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말 즈음이었지 아마? 그게 그러니까, 원래 나한테 온게 아닌데 미덥지 않지만 어쨌든 내가 대부가 되기로 했고 그래서 신림동 성당에서 영세를 하고 대부와 대자가 피자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가끔 보라매 공원에서 만나 놀기도 하고 나눔도 하고 먹고 즐기는 시간도 가졌던 것같다. 아이의 이름은 "이정한", 세례명은 "알퐁소"... 일상생활에선 난, 내게 대자가 있는지조차 너무 잊고 살았다. 그러던 몇년전 그녀의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녀의 아들이 백혈병으로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했단다. 문득 든 생각, 티비 다큐에서 소아과 병동에 등장하는 아이들, 빵모자를 눌러쓰고 환자복을 입었으며 눈가는 퍼렇게 멍들어 있는 것같은 모습, 그리고 창백한 피부의 힘없는 아이들... 몇명의 아줌마들과 병원을 방문했을때, 대자는 볼 수 없었고, 엄마와만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할 얘기가 왜 그렇게 없는지, 위로의 말도 안나오고, 도대체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엄마 혹은 부모로서의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 그래도 그녀는 아이가 병을 이기고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한다고 했다. 그랬던 것이 3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나 정도의 나이에 전화가 오면 기쁜 소식보다 슬프거나 가슴아픈 소식들이 더 많다. 오늘 문자로 부고를 받고 가슴이 막막해지는 느낌으로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옛날에 우리 수녀님이 그랬다. 우리 아이들 중에 먼저 죽은 아이들이 있었는데 수녀님은 어려서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그만큼 죄가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나이가 많아지고 어른이 되고 늙어갈 수록 죄가 많아지고 무거워진다고 했다. 아무리 죄를 안짓고 살아가려고 발버둥쳐도 어른이 되어가면서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죄를 안짓고 살기는 정말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다. 나의 대자 이정한 알퐁소가 살고 싶었던 내일을 난 너무 무의미하게 소비하고 있다. 생산적이지 못하고 남을 위해 무언가 노력하지도 않으며, 오직 나의 즐거움과 기쁨만을 위해 살아왔다. 그래서 얻은 것이 술로 인한 치아 손상,,, 이제 틀니를 해야 한다. 그리고 위장 장애, 허리도 두번이나 부러졌다. 그로 인한 나를 아는 사람들로 부터 나를 걱정하게 만들었고, 그 모든 것으로 인해서 결과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너무 한심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아니 원래 내 인생이 개떡같아서 그런가? 그래도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은 가야지.. 아 이젠 나도 세상을 너무 잘 알아... 2013년 6.10 항쟁 기념일에.. 백수재에서 어리버리 돈키호테
나의 대자와 함께 했던 2006년 10월의 어느 한때를 사진으로 올려본다. 단체사진에서 손가락을 머리에 올리고 도깨비뿔 모양을 한 아이가 이번에 하늘나라로 간 이정한 알퐁소다 지금쯤은 중2가 됐을 나이인데, 두번째는 엄마와 아들과 둘째 여동생이 식사를 하는 모습니다. 가톨릭노동장년회에서 모임을하는데 한가정을 방문했을때 찍은 것이다.
그날의 추억은 여기에 있다. http://blog.daum.net/u90120/3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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