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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떡해 - 샌드페블즈 Sand Pebbles│My Favorite Gayo

리차드 강 2009. 5. 3. 17:56

나 어떡해 - 샌드페블즈 Sand Pebbles

제1회 '77 Mbc 대학가요제 1집 (1978 Hit레코드)

샌드페블즈 Sand Pebbles 6기 (1970 -)

Side A.1 - 나 어떻게 (작사, 곡:김창훈)

 

나 어떡해 너 갑자기 가버리면
나 어떡해 너를 잃고 살아갈까
나 어떡해 나를 두고 떠나가면
그건 안돼 정말 안돼 가지말아

누구 몰래 다짐했던 비밀이 있었나
다정했던 네가 상냥했던 네가 그럴수 있나
못믿겠어 떠난다는 그말을
안듣겠어 안녕이란 그말을

Introduction

샌드페블즈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77년 MBC에서 주최한 제1회 대학가요제에서 입상하면서 부터이다. "나 어떡해"로 대상을 수상한 샌드페블즈는 대중가요의 흐름을 일거에 변화시키는 엄청난 동력을 부여하였다. 이후 80년대까지 그룹사운드의 전성기를 열어준 출발점이 샌드페블즈의 공헌이라 할 수 있다.

70년대의 통기타와 청바지로 대변되던 청년문화는 유신시대의 저항정신을 대변하였다. 한대수, 김민기, 서유석 등으로 대표되던 통기타 가수들은 그 저항정신으로 말미암아 금지곡이 되거나 가수 활동 자체를 포기해야 했다. 더구나 70년대 말에 터진 대마초 사건으로 신중현, 조용필을 비롯한 대부분의 주류 가수들이 활동금지를 당하게 되면서 청년문화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그 자리를 트롯트가 대신하게 된다.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열정과 젊음을 밖으로 내뿜을 수 있는 도구가 필요했으며 바로 그런 시기에 샌드페블즈는 다가왔다. 그들이 내뿜는 사운드는 가히 폭발적이었으며 전율스런 충격이었다.

한국에 본격적인 록사운드를 도입하고 체계화한 사람은 신중현이며 그 음악적 완성도는 이미 70년대 중반에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세련된 음악적 완성도를 이룩한 신중현은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어 활동금지를 당하고 있었으며 이후 뚜렷한 록사운드를 재현하는 그룹이 없는 시기에 샌드페블즈는 폭발적인 굉음을 지르며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 냈다.

샌드페블즈는 대학생 그룹이다. 또한 그들이 지향하는 모토가 기성가요를 흉내내지 않고 대학생이 표현할 수 있는 순수한 음악을 지향하고자 했기에 거친듯 하면서도 순수하고 파격적인 사운드의 표출이 가능했으며 이는 곧 그 시대의 젊은이들이 갈구하던 억압된 상황에서의 탈출과 창조의 욕망과 일치하였다.

샌드페블즈의 순수한 음악정신을 이어가고자 대학생활 중 2학년 한해만 활동하고 이듬해에 신입회원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으며 그들이 지향하던 음악정신은 이후 30년간 샌드페블즈의 근간이 되었고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 삼형제로 구성된 산울림의 음악에도 그 영향을 미쳤다.....

뒷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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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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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대학가요제 앨범에는 가끔 노래방에 가서 열창(?)하곤 하는 대학가요제 1회 대상곡인 샌드페블스의 <나 어떻게>가 실려있는데, 이 노래가 바로 산울림의 둘째 김창훈씨가 작사작곡한 노래다. 산울림 2집 정규앨범에도 실려있다. 산울림 결성 30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김창완씨를 인터뷰한 <시사저널> 기사중 대학가요제 뒷이야기만 옮겨본다.

"대학가요제에 우리는 팀 이름은 '무이(無異)'였다. '다름이 없습니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문 좀 열어줘>로 출전을 했고, 둘째(김창훈)는 샌드페블즈 멤버로 활동하던 둘째는 <나 어떡해> 곡을 샌드페블즈에게 연습시켰다. 샌드페블즈는 주축이 2학년이다. 3학년이 되면 한 명이 매니저를 봐주는 것이 전통이었는데, 둘째가 매니저 역을 했다. 둘째는 무이 베이시스트로 대학가요제에 참가하기도 했고.

방송사 관계자에게 들으니, 예심에서는 <문 좀 열어줘>가 1위, <나 어떡해>가 2위였다. 상금이 솔찮잔아요.(웃음) 야, 우리가 다 먹었다 그랬는데, 그런데 그때 요강에 대학 졸업생이 있으면 안 된다는 규정 때문에 ‘무이’는 자진 탈락했다. 우리 곡이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기는 했다."

(<시사저널> 6월 29일자)

제대로 활동도 하지 않으면서(?) 30년 동안 이렇게 팬들을 붙잡아 둘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재능과 역량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나같은 막귀가 들어도 30년전 <나 어떻게>는 세련 그 자체, 빼고 더할 것이 없다. 이게 바로 산울림의 매력이다. 그런데 노래방에서 내가 마이크 잡고 부르면 왜 사람들은 외면하는 것일까.ㅜ.ㅜ;

글 출처 : "나는 아마추어다"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