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聖음악

바흐: 마태 수난곡 39곡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리차드 강 2013. 9. 3. 08:43

Bach St. Matthew Passion BWV244

Erbarme dich mein Gott

바흐 마태 수난곡 39곡 BWV244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Bach, Johann Sebastian 1685-1750

Kozena Magdalena, Mezzo Sop.

 

 

Kozena Magdalena, Mezzo

Conductor : Marek Stryncl

Performer : Magdalena Kozena
Orchestra : Musica Florea Orchestra
Label : Deutsche Grammophon

BWV244 Matthew Passion 39 Aria Magdalena Kozena

애잔한 알토 영창 '나의 하느님 불쌍히 여기소서(erbarme dich mein Gott)

아, 나의 하느님이여.
나의 눈물로 보아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 앞에서 애통하게 우는 나의 마음과 눈동자를
주여, 보시옵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Have mercy, Lord, on me,
Regard my better weeping,
Look at me, heart and eyes
Both weep to Thee bitterly
Have mercy, Lord!

Erbarme dich, Mein Gott, um meiner Zähren willen! Schaue hier, Herz und Auge weint vor dir Bitterlich.

지금 듣는 노래는 알토 아리아,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다. 영화 '이중간첩'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왔던 음악이기도 하다. 

베드로가 예수를 세번 부인하고 곧 닭이 운다. 베드로는 예수의 말이 떠올라 밖에 나가서 통곡한다. 뒤이은 노래는 합창이다. 

"나는 당신으로부터 떠났습니다. 당신 앞에 돌아 왔나이다. 아들의 희생, 고뇌와 죽음의 고통이 당신과 화해시킨 것입니다. 나의 죄를 부정하지 아니하나 당신의 은총과 자비는 끊임없는 나의 죄보다 크나이다."

너마태 수난곡은 신약성서의 《마태복음》 26~27장에 기록된 예수 수난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음악작품. 1829년 3월 11일 베를린에서 멘델스존의 지휘로 바하이 사후에 처음으로 연주되었다.. 크게 I, II부로 나뉘며 총 68곡으로 되어 있다...(신전집 편성). 두 개의 합창이 사용되며, 코랄에서는 두 합창이 4부로 겹친다. 그리고 flute, oboe, 현악기, 통주저음 및 sop, alto, tenor, bass solo가 사용된다. 수난곡(Passion Music)이라고 함은 마태오, 마르코, 요한같은 복음서 저자들의 복음에 따라 그리스도의 수난을 표현하는 음악을 말한다.

     

 

Angela Kazimierczuk, sop.

Christoph Spering, Cond

Das Neue Orchester

Chorus Musicus Köln

In the arragement made in 1841 for St. Thomas's Church, Leipzig

by Felix Mendelssohn Bartholdy

 

BWV244 39 by Mendelssohn Angela Kazimierczuk sop.

     
     

 

Anne Sofie von Otter, Alto

Avec Michael Chance, cond.

 

English Baroque Soloists

Dirigé par John Eliot Gardiner

 

BWV244 Matthew Passion 39 Aria Alto Von Otter

     
     

Matthew Passion BWV244

서양 음악의 최고 걸작이라고 꼽는" 마태 수난곡" 구태여 종교 음악으로 분류 하지 않아도,
마태 수난곡은 종교적인 측면 못지않게 인간적인 극적 음악으로까지 확대하여 파악할 때
비로소 보다 뜨겁고 생생하게 우리 가슴속에 파고 든다. 이 음악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고통, 베드로의 인간적인 나약함이 빚어낸 배신, 전형적인 관리의 비굴함을 보이는 제사장, 무지한 군중심리와 부추기는 선동에 휘말려 그리스도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가
그의 부활로 비로소 눈을 뜨게 되는 가련한 민중,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따르는 가난한 여인 등, 이들이 벌이는 드라마...,

오늘날 우리 주위의 삶들과 조금도 다른 데가 없는 멜로 드라마의 보다 강하고 격렬한 박력과 인간의 오욕, 연약함, 눈물 그리고 거기서 솟구쳐 오르는 감동을 발견한다.

전곡(全曲) 도처에 깔려있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합창. . .

제1곡의 " 오라, 너희 딸들아, 와서 함께 슬퍼하자"부터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느리고 깊숙하게 잦아드는 템포, 슬픔에 잠긴 채 그리움으로 몸부림 치는 듯한 현의 음색, 그것은 포르타 멘토와 루바토의 효과로 더욱 강화되며, 이제 다가올 비극을 예감하게 만든다.  또 제5, 제7곡의 합창에는 처절한 박력이 휘몰아친다.

제10곡의 앨토의 영창" 참회와 회한은 죄의 마음을 두 갈래로 찢어" 나, 베드로가 예수를 모른다고 대답한 뒤 닭이 우는 소리를 듣자, 예수가 예언한 "내일 아침 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모른다고 하리라" 고 한 말을 생각 하면서 통곡 하는 ...

제47곡의 앨토의 영창 " 나의 하느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는 비탄의 극치이다. 흐느끼는 독주 바이올린의 오블리가토가 우리의 심성 깊은 구석에 까지 파고 들어와 잡아 흔든다. 두 조로 나누어 부르는 마지막 곡의 합창"눈물로서 엎드려"는 그 영적인 눈부심과 끝없이 깊은 포용력으로 대하처럼 도도히 흘러 우리에게 다시없는 커다란 감동을 불러 일으켜 준다.

이런 곡을 듣고도 감동을 못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무슨 온전한 삶이 있다고 하겠는가.

제33곡의 슬픔의 이중창을 갑자기 밀어젖히면서 치솟는 분노의 합창의 격렬함은 숨을 멎게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군중이 " 저분이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다" 고 노래하는 합창의 표정, 그리스도에게 침을 뱉고 몽둥이로 때린 뒤 결국은 죽여 버린 그들이 감동과 두려움과 회한의 괴로움을 안고 고백하는 합창은 몸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그대로 뿜어 나와 듣는 이의 가슴을 태운다.

바하의나이 44세때, 3년의 세월에 걸쳐 완성한 "마태 수난곡"은 신약성서의 마태 복음서에서 소재를 택했다. 가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말한 마태복음서의 제26, 27 장과 작사가 피칸더가 쓴 대사 및 그 밖의 가사를 사용했다.

전체는 2부 78곡으로 되어있고, 오케스트라와 합창은 2부로 나뉘었으며, 에반겔리스트(복음사가)의 레치타티보(서창)가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안동림/현암사

     

<예수를 부인하는 베드로> 

1610, 캔버스유화, 94x125, 뉴욕 쉬크만 미술관

Love

Peace

Freedom

 

 

     

작품개요 및 구성

[개설] 바하가 쓴 수난곡(passion)은 모두 다섯 곡이 있었다고 하지만,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마태 수난곡>과 <요한 수난곡> 두 곡에 지나지 않는다. <마태 수난곡>은 신약 성서에 수록되어 있는 마태 복음의 내용을 기초로 한 오라트리오로서 규모의 크기, 극적인 구성력 종교적인 정신성의 높이에 있어서 바하의 전작품 가운데서도 두드러질 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곡 가운데서도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평하고 있다.

[성립과 초연] 독일 각지의 궁정이나 교회의 악장 내지는 오르가니스트를 역임한 깊은 신앙심을 갖춘 바하의 창작활도의 기둥은 무엇보다도 일요일마다의 예배를 위한 칸타타에 두어져 있었으나 기독교의 중요한 의식 때는 특별한 곡을 써서 바치는 경우가 있었으며, 바하가 칸토르로서 재직해 있던 시절의 라이프찌히 성토마스 교회에서는 성금요일의 저녁기도에 순환곡을 연주하는 습관이 있었다. 1727년과 1728년에는 바하가 <요한 수난곡>을 연주했으나, 1729년의 성 금요일(4월 15일)에는 <마태 수난곡>을 완성해서 초연했다. 텍스트의 작자는 피칸더(본명은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헨리찌)이지만, 바하 자신이 상당히 손을 댄 듯하여 작곡에 착수한 후 약3년에 걸쳐 완성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초연 후에도 이 곡은 몇 번인가 연주되었지만, 실제 예배용에는 너무 긴 탓도 있어서 어느 새 밀려나 버렸다. 그것을 소생시켜 연주한 사람은 대작곡자 멘델스존이며, 때는 초연으로부터 꼭 100년째에 해당하는 1829년 11월 3일, 베를린에서였다.

[감상] 독창자에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를 요하지만 테너는 복음사가(에반 게리스트)로서 이야기 전체의 진행을 관장하는 퍽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또한 베이스는 주역인 예수를 겸하는데 이것은 다른 바리톤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혼성 합창은 각각 두 팀으로 나누어지며 다시 아동 합창도 더해진다. 음악으로서는 대규모적인 칸타타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독창자들의 아리아는 주로 당시의 관습에 따라 다 카포 형식에 의한 것으로 복음사가의 레치타티보 세코와 두드러진 대조를 이루고 있다. 화성적인 코랄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며, 반주 악기는 때로는 대담하고 묘사적인 성격을 나타내는 등 바하의 표현력은 실로 다채롭기 이를 데 없다. 전체는 78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예수가 붙잡혀서 그 제자들이 도주하는 대목까지가 제1부, 예수에 대한 심문으로부터 예수의 영원한 안식을 비는 대목까지가 제2부로 되어 있으며, 이 곡에서는 예수의 부활은 다루지 않았다. 제1부의 제1곡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이중 합창에 의한 <오라. 그대들 소녀들이여, 와서 함께 탄식하자>라고 슬퍼해야 할 사건의 도래를 예고했으며, 거기에 아동 합창의 코랄도 더해진다. 제 2곡부터 제 5곡까지는 수난을 예언하는 부분이며, 제 6곡부터 제 10곡까지는 베다니에 있어서의 예수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했고, 제12에서는 스승을 배신하려는 유다에 대하여 독창 소프라노가 <사랑하는 주의 가슴은 피를 흘린다>라고 절절한 아리아를 노래한다. 제 13곡부터는 최후의 만찬 장면이며, 제 19곡에서는 오보에 다모레를 수반한 독창 소프라노가 주의 존귀함을 노래한다. 제 20곡에서부터는 올리브산 위의 장면, 제 24곡부터는 게셋마네 동산의 장면, 제 32곡부터는 예수가 유다의 배신으로 붙잡히는 장면으로 군중들의 분노의 폭발을 합창으로 나타낸 후에 제 35곡의 조용한 코랄로써 제 1부가 끝난다.

제 2부는 예수의 행방을 찾는 합창이 붙은 제36곡의 알토의 아리아 <이제 우리 구세주는 가셨다>로써 시작된다. 대제사장 가야바의 심문에 대하여 예수는 부활을 예언하므로 사람들이 격분하지만 제44곡의 코랄은 그것을 진정시킨다. 제45곡은 예수의 뒤를 몰래 따라온 베드로가 군중들에게 둘러 싸인다. 그는 그 곳에서 예수와 한패라는 것을 부정하여 그곳에서 도망치려고 하다가 심한 후회를 하고, 바이올린 오블리카토를 수반한 제47곡의 알토의 아리아는 <나의 하느님, 눈물로써 기도합니다>라고 신에게 불쌍히 여겨 달라고 빈다. 제49곡부터는 예수가 죽음을 당하게 되었으므로 예수를 적에게 팔았던 유다는 뉘우치고 포상으로 받았던 은화를 대제사장에게 돌려주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제54곡부터는 빌라도가 군중들을 향해서 예수를 어떻게 처형해야 하는가를 상의한다. 예수의 선행도 소개되지만 군중들은 예수를 죽이라고 하며 <십자가에 매달아야 한다>고 대답한다. 제63곡의 코랄 <오, 피투성이가 되고, 상처를 받은 머리>에 의해서 이 장면은 엄숙하게 끝난다. 제64곡에서는 예수가 골고다의 언덕으로 운반되어 십자가에 못박히어 죽음을 당하게 된다. 제71곡부터 제73곡은 예수가 살해되는 장면으로 예수가 숨이 끊어짐과 동시에 천변지이가 일어나므로 사람들이 두려워한다. 이윽고 마지막 장면이 되어 그러한 이변도 끝나고 황혼의 시원한 공기가 소리도 없이 다가오자 제75곡의 베이스의 아리아가 <나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예수를 마음속으로 맞아들여라>라고 예수가 편안하게 매장된 사실을 알려 준다. 한편 대제사장들은 예수가 죽기 전에 3일 후에 부활한다고 한 예언을 생각하고 부들부들 떨지만 사람들은 예수의 안식을 원해서 제78곡의 종말 코랄 <우리들은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끓고 앉는다>의 경건한 합창을 노래하는 가운데서 곡이 끝난다.

     

마태 수난곡 - 그 내력과 해석

마태 수난곡이 녹음으로 남아 있어 몇 번이고 다시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은 커다란 안도감, 어쩌면 두려움의 감정까지 가져다 준다.

바하의 이 작품은 실로 위대한 작품이다. 독실한 기독교인들과 음악애호가들이 "제5복음서"라고도 할 만한 이 작품을 존경으로 대하고 있듯, 약 네 시간 동안 숭고한 음악을 듣노라면 누구나 성화된 감정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여기 대하는 이 작품이 유일무이한 완결된 작품이며 단 하나의 확실한 해석만을 요구한다고 보는 것은 착각이다. 엄밀히 말해 이 한 질의 음반은 이 작품이 있기까지, 이 레코딩이 있기까지의 내력에 관해 아무 것도 말해 주는 바 없다.

칼리히터의 총보에 대한 혜안, 마디마디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일생에 걸친 노력, 개개의 코랄이 갖는 힘, 개개의 아리아에서 악기와 인성의 완벽한 균형, 개개 합창의 "정확한" 빠르기 등등을 둘러싼 그의 고뇌에 대해서도 말해 주는 바 없다. 노련한 바하 지휘자들은 여러 해에 걸친 숙고의 결과 위와 같은 물음들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 왔지만, 이러한 "지적 노력의 산물"이란 가만히 앉아 손수 음악을 만들어가는 그 순간 덮쳐오는 영감으로 그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칼 리히터는 여러 해 동안 이 작품 중 개개의 곡들이 담고 있는 극적 긴장과 서정적 전개의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그런데도 매번 해석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어찌보면 두드러진 변화라 할 만한 것들이 매번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들은 번번이 작품 전체에 대한 리히터의 조망에서 벗어났던 변화들이었다. 작품 자체가 원체 이질적인, 그러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하는 요소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예컨대 리히터는 코랄을 때때로 개인의 영혼의 서정적 묵상으로, 때로는 공동체적 신앙의 움직이지 않는 확신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칼 리히터의 해석 뒤에는 바하에 대한 그 자신의 일생에 걸친 헌신뿐 아니라, 1918년에서 50년까지 성 로마 교회의 악장으로 있던 스승 칼 슈트라우베로부터 젊은 리히터가 전수받은 라히프찌히의 바하 전통 또한 숨어 있다.

<마태 수난곡>이 있기까지의 내력, 그리고 오랫동안 역사 속에 묻혀 있던 것을 멘델스존이 발굴해낸 1829년이래, 아니면 초연이 있은 1729년이래, 더 거슬러 올라가 1727년이나 28년이래 이 작품이 겪어 온 변화들은 이루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금세기에도 이 수난곡은 바하에 대한 낭만주의적 경외심을 상징하는 최상의 작품으로 아려져 있고 또 사랑받고 있다.그러나 새로이 고증되어 편집, 간행된 바하 악보들 틈에서 <마태 수난곡>을 찾아보면 이 곡이 "절대의", 변경의 여지가 없는 작품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초기의 <마태 수난곡>은 지금껏 작곡된 해로 알려져 온 1729년보다 앞서 존재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마태 수난곡>을 "진행중인 작품"(work in progress)으로 보려는 시도가 필요해진다.

(알프레도 뒤르는 <마태 수난곡>의 초기 악보의 팩시밀리를 곁들여 이 작품이 겪은 변화들에 정확한 문헌 고증을 제시한 바있다.

[라이프찌히,1972]

나중에 나온 판에 대해서도 상세한.비판적 주석을 내놓고 있다.[카셀 1974].

"진행중인 작품"이라고 해서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덧붙이고 뺄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제임스 조이스 이래 널리 쓰이고 있는 이 표현의 의미는 <마태 수난곡>과의 관련하에서는 이렇다. 곧 바하가 완벽을 향한 내면의 부름에 좆아 또는 매번 연주 때 마다 상황에 맞추어 이미 쓴 곡을 손수 고치고 다듬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변화를 겪으면서도, 극히 정교하게 고안되고 심오한 뜻을 담게 만들어진 전체 구도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예컨대 원래 악보에서 제 1부 마지막은 코랄 "Jesum lass' ich nicht von mir"로 되어 있는데, 나중에 바하는 그 대신 <요한 수난곡> 제2판에서 코랄 "O Merisch, bewein dein Sunde gross(오 사람들아 그대들의 죄가 얼마나 큰가를 슬퍼하라)"를 빌려왔다. 두 곡은 규모나 양식에 있어 매우 다른 것이면서도 같은 E장조로 되어 있다. 이로써 바하는 곡 하나를 바꿔치기 하여 작품에 윤택을 더하는 동시에 조의 연쇄는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중세 및 초기 바로크의 영향

<마태 수난곡>이 일종의 "요약" 인 것은 연주와 연구 양면에서 수많은 해석가들이 기울인 일생에 걸친 노력 때문만도, 또 바하 자신이 이 작품을 완결되고 변경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만도 아니다.

가장 깊은 뜻에서도 "요약"인 것이, 여러 세기에 걸쳐 수난 장(章)에 붙여진 경건한 음악들 가운데서도 정수라 할 만한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하의 화성적 요구를 염두에 두고 <마태 수난곡>을 연주하면 어떤 선법적 분위기(특히 프리지안 선법으로 된 "Wenn ich einmal soll scheiden" <나 언젠가 세상을 떠나야만 할 때 >에서) 은근히 그러나 뚜렷하게 전곡에 스며들어 있음을 느끼게 되다.

고대 교회 선법의 사용으로 수난곡은 과거와 맺어졌다.

그 결과 우리는 바하가 전세대 작곡가들의 유산을 폭 넓게 집대성한 이 작품 속에서 중세의 음악, 중세의 믿음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의 말에 붙인 음악-이것이 이 작품의 신성불가침의 핵심일텐데 - 의 모습에서 우리는 훨씬 오랜 과거에 뿌리 박은 전통과의 연관을 본다.

<마태 수난곡> 또 그 밖의 수난곡을 그리 많이 접해 보지 않았다고 할 때 예수의 빛나는 모습을 음악으로 나타내지면 베이스보다 테너가 어울린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잘 알려진 대로 바하의 <마태 수난곡>에서는 당대의 다른 수난곡들에서처럼 그 반대로 되어 있다. 예수의 말은 베이스로, 오히려 복음사가의 목소리가 테너로 처리되는 것이다.

어째서일까 ?

수난곡의 일 천년 역사에 그 답이 놓여 있다! 로마 카톨릭에서 수난 주간의 의전을 이루는 4복음서에 붙인 평성가에 의한 라틴어 수난곡들에서, 각 성부의 상대적 음높이는 가사위에 문자로 표시되었다.

(에를랑엔대학 도서관에 소장된 10세기의 성구집에 보듯) 매우 초기에도 예수의 말은 낮은 성부로 되어 있다.

마태와 요한이 증언하는 예수의 수난에 가장 빈번히 음악이 붙여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로마 카톨릭의 수난주간 의전에서 마태의 수난 장은 종려주일에 마가의 것은 화요일에 누가의 것이 수요일에 그리고 요한의 수난장이 성 금요일에 쓰였다.

브루노 슈테블라인에 따르면, 중세 성구집에서는 놀랍게도 마태의 수난장에 연주를 위한 표시들이 가장 널리 나타나고 요한 마가, 누가의 차례로 줄어드는데, 이는 "마태의 수난장이 주일에, 요한의 수난장이 성 금요일에 쓰인 데 반해 마가와 요한의 것은 일하는 평일에 쓰였다는 사실로써 설명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바하가 <마태 수난곡>에 자신의 예술적 역량을 있는 대로 쏟아부은 것도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여러 세기 동안 수난장에 음악을 붙이는 일은 의전 가운데 성서 구절을 제시하기 위한 수단 정도로만 인시되어 왔고, 그런 까닭에 교회 예배에 걸리는 일상 시간을 크게 넘어서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가톨릭에서는 수난주간 동안 기악 연주를 금했으므로 이따금, 아주 이례적으로만, 그것도 주로 이탈리아에서만 단선음악(monody, 주선율에 콘티누오 반주가 붙은 것)이나 콘체르탄테 음악이 수난곡에 쓰일 수 있을 따름이었다.

개신교의 "오라토리오 수난곡"(복음서 텍스트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수난과정에 대한 자유로운 시적 묵상에 터잡은 "수난곡 오라토리오"와 구별)의 발전과정에서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개신교의 수난곡에는 단선음악과 독주악기의 콘체르탄테를 포함한 일체의 음악 양식들이 자유로이 이용될 수 있었다.

바하의 <마태 수난곡>에 나타난 풍부한 음악양식들은 여러 세기에 걸쳐 진화해 온 가능한 음악적 표현수단들의 요약에 가깝다.

바하는 레치타티보 세코와 레치타티보 아콤파냐토를 이같이 썼고 코랄을 집어 넣었으며 기존 코랄들을 다양하게 편곡해서 표현을 풍부하게 하는 수완을 발휘하는 한편 자유로운 코랄 패시지도 만들었다.

바하는 음악적으로 독단주의자가 아니라, 예수를 통해 듣는 이들을 은혜로운 하느님께 더 가까이 이끌고 싶어한 신앙심 깊은 기독교인이었다.

바하가 사용한 약식가운데 하나인 다 카포 아리아는 베네치아 오페라에 기원을 둔 것이 뒤에 독일 칸타타와 오라토리오에 도입된 것으로, 비할데 없이 잘 조화된 기악 반주의 신비적인 다 카포 아리아 "Aus Kiebe will Mein Heiland Sterben"(나의 구주는 죄를 지은 일이 없는데)(소프라노, 플루트, 두 대의 오보에 다 카치아) 와 같은 곡은 낡은 약식에 생기를 불어넣어 전혀 새로운 음향을 만들어낸 보기가 된다.

위대한 음악에서는 언제나 전통과 진보가 신비한 결합을 보이게 마련이다.

바로 이런 뜻에서 바하의 <마태 수난곡>이 완성된 절정이라기 보다 음악 발전 전 과정의 요약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바하 자신속에는 "교회 악장들의 시대"에 중부 독일에서 발휘된 여러 세기 동안의 음악적 장인기질의 절정이라 할 만한 것이 들어 있었다.

음악에 대한 이러한 헌신의 한 가운에 바하 일가가, 누구보다도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가 있는 것이다.

 

멘델스존의 탐구 성과

거의 잊혀지다시피 한 <마태수난곡>의 역사적인 재발견은 주로 젊은 펠릭스 멘델스존, 그리고 강력한 후원자 에뒤이르 드브리앵(뒤에 예수 역을 부른다)에 힘입은 것이다. 여기에 다소 어렵게 마지못해하던 팰터를 설득하여 그의 명성을 빌리는데 성공했다.

히틀러의 제 3제국 시대에는 오히려 팰터의 기여를 과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멘델스존이 유태계라는 사실이 그의 정당한 몫을 빼앗아간 것이다.

멘델스존이 지휘한 역사적 연주가 1829년 3월 11일 베를린에서 있었고, 이의 대성공에 힘입어 열흘 뒤, 바하가 아이제나하에서 태어난 1685년 3월 21일에서 꼭 144주년이 되는 날 재공연이 있었다.

재공연에는 첫 공연을 들은 모든 사람들과 이들의 설명으로 흥미를 느낀 이들을 포함, 베를린의 지식인 계급이 모두 참석했다.

재공연 뒤 팰터의 집에서 저녁 모임이 있었는데, 좌중의 한 중년 남자가 유난히 많은 관심을 나타내는데 의아해진 드리비앵의 아내가 옆의 멘델스존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저.........내 옆에 앉은 이 멍청하게 생긴 남자가 누군가요?"

멘델스존이 속삭이듯 대꾸했다. "부인 옆에 앉은 멍청하게 생긴 남자가 유명한 철학자 헤겔입니다."

후의 블로흐, 브레히트, 아도르노 들과는 달리 정말로 헤겔은 <마태 수난곡>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팰터는 괴테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두 번의 공연에 간해 쓰고 있는데, 첫 편지에서는 헤겔에 대한 언급을 없다. "어제(3월11일) 바하가 참 좋았습니다. 팰리스(멘델스존)는 확신에 찬, 차분한 지휘자였습니다.

국왕 전하는 물론 대신들도 모두 참석했고, 연주장은 만원이었습니다..............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무어라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갖가지 음악이 훌륭하게, 감동적으로 뒤섞여 주제의 의미가 하나의 개념을 이루고, 시인의 시어 자체도 이 개념에 통합되었습니다...........

탁월한 극적 진실이.........." 팰터가 1829년 3월 12일에 괴테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헤겔이 언급되는 것은 그 다음 편지에서이다.

"여기 저기서 요청이 쇄도해 우리는 다시 [3월 21일에] 공연장을 꽉 메운 청중 앞에서 재공연을 가졌습니다. ......

우리 음악가들이 철학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듯, 철학자들도 음악 앞에서는 마찬가지인 것 같더군요......

헤겔이 그 보기죠. 대학에서 음악도 연주하는 모양인데, 이번에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이 음악은 신통치 않아. 음악은 상당히 진보했는데, 움직임이 썩 자연스럽지 않군........"

 

프로그램과 비의(秘義)

헤겔의 시대 이래 우리의 사상이 "상당히 진보" 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 진보는 헤겔이 오만한 신념가는 정반대 의미의 것으로, 우리는 바하의 수난곡을 순수하게, 무조건 칭송하게 되었다.

눈썰미 있는, 때로 심술궃기까지 한 분석가들은 바하의 이 작품에 숨어 있는 의미들을 해독해 냈다.

해독된 의미들은 작품의 정수이면서 동시에 해독에 대한 끝없는 충동을 불러 일으킨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바하 음악에서 소프라노와 알토는 각각 보이 소프라노와 남성 콘트랄토에 의해 불리우며, 테너와 베이스에는 합창에서든 독장에서든 모두 젊은 남자를 썼다.

바하의 관현악 서법도 익히 알려져 있는데 , <마태 수난곡>의 두 개의 합창단을 채용하는 구도로 된 것은 아마도 라이프찌히의 성 로마 교회가 두 개 합창단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빈프리트 슈라메크는 1975년 <바하 연감>에 기고한 글에서 "육필 악보의 음역배치에 관한 상세한 고찰"을 통해 <마태 수난곡>이 1736년 라이프찌히 성 니콜라스 교회에서 연주된 것이 사실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마태 수난곡>에 대한 연구들이 사실의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듣는 이의 감정에, 상상력에 , 감수성에 호소하는 이 음악의 힘은 너무나 대단한 것이어서 어떻게든 이 힘의 신비, 그리고 이렇듯 음악이 가슴을 어루만지는 까닭을 드러내고야 말겠다는 기상천외의, 때로 신비주의적이기까지 한 발상들을 유발했다.

언뜻 눈에 보이는 극음악적 외피(이로 하여 다른 수난곡들과 마찬가지로 <마태 수난곡>은 근대 방송국의 선구자가 된다.) 뒤에 복잡한 상징적 연상들이 숨어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코랄들에서, 도 "떨리는" 심정을 묘사한 부분들에서 볼 수 있는 텍스트의 부분부분들에 대한 극적이고 눈에 보이는 듯한 해석, 그리고 틀림없이 프로그램 음악이라 할수 있는 바하의 서법 - 이 모든 것들을 연주를 통해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예컨대 예수가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자기를 배반할 것임을 예고한 뒤 "her, bin ich's, bin ich's"(주여 그것이 내니이까)라는 가사가 몇 번 나오는지 세어보는 청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

이 물음은 모두 열한 번 나온다.

열하나 - 열 두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예수를 파는 자이며, 나머지 열 한명은 이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세한 프로그램은 시사해주는 바 많으며, 틀림없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마태 수난곡>에는 11이라는 운명의 숫자가 뚜렷한 뜻을 띠고 쓰이는 부분이 몇 군데 더 있다.

예컨대 '해리 한'은 수난과 22라는 숫자 사이의 연관을 조명하면서 이렇게 결론 내라고 있다.

"시편 제 22편은 예수 고난의 시편이다.

빌헬름 베르커의 연구에서 보듯, 그래서 바하도 예수의 노래를 스물 두 번 집어 넣고 있다.

이 정도에까지 이르면 가히 수학의 횡포라고도 할 수 있겠다.

숫자들(특히 3, 7, 그리고 이것들의 배수)에 붙어 있는 종교적 함의 때문에 의미있는 조합의 가능성은 풍부해진다.

위의 한의 결론과 같은 것은 설득력이 거의 없는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요한 수난곡>도 마찬가지이지만) <마태 수난곡>이 모두 6부로 나뉘어 체계적인 연관된 조성과 "부분들 사이의 균형"을 띠도록 고안되어 있다는 점(H.J 모저), 바하가(당시에는 금지되어 있던 ) 연속 5도나 "음악속의 악마"라던 증 4도를 써서 그릇된 것, 악한 것에의 연상을 일깨우려 했다는 점 따위는 반박할 수 없는 것들이다.

바하의 음구조적 사고의 힘, 가장 세세한 구석까지 미치는 바하의 손길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있다.

피칸더의 대본은 그의 문학작품 모음의 일부로 집필되자마자 출간을 보았는데, 우리는 바하가 작곡가의 입장에서뿐 아니라 대본 편집자의 입장에서까지 피칸더의 작품을 대했음을 알 수 있다.

바하는 피칸더의 노랫말에 음악적으로 의미있는 변경을 가해 예컨대 "unseliges Golgatha"는 "unselges Golgatha"(저주받은 골고다)로, "der Seele Ruhstatt sein"은 "Der Seelen Ruhstatt sein"으로 바꾸었다. (뒤의 경우 단수를 복수로 바꾼 것은 바하가 대본작가 자신의 영혼뿐 아니라 "인간 영혼" 모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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