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처럼 일렁이는 사랑의 두근거림- 베토벤 [월광]소나타
베토벤에게 과연 후손이 있었을까?
이러한 의문점은 그의 음악 이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흥미롭게 해주고 있지만, 그의 사후 지금까지 이렇다 할 확실한 결론은 내려지지 못한 채 한 세게 반의 세월이 흘러갔다. 물론 외형적인 여건으로 보면 베토벤은 57년간 독신으로 살다 죽었기 때문에 그에게 자식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베토벤도 한 사람의 남자였는지라 그에게 인간적 욕정이 없을 수 없고 실제로 그의 생애를 통하여 상당수의 여인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베토벤과 연인관계를 맺고 있었다. 다만 결혼이라는 형식과 절차를 밟지 않았을 뿐, 베토벤의 독신생활 57년간에 이름을 남긴 여성들은 한 두 명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베토벤과 사랑을 주고받은 여인들이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연정의 주인공들이다.
베토벤의 후손 이야기는 테레제 폰 브른스비크라는 헝가리 태생의 연인 사이에 거의 확증적인 사실로 남아 있다. 이 여성과의 사이에 태어난 딸이 베토벤의 자식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는 정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끝내 베토벤의 따로 기록되지 못한 것은 그녀 스스로가 모든 사실들을 철저하게 부인하고 일생을 숨어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여자아이가 죽은 뒤로는 현재까지 하나의 미스테리 정도로 그 사실여부가 전해져 올 따름이다. 이것은 베토벤의 중년 나이쯤에 해당하는 때의 이야기이다.
그보다 훨씬 전에, 즉 베토벤이 30세의 청년기를 맞고 있을 때에 쥴리엣타 귀챠르디(Giluietta Guicciardi)라는 16세의 소녀와 격렬한 사랑을 나눈 적이 있다. 이때의 베토벤은 이미 빈 음악계에서 당당한 존재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으며, 특히 피아노 연주에 있어서는 베토벤을 능가할 자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귓병이 도져 청각장애가 점점 심해지고 있을 때여서 내적으로 심각한 갈등을 겪어야만 했었다. 귓병을 비관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빈 교외의 하일리겐슈타트 숲 속에서 저 유명한 [유서]를 썼던 것도 이 무렵이다. 그러나 베토벤은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곧이어 음악사상 최대의 걸작이라 일컫는 [운명]교향곡과 [전원]교향곡을 작곡해 냄으로써 불굴의 인간의지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이처럼 베토벤이 30세 청년기를 맞아 창작의 절정기를 향해 뜨거운 자의지(自意志)를 불태우고 있을 무렵,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트에서 태어난 귀족 귀챠르디 백작이 빈으로 이사를 왔다. 귀챠르디 백작은 엄청난 거부인데다 훌륭한 가문의 혈통을 이어받고 태어난 음악애호가로서, 그의 슬하에는 여러 명의 아름다운 딸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예쁜 딸이 쥴리에타 귀챠르디였는데, 이 아름답고 교양 있는 소녀가 아버지를 따라 빈으로 이사왔을 때 그녀는 16세의 갓 피어난 청초함을 지니고 있었다.
귀챠르디 백작은 빈에 정착한 즉시 쥴리에타의 음악교육을 위해 피아노 선생을 물색한 끝에, 당신 빈 음악계에 명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베토벤을 스승으로 삼고 피아노 수업을 받게 했다. 이렇게 해서 30세의 베토벤과 16세 쥴리에타 귀챠르디와의 운명적인, 너무나 운명적인 첫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쥴리에타는 용모가 빼어나게 아름답고 갈색 머리에 갈색 눈을 가진 천사 같은 소녀였다. 그런데 이때의 쥴리에타는 16세란 아직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귀챠르디 백작의 요청에 따라 갈렌베르크라는 귀족 청년과 약혼을 한 뒤였다. 불같은 의지 이외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30세 노총각 베토벤과 이에 약혼자를 가진 16세의 아름다운 소녀 쥴리에타와의 만남. 그것은 어느 모로 보나 도저히 결합할 수 없는 사이였다. 그래서 이들의 만남은 애초부터 불행을 안고 시작된 숙명적인 만남일 수밖엔 없었던 것이다.
베토벤과 쥴리에타는 처음 얼마동안 피아노 선생과 제자라는 한계점을 넘어서지 않고 그야말로 순수한 사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6개월이 넘어서면서부터 베토벤은 쥴리에타를 사랑하게 되었고, 쥴리에타 역시 스승 이상의 존경과 사모하는 마음으로 베토벤을 대하게 되었다. 베토벤은 마침내 쥴리에타를 정식으로 구혼하기에 이르렀으며, 그녀도 모든 것을 뿌리치고 베토벤의 아내가 되려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그러나 쥴리에타의 아버지 귀챠르디 백작은 이들의 결합을 절대 반대하고 나섰으며, 서둘러 갈렌베르크와 결혼식을 올려버렸다. 반강제적인 결혼이었지만 쥴리에타는 이 결혼에 항거하고 나설 힘이 없었다. 1803년 봄의 일이었다. 갈렌베르크와의 결혼은 허울뿐이었다. 그들은 가정의 불화가 그치지 않은 상태에서 못다 태운 열정을 불태우며 참으로 미묘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격정의 심리상태 속에서 태어난 작품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14번 [월광]이다. 흔히 [월광곡]으로 알려진 이 피아노 작품은 쥴리에타와의 격렬한 사랑이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곡이다.
베토벤은 평생을 통해 피아노 소나타의 창작을 계속하여 32곡에 달하는 걸작을 남겨 놓았다. [월광소나타]는 초기에 속하는 걸작으로 베토벤의 모든 피아노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베토벤 스스로도 이 곡에다가 [환상적인 소나타]라고 이름을 붙여 놓았지만, 뒷날 렐슈타브라는 시인에 의하여 [월광]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뒤로는 오늘날까지도 그렇게 불려져 오고 있다.
이 소나타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제1악장 아다지오이다. 그리고 베토벤의 쥴리에타에게로 향하는 사랑의 연정이 절실하게 토로된 것도 제1악장이며 이 곡이 [월광]이란 부제를 얻게 된 것도 제1악장 때문이다. 따라서 제1악장이야말로 [월광]소나타의 핵심이자 본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는 자기를 떠나버릴 것 같은 쥴리에타에 대한 베토벤의 사랑과 그리움이 끝없는 불안감으로 나타나 마치 호수 위에 비치는 달빛처럼 잔잔하게 일렁거리고 있다. 왼손의 반주에 의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이 세잇단음표의 흔들거림을 듣고 있노라면, 30세 노총각 베토벤의 연정이 잔물결처럼 밀려들어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사랑했으면서도 끝내 어떤 여성과도 부부의 인연을 맺어보지 못했던 인간 베토벤의 마음이 이처럼 고독하게 나타난 음악도 없으며, 그래서 [월광]소나타는 더더욱 베토벤의 내심을 들여다보는 음악으로 존재한다.
베토벤은 쥴리에타 귀챠르디과 생애 처음으로 불타는 사랑을 맛보았고, 처음으로 결혼할 생각까지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숙명과 인연은 그들을 비켜갔고 결과적으로 베토벤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갈 수밖에 없었다. 그 벅찬 사랑의 결실로 남은 것은 [월광]소나타 밖에 없으며, 그래서 이 청명한 피아노 음악을 들을 때마다 청년 베토벤의 고뇌에 찬 모습과 쥴리에타 귀챠르디의 꽃다운 모습이 겹쳐져서 떠오른다. 인간은 가고 사랑은 가도 음악은 영원히 남아 오늘의 우리를 감동케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