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聖음악

앨범: 모짜르트 레퀴엠 라단조 KV 626 - Ton Koopman (Erato 1992)

리차드 강 2009. 3. 2. 09:33

REQUIEM D minor KV 626

앨범: 모짜르트 레퀴엠 라단조 KV 626 (Erato 1992)

Wolfgang Amadeus Mozart (1756 - 1791)

Requiem D minor KV 626 - 전악장 연주

 

     

모짜르트 레퀴엠 라단조 KV 626

[레퀴엠]은 보통 진혼곡 - '죽은 자의 혼을 달래기 위한 노래'라는 뜻을 가진 가톨릭 교회의 예식 음악이다. 레퀴엠은 라틴어로 '안식'이라는 requies에서 나온 용어로, 죽은 사람이나 죽음을 앞둔 사람을 위한 카톨릭 미사를 가르킨다. 노래 첫 가사에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주여, 저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가 나오는 데서 이곡의 이름이 유래한다. 보통 미사곡과는 달리 영광송과 신앙고백송은 부르지 않는다.

르네상스 이후로 많은 작곡가들이 레퀴엠의 가사를 이용해 곡을 썼는데, 모차르트, 베를리오즈, 드보르작, 베르디, 포레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이후에는 슬픈 마음이나 위로를 표출하는 음악에 레퀴엠을 붙이기도 하였는데,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은 레퀴엠 미사가 아니라 어머니를 추모해 만든 대규모의 성악과 관현악을 위한 작품이며, 벤자멘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은 라틴어 가사와 1차 대전의 비극을 노래한 윌프레드 오웬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포레의 레퀴엠을 들어보면 완전한 희열에 차 있는 음악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그의 레퀴엠에서는 죽음이란 것이 고난과 불행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작곡가의 믿음이 느껴지는데, 때문에 포레의 레퀴엠은 평안함과 따스함을 전한다.

한편 이와는 달리 아주 무서운 레퀴엠도 있다. 베르디의 레퀴엠이 그것인데 곡 전체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심판을 받는 분위기라, 듣고 있노라면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에게로 걸어오는 듯한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이 두 작품은 전형적인 기독교 스타일이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앞의 두 작품에 비해 슬프고 처절하며 아주 인간적이다. "춥고 배고프고 목마르고 정말 끊기 어려워 못가겠네!" 하는 우리나라 상여 소리와 비슷한 분위기다. 그야말로 죽은 자를 위한 음악이라 할 수 있다.

1791년 7월 어느 날 밤, 쿵쿵쿵! 현관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작곡을 하다 피곤해서 쓰러져 있던 모차르트는 깜짝 놀라서 "이 늦은 밤에 누굴까?" 하고 문을 열었는데 이상한 풍채의 회색 양복을 입은 정체 불명의 사나이가 딱딱한 표정으로 서명이 없는 편지 한통을 전하고는 곧장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편지의 주인공은 자기가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말고 진혼곡을 작곡해 달라는 정중한 부탁을 한 것이다. 생활비 때문에 할 수 없이 작곡을 수락한 모차르트는 그날밤 이후 괴로움에 시달리게 되었다. 당시 모차르트는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그 날 이후 병이 더 악화되었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이 곡을 쉬지 않고 쓰기 시작하였고 "이상해. 그 사나이의 그림자가 눈 앞에서 떠나질 않아. 혹시 내 죽음을 기다리는 저승사자가 아닐까?" 죽기 4일 전까지도 그는 죽음의 그림자에 몸을 떨면서도 진혼곡 작곡에 몰두했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 곡은 나를 위해 쓰는 것이다." 라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는 그는 자신의 말에 책임이나 지듯 불행한 예감대로 그해 12월 5일에 장티브스로 세상을 뜨고 만다. 모차르트의 불길한 예감을 안고 탄생한 곡이 바로 진혼곡「레퀴엠」이며 '라크리모사'까지 밖에 쓰지 못하고 죽었다. 미완성으로 남겨진 곡은 모차르트의 제자인 쥐스마이어가 나머지 부분을 완성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 곡을 부탁한 사람은 1세기가 지난 후에야 밝혀졌는데 '발제크'라는 백작이었다. 그는 아내의 기일에 이곡을 자기의 작품으로 발표하려고 비밀에 부쳐달라고 했던 것이다. 이곡은 1793년 12월 14일 빈에서 초연되었다.

모차르트의 죽음에는 이상한 이야기가 붙어 다닌다. 작곡을 의뢰한 사람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질투한 선배 작곡가 살리에리였고, 모차르트는 그가 가져온 죽음에의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회색 옷을 입은 사람'은 '발제크'백작이 보낸 심부름꾼이라는 이야기가 정설이라고 본다.

「레퀴엠」은 그가 초기에 작곡한 미사곡들에 비해 조금 우울한 분위기를 띄지만 뒤쪽으로 가면서 때로는 강렬한 선율로, 또는 극적인 효과로 절정에 이르게 하는 선율로 기도처럼 변하여 들으면 들을수록 좋아지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귀함이 넘쳐 흐른다. 모차르트가 마지막으로 썼다는 '라크리모사' 부분을 들으면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그의 시체가 공동묘지에 버려지는 장면이 떠오른다.

모차르트 음악의 분위기는 대부분이 편안하고 아름다운 것이 특징이지만 옆에 이유 없이 짜증을 잘 내고 자주 신경질을 부리는 친구가 있다면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려주고, 친구랑 다퉈서 화가 나고 속상한 날에도 모차르트의 음악이 어울릴 것이다.

음악에 대한 모차르트의 강한 정열과 집념을 떠올리면서 듣다 보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레퀴엠]은 빈에서 해마다 '모든 성인의 날'이면 황실의 예배당에서 정기적으로 연주되는 오랜 전통이 세워졌고, 이는 20세기에 들어와 겪게 된 다양한 정치적인 변혁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다.

출처 : 인터넷에서

     
코프만 | Ton Koopman a( 1944 ~ )
네덜란드의 오르간 연주자 겸 지휘자. 명쾌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연주 스타일이 특색이다. 종교적, 세속적 칸타타와 오르간 작품을 리코딩 하는 등 많은 리코딩을 남겼다. 1979년 암스테르담바로크관현악단을 창립했고 왕립덴마크음악원 하프시코드 교수로서 활동했다.
국적 : 네덜란드
활동분야 : 음악
출생지 : 네덜란드 오버레이설주 즈볼러
오버레이설주(州) 즈볼러에서 태어났다. 암스테르담에서 고전적인 교육을 받은 뒤 오르간과 하프시코드, 음악학을 배웠으며 오르간과 하프시코드 연주로 상을 받기도 했다. 학업을 끝내기도 전에 17세기와 18세기 음악의 지휘자가 될 기초를 쌓았으며, 처음부터 물론 연주 수준을 가장 중요시했지만 명쾌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연주 스타일과 더불어 근거가 타당한 악기를 사용하려고 했다.
1979년 암스테르담바로크관현악단을 창립했으며, 직접 이 악단과 합창단을 지휘할 뿐 아니라 네덜란드라디오실내악단(Netherlands Radio Chamber Orchestra)의 주지휘자이기도 하며, 이 실내악단과 더불어 19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레퍼토리를 확장시켜 연주하고 있다. 또한 여러 교향악단의 객원지휘자로도 활동한다.
1999년에는 빈교향악단, 2000년 1월에는 라이프치히 MDR 관현악단(MDR Orchestra Leipzig), 2000년 4월에는 덴마크국립라디오관현악단 및 합창단을 각각 지휘했다.
한편, 독주자와 지휘자로서의 폭넓은 활동을 통해 많은 리코딩을 남겼다. 요한 S.바흐(Johann S.Bach)의 종교적 칸타타 및 세속적 칸타타 전곡, 그리고 오르간 작품들을 리코딩하기 시작했는데, 오르간 작품의 리코딩은 1999년 7월에 완결되었다.
출판도 정기적으로 하고 있으며 왕립덴마크음악원 하프시코드 교수이고 런던 왕립음악원의 명예회원이기도 하다. 2000년 7월에는 라이프치히에서 개최되는 국제바흐오르간경연대회의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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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 Koopman (톤 쿠프만) 2
톤 쿠프만(Ton Koopman)은 1944년에 즈볼레(Zwolle)에서 태어났다. 고전 교육을 받은 후에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오르간과 하프시코드, 음악학을 공부했으며, 오르간과 하프시코드 부문에서 프리 엑설런스(Prix d' Ecellence)를 수상했다. 공부를 마치기 전에도 17세기와 18세기 음악의 지휘자로서 경력을 쌓기 위한 초석을 닦았다. 고전적인 박식함에 바탕을 둔 연주 스타일로 정격 악기를 연주하고자하는 그의 선택이 처음부터 주제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는 늘 훌륭했다. 솔로 연주자와 지휘자로서 쿠프만의 광범위한 활동은 에라토, 텔덱, 필리스, DGG를 비롯한 여러 회사의 LP와 CD에 그대로 녹음되었다. 톤 쿠프만의 타임워너사의 독보적인 예술가로서 오르간 음악뿐만 아니라, 바하의 종교와 비종교 칸타타 전곡을 있는 중이다. 오르간 레코딩은 1999년 7월에 완성됐다. 칸타타는 2004년에 완성될 것이다. 1997년 8월에 톤 쿠프만은 바하 칸타타를 위한 독일의 ‘에코 클라식 1997’ 상을 수상했다.
고음악 연주 스타일에 관한 전문적 지식으로 명망 높은 톤 쿠프만은 바로크 시대에 매료되어 25살의 나이에 자신의 첫 바로크 음악 오케스트라를 만들기도 하였으며 1979년에는 암스테르담 바로크 오케스트라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그는 많은 상을 수상하였는데 지휘 및 하프시코드와 오르간 연주로 명예로운 상들을 받기도 하였다.
지휘를 맡은 Ton Koopman은 바로크 음악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연주해온 사람으로 "I draw the line at Mozart’s death"라는 말로 자신의 음악영역에 대한 철학을 표현하였다. 젊어서 고전음악을 하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면서 점차 그 영역을 넓혀 가는 것에 비하면 독특한 사상의 소유자인듯 하다. 마치 전통을 고수하는 노인의 이미지랄까. 실제 중후한 느낌의 할아버지이다. 고지식해 보이지는 않지만.
Amsterdam Baroque Orchestra & Choir도 그가 설립한 오케스트라로 처음에는 오케스트라만 있다가 후에 합창단을 만들어 통합하였다. 오케스트라의 구성에서 특이한 점은 오르간이 2대였다는 점이다. 한대의 경우 모든 곡에 활용되는 것으로 정해진 주자가 계속 연주하였지만 나머지 한대는 곡에 따라서 지휘자가 직접 연주하였다. Koopman 아저씨는 오르간 및 하프시코드 주자로써도 이름이 있는 사람으로 흠잡을데 없는 좋은 연주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당시 육체적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지휘자가 자꾸 포지션을 바꾸는 것이 상당히 집중력을 떨어트리는 요인이 되었다. 거기다가 지휘자가 없는 오케스트라는 보는 것은 연주가 잘 진행되고 있기는 했지만 기분학상으로 왠지 좀 안정감이 떨어지는 느낌을 주었다.
전체적으로 좀 어수선한 감이 있긴 했지만 듣기 힘든 레파토리 라는 점도 있었고 어찌되었건 합창단 만큼은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기에 결과적으로 꽤 즐거운 공연이었다.
     
암스테르담바로크관현악단 | Amsterdam Baroque Orchestra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관현악단.
구분 : 관현악단
설립연도 : 1979년
소재지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주요활동 : 연주회와 리코딩
1979년 지휘자 톤 코프만(Ton Koopman)이 창단하였다. 바로크음악에 특별한 열정을 가진 전세계의 음악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원들은 해마다 약 7회 정도 함께 모여 톤 코프만의 지휘 아래 연주회와 리코딩을 갖는다.
연주회는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헤보우음악당(The Concertgebouw), 런던의 바비컨센터(Barbican Centre), 빈의 콘체르트하우스(Konzerthaus), 뉴욕의 링컨센터(Lincoln Center), 도쿄의 메트로폴리탄아트스페이스(Metropolitan Art Space) 등에서 열리고 있다.
1992년에는 네덜란드의 젊은 성악가들로 구성된 암스테르담바로크합창단(Amsterdam Baroque Choir)이 창단되었다. 이 합창단은 1992년 위트레흐트에서 열린 네덜란드 초기음악제(Holland Festival of Early Music)에서 처음 데뷔하였다.
프로그램은 H.I.F.비버(H.I.F.Biber)가 작곡한 《레퀴엠 Requiem》(15인의 성악가)과 《저녁기도 Vespers》(32인의 성악가) 등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두 작품은 모두 세계 초연이었다. 이들 작품의 리코딩은 17세기와 18세기의 최우수 합창곡으로 칸 고전음악상(Cannes Classical Award)을 수상했다.
1994년 11월 톤 코프만과 암스테르담바로크관현악단 및 합창단은 바흐의 종교적·세속적 칸타타 전곡의 연주와 리코딩을 시작했다. 연주회는 암스테르담, 덴하그, 로테르담, 위트레흐트 등지에서 개최되었다. 이들 연주는 7장의 CD로 제작되었고 칸타타에 관한 3권의 해설서도 뒤따랐는데, 이것은 크리스토프 볼프(Christoph Wolff)와 톤 코프만이 편집한 것이다.
글 출처 : 인터넷에서...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