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줄무늬 퇴적암의 신비가 감도는 곳
친구는 늘 나에게 자기 집을 자랑하곤 했다. 세상에서 가장 전망이 좋고 천연에어컨이 켜져 있는 곳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자기 집과 가까운 혈청소 가는 길은 더 끝내준다며 무조건 놀러 오라고 하였다. 그때가 고2의 여름날이었다. 천마산 중턱에 있는 친구의 집은 그의 말대로 정말 전망이 좋았다. 멀리 영도대교와 부산대교가 유유히 바다위에 떠있었으며, 북항과 신선대터미널이 한쪽에 웅크리고 있었다.
안개에 싸인 영도의 봉래산은 신선이 노닐만한 곳이었고, 멀리 자갈치 시장과 영도를 오가는 통통선 위로 흰 갈매기들이 눈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게다가 폐부를 찌를 듯 왁작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은 그 얼마나 신선했던지! 얼굴의 절반을 가릴 정도로 큰 안경을 꼈던 그 친구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노그라지게 감상하던 내 어깨를 툭 하며 건드렸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었다. "이제 혈청소로 가자."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며 한참을 궁리하였다. 발음하기도 다소 낯설었고, 뜻을 풀이해보아도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말이었다. ´피를 맑게 해주는 곳´ 혹은 ´피가 맑은 곳?´ 친구는 그 말의 자세한 연원을 정확히 몰랐다. 그저 어른들이 그곳을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었다. 후일 알고 보니 이 ´혈청소´라는 말은 정확한 명칭이 아니었다. 암남공원 입구에 있는 국립동물검역소를 지역 주민들이 그렇게 부르고 있었는데, 왜 그렇게 부르는지 그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암남공원은 이 국립동물검역소를 지나 호젓한 산길을 따라 펼쳐져 있는 자연생태공원과 해안의 방파제, 그리고 그 일대를 일컫는 말이다. 부산 서구 암남동에 위치한 12만평 크기의 이 공원에는 원시에 가까운 자연숲이 바다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3.8㎞의 순환산책로 주변에는 100년 이상 자생한 곰솔·오리나무·굴피나무·후박나무 등 수 백종의 나무와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또한 산책로를 따라 구름다리, 야외광장, 전망대, 야외무대 등이 갖춰져 있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는 아주 제격이다.
암남공원은 오랫동안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가 지난 1996년에야 겨우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의 손길을 타지 않다 보니 자연 환경이 여느 공원보다 잘 보존되어 있는데, 특히 약 1억 3천 만 년 전에 조성된 옆줄무늬 퇴적암의 풍광은 태종대, 몰운대의 해안 절벽과는 다른 신비한 멋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이 옆줄무늬 퇴적암의 아름다움은 붉은 색지를 발라놓은 듯한 화려한 띠 돌림에 있다. 겹겹이 그리고 층층이 옆으로 쌓인 퇴적암의 풍경도 신비하거니와 파도에 깎이고 깎여 만들어진 둥글고 붉은 자갈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색이다. 그저 경탄이요, 탄성일 뿐이다. 붉고 붉은 절벽이 푸른색을 띤 명경지수의 바다와 조화를 이룬 모습은 이곳이 가히 선경이 아닐까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보는 이를 아찔하게 만든다. 그 풍경에 취해 나는 이곳 암남공원에 올 때마다 바이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암남공원에는 부산시민의 문화적 역량을 함양하기 위한 훌륭한 조각품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바로 ´2002 부산비엔날레´에 출품된 대형조각 작품 11점이 공원 숲 속 곳곳에 설치돼 있는 것이다. 유명 조각가들의 작품이 바다와 숲과 조화를 이루고 있기에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이들에게 최고의 데이트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서 사랑을 약속하는 연인들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가지는 것이다.
암남공원에서는 그 태고적 신비에 걸맞게 빗살무늬토기·패총 등 신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으며, 송도해수욕장까지 걸어가는 약 20분의 거리에는 최상의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멋진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즐비해 있어 맛과 멋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암남공원의 해안 방파제에는 낚시꾼들의 발길이 늘 이어지는데, 특히 겨울과 봄이면 학꽁치가 떼로 몰려와 쏠쏠한 손맛을 느낄 수 있다.
암남공원 입구 주변에는 모지포 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모지포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는 닭요리 음식점과 오리 요리점이 즐비하게 널려 있어 토속적인 냄새가 물씬 나는 요리를 주변의 멋진 경치와 함께 즐길 수 있다. 또한 부산의 번화가인 남포동이 암남공원과 불과 4km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해안의 절경과 최상의 밤 문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사랑을 하고 싶은 여인은 이곳 암남공원으로 그와 함께 거닐어 보고, 사랑을 확인받고 싶은 여인은 이곳 암남공원에서 그와 함께 도시의 야경을 보라.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당연히 적용되겠지.
데일리안 김대갑 넷포터 - 2006-12-15 11:38: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