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만큼 싸늘해진 박종철 추모열기
저 뿐 아니라 많은 기자들도 그러겠지만, 주말이 되면 저는 꼭 확인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연합뉴스에서 제공하는 <금주의 메모>라는 것입니다. 매주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오후에 발표되는 금주의 메모는 그 다음 한 주간 동안 일어날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의 행사, 공연, 일정들을 종합 정리한 것입니다. 새 영화에 대한 시사회일정도, 정부의 중요한 브리핑도 이 <금주의 메모>를 통해 확인 할 수 있지요.
오늘도 사무실에 나와 어김없이 이 금주의 메모를 확인하다가, 저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월요일인 1월14일에 ‘매우 중요한 일정’하나가 메모에서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87년 1월 14일 고문으로 세상을 떠난 민주열사 ‘박종철’의 21주기 추모식 말입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예정이 보이지 않아서 ‘박종철 기념사업회’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본 결과 12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민주공원에서 기념식과 추모제가 있었고 14일 경찰 인권센터(옛 남영동 공안분실) 박종철 기념관에서 기념식을 진행한다고 하더군요.
“책상을 ‘탁’ 쳤더니, ‘억’ 하고 쓰러졌다.” 다섯 살 먹은 아이라도 말이 안되는 이야기라고 판단할 이 표현이 바로 87년 6월항쟁의 시발점이 되었던 박종철 사망에 대한 경찰의 공식 발표 내용이었습니다. 수배를 받고 있던 선배 박종운의 소재를 추궁 당하던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생 박종철은 그렇게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생을 마감했지요. 바로 그 선배 박종운은 지난 17대 총선에서 경기 부천 오정에서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고 출마하였지만 낙선을 합니다. 그리고 이번 18대 총선에도 역시 한나라당 소속으로 같은 지역구에 나올 예정이고요.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은 다음날 중앙일보에 ‘대학생 쇼크사’라는 단신으로 처리됩니다. 이렇듯 은밀히 묻힐 뻔한 사건은 동아일보에 의해 재조명되고 그러자 국민들은 경찰의 발표에 의구심이 생깁니다. 부검과 사체를 검안했던 서울대 황적준 박사와 중앙대 부속병원 의사였던 오연상씨는 박종철이 물고문에 의해 질식사하였음을 증언하게 됩니다. 그리고 질식사를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정부는 고문경찰관 두 명을 구속하고 치안본부장을 경질하는 선에서 이 사건을 마무리 하려고 시도하지만 그해 5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박종철의 죽음이 정권에 의해 은폐, 조작되었다는 것을 공표하면서 6월 항쟁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그제서야 전두환 정권은 국무총리, 안기부장, 내무부장관, 법무부장관, 검찰총장을 교체했지만 성난 국민들은 거리로 뛰쳐 나왔습니다.
그리고 침묵하던 시민들은 대학생 데모대와 합류하여, 군부독재타도를 외치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6월 9일 연세대학교를 다니던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류탄에 머리에 맞고 한달간 사경을 헤메다가 7월 5일 결국 사망하게 됩니다.
박종철은 지금 어떤 마음일까요?
그리고 결국 당시 민정당 대통령후보였던 노태우는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내용을 담은 <6.29 선언>을 발표하게 되지요. 이렇듯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박종철, 이한열과 같은 청춘들이 흘린 피의 댓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열사들의 이름은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사라지거나, 축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추워진 날씨만큼 싸늘한 박종철 추모열기를 느끼며 이러다가 우리들이 그 이름을 잊는건 아닌지 염려스럽습니다. 새로운 정권이 시작되고 있는 지금, 박종철은 어떤 마음일까요? 14일, 박종철 기념관에 가서 그의 영정 앞에 물어볼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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