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퀴엠이란 죽은 자를 위한 카톨릭 미사곡으로 우리말로 진혼가로 번역될 수 있겠다. 서양역사상 다양한 레퀴엠이 작곡되었지만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그가 작곡한 가장 훌륭한 종교음악일뿐만 아니라 가장 잘 알려져있고 중요해서 레퀴엠하면 모차르트의 그것이 떠오를 만큼 후세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괴이한 모습의 낯선 사내가 부탁하고 간 레퀴엠은 병마에 지칠대로 지친 모짜르트를 죽음의 계곡으로 몰아가는 재촉장이었다. 온기라고는 없는 음습한 방에서 모짜르트는 바로 그 자신을 위한 진혼곡을 결국 미완성으로 남기고 만다. 위대한 한 천재의 영혼이 오선 위에서 죽음을 앞둔 춤을 춘다. 결혼식을 올렸던 비엔나의 스테판 성당, 모짜르트는 죽음의 예식도 똑같은 자리에서 치렀다. 1791년 12월 6일 그의 나이 서른다섯. 모짜르트의 영혼을 하늘로 옮겨 간 스테판 성당의 첨탑. 그 첨탑에 걸린 태양은 모짜르트의 생애만큼이나 짧게 빛을 발하다 쓰러져 버린다.
작곡과 초연
모짜르트를 그린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대중들에게 더욱 친숙해진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극중에서는 모차르트를 시기한 살리에르의 음모로 위촉된다고 되어있지만 그것은 사실과는 다르다. 작곡된 동기는 모차르트 생애의 마지막 해인 1791년 여름 빈의 폰 발제그-스투파흐 (von Walstegg-Stuppach, 1763-1827) 백작의 의뢰를 받은 데 있다. 이 귀족은 열렬한 음악애호가이며 스스로 플룻이나 첼로를 연주할뿐더러 자신을 작곡가로 보이고 싶어하는 심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1791년 2월 14에 20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그의 부인을 위해서 "레퀴엠"을 작곡하여 자작이라고 칭한 다음 이 곡을 봉헌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그 대리 작곡가로서 모차르트를 택한 것이다. 모차르트 사후인 1793년 12월 14일에 Wiener-Neustadt에서 직접 악보를 사필하여 자신의 지휘로 이 곡을 연주했다는 점에서도 그가 이 곡을 자신이 작곡했노라고 주장했을 가능성을 시사해준다. 하지만 곡의 공개 초연은 같은 해 1월 2일 빈에서 판 쉬비텐 (van Swieten) 남작이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 (Constanze)를 위해 마련한 연주회에서 이뤄졌다. 곡은 모차르트가 죽기 직전에도 모차르트 앞에서 간소히 초연됐다고 전해지는데 모차르트 스스로 라크리모사에서 눈물을 왈칵 쏟았다고 전해진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이 곡의 작곡 의뢰는 잿빛 복장의 미지의 사나이로부터 행해졌으므로 이미 병에 시달리고 있던 모차르트에게는 심한 환영 같은 충격을 심어주었다. 이 당시 모차르트는 이미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예측을 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가 이 곡을 미완으로 남겨두고 영면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모차르트는 1791년 여름에 두개의 마지막 오페라와 클라리넷 협주곡등 많은 곡에 착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뢰를 받고 곧 작곡에 착수하지는 못했으며 곡의 작곡은 죽기 직전까지 지속되었고 결국 그의 죽음으로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모차르트에 의해 완성된 부분은 Introitus 전체, Kyrie의 대부분, Sequentia와 Offertorium의 성악 파트와 저음 파트 그리고 중요한 악기의 선율 뿐이었다. 특히 Sequentia의 끝 곡인 Lacrimosa는 8째 마디까지만 작곡되어 있었다.
모짜르트 사후에 이 미사곡을 완성시키는 것은 부인 콘스탄체에게는 무척 급박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미 계약금의 절반을 받았으며 만약 완성시키지 않으면 되돌려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맨 먼저 모차르트가 높이 평가하던 제자 이블러 (Josef Eybler, 1765-1845)에게 보필을 의뢰하였다. 그러나 이블러는 Dies Irae와 Confutatis의 오케스트레이션과 Lacrimosa(10 번째 마디까지)를 조금 손댄 뒤 그만 두었다. 그후에 여러 명의 작곡가에게 의뢰되었지만 결국 모차르트의 또 다른 제자인 쥐스마이어 (Franz Xaver Suessmayer, 1766-1803)가 맡게 되었다. 그는 모차르트가 죽기 전까지 그와 함께 있었으며 이 곡의 마지막 작곡 방향에 대해서 지시를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Sequentia와 Offertorium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완성했으며 이어지는 Sanctus, Benedictus, Agnus Dei는 순수히 쥐스마이어에 의해 작곡됐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이 당시 그의 젊은 나이로 미뤄보거나 그가 별 다른 작품을 남긴 일이 없다는 것으로 감안할 때 이 뒷부분들은 모차르트의 스케치나 모차르트가 생전에 레퀴엠의 작곡을 위해 연주하던 것을 듣고 기억하여 작곡에 이용했으리라는 추측이 있다. 레퀴엠의 끝곡인 Commnio는 곡의 첫 부분인 Introit와 Kyrie의 선율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모차르트가 제자들에게 지시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쥐스마이어가 완성시킨 레퀴엠은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악보이긴 하지만 그의 오케스트레이션에 대해 후에 많은 비판이 따랐다. 현대 작곡가들에 의해 다양한 보완 작업이 이루어져서 판본이 여러 가지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들이 영국의 벤자민 브리튼, 리차트 마운더 그리고 독일의 프란츠 바이어의 작업들이다. 그중 바이어 판은 최근 쥐스마이어 판 다음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쥐스마이어 판의 오류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과 음악가들의 수정은 계속되고 있지만 특정 판본만이 가치의 기준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나름대로의 충분한 존재 이유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판본은 모차르트 레퀴엠을 바라보는 2차적인 관점에 불과하다. 진정 중요한 점은 어떤 연주가 가장 사람의 마음을 열게 만드는 것인가에 달려있다.
모차르트: 레퀴엠 D단조 KV 626
Edith Mathis (에디트 마티스; 소프라노), Julia Hamari (줄리아 하마리; 알토), Wieslaw Ochman (비스바브 오흐만; 테너), Karl Ridderbusch (칼 리더부쉬; 베이스)
빈 국립 오페라 합창단 (Wiener Staasopernchor) 칼 뵘 (지휘) 빈 필 칼 뵘 (Karl Bohm)의 이 유명한 연주는 해석이 번스타인의 그것과 일견 비슷한 것 같으면서 아주 이질적이다. 첫 번째는 그 판본이 다르다는 점이며 (칼 뵘은 쥐스마이어 판본, 번스타인은 바이어 판본이다), 두 번째는 템포설정을 비롯한 구성력의 차이다. 칼 뵘은 전체적으로 느리게 전부 길게 늘어뜨린 형식이다. 그래서 사람을 쉽게 피곤하게 만든다. 감상자의 숨통을 죄어오는 듯한 답답함이 있을 때와 숭고한 마음이 들 때와 아주 편안할 때가 공존하는 연주다. 그래서 칼 뵘의 연주는 처음 들으면 아주 편안하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지극히 숭고한 마음까지 생기게 한다. 그러다 시간이 더욱 흘러 점차 익숙해지면 답답하다는 결국 느낌에까지 이르게 된다. 여기에는 심리적인 것이 많이 작용하는 연주로 처음 듣고 난 뒤에 자주 이 음반을 집어들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이 음반의 특징은 쥐스마이어 판본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점이다. 녹음이 둔탁해서 어두운 느낌이 강한 것은 부차적인 이유며, 근본적으로 뵘은 모차르트가 부여한 이 곡의 성격 중 '슬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결과 이렇게도 암울한 정서가 가득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뵘의 레퀴엠은 마음이 안정된 상황에서 감상이 아주 절실한 연주다, 잡념이 들어가면 곧 잘 지루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연주와는 달리 상당히 뵘만의 색깔로 바라본 연주이기 때문에 처음 듣기에는 부담스러운 면도 있다.
뵘은 곡 전반에 걸쳐, 그림을 그릴 때 크레파스를 꾹꾹 눌러서 그리듯 아주 두터운 울림을 들려준다. 이러한 표현 방법은 쥐스마이어 판본이라는 점과 맞물려서 암울한 분위기 묘사에는 더할 수 없는 상승작용을 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한쪽 면만 바라본다면 동굴속의 우상이 되기 쉽기 때문에 이 연주도 색다른 방향으로써 그 가치가 인정된다.
느릿한 현의 반주와 함께 바순과 혼의 주고받는 형식으로 Introitus가 시작된다. 서서히 상승곡선을 긋다가 다시 "et lux perpetua"를 거치면서 곡은 점점 밝아진다. 그 후 소프라노 마티스의 독창이 시작된다. 그 반주는 가장 간단한 것이지만 가장 심오한 면을 지니고 있다. 뵘은 번스타인과 유사하게 넉넉한 템포로 곡을 시작하며 충분한 사색을 즐기기에 알맞다. 곡은 다시 잦아지면서 끝을 맺고 장중한 베이스로부터 Kyrie로 넘어간다.
Dies Irae는 일반적인 템포와 함께 금관도 생명력을 갖고 있어서 무난한 연주이다. Tuba mirum에서는 템포를 많이 늦추어서 앞부분의 강렬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Rex tremendae에서는 음을 꾹꾹 누르듯 진행하며, Dies Irae의 분위기를 이어받기에는 별다른 무리가 없다. 또 "salva me" 이후의 템포가 느려지면서 애절한 분위기와 잘 들어맞는다. Recordare는 첼로와 혼의 서주 후에 각각의 독창이 진행된다. 매우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에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Confutatis는 느리지만 현의 두터운 바탕 아래 튼튼한 선율이 흐른다. 느린 템포로 인해서 구원을 바라는 여성 합창이 더 설득력있게 들린다. 이를 받쳐주는 현의 진행도 고즈넉하게 계속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더욱 음의 진행이 잦아지면서 Lacrimosa를 향해서 전진한다.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는 가장 안정적인 Lacrimosa이다. 3분대가 대부분이지만 항상 이보다는 좀더 느린 연주를 원했었기에 뵘이 적절하다고 본다. 번스타인은 가장 느린 Lacrimosa를 들려주지만 이것은 보편적인 템포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고, 가장 개성있는 Lacrimosa로 봐야할 것이다. 느리게 진행되면 툭툭 치는 듯한 팀파니가 제법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재현한다.
이 후의 뵘의 연주는 느리게 진행되지만 여전히 깊은 사색의 길로 인도한다. 이러한 부분은 원전연주와 가장 다른 부분이며 이는 서로 절대적인 비교가 될 수 없다.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는 부분이라서 각각의 길은 따로 존재한다.
뵘의 연주는 분명 표준적인 연주 형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상자가 무척 평안하게 정적인 상황이라면 아주 훌륭한 연주임에 분명하다. 외형적인 면은 비표준이지만 내부적인 면에서는 표준적인 연주다. 이 연주가 느린 템포로 인해서 잃는 부분은 긴장감이지만 이로 인해서 얻는 부분은 평화로운 안식을 바라는 마음이며 더욱 숙연함을 지니게 하는 연주이다. - 김성익
|
'종교 聖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Chant - 산토 도밍고 데 실로스 베네딕투스 수도회│거룩한 갈망 (0) | 2009.03.17 |
---|---|
앨범: 모짜르트: 레퀴엠 라단조 K 626 - Jordi Savall, cond (1992) (0) | 2009.03.02 |
모짜르트 레퀴엠 라단조 K 626 - Philippe Herreweghe | 종교 聖음악 (0) | 2009.03.02 |
모짜르트 레퀴엠 라단조 K 626 - Zdenek Kosler│종교 聖음악 (0) | 2009.03.02 |
모짜르트 레퀴엠 라단조 K 626 - Herbert von Karajan│종교 聖음악 (0) | 2009.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