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평화의 가요

산삼의 나라 - 한돌│숨겨진 좋은 노래

리차드 강 2009. 4. 10. 14:22

산삼의 나라 - 한돌

내나라는 공사중 : 1994

한돌 Han, Dol (1954- )

No.4 - 산삼의 나라

 

산삼의 나라                

(작사:한돌 작곡:한돌 편곡:김명곤)

산삼을 심어보자 산삼을 심어보자
우리의 뿌리를 심어보자 흔들리지 않게

산삼은 다 캐 먹고 인삼이 남았구나
그나마 농약에 찌들은 인삼이 판을 치네
허우대는 멀쩡하지 희멀건 인삼이여 바로
그것이 우리의 모습인걸 그대는 아는가

산삼을 심어 보자 산삼을 심어 보자
우리의 뿌리를 심어 보자 흔들리지 않게

사라지는 산삼이여 나약해진 내 겨레여
우리는 어디로 가고있나 우리는 누구인가
병든 내 나라여 신음하는 내 나라여
어디가 그렇게 아픈거냐 산삼이 없다더냐

산삼을 심어 보자 산삼을 심어 보자
우리의 뿌리를 심어 보자 흔들리지 않게

이 산 저 산 모두 산삼밭이 되는 날
허약해진 내 나라 내 겨레 되살아 나리라
백두산에 산신령님 지리산에 산신령님
이제는 하나가 돼야지요 통일을 해야지요

산삼을 심어 보자 산삼을 심어 보자
우리의 뿌리를 심어 보자 흔들리지 않게

Credits

레코딩 엔지니어 :  최병철
뒷노래 : 노래를 찾는 사람들
찰칵그림 : 김정명, 이한구
겉꾸밈 : 애드프래너
만든날 : 1994년 11월 그믐

우리는 참 이상하다. 인삼까지 미국것을 먹는 사람이 있다. 미국 인삼은 우리의 인삼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우선 미국에는 산신령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것이라면 굉장히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농약에 찌든 중국 인삼이 우리시장에서 판을 치고 있는데도 우리는 나 몰라라한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은 나라이다. 산에 산삼이 많이 있어 우리는 그 산삼의 기를 받고 태어난 민족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피둥피둥 살만 찌고 정신적으로 너무 나약해져서 오죽하면 발딛고 사는 이 땅도 신음소리를 내겠는가. 누군가가 산삼을 다 캐먹었다는 얘기다. 산에 산삼이 다 빠져나가니 산이 허해질 것은 뻔한 일이고 산이 허해지니 내 나라 내 겨레도 허해질 수 밖에 없는것 아닌가. 지금도 늦지 않으리 우리는 산삼을 심어야 한다. 이 산 저 산 산삼을 심어 온 산이 산삼밭이 되면 우리 후손들은 마음 건강하게 이 나라를 지켜나갈 것이다.

산삼 씨앗을 산속에서 발아시킨 이 삼년생의 묘삼. 바로 그것을 산에 되심으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다 산삼이 되는것은 아니지만 진정으로 정성을 다한다면 산삼이 다시 생겨나고 내 나라 내 겨레도 되살아 날 수 있을 것이다. 산삼을 캘때도 목욕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는데 산삼을 심으려는 마음 자세도 그리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백무산, 지리산의 산신령님 이제 그만 만나보시지요 때가 되었사옵니다.

(한돌, 1994년 백무산 봄)

아리랑 캐러 다니는'심마니'한돌

 ◇ 노래를 캐기 위해 산을 찾는 한돌 씨는 보통 산에 가면 서른 번에 한 번 정도 좋은 노래를 만들 기회가 온다고 말한다. 1997년 지리산 세석평전에서. 사진 | 이한구 기자

돌은 요샛말로 소개하자면 싱어송라이터(singer-songwriter)다. 하지만 이렇게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말에 대한 고집스런 사랑 때문이고 더 큰 이유는 자기 스스로 노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삼을 캐기 위해 정갈한 마음으로 산을 오르는 심마니, 그 역시 산신령이 점지해 준 튼실한 노래를 캐기 위해 산으로 든다. 그의 산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강원도 춘천시 봉의산 자락에서 자란 돌(50세). 그곳은 산이라기보다는 그냥 어린 시절의 놀이터였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산이란 단어를 모를 때’부터 그 속에서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철이 들면서부터는 친구들에게 ‘놀러 가자’ 하고서 떠나보면 발길 닿는 곳이 항상 ‘산’이었다. 중학교 때 용돈 2천 원을 주고 산 기타를 손에 쥐고부터 ‘판사가 아니면 딴따라가 된다’던 점쟁이 말 그대로 그의 노래인생이 시작되었다. 8남매 가운데 다섯째인 그를 판사 아들로 키우고 싶었던 아버지의 꿈은 노래를 좇는 자식의 꿈과 부딪혀 애꿎은 기타를 세 대나 부수어 버렸다.

“그때 부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셨다면 그냥 제 풀에 지쳐 주저앉아버렸을지도 모르죠.”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노래를 만들기 시작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본격적으로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노래를 만들기 위해 산을 찾은 것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산에 가면 작업이 잘 되었어요. 한참 뒤에야 그걸 깨달았어요. 그걸 알았을 땐 이미 산 아래에선 아무 것도 안 될 때였죠.” ‘저 강물은 말도 없이 오천 년을 흘렀네…’로 시작하는 노래 <터>를 만들 때도 답답하게 콱 막혀있던 노래의 실마리가 산에서 풀렸다.

1977년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 숨이 찬 가운데 방명록에 ‘나는 기쁘다…’ 쓰는 순간 갑자기 머리 속으로 섬광처럼 노래가 달려든 것이다. ‘설악산을 휘휘 돌아 동해로 접어드니’ 하고 막혀 있던 구절이 술술 터져 나오는데, 너무 기쁜 나머지 그 길로 산길을 뛰어내려오다 굴러 어깨를 다치기도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내가 잘나서 그런 노래를 만든 줄 알았어요.”

‘용서의 기쁨’을 배운 지리산

돌은 지리산에서만 세 번이나 저체온증으로 사경을 헤맨 경험이 있다. 그리고 지리산에만 가면 비를 만나는 악연이 있다. 그러나 그 악연이 세상을 다시 보게 되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1989년 여름날 피아골 산장에서 동이 틀 때까지 술을 마시고 출발했다가 산행도중 탈진해 사경을 헤맨 경험이 있다. 그때 만난 장대비가 그의 목숨을 살렸다.“그냥 쓰러진 채로 입을 벌려 쏟아지는 빗물을 그대로 받아 마셨어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비가 그친 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눈부신 초록의 세상에 놀랐다. 그리고는 자기가 마신 빗물만큼 눈물을 쏟아냈다.

“산에 버릇없이 술 처먹고 올라와 죽을 뻔한 걸 살려준 것은 누군가 나를 용서해 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했어요. 나는 이제껏 살면서 한번도 누구를 용서해 준 적이 없는데 하늘은 이렇게 한번에 나를 용서를 해주는구나….”

80년대 신형원이라는 가수를 통해 암울한 세상을 향해 토해낸 노래 ‘불씨’와 ‘유리벽’ 그리고 이후 ‘개똥벌레’가 어린아이들까지 즐겨 부르는 온 국민의 노래가 될 때까지도 그는 가족들에게 돌이란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살아왔다. ‘개똥벌레’ 노래 때문에 가요대상 시상식장에서 엉겁결에 방송 출연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들통 나버린 것이라고 했다. 부모님들끼리 맺은 토종 중매로 얼굴도 모르는 사내에게 시집왔던 그의 부인 역시 돌이 아닌 이흥건이라는 평범한 남자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살아오는 동안 노래 때문에 고집부리고, 사람들에게 너그럽지 못했던 일들, 자기자신을 용서하기가 힘들었던 지난날… 죽음의 문턱에서 깨어나 비로소 사랑의 기쁨보다는 용서의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닫고 진한 눈물을 쏟아낸 것이다. 그렇게 만든 노래가 ‘용서의 기쁨(돌타래모음3집 / 나이세스)’이다.

“…말없이 눈물을 글썽이며 가시밭길을 가는 사람아 내 어찌 그대의 추운 마음을 안아주지 못했는가 우 우 소낙비야 날 용서해다오 내 마음속에 먼지를 모두 씻어다오 비에 씻긴 저 산을 초록을 보라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가”

이 노래를 찬송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종교가 없다. 그렇지만 믿음은 있다. 굳이 그 신앙의 대상을 따지자면 산신령이다. “그때부터는 어느 산에 가도 다 산에는 다 대장이 있다고 믿게 되었어요. 제가 만드는 노래들은 모두 다 산신령이 준거예요. 이 놈이 좀 착해졌다 싶으면 그때 노래 하나씩 던져 주는 거지요.” 결국 ‘용서의 기쁨’이란 노래는 젊은 날 긴긴 방황과 오만에 대한 참회의 노래요, 산신에게 귀의하는 절절한 기도인 셈이다.

그때부터는 우연이 아니라 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산에 들 수밖에 없었다. 산을 오른다 하지 않고 굳이 ‘산에 든다’고 하는 것은 그가 산 정상이나 다른 특정한 목적지를 정하고 산행을 계획하지 않기 때문이다. 발길 닿는 대로 하염없이 걷거나 며칠 또는 몇 달 동안 산에 머물러 지내는 생활이 등산보다는 ‘입산’의 의미와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번에 가서는 꼭 이런 노래 하나 만들어야지’ 하고 작정하지도 않는다. 그런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마음을 비우고 산에 든다. “보통 산에 가면 서른 번에 한 번 정도 겨우 기회가 오는 것 같아요. 심마니가 목욕재개하고 산에 오르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어요. 내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아무리 산신령이 노래를 던져주어도 내가 알아듣지를 못하거든요.”

기다리다보면 너무 늦어버리는 아쉬움

이렇듯 목적의식적으로 작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노래는 오랜 기다림 끝에야 만날 수 있는 안타까움이 있다. 삶의 궤적을 따라 인생의 성적표를 기다리듯 노래를 기다리는 사람. 그래서 ‘내 나라는 공사중’이란 부제가 붙은 <돌타래모음3집> 음반 이후 벌써 8년의 세월이 흘렀다. 특히 이 음반에 담긴 ‘고운동 달빛’이란 노래는 이런 기다림의 방식에 대해 그 스스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고운동 달빛’은 지리산 양수발전소 건설로 수몰되는 고운동 계곡을 사랑하는 사람의 흐느낌이다. 고운동은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반천리에 있는 계곡으로 낙남정맥이 지리산 영신봉으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지리산을 떠돌다가 이곳에 머문 고운(孤雲) 최치운의 호를 따서 이름 부쳐진 이 아름다운 계곡이 댐 건설로 파헤쳐진 것이다.

“…고운동 계곡이 잠긴다네. 고운동 달빛이 사라진다네. 꽃들의 희망도 잠기겠지. 새들도 말없이 떠나가겠지. 사람이 사랑이 아님을 알게 되리라. 아프게 사라지지만 산은 울지 않는다. 외로운 구름아 어디로 떠나려는가, 꽃과 새들의 눈물 속에 산도 지쳐 돌아눕는구나. 지리산 지리산아 사랑하는 지리산…”

“제 노래가 나왔을 땐 이미 고운동은 너무 많이 망가져 있었어요. 이 노래를 2년만 빨리 발표해서 사람들한테 널리 알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니 너무 아쉬웠어요.”
그는 언젠가 고운동에서 살았던 사람을 만난 일이 있어 ‘고운동 계곡이 참 좋지요?’ 하고 물었더니, ‘고운동에 개고기 안 파는데…’ 하는 어이없는 대답을 들었을 정도로 이제는 그 계곡을 기억조차 못하더라고 안타까워했다.

고운동 계곡을 집어삼킨 산청양수발전소는 지난 2002년 7월 11일 이미 가동을 시작했다.
이날 준공식장에서는 지리산생명연대 등의 환경단체들이 침묵시위가 있었고, 이들은 댐 건설 자체를 막아내지 못한 현실을 통탄하며 지속적인 생태계 영향평가를 통해 지리산 생태계에 조금이라도 문제를 일으킨다면 양수댐 철거운동을 전개할 것임을 결의하기도 했다. 고운동은 끝내 지키지 못했지만 그는 또 다른 이름의 고운동 계곡들을 위해 계속 노래할 것이다.

 ◇ 산 따라 흘러가는 돌의 노래찾기는 자연스럽게 그 발길이 강으로 가닿는다. 1998년 섬진강변에서. 사진 | 이한구 기자

이제는 통일의 아리랑 캔다

그는 1994년부터 압록강과 두만강의 물길을 따라 노래를 캐러 다녔다. 그 사이 중국 쪽으로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을 다섯 번이나 드나들었다. 이제 지난 8년 동안 캔 심마니의 새 노래를 비단 보자기에 담기 위해 흙을 털고 뿌리를 손질하며 정성껏 매무새를 단장하고 있다. 새로 준비하는 앨범은 잃어버린 우리의 옛 정서를 찾는 작업이라고 한다. 바로 아리랑이다.

“타임머신이 별 게 아니에요. 그곳에 가면 내 오랜 과거가 아직도 그대로 있어요. 거기서 우리 민족이 통일이 되어서도 남과 북이 모두 거리낌없이 부를 수 있는 노래, 새로운 아리랑을 캐고 싶었어요.”

그가 말하는 아리랑이란 ‘어린 시절 산에서 놀다 해가 저물어 길을 잃었을 때, 멀리 마을에서 밥 때를 알리는 연기가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올라 길 안내를 하는 것, 어머니가 풍기는 밥 냄새의 정겨움’ 같은 것이라고 한다. 또 갓난아기가 세상을 향해 ‘앙앙’거리며 터뜨린 울음소리처럼 반갑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그가 아리랑의 실체에 다가가는 동안에도 세상은 한시도 쉬지 않고 빠르게 변해갔다. 그가 아리랑을 캐러 압록강변을 드나드는 사이 타임머신을 타고 찾아간 곳처럼 고요하기만 하던 그곳도 변해버린 것이다. ‘머리 깎는 곳’ ‘이빨 빼는 곳’이란 정겨운 이름의 간판들이 어느새 ○○미장원, ○○치과 식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압록강과 두만강을 키워낸 산자락들 역시 머지않아 또 다른 ‘고운동’이 되지 않을까 가슴 졸이고 있다. 부디 그의 새 노래가 더 늦기 전에 사람들 속 깊숙이 찾아들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는 조금 늦더라도 결코 급행열차를 탈 사람이 아니다. 더디 가더라도 덜컹거리는 완행열차 차창에 기대 세상 구석구석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볼 것이고 한번 간 길이라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가고 또 갈 것이다. 그는 이런 자기 인생의 화두를 ‘느림과 되풀이’라고 말했다.

글 | 김선미 기자 2003 .02 [고품격 산악 매거진 월간 - 마운틴- ]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