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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게구름 - 이정선│My Favorite Gayo

리차드 강 2009. 5. 3. 15:32

뭉게구름 - 이정선

이정선 3집 (지구 1977)

이정선 Lee, Jung-Sun (1950- )

Side B 2 - 뭉게구름 (작사, 곡, 편곡:이정선)

 

이 땅이 끝나는 곳에서 뭉게구름이 되어
저 푸른 하늘 벗삼아 훨훨 날아 다니리라

이 하늘 끝까지 가는 날 맑은 빗물이 되어
가만히 이 땅에 내리면 어디라도 외로울까

이 땅의 끝에서 모두 다시 만나면
우리는 또 다시 둥글게 뭉게구름 되리라

이 하늘 끝까지 가는 날 맑은 빗물이 되어
가만히 이 땅에 내리면 어디라도 외로울까

이 땅의 끝에서 모두 다시 만나면
우리는 또 다시 둥글게 뭉게구름 되리라.
뭉게구름 되리라...

(작사:이정선 작곡:이정선 편곡:이정선)

한국수력원자력 광고 포스터 '푸른 하늘 이야기 Ⅱ'

 

이정선 Lee, Jung-Sun (1950. 9. 20 - )

출생 : 1950년 09월 20일 / 대한민국

학력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

프로필
*그룹 : <해바라기>, <신촌블루스> 참여
*소속 : '이정선 음악사' 사장

'프로페셔널 아마추어'의 야심적 데뷔와 수난

이정선(1950년생)은 '1980년대적 인물'로 인식된다. 이는 무엇보다도 '신촌 블루스'라는 존재와 '이정선 기타 교본' 때문일 것이다. 물론 1970년대 중후반 해바라기(참고로 '이주호 + 1'의 해바라기가 아니다)나 풍선의 활동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1970년대적 인물'이기도 했다는 점을 인식할 것이다. 그는 이런 그룹 활동과 더불어 많은 솔로 음반을 남겼는데, 이 음반은 그의 순탄해 보이는 경력의 곡절 많은 출발이다.

이정선의 솔로 음반의 디스코그래피를 검토해 보면 1974년부터 1994년 사이에 10집 앨범까지 발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음반의 종(種) 수는 11개이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음반의 표지는 12개라는 것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혼동스러운 이유는 다름 아니라 '검열' 때문이다. 통상 그의 1집으로 알려진 음반(지구, JLS120988, 1974)의 표지가 '장발 때문에' 심의에서 반려되어 다시 제작되었던 일은 그가 한 TV 프로그램인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밝힌 바 있다. 그래서 1집의 표지는 두 종류다. 하나는 '장발 음반'이고, 다른 하나는 '단발 음반'이다.

면밀한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장발 음반'에 수록된 곡이 '단발 음반'에는 수록되지 않은 것도 발견할 것이다. "거리"라는 곡이다. Em7 - A - C - D 라는 단순하지만 상투적이지 않은 코드 진행이 반복되는 닐 영(Neil Young) 스타일의 기타 연주 위에서 "말을 하는 사람은 많아도 / 말을 듣는 사람은 없으니 / 아무도 듣지 않는 말들만이 거리를 덮었네"라는 노래가 등장하는 곡이다. 바로 이 부분이 문제가 되었다. 무슨 문제? 예술윤리위원회(뒤의 공연윤리위원회)에서 '불신풍조 조장, 냉소적'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해 버린 것이다. '말을 하는 사람'과 '말을 듣는 사람'이 각각 누구를 지칭했는지에 대해서는 각자가 상상해 볼 일이지만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분들은 '심의위원' 자신들이었을 것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이라고나 할까...

설명이 복잡해져 버렸는데 결론을 이야기하면 이 음반은 이정선 1집 음반도 아니고 0집 음반, 혹은 논자에 따라서는 '(-)1집 음반'으로 불리는 음반이다. 이유는 자율적이든 타율적이든 시장에서의 판매가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거리" 뿐만 아니라 9곡이 '심의불가'를 통고 받았고 우여곡절 끝에 소량이 발매되기는 했지만 방송을 전혀 탈 수 없어 결국은 시장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 덕택에 현재 중고 음반의 가격만 초고가로 만들고 있지만...

그런데 정작 음악이 어떻길래 이런 수난을 당했을까. 당시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 들으면 음악적 내용과 음악외적 수난이 밀접하게 상관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즉, 이 음반에서 느껴지는 것은 음악적 실험의 야심이지, 정치적 발언의 욕구는 아니다(적어도 부차적이다). 수록곡들의 장르(혹은 스타일)가 다양하고 편곡은 화려하다. 당시 이정선을 '통기타 들고 명동의 음악감상실을 들락날락하던 사람'으로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충격적일 정도이다. 무엇보다도 이 음반은 록 밴드의 편성으로 녹음된 것이다. 뒷면에 적혀 있는 세션 음악인의 면면은 김영배(일렉트릭 기타), 이영림(드럼), 최영택(베이스), 김영준(키보드), 오세은(어쿠스틱 기타) 등인데, 이들의 이름을 통해 1970년대 초중반에 존재했던 하나의 인맥을 확인할 수 있다. 오세은을 제외하고는 지속적으로 음악 활동을 전개하지는 않았지만 '그 친구가 음악 계속했으면 참 잘했을 텐데...'라는 케이스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어쨌든 이정선과 오세은이 연주하는 두 대의 어쿠스틱 기타가 이끌어 나가고 드럼-베이스-기타-키보드가 뒤를 받쳐 주는 세션은 이 음반을 '포크도 아니고 록도 아니고 그렇다고 포크와 록이 아닌 것도 아닌' 독특한 것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물론 이는 포크와 록을 일도양단하는 당시의 관행을 따를 때 그렇다는 이야기일 뿐, 지금 와서 유연하게 사고한다면 '록 음반'이라고 말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결론적으로 이정선이 1970년대에 솔로로 발표한 음반들에 비해서 '일렉트릭'하고, 전문 세션맨들의 연주가 아니라는 점에서 신선하다. 물론 몇 군데 '실수'가 발견되기는 하지만...

수록곡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곡들은 "이리 저리"나 "거리"처럼 어쿠스틱 기타 두 대의 스트러밍과 리듬 파트가 조화를 이루는 (굳이 말하면) '포크 록 넘버'들이다. 단조 멜로디의 진중한 분위기, 진부하지 않은 코드 진행, 그리 어렵지 않은 악곡 형식, 곱씹어 봄직한 가사 등 (영미권에서) '인기 있는 포크 록'이 갖추어야 할 요소를 모두 갖춘 곡들이다. 물론 늘 이렇게 진중하지는 않다. "청개구리 마음"은 워킹 베이스와 리듬 기타가 업템포의 스윙 리듬을 구사하면서 흥겨운 느낌을 선사한다(리듬 기타는 '스카(ska) 같다'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그러더니 후렴부에서는 템포가 느려지고 패턴도 바뀐다. 청개구리 같은 감정의 변덕을 표현한 듯한 리듬 패턴의 변화는 다음 곡인 "당신"에도 이어진다. 이번에는 아예 네 박자가 세 박자로 바뀐다.

당시 음반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이런 변화무쌍함은 편곡과 기악편성에서도 드러난다. 방금 언급한 "당신"은 전주부터 관악기들이 짧게 끊으면서 불어 제끼는데, 통상적인 포크송에서 '무드'를 위해 관악기를 사용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지금 들으면 어설프지만 레슬리 스피커를 이용한 오르간의 효과음도 '당시'를 떠올려주는 중요한 음이다. 관악 사운드는 이정선이 애착을 갖는 듯한 "비오는 날에"에 다시 한번 울려 퍼진다. 긴 호흡으로 연주되는 관악기들은 짧고 강한 백비트가 인상적인 드러밍과 함께 끈적끈적한 무드를 자아낸다. 음계와 형식은 블루스와 거리가 있지만 '블루지'한 곡이다. 비슷한 시기 안건마가 편곡하여 김인순이 부른 정갈한 무드와는 대조적이다.

한편 "정"이나 "바보가 되어" 같은 '이정선식 발라드(?)'에서는 현악도 동원되고 "저녁 놀을 보며"는 관악과 현악이 총동원되면서 '전속관현악단'이 연주하는 듯한 편곡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수록곡들의 스타일과 편곡은 지나치다 싶게 다채롭다. '어쿠스틱'한 곡의 경우도 스타일과 편곡은 모두 다르다. "정"은 어쿠스틱 기타의 범상치 않은 코드 진행이 현악 세션과 결합된 곡이고, "내게 주는 노래"는 어쿠스틱 기타의 연습곡 같은 소품이며, "모두 다 함께"는 한 대의 기타는 활발한 스트러밍을, 다른 한 대는 백킹을 담당하는 '싱얼롱'용 곡이다. 중간에 조성이 반음 올라가면서 전개되는 "모두 다 함께"는 4인조 해바라기의 전조(前兆)를 보여줌과 동시에 당시 이정선이 김의철 등과 함께 이끌었던 해바라기홀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해준다.

이런 '지나친 다채로움'으로 인해 다 듣고 나서 응집력이나 일관성이 부족해 보인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음악을 잘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선명한 무언가가 남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평은 이후의 작품에서도 계속 산만한 음악인에만 해당되는 평일 뿐이다. 데뷔작이라는 것은 원래 음악인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니 말이다. 따라서 더욱 아쉬운 점은 이 음반이 이리저리 채이고 밟혀서 가능성이든 잠재력이든 대중까지 전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021222

P.S.
1. 기초 정보 몇 개를 덧붙이면 이 음반의 제작자는 당시 CBS PD였던 김진성이다. 그는 1971년 김민기 음반의 제작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김민기 외에도 이정선, 이동원, 원 플러스 원 등의 음반을 지구 레코드를 통해 제작(대명제작)했다. 그는 이정선의 음반이 금지되면서 "망했다"고 증언했다.
2. 이 음반에서 이정선은 작사와 작곡은 물론 편곡까지 모두 담당했다. '포크 가수'가 밴드 편성의 편곡을 전담한 경우는 이제까지 거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점은 특기할 만한 점이다. 그의 편곡 능력은 '미 8군 무대'가 아니라 '육군 군악대'에서 길러진 것이다.
3. 이정선이 이 무렵 즐겨 들은 외국의 조류는 크로스비, 스틸스, 내쉬 앤 영(Crosby, Stills, Nash & Young), 닐 영(Neil Young),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 실즈 앤 크로프츠(Seals & Crofts), 아메리카(America) 등이다. 단, 몇 개는 그가 직접 말해준 것이고 몇 개는 나의 추측이다.

text | 신현준 homey@orgio.net 2003/04/03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