt, sondern die zuknftige suchen wir.'라고 합창이 노래한다. 이 대목은 가사에 맞추어 안정된 조를 길게 쓰지 않고 무엇인가를 구하듯이 망설이며 진행한다. 이 망설이는 자들에게 이윽고 위안의 소리가 바리톤의 독창으로 들려온다. 'Siehe, ich sage euch ein Geheimnis. Wir werden nicht alle entschlafen, wir werden aber alle verwandelt werden; und dasselbige pltzlich in einem Augenblick zu der Zeit der letzten Posaune.' 이 부활의 예언은 반주의 떠는 듯한 현과 불안한 목관으로 예언의 내용처럼 신비화되어있다. 그 선율의 처음부분은 제2곡의 'Die Erlsten des Herrn werden wiederkommen, und gen Zion kommen mit Jauchzen'에서 가져온 것이다. 조도 안정되어 F# 단조를 명시한다. 이 예언엔 합창도 짧고 조용하게 참가한다. 그리고 'letzten Posaune 마지막 나팔'의 대목에 이르러 트롬본과 튜바가 장대하게 가담하고 바이올린은 약음기를 떼고 위 아래로 떨면서 운동하고 전 관현악과 합창은 C 단조의 화음을 낸다. '진노의 날'의 준비는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힘차게 상행한 바이올린이 하행하면서 3/4박자 급속한 비바체로 변하고, 주요부로 들어간다. 조는 역시 불안한 c단조이다.

주요부에서 전합주는 최강음을 내고 현은 급히 상하로 달리고 합창은 'Denn es wird die Posaune schallen und die Toten werden auferstehen unverweslich, und wir werden verwandelt werden.'를 노래한다. 마치 하늘의 기적에 사람들이 놀라 달아나는 것 같다. 이어서 'Dann wird erfllet werden das Wort, das geschrieben steht:'는 바리톤 독창으로 조용하게 노래되지만 'Der Tod ist verschlungen in den Sieg.'는 폭풍우 같은 합창으로 불린다. 그 폭풍우 속에 부활의 기적이 행해져 쉬지 않고 'Tod, wo ist dein Stachel? Hlle, wo ist dein Sieg?'하고 큰 소리로 준열히 꾸짖으며 주요부의 클라이맥스가 구축된다.

정점에 이른 준열한 반문은 차차 구제자의 환성으로 변하고, 주를 찬미하고 주에게 감사하듯이 명랑하고 생기 있는 부분이 된다. 죽음에 대한 승리로 암흑의 장막은 걷히고 폭풍우는 끝난 것이다. 템포도 알레그로로 떨어지고 조도 밝은 C장조이다. 'Herr, du bist wrdig zu nehmen Preis und Ehre und kraft, denn du hast alle Dinge erschaffen, und durch deinen Willen sie das Wesen und sind geschaffen.'가 고딕식의 대푸가 - 2/2박자, 그러나 한 마디에 2분 음표 4개씩 - 로 다루어져 작곡가의 정묘한 기교를 여실히 보여준다. 곡 중간의 'denn du hast alle Dinge erschaffen' 부분은 조용한 모방대위법의 삽입구로서, 멘델스존의 우아함을 보여주지만 전체는 힘찬 대찬가의 인상을 준다. 그리고 pp에서 시작하여 크레셴도로 상행하여 호쾌한 화음으로 압도적인 제6곡이 끝난다.

 

제 7 곡 F장조. 4/4박자. Feierlich(장중하게)

Selig sind die Toten, die in dem Herren sterben, von nun an.
지금 이후로 주(主)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Ja, der Geist spricht da sie ruhen von ihre Arbeit, denn ihre Werke folgen ihnen nach.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Selig sind die Toten, die in dem Herren sterben, von nun an.
지금 이후로 주(主)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14:13)

죽음의 공포를 몰아내고 죽음 자체를 안식으로 바라보는 마지막 제7곡은 전통적인 기독교 개념에 입각해있는 결미이다. 그래서 이 마지막 곡 역시 죽음의 무시무시한 환영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위안과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착상이 섞여 음악적 모티브를 이루고 있다. 특히 중간부인 'sie ruhen von ihre Arbeit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는 지극히 목가적인 아름다움과 잔잔함을 지니고 있는데, 브람스는 이 악장에서 이 레퀴엠 제일 첫부분의 테마를 다시 사용함으로써 순환형식이 이뤄내는 예술적 의미를 되새긴다. 그것은 깊은 음악적 조화 속에 죽은 자와 슬퍼하는 자에 대한 축복을 기대함으로써 삶과 죽음, 고통과 위안, 심판과 구원을 둘러싼 순환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다.

첼로가 내는 엄숙한 선율을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모방해서 받으면, 소프라노가 'Selig sind die Toten, die in dem Herren sterben, von nun an.'하고 노래한다. 니만은 이 선율이 제1곡 첫머리의 'Selig sind, die da Leid tragen,'에서 유래한다고 보고 있다. 어딘지 바흐의 종교 음악을 연상시키듯 장엄하게 진행된다. 이 가사는 베이스에 의해서 C장조로 노래되고 대위법적으로 다루어진다. 이 후 관현악의 간주가 깊은 상념을 안고 나타나면, 이번에는 새로운 선율로 합창이 'Ja, der Geist spricht'를 부르며 A장조로 들어간다. 그러면 자유롭고 평화로운 감정을 전하는 현의 반주를 수반하여 'da sie ruhen von ihre Arbeit, denn ihre Werke folgen ihnen nach.'를 이어간다. 이렇게 해서 조용하게 2부가 끝나면 다시 온화한 F장조로 되어 제1부가 돌아온다. 그 재시 다음에 곡은 갑자기 E♭장조로 바뀌고 제1곡의 끝 부분과 같이 새로운 리듬을 알토가 낸다. 더구나 이 선율은 제1곡의 끝부분에서 'Selig sind'라는 가사로 나온 선율과 율동적으로는 다르나 음정적인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 선율을 계기로 해서 역시 제1곡의 주요한 선율에 관계한 선의 움직임으로 'Selig sind die Toten, die in dem Herren sterben, von nun an.'하고 몇 번이고 승천한 사람들의 구원의 평화를 빌 듯이 온화하게 노래되며 끝에 합창이 pp로 'Selig'를 되풀이하면 관의 조용한 화음과 하프의 조용한 아르페지오로 곡은 승천한 사람들의 행복을 빌 듯이 온화하게 끝을 알린다.

글 : http://cafe.daum.net/stuvocal 오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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