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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곡 해설 ] 01. 카치니-바빌로프ㅣ아베 마리아 Caccini - Vladimir Vavillov : Ave Maria, Irina Arhipova (mezzo sop), Timofei Dokshitser (trumpet), Oleg Yanchenko (organ), USSR 방송합창단 가을의 서정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작품으로 대단한 인기를 얻었던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 는 '블라디미르 바빌로프' 의 작품이라는 것이 정설로 굳어져가고 있다. 구 소련의 기타리스트이자 류트 연주자였던 블라디미르 바빌로프는 자신의 작품을 타인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것을 즐긴 작곡가였다. 10년 전 '사계' 시리즈의 첫 음반으로 '가을' 이 발매되었을 때에는 이네사 갈란테의 목소리로 주목을 받았지만 메조 소프라노 Irina Arkhipova의 깊은 목소리로 듣는 '아베마리아'의 울림은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한다. 성당에서 녹음된 웅장한 분위기가 '아베마리아' 를 둘러싼 아우라처럼 느껴지는 이 곡에는 독보적인 트럼펫 연주자 티모페이 독시췌르와 오르가니스트 올레그 얀첸코도 참여했다. 신께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높은 곳에 지었다는 중세의 수도원을 연상시키는 '아베 마리아', 음악 속에 지은 고결하고 높은 성채를 만나는 듯하다. 02. 모차르트ㅣ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 K.467 - 2악장 안단테 Mozart : Piano concerto no.21 in C major K.467- II. Andante, Tamas Vasary (piano), Budapest Symphony Orchestra 햇살이 눈부신 어느 날, 두 그루 나무 사이에 줄이 매어졌다. 줄 위로 사뿐히 올라선 엘비라 마디간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위태로운 줄 위의 걸음처럼 서커스단을 뛰쳐나온 엘비라 마디간과 군대에서 탈영한 식스틴 중위의 사랑은 위태롭게 펼쳐진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을 지켜보고 있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을 듣는 동안은 슬픔마저도 아름답다. 위태로움마저 사랑의 필수요건으로 느껴진다. 눈부신 햇살이 엘비라의 풍성한 스커트 자락에 와서 부서지던 장면. 위태로움을 넘어 사랑의 망명지를 찾는 두 연인이 비극적인 종말을 맞으리라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게 하는 모차르트의 선율은 발표할 당시에도 엄청난 환호를 받았던 작품이었다. 시대마다 음악적 트렌드가 달라진다 하더라도 '불멸의 아름다움' 은 결코 그 빛이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영화의 고전으로 불리는 '엘비라 마디간' 도 그런 의미에서 모차르트의 이 작품을 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03. 존 필드ㅣ녹턴 5번 John Field : Nocturne No.5, Benjamin Frith (piano) '하나, 둘, 셋, 넷... 밤은 많기도 하다' 윤동주 시인의 이 짧은 시를 떠올려 본다. 존 필드는 윤동주 시인처럼 '밤은 많기도 하다' 는 것을 음악, 그 중에서도 '녹턴' 을 통해 보여준다. '밤의 음악' 인 '녹턴' 의 역사는 1814년 존 필드가 18곡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존 필드의 '녹턴'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5번은 간결한 선율과 처마에서 떨어지는 맑은 낙수 같은 선율이 고단했던 많은 것을 내려놓게 한다. 삶의 군더더기들을 다 발라내고 밤의 뼈를 어루만지는 느낌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곡을 들으며 위로 받고, 불면의 밤을 견뎌낼 힘을 얻었으리라. 존 필드가 개척하고 쇼팽이 완성시킨 '녹턴' 은 밤이 계속되는 한 영원히 사랑 받을 것이다. 04. 베토벤ㅣ아델라이데 Beethoven : Adelaide Op.46, Fritz Wunderlich (tenor), Hubert Giesen (piano) 부릅뜬 눈, 고집스럽게 다문 입술, 한 번도 맑고 유쾌하게 웃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완고한 얼굴. 하지만 베토벤은 늘 사랑을 갈구한 사람이었고, 연인을 향해 열정적인 사랑의 편지를 쓰기도 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불멸의 연인' 을 그리워하던 예술가. 베토벤은 가장 위대한 음악의 영웅이지만, 어쩌면 그보다는 사랑하고 사랑 받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1795년, 베토벤이 25살에 작곡한 '아델라이데' 는 '불멸의 사랑노래' 다. 프리드리히 마티손의 시에 베토벤은 아마도 많은 위로를 받았으리라. '아델라이데' 를 완성한 뒤 베토벤은 시인에게 이 곡을 바쳤다. 겸손한 편지와 더불어... '나의 무덤에, 내 심장이 타버린 재에서 기적처럼 꽃 한 송이가 피어날 것이다. 그 보라색 잎들 위에서 그대의 이름이 빛날 것이다. 아델라이데! " 시의 마지막 부분은 '불멸' 을 꿈꾼 베토벤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 같다. '아델라이데' 는 프리츠 분덜리히의 목소리로 들을 때 가장 아름답다. 그 목소리의 떨림, 그 목소리의 색채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벨벳처럼 부드럽고 바람 앞의 촛불처럼 섬세한 떨림이 '아델라이데' 를 '불멸의 노래' 로 완성시킨다. 첫 오디션을 보러 갈 때 기차를 놓쳐 우유를 배달하는 마차를 타고 갔다는 이 불운한 성악가는 36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베토벤의 고통, 베토벤의 불멸을 그가 너무나 잘 표현한 이유도 운명의 거센 도전을 이겨나간 두 예술가 사이의 공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05. 쇼스타코비치ㅣ로망스 Shostakovich : Romance, Berlin Radio Symphony Orchestra, Leonid Grin (cond) 쇼스타코비치에게는 두 얼굴이 있다. 엄숙하고 비장한 음악과 가볍고도 아름다운 선율을 드러낸 음악을 동시에 구현한 음악가라고 할 수 있다. 몸은 소련에 있으나 마음은 서구를 향해 있었던 그의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현실을 음악에 투사해서 역설적인 성과를 얻어낸 작곡가, 가장 아름답고 로맨틱한 것 속에 선동적인 느낌을 담고, 가장 쓸쓸하고 슬픈 선율 속에 냉소를 담고, 절절하게 아름다운 선율과 인기 속에 저항정신을 담아 놓는 작곡가이기도 하다. 쇼스타코비치의 '로망스' 는 원래 영화 음악으로 작곡되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를 받던 시절의 이탈리아 혁명가를 그린 이 영화는 소련에 남아 음악적 투쟁을 하던 쇼스타코비치의 모습이 투영된 자화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는 잊혀졌으나 쇼스타코비치의 '로망스' 는 잊혀지지 않았다. 클래식 음악방송에서도 애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곡이다. 06. 타레가ㅣ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Tarrega : Recuerdos de la Alhambra, Norbert Kraft (guitar) 알함브라 궁전 나스리 궁의 현판에는 이렇게 써있다. '적게, 간단하게 말하라. 평화로울 것이다. '알함브라 궁전에서는 말을 아껴도 좋다. 우리의 모든 마음을 대신하는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이 있으므로... 압도적인 경관, 구석구석마다 배어있는 이야기가 마음을 떨리게 한다. 기타리스트의 트레몰로처럼. 정복과 추방의 역사를 품고 시에라네바다 산맥 아래에서 침묵하고 있는 알함브라 궁전. 달빛을 받아 빛날 때 가장 아름답다는 알함브라를 떠올려 보면 '아름다움' 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눈으로 볼 수 없으나 이토록 아름다운 선율로 알함브라 궁을 그려놓은 타레가처럼... 07. 스벤젠ㅣ로망스 Op.26 Svendsen : Romance Op.26, Dong Suk Kang (Violin), Czecho slovak Radio Symphony Orchestra, Adrian Leaper (cond) Johann Severin Svendsen은 1840년 노르웨이에서 태어나서 라이프치히에서 공부한 음악가다. 그리그와 비슷한 행보를 보였지만 스벤젠은 유럽과 미국, 그리고 코펜하겐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활약했다. 작곡가로서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스칸디나비아의 정서를 담은 뛰어난 바이올린 작품을 남겼다. 스벤젠이 1881년에 작곡한 '로망스' 는 낭만주의 음악과 북유럽의 민속음악이 절묘한 하모니를 이룬 걸작이다. 바이올린의 심오하고도 유려한 선율이 북유럽의 길고 쓸쓸한 추위를 연상시킨다. 로맨틱한 선율이라기보다는 외투자락으로 스며들었다가 사라지는 바람처럼 쓸쓸하고도 눈물겨운 느낌이다. 08. 포레ㅣ로망스 Op.17-3 Faure: Romance Op.17-3, Jean Martin (piano) 포레의 음악은 우아하다. 간결하고 투명하면서도 기품 있는 성찰을 보여준다. '로망스' Op.17-3 은 가을 아침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시리고도 투명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곡이다. 시를 쓰듯 음악을 섬세하게 다룬 포레의 능력이 잘 발휘된 곡이기도 하다. 원래 피아노 곡으로 작곡된 '로망스' 는 포레가 발표한 몇 곡의 '무언가' 중의 하나다. '무언가' 는 멘델스존으로부터 시작된 낭만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음악만이 시의 내용과 느낌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낭만주의자들의 정신을 가브리엘 포레는 성실하게 계승하고 있다. 포레의 음악은 기품 있는 한 편의 시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결정체가 바로 1894년에 작곡된 이 '로망스' 다. 09. 브루흐ㅣ콜 니드라이 Bruch : Kol Nidrei Maria Kliegel (cello), National Symphony Orchestra of Irland, Gerhard Markson (cond) Kol Nidrei 는 히브리로 '모든 서약들' 이라는 뜻이며 대속죄일 전야에 부르는 기도문이라고 한다. 흔히 '신의 날' 이라고 소개되었던 Kol Nidrei 는 신앙심 깊었던 막스 브루흐가 음악으로 남긴 반성문, 성찰의 기도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브루흐는 음악 박사학위와 신학, 철학 박사학위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작곡가이자 신앙인이었다. 깊은 성찰을 통해서 옛 히브리의 성가를 끌어올린 브루흐의 능력이 최고조로 발휘된 작품이기도 하다. 비통하고도 장엄한 선율이 첼로에 실려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다. 첼로의 현이 마치 우리들의 갈비뼈를 긋는 것 같은 애절한 선율이며, 첼리스트라면 누구나 한번쯤 연주해 보는 명곡이다. 10. 푸치니ㅣ오페라 <쟌니 스키키> -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Puccini: Opera (Gianni Schicchi) - 'O mio babbino caro' Maria Callas (sop), Milan Teatro alla Scala Orchestra, Tullio Serafin (cond) 푸치니의 오페라 <쟌니 스키키> 중에 등장하는 이 아리아는 오페라보다 영화 '전망 좋은 방' 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피렌체로 여행을 간 루시, 그녀에게 기꺼이 전망 좋은 방을 양보해 준 청년 조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 영화는 삶이 결코 전망 좋은 방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같은 것은 아님을 알려준다. 사랑 역시도 우리가 꿈꾸는 것처럼 달콤한 것만은 아니며 창문으로 보는 풍경처럼 드러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려주는 멋진 작품이다. 영화를 더욱 인상 깊에 해준 오페라 <쟌니 스키키> 속의 아리아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라우레타' 의 간청을 담고 있다. 영원한 디바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로 듣는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마리아 칼라스의 신화를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11. 마르첼로ㅣ오보에 협주곡 D단조 - 2악장 아다지오 Marcello : Concerto for oboe in D minor - II. adagio Jozsef Kiss (oboe), Budapest Ferenc Erkel Chamber Orchestra 가을 아침 10시, 햇살이 잘 드는 거실에 앉아있을 때 떠오르는 한 곡을 꼽아보라면 단연 마르첼로의 오보에 협주곡 2악장을 선택할 것이다. 서두르지 않는 빛의 걸음걸이를 닮은 오보에의 선율. 가을 햇살로 만든 빗이 우리들의 마음을 구석구석 빗질하는 것 같다. 알레산드로 마르첼로는 17세기 후반에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음악가이자 작가였고, 그의 동생 베네데토 마르첼로 역시 작곡가이자 작가여서 두 작곡가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도 마르첼로의 이 오보에 협주곡을 무척 아껴서 쳄발로 곡으로 편곡하기도 했다. 12. 브람스ㅣ현악 6중주 1번 op.18 -2악장 안단테 마 모데라토 Brahms : String sextet no.1 op.18 - II. andante ma moderato, Stuttgart Soloists 가을에 들어야 할 단 하나의 음악을 꼽는다면 주저 없이 이 곡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1860년 27살의 브람스가 작곡한 이 작품은 '남자의 고독, 브람스의 눈물' 이라고 불린다. '브람스 풍의 고독으로부터 보내 온 초대장' 같다. 클라라는 애절한 선율이 마음을 흔드는 2악장을 특별히 좋아했다고 한다. 브람스는 이 곡을 클라라의 마흔 한 번째 생일로 바쳤다. 음악을 통해 영화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루이 말 감독이 이런 이야기를 놓칠 리 없다. 루이 말 감독은 고독한 여주인공 '잔느' 를 따라가는 영화 '연인들' 에서 이 곡을 더없이 아름답게 사용했다. 자유롭게, 위태롭게, 그리고 고독하게.... ![](http://my.catholic.or.kr/archives/upload/images/002127/u90120-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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