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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코니 프란시스 추억의 노래 16곡 - Connie Francis (2007 어리버리 돈키호테)

리차드 강 2017. 10. 23. 19:07

Connie Francis Memory's

 

01. Tammy
02. Where The Boys Are
03. Wishing It Was You
04. Vacation
05. My Happiness

06. Beautiful Brown Eyes
07. Zingara
08. The Wedding Cake
09. Send Me The Pillow That You Dream on
10. My Heart Has A Mind Of Its Own

11. Exodus/Havah Negilah
12. Don't Break The Heart That Loves You
13. Among My Souvenirs
14. Are You Lonesome Tonight
15. Lipstick on Your Collar
16. Never on Sunday

 
 
 
 
 


Gypsy
 
with Hank Williams
 

Dance Everyone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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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 전곡 연주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까지 많은 힛트곡들을 발표하고 영화에도 출연했던 Connie Francis는 생기발랄한 미성에 가창력까지를 겸비한 명가수였으나 70년대 중반에 성폭행을 당하고, 성대 수술후에는 옛날의 목소리를 완전히 잃어버린 비운의 여가수이기도 하다.

1938년생인 그녀의 본명은 Concetta Rosa Maria Franconero로 끝의 이름만 보면 마치 서부영화의 주인공이었던 프랑코네로를 연상시키는 이태리 혈통의 가수이다. 그녀는 10대시절부터 여러 음악경연대회에 나가서 입상을 했고 그녀를 눈여겨본 MGM레코드사는 1955년에 그녀와 레코딩 계약을 맺어 몇 곡을 레코딩했지만 주목받지는 못하다가 1957년 말에 "Who's sorry now"를 취입한 것이 Big Hit를 치며 차트4위까지 오르면서 그녀의 히트행진은 1965년까지 계속되면서 팝송뿐 아니라 유태어나 라틴 넘버로도 많은 힛트곡을 발표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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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ie Francis

1960년대에 팝, 발라드, 칸초네(canzone)등 다양한 갈래의 음악을 섭렵하며 수많은 히트 곡을 탄생시켰던 미국 가수 '코니 프랜시스'는 뉴저지(New Jersey)주 뉴어크(Newark)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다섯살의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 자신이 가지고 있던 끼를 마음껏 발휘하였으며 11살 때에는 텔레비전의 어린이 노래 자랑 대회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뉴어크 예술 고등학교(Newark Arts High School)에 입학한 코니 프랜시스는 집이 벨빌(Belleville)로 이사함에 따라 벨빌 고등학교(Belleville High School)로 전학하여 1955년에 졸업하게 된다.고교 시절에 코니 프랜시스는 노래 잘하는 소녀로 주위에 알려져 있었으며 가끔 나이를 속이고 클럽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해에 'MGM'과 음반 계약을 맺고 싱글 음반 'Freddy'를 발표하면서 정식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장학금을 받으며 뉴욕 대학교(New York University)에 진학해서도 싱글 음반 발매를 통해 학업과 가수 활동을 병행하던 코니 프랜시스는 1958년에 발표한 싱글 'Who's Sorry Now'가 빌보드 싱글 차트 4위에 오르며 히트를 하게 되자 자신감을 얻고 가수 활동에 전념하게 된다.첫번째 히트 싱글 'Who's Sorry Now' 이후 'Stupid Cupid(1958년 15위)', 'My Happiness(1958년 2위)', 'Lipstick on Your Collar(1959년 5위)',  'Among My Souvenirs(1959년 7위)', 'Mama(1960년 8위)'등의 싱글들을 발표하여 히트 시킨 코니 프랜시스는 1960년에 발표한 두 싱글 'Everybody's Somebody's Fool'과 'My Heart Has a Mind of Its Own'을 연속해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려 놓으며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된다.

1961년에는 'Where the Boys Are(4위)', 'Breakin' in a Brand New Broken Heart(7위)', 'Together(6위)', 'When the Boy in Your Arms(Is the Boy in Your Heart)(10위)'등의 히트 곡을 발표하였으며 1962년 1월에 발표한 싱글 'Don't Break the Heart That Loves You'로 또 다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밟게 된다. 코니 프랜시스는 'Second Hand Love(7위)'와 1962년 6월에 발표했던 싱글 'Vacation(9위)'로 인기를 이어갔지만 'Vacation' 이후에 발표한 곡들은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권에 진입시키지 못하였다. 더구나 영국의 록 밴드 '비틀즈(The Beatles)'가 1963년에 음반 'Please Please Me'로 팝계에 등장하게 되자 팝계의 판도가 바뀌게 되면서 이전의 명성을 되찾는데 실패하고 만다.

탁월한 가창력과 아름다운 목소리로 다양한 갈래의 음악을 시도했던 60년대가 Connie Francis의 생애 최고의 시절이였다면, 70년대는 그녀에게 불운의 연속이었다. 아버지는 암으로, 동생은 총격사고로 사망하게 되며, 1974년에 불행한 사고를 겪기도 하였다. 그 사건은 1974년 11월 8일에 벌어졌던 일로써 투숙했던 모텔에서 외부 침입자로 부터 강간을 당하는 사고였다. 이 사고로 코니 프랜시스는 모텔 측에 보안상의 문제를 제기하여 3백만달러의 배상금을 지급받기도 하였고, 77년에는 축농증 수술한 것이 잘못되어 4번이나 재수술을 받아야 했으며 그 결과 그녀 특유의 목소리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때의 충격으로 1981년 까지 7년 동안 무대에 서지 못하였다.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