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구성
제 5모음곡 다단조 BWV1011
이 모음곡에는 제1현을 A음에 조현한 것과 G에 조현한 것의 두 가지 원고가 있다. 거기에 따라서 일부 의 음이나 운지법에 차이가 나타나지만 작품의 본질에 관한 문제는 아니다. 제 1곡의 전주곡은 느긋하고 무게 있는 기분의 4분의 4박자의 서주와 8분의 3박자의 활발한 부분으로 구성된 이른바 프랑스풍 서곡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어지는 춤곡 부분은 제5곡이 가보트(제1, 제2, 제1로 연주된다)인 것 외에는 다른 다섯 곡과 같은 배열이다.
1. 프렐류드 - 4/4 박자, G장조, 모데라토
그 멜로디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연속된 16음표들로 시작되며, 자유롭고 즉흥적이며 전체 조곡의 성격을 제시한다. 이미 르네상스 시대부터 있었던 양식으로 주로 건반악기나 플류트를 위한 곡들이 많다. 16세기에는 <프렐류드와 푸가>처럼 다른 곡과 함께 연결되어 쓰이기도 했다. 춤곡들이 정형화 된 반면, 프렐류드는 자유스럽고 즉흥적이며 토카타풍, 카덴차풍의 요소도 가미되어 전체 모음곡의 성격 을 제시하고 있다. 그럼 파블로 카잘스가 파악한 전6곡의 전주곡의 특성을 보면 제1번은 낙관적(Optimis tic), 제2번은 비극적(Tragic), 제3번은 영웅적(Heroic), 제4번은 장중함(Grandiose), 제5번은 격정적( Tempestuos), 제6번은 목가적(Bucolic)이라 했는데 이러한 전주곡의 성격이 각 모음곡의 전체 분위기와 성격을 나타내고 이끌어가고 있다고 하겠다.
2. 알르망드 - 2/4 박자, G장조, 모데라토
독일풍의 춤곡으로 보통 빠르기의 속도를 가졌다. 비교적 힘차고 빠르다. 15 세기 초, 독일 쪽에서 발생한 춤곡으로 그 역사가 길다. 대개 4/4, 또는 2/4박자이고 속도는 일반적으로 적당한 빠르기인 알레그로와 모데라토 사이다. 대략 1620년 경부터 모음곡의 제일 앞에 놓이게 되었고, 점차 춤곡으로서의 특성이 희미해졌다.
3. 쿠랑트 - 2/4 박자, G장조, 알레그로 마에스토소(장엄하게)
프랑스의 옛 춤곡 형식이다. 힘차고 생동감 있는 주제를 바탕으로 전개되며, 전 후반이 같은 리듬 패턴을 취하고 있다. '달리는', '빠른'이라는 뜻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두 가지 스타일이 있는데, 이탈리아 식은 코렌테(Corrente)라고 부르며 이미 16세기 프리츠 윌리엄(Fritz William)의 버지널 북(virginal book; 건반악기집)에도 실려 있다. 3박자의 빠른 패시지가 특징이다. 프랑스식 쿠랑트 프랑스의 옛 춤곡 형식이다. 힘차고 생동감 있는 주제를 바탕으로 전개되며, 전후반이 같은 리듬 패턴을 취하고 있다. 약간 느리며 3/2, 6/4박자로 폴리포니한 경향이 있다.
4. 사라반드 - 3/4 박자, G장조, 라르고
옛 스페인의 춤곡으로 매우 느리고 장중하며 품위가 있는 곡이다. 가 장 장중하고 위엄 있는 곡이며 느린 3박자로 대개 둘째 박자에 무게가 실린다. 원래 안달루시아 지방의 민속무곡인 이 춤곡은 1650년경 까지만 해도 매우 속되고 외설스러운 빠른 춤곡으로서 한때 금지 당했던 시기도 있었다. 17세기 경부터 다소 느려지면서 품위 있는 춤이 되었다.
5. 가보트(Gavotte)
프랑스 지방의 산사람들을 지칭하는 가보츠(Gavots)에서 변형된 말이다. 대개 2/2박자 인데, 17세기 초 궁중무로 수용되었고, 룰리(Lully)에 의해 베르사이유궁 발레의 핵심 부분으로 받아들여졌다. 통사 가보트 1,2 즉 전,후반으로 짝을 짓는 데 후반부에는 가끔 뮈제트(Musette; 같은 음의 저음이 계속 울리는 것)가 나타난다.
미뉴에트 I - 3/4 박자, G장조, 미뉴에트 II - 3/4 박자, G단조
지방에서 시작된 춤곡이나 궁중의 춤곡 형식으로 바뀌었으며 우아하고 매끄럽다. 장조에서 단조를 거쳐 다시 장조로 돌아오는 3부 형식이다. 프랑스어로 '작은 스텝'이라는 말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으며 바흐 시대에는 우아하고 매끄러우며 빠른 3박자의 춤곡이었다. 원래 프와튀(Poitu)지방의 민속무였으나 루이 14세 때 궁중무로 다듬어졌고, 19세기에 들어와서 그 속도가 다소 느려졌다.
부레(Bourree)
원래 오베르뉴(Auvergne)지방에서 발생한 춤곡이었다. 17세기 후반에 도시로, 그리고 궁중으로 들어 오면서 빠르긴 하지만 안정되고 경쾌한 춤곡으로 정착되었다.
6. 지그 - 6/8 박자, G장조, 알레그로
영국에서 시작된 춤곡 형식이다. 빠르고 경쾌한 곡이다. 16세기 경부터 영국에서 유행했던 빠른 춤곡이다. 아일랜드에서 영국을 거쳐, 1635년 당시 영국 궁정의 류트 연주자였던 프랑스인 고티에(Gautier)에 의해 프랑스로 전파되었다. 프랑스에서는 부점 리듬, 넓은 음정 도약, 푸가적인 요소를 띠면서 발전하였고, 이탈리아에서는 빠른 경과구, 화성적인 구조를 바탕으로 발전하였다.
이상과 같이 모음곡은 서로 다른 성격의 다섯 가지 춤곡을 동일한 조성으로 묶은 것으로, 우리나라 기악 독주곡인 산조와도 진양조, 중모리, 자진모리 등의 기본 장단에 중중모리 또는 휘몰이 등이 첨삭되는 점에서 흡사하다. 모음곡은 프렐류드와 알르망드를 교향곡의 제1악장에, 사라반드를 제2악장, 미뉴에트, 가보트 등은 스케르쵸 악장, 그리고 지그를 피날레 악장에 각각 대입해 볼 수도 있겠다.
이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프랑스, 이탈리아 음악의 새로운 양식과 여러 민속 음악적 요소들이 음악사상 가장 위대한 "종합예술가" 바흐를 통해서 독일의 음악적 전통과 어우러지고, 여기에 종교적 경건함마저 스며들어, 음악사에 길이 남아 "성전(聖典)"으로 일컬어질 수 있는 최고의 내용과 절대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다.
추천음반
이 곡에 대해 잘 알려진 명반으로는 카잘스, 푸르니에, 장드롱, 슈타커, 빌스마, 마이스키, 요요 마, 비스펠베이, 로스트로포비치 등 많이 있지만 그 중 개성이 뚜렷하면서도 이 곡을 처음 접하는 분들께 적당한 몇가지 음반에 대해서 살펴 보도록 하겠다.
먼저 추천음반으로는 모리스 장드롱의 음반(PHILIPS, 1964년 녹음)을 꼽았다. 그는 비교적 빠른 템포로 연주하며 일말의 불안함도 없이 기교적으로도 완벽하다. 당당하면서도 유려하게 연주하고 있어 곡 자체의 아름다움을 남김없이 이끌어 내고 있다. 스승인 카잘스처럼 스케일이 크며 당당하지만, 그 어떤 과장이나 군더더기없이 일관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고음의 유려함과 저음의 탄탄한 울림소리가 이 곡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빛나게 해 준다. 구조적으로도 탄탄하고 힘차고 아름다워서 비록 카잘스와 우위를 따질 수는 없지만 감히 청출어람이라는 한자성어를 쓰게끔 만든다. 음질도 상당히 좋다.
MPEG으로 준비된 파블로 카잘스 (EMI, 1936, 38, 39년 녹음)의 음반을 지나칠 수 없다. 첫 음절을 들어 보는 순간 카잘스라고 알아 차릴 정도로 다른 연주자들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그 강렬함과 율동적임은 카잘스만의 것이다. '질서 안에서의 자유'라는 카잘스 그의 삶과 음악에서의 철학이 그대로 투영되어 형식에 충실하기 보다는 내면 깊이 파고 드는 연주를 하고 있다. 그야말로 질서 속에서 최대한의 자유와 성찰을 표현하고 있는 전설적인 명연주다. 이 앨범은 "무반주 첼로 조곡"의 세계 최초의 전곡 녹음이며 이때 카잘스의 나이는 60세였다. 지휘자와 비교한다면 푸르트벵글러를 연상시킬 정도며, 모노 녹음이지만 그 스케일과 깊이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특히 미뉴에트에서는 슬픔마저 느껴진다. 생전에 카잘스는 매일 전체 조곡중 하나를 연주했을 정도로 이 곡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외 중요 음반들을 짧막하나마 소개해드리면
피에르 푸르니에 (ARCHIV, 1960년 녹음):
푸르니에 답게 우아하고 부드러운 연주를 하고 있다. 느린 템포에 그러면서도 연약함이 아닌 어느 정도는 당당함마저 느껴진다. 프렐류드부터 특유의 섬세함과 기품이 드러나는데, 푸르니에의 이러한 연주는 사라반드에서 곡의 성격과 맞물려 그 절정을 이룬다. 특히 여기서 상당히 여성적인 섬세함과 부드러운 감수성을 보여 준다.
안너 빌스마 (SONY,1992년 녹음):
바로크 첼로의 명수인 빌스마가 미국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국립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1701년에 제작된 Servais Stradivarius cello로 연주해 그의 자신감과 의지를 보여 주는 음반이다. 현대 첼로에 비해 음역과 음량이 부족하고 음색도 부드럽지 못하지만, 유명한 명악기인 이 첼로는 음색이 조금 어두우면서도 맑고 소박하여 고아한 기품이 느껴진다. 바흐 당시의 악기로 바흐의 곡을 듣는 것 자체로도 우리에게 큰 의미와 즐거움을 준다. 한편 빌스마는 조금 느린 템포에 여유로우며 감정에 치우침이 없이 치밀한 연주를 들려 준다. 프레이징은 조급하지 않고 항상 여유롭고 길다. 마지막 여운이 긴 것은 아무래도 이 고악기의 특성이 아닐까 한다. 상당히 사색적이어서 듣는 이에 따라서는 조금 지루함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마지막 지그에서는 그게 웬 말이냐는 듯 상당한 빠르기로 연주해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요요 마 (SONY, 1982년 녹음):
비교적 빠른 템포에 세련되고 편안한 연주를 들려 준다. 너무나 유려하고 아름다워서 이 곡이 연주하기 어려운 난곡이라는 것을 잊어 버리게 한다. 음색과 연주가 젊음과 기쁨에 넘쳐 젊은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각광을 받는 연주지만, 바흐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되는 음반이다. 하지만 요요 마 나름대로의 이 곡에 대한 견해와 주장이 담긴 이 연주는, 그 기교의 완벽함과 더불어 새로운 바흐 상을 제시한 뛰어난 연주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 윤재철 : 1999/05/03
Pierre Fournier 1906.6.24~1986.1
"음악을 그 위대함 속에서 사랑하는 것. 그것은 위대함을 피나는 노력으로 쟁취하는 것이다. 낙담해 있을 때는 이를 악물고 참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도전해 주는 것이다. 음악의 매력에 이끌리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절대로 끊을 수 없는 강한 유대를 만들고 국경이 없는 왕국을 만들기 위해 음악에 대한 사랑을 확대해 가는 것이다.”
‘음악교’의 교주 같은 설교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말을 남긴 푸르니에의 음악인생은 이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그는 9세라는 어린 나이에 소아마비에 걸렸고, 이후 장애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는 크게 상심했으나 주변의 많은 도움과 자신의 노력, 그리고 음악의 힘으로 세계적인 첼리스트가 되었다. 그의 음악은 따뜻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뇌하는 면이 결여된 것은 아니다. 그가 프랑스인이란 것도 여기에 한몫을 하고 있다.
파리에서 태어난 푸르니에는 처음에는 피아노를 하려 했다. 하지만 소아마비로 오른쪽 다리 전체가 부자연스럽게 되었다. 그 때문에 항상 앉아서 연주할 수 있는 첼로를 택했으나 불편한 다리로는 보통사람보다 몇 백배나 더 힘들었다. 다만 그의 성품과 악기의 성격은 잘 맞았다. 12세에 어렵게 파리 음악원에 입학한 그는 26세이던 1932년, 늦은 나이에 음악원을 수석 졸업했다. 이후 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불구하고 국외 연주여행길에 자주 올랐다. 프랑스 정부는 그 공로로 그에게 레종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1937년, 코르토, 티보, 카잘스가 창립한 에콜 노르말 음악원에서 첼로와 실내악 교편을 잡았고, 41년에는 파리 음악원 교수가 되었다. 전쟁통임에도 그의 연주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가 음악으로 전파하는 사랑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은 너무도 많았다. 그는 교육활동을 잠시 멈추고 연주에 전념했다.
전쟁이 끝나고 슈나벨, 켐프, 박하우스, 루빈슈타인, 굴다 등과 함께 연주하며 ‘평화와 사랑’을 전파했다. 56년 제네바에 정착한 후 피아니스트인 아들 장 피에르 푸르니에의 도움으로 마스터 클래스도 열었다. 아들은 훌륭한 실내악 파트너이기도 했다. 그의 동생인 장 푸르니에도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이름을 날렸다.
푸르니에는 ‘첼로의 왕자’로 불릴 정도로 귀족적이고 우아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거기에 소탈함과 단정한 양식감, 균형감 등의 고전적 정신이 보태져 정갈한 음악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음색도 아름답고 따뜻함이 넘쳐났다. 이런 모든 바탕 위에 인간애가 더해져 격조 높은 기품이 느껴지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첼로의 황태자 피에르 푸르니에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옛날 59년 스테레오 녹음이 DG Originals 시리즈로 재발매 된 것이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은 카잘스가 그 악보를 발견, 녹음한 이후 모든 첼리스트들이 한번은 거쳐갈 수밖에 없는 유명한 곡이 되어 버렸지만, 그 어느 첼리스트도 그 곡에 쉽사리 접근했다가는 끝없는 좌절감만 맛보고 돌아올 수 없는, 그런 곡이다. 이는 마치 피아노 레퍼토리에서 바흐의 평균율 곡집과 맞먹는 난해함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복잡해 보이지 않는 악보지만, 그 속에 녹아있는 깊은 정신성과 음악적인 아름다움은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곡 전체에서 느껴지는 경직되지 않고 자유스러운 운궁 또한 듣는 이의 마음을 여유 있게 만들어 주며, 쉬어가야 할 곳과 앞으로 나가야 할 곳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첼로라는 악기로 눈에 보일 만큼 명징하게 드러내는 그의 사려 깊음에 놀라게 될 수 밖에 없다.
많은 음반들이 존재하지만, 푸르니에의 음반은 굉장히 독특한 위치에 올라와 있다고 할 수 있다. 근엄하고 진중한 카잘스의 연주와 비교하면 굉장히 유연하지만, 그 낭만적인 마이스키의 음반이나 날아갈 듯 가벼운 요요마의 음반과 비교하자면 엄격한, 굉장히 중도적이면서도 개성적인 음반이라고 말할 수 있다. 평소 그의 성품과 닮아있는 그의 첼로소리는 온화하고 품위 있지만, 결코 그의 연주를 입 속에서 스르르 녹아나는 마쉬멜로우에 비유하는 것은 무리이다. 소리는 온화하고 품위있되, 그의 연주는 굉장히 철두철미 하며 의외로 굉장히 강인하다. 또 한편으로는 다이나믹의 낙차는 크지 않지만, 마지막 한음까지 깔끔하고 신중하게 처리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푸르니에 자신이 이 곡을 얼마나 사랑하고 높이 평가했는지를 알 수 있다.
아름다운 이웃은 참마음 참이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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