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가요

내 아내는 우동을 좋아해 - 한보리│"나팔꽃" 시노래모임

리차드 강 2009. 4. 22. 23:38
내 아내는 우동을 좋아해 - 배경희

내 아내는 우동을 좋아해 (2000)

배경희

Track.05 - 내 아내는 우동을 좋아해

       
     

아내는 우동을 좋아해

한보리 작사 작곡 노래

내 아내를 처음 봤을 땐 몸매 예쁘고
후리지아 향기 짙은 여자였었네
큰 아들 여드름 늘 듯 체중이 불고
이제 땀내절은 속옷 처럼 쉰네만 나네
아내 곁에 누우면 눈물이 나네
오늘 꿈엔 무얼 깍는지 잠꼬대 그치지 않네
내일은 아내에게 십만원쯤 손에 쥐어주며
이쁜구두 사신으라고 얘기해야지

내 아내는 늘 바보같아 우동만 먹고
샤넬같은 향수는 냄새가 싫대
오늘은 아내와 함께 시장 갔는데
아내는 옷집앞에서 발길 무겁네
내가 한벌 사랬더니 화들짝 놀라
얘들 학원비도 못냈는데 정신이 있는거냐네
내일은 아내에게 십만원쯤 손에 쥐어주며
이쁜 새옷 사입으라고 얘기해야지

     
내 아내는
"인간아! 마누라 생일 알고나 있는 거야?"
"자알 외우고 있지"
내 아내의 생일은 음력 11월 27일
겨울에 들어서면
"나? 긴장할 줄도 알지!"
생일선물로 이쁜 곡써서 불러주면 촉촉한 당신 눈가
"이런거 말고 돈으로 줘!"
그런 아내 데리고
시장에 가면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그대
"우선이 가방 사야 되는데....
어! 저기 주행이 블라우스 사줘야하는데..."
오늘 당신 생일인데 내가 팍 쓸게!
내 아내는 그 많은 메뉴 가운데 작은 목소리로 겨우 고른 가슴아픈 냄비우동
- 배경희(한보리)
 Rock Version
       
내 아내는 우동을 좋아해 (배경희 독집음반)
유종화
배경희의 음반 <내 아내는 우동을 좋아해> 를 들으면서 나는 억세게도 재수가 좋은 놈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철저한 채식주의자인 내 아내는 진짜 우동을 좋아한다. 그래서 가족끼리의 외식이 있을 때는 우동 한 그릇이면 가장의 체면을 세울 수 있고, 다분히 생색을 내며 이쑤시개로 이빨을 쑤시며 거들먹거릴 수도 있다.
그러나 배경희는 어떤가? 그의 아내가 우동을 좋아한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그는 제대로 외식 한 번 시켜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이렇게 반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잠깐 그의 이력을 보자.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택시기사를 거쳐 대학 강단에 서더니 요즘에는 백수다. 그러나 그는 그냥 백수와는 다르다. 그를 백수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곡을 잘 쓴다. 그래서 그는 놀고 있어도 작곡가라는 직함이 늘 따라다닌다.
그가 이번에 낸 <내 아내는 우동을 좋아해> 속에는 아내이야기, 아들이야기, 딸이야기, 부모이야기, 할머니이야기, 등 온가족을 다 노래해 내고 있다.
그가 처음 이런 노래들을 만들고 나서 한 말이 생각난다.
“중이 제 머리 깎으려니 뒷머리가 켕긴다. 이 나이에 할 얘기가 겨우 식구들뿐이었을까?”
그러나 그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 그러기에 그는 다시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걱정해주고 혹시 내가 흔들릴 때 옆에 와서 어깨를 부축해준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슬픔, 분노가 옷깃에 묻었겠지만 그래도 내 앞에서는 털어내지 않던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고마운 사람들 가운데도 내가 흔들림 없이 노래를 하게한 사람은 내 아내와 아들과 딸이다.”

그의 가족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말이다. 그는 이번 음반에서 고단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지만, 좀 넓게 생각해보면 생활이 어려운 모든 가장들의 마음을 대변해준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배경희는 가족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를 노래화함으로써 노래 가사의 격을 한 단계 높였다고도 얘기할 수 있다. 지금껏 누구도 시도해보지 못한 생활 구석구석의 이야기를 생생한 생활언어로 표현했다는 점을 높이 사야할 것이다.
언제 기회가 되면 배경희랑 중국집에 가고 싶다. 우동 한 그릇씩을 앞에 놓고 가장으로서 가족을 돌아보는 그런 시간을 가져 보고 싶다는 말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번 음반을 가끔씩 꺼내 들으면서 가족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갖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배경희(한보리)
 
싱어송라이터. '꼬두메' 창단. 뮤지컬 <춤추는 돈키호테> <도적들의 무도회> 작곡, 편곡. 시집 <그리운 깊은날> 출간. 시노래앨범 <시하나 노래하나> 참여. 최근 새음반 <내 아내는 우동을 좋아해>를 내고 활발한 공연을 펼치고 있다. '깨달음'에 관한 음반 <소를 찾아서>를 냈다. 콘서트 <산벚꽃 피는 날> 등 활동.
찬밥처럼 싸늘한 목소리가 일품이다. 그의 노래를 잘 들어보면 묘한 매력이 넘친다. <내 아내는 우동을 좋아해>, <소를 찾아서> 등 생소한 테마와 낯선 노래로 희귀 음반을 만들어내는 신비한 싱어송라이터.

그는 화순에서 난 후 줄곧 광주에서 살았다. 거기서 음악 단체 ‘꼬두메’를 만들어 활동했고, 지금은 시노래를 퍼뜨리는 ‘시 하나 노래 하나’를 꾸려나가고 있다.
안 해본 음악이 없으며 한때는 뮤지컬 작곡도 했다. 몇 해 전 노래 가사를 묶어 서점엔 잘 없는 시집도 냈다.
긴 머리에 벙거지를 눌러쓰고 도깨나 닦은 사람처럼 행세하고 다니더니 이번에는 또 ‘초록 달팽이’라는 이름으로 연가 음반을 녹음 중이다.
그는 진정 부지런함이 무기인지도 모른다. 밥먹듯이 곡을 써대는 사람이니 언젠가 한 곡쯤은 알려지리라. 잘 보이지 않는 눈웃음과 가을 동화 같은 목소리도 함께.
       

새로운 음악문화 추구‘음유시인’한보리
- 미친 듯한 열정으로
무등일보
“대중들은 서울에서 내려온 공연에만 맹목적으로 열광해…실력있고 우수한 지역공연들을 죽이는 결과를 낳고 있죠”
젊은 시인들의 작품을 노래로 만든 시 노래 운동 ‘시하나 노래하나’와 판소리 그림 영상 사진 무용 애니메이션 포토에세이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시인의 시 세계를 조명하는 ‘포엠콘서트’를 이끌고 있는 한보리씨.
시와 음악의 결합이라는 실험적 시도는 시와 음악이 원래 하나에서 시작됐다는 한씨의 생각에서 비롯됐다.
“시를 쓰다보면 음악이 시이고 시가 음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요.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기 전까지는 시와 음악의 구분이 없었어요. 시 작업을 하다보면 그 안의 음악이 숨겨져 있어 알게되죠. 그것을 끄집어 내는 작업이 시노래 운동과 포엠의 출발점 이라 할수 있겠죠.”
물론 이같은 그의 노력들이 대중들에게 시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
그 때문에 “이런 일을 왜 하는가?”는 한씨가 가장 많이 받는다는 질문 중 하나이다.
그것에 대한 답변으로 한씨는 ‘풍차에 돌진하는 돈키호테’를 언급했다.
“돈키호테는 풍차를 적으로 알고 돌진했지만 저는 풍차인줄 알고 돌진하는 돈키호테이죠. 이같은 작업이 어렵고 힘든것인 줄은 알고 있지만 미친 것 같은 열정이 없다면 할수 없는 것이 문화적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포엠콘서트가 돈이 안될지는 모르지만 시대적으로 우리나라 문화예술에 필요하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보리는 무서우리 만큼 많은 창작을 하는 작곡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그가 작곡한 곡은 어림잡아 3천여곡. 현재는 매일 작곡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과거 하루에 한곡씩을 만들만큼 왕성한 창작열을 자랑했다.
“어느 시점부터는 작품을 세지 않고 있어요. 많이 썼다고 해서 히트곡이 많은 것도 아니고 매일 한곡씩 일기를 쓴다는 생각으로 하기 때문에 창작은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는 창작을 생리적 욕구에 비유한다. 우리가 밥을 먹고 배설을 하는 것 같이 내 안에 들어오는 즐거운 것, 슬픈 것, 화내는 것, 기뻐하는 것 등 정서적 자극들이 소화되어 정서적 배설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창작이라는 것이다.
그는 매일 이러한 정서적 배설들을 통해 아름다움을 느껴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가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고 2때 삼촌이 이사를 가면서 놔두고 간 기타를 통해서다.
수줍음이 많아 음악 실기 수업을 가장 싫어했다는 한씨는 그 기타를 통해 음악에 대해 배웠고 연주하던 기존의 대중가요가 맘에 들지 않아 노래 만들기도 시작했다.
85년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인 ‘꼬두메’에 창단멤버로 참여했고 지금까지 생계를 위해 택시기사라는 단 한번의 외도를 빼고는 20여년 동안 음악과 함께 살아왔다.
그 동안 1집 ‘내 아내는 우동을 좋아해’와 시집과 음반이 결합된 2집 ‘꽃 한송이 주지 못했네’ 등 독집앨범을 비롯해 보리의 보엠송 ‘헐렁한 노래’ 등을 발표했고 다수의 음반제작에도 참여했다.
혹자들은 지역에는 대중음악이 없다고 말하지만 한씨는 이 지역 대중음악이 어둡지만은 않다고 평가한다. 광주의 경우 지방에서 활동하는 젊은 인재들로 인해 음악적 기반이 가장 탄탄한 곳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광주만의 음악은 별것 아나라고 치부해버리는 대중들의 선입관들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서울인 것은 사실이지만 대중들은 서울에서 내려온 공연에만 맹목적으로 열광하고 실력있고 우수한 지역 공연은 하찮은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선입관들이 지역공연을 죽이는 결과를 낳고 있죠.”
그는 또 우리나라의 대중문화가 소수의 문화권력자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대중문화가 대중이 아니라 몇 사람들의 생각에 의해 만들어져 가고 있고 대중들은 그것에 순응해가고 있어요. 주류문화만이 문화라고 생각하고 소수의 문화는 외면하는 풍토가 자리잡고 있어 미·예술 등을 강조하는 소수 공연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아쉬움을 토해냈다.
한씨가 말하는 문제점들은 광주의 문화수도가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를 이야기 해준다.
광주가 문화수도를 부르짖고 있지만 건물만 만들어진다고 문화수도가 완성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문화의 다양성과 선행성이 담겨 있어야 비로소 문화수도로 불리울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은 우수한 문화예술인들을 광주에 데려오고 그들이 왕성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이 선행되어야 하겠죠. 또 시대를 앞서가는 문화를 생산하고 이를 수용할수 있는 관객들을 육성하는 것이 뒤따라야 합니다”
한보리씨가 현재 계획하고 있는 일은 시골에 있는 작은 농가에 자그마한 창작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미 ‘보리울’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은 그곳에서 창작과 공연연습을 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또 그곳에서 광주문화예술을 비평하는 계간지도 발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글 : 유종화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