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

Zombie - The Cranberries│My Favorite Pop

리차드 강 2009. 3. 7. 15:52

Zombie - The Cranberries

Zombie (Island Records 1994 Single)

The Cranberries 1989-

1. Zombie (Full Length Album Version) (5:06)

 

The Cranberries - Zombie

Lyrics and Music by Dolores O'Riordan

Another head hangs lowly, child is slowly taken And the violence caused such silence Who are we mistaken

But you see it's not me, it's not my family In your head, in your head, they are fighting With their tanks, and their bombs
And their bombs, and their guns In your head, in your head they are cryin' In your head, in your head, Zombie, Zombie In your head, what's in your head Zombie

Another mother's breaking heart is taking over When the violence causes silence We must be mistaken It's the same old theme since 1916 In your head, in your head they're still fightin' With their tanks, and their bombs And their bombs, and their guns In your head, in your head they are dyin'

In your head, in your head, Zombie, Zombie In your head, what's in your head Zombie

좀비 - 크랜베리스

또다른 목이 낮게 걸렸어, 아이들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어. 폭력(전쟁)이 이러한 침묵을 만들었지, 우리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어.

니가 봐, 내가 아냐, 나의 가족이 아냐. 너의 머리에, 너의 머리에 그들은 싸우고 있어. 그들의 탱크로, 그들의 폭탄으로, 그들의 폭탄으로, 그들의 총으로 너의 머리에, 너의 머리에, 그들은 울고 있어. 너의 머리에, 너의 머리에 좀비, 좀비, 좀비. 너의 머리에는 뭐가 있니, 너의 머리에 좀비, 좀비, 좀비

또 다른 어머니의 심장이 부서지네. 폭력(전쟁)이 침묵을 만들었을때, 우리는 잘못한게 틀림없어. 1916년 이후랑 똑같아. 너의 머리에, 너의 머리에, 그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어. 그들의 탱크로, 그들의 폭탄으로, 그들의 폭탄으로, 그들의 총으로. 너의 머리에, 너의 머리에, 그들은 죽어가고 있어.

너의 머리에, 너의 머리에 좀비, 좀비, 좀비. 너의 머리에는 뭐가 있니, 너의 머리에 좀비, 좀비, 좀비.

     

Irish Rock을 아십니까?

아이리쉬.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U2를 제일 먼저 떠올릴 겁니다. 아무래도 지명도도 있고, 유명하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뮤지션이니까요. 저는 참여시가 있듯이, 음악에도 현실을 반영하는 음악이 있다는 것을 제일 먼저 알려준 The Cranberries 가 제일 먼저떠오릅니다.

Ireland. 그 혼란스러운 역사를 가진 나라 답게, 그곳에서 나온 음악들은 정말 인상깊은 것들이 많습니다. The Cranberries역시 그 중 하나입니다. 중학교때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노래방에서 Z열에서 단 한곡만이 존재해서, 이상하게 눈에 딱 들어온 Zombie라는 곡.

강렬한 인상을 받고 집에가서 찾아들어보니 꽤나 좋네요. 실상은 알고보면 전 발표곡중 가장 역사의식이 진하게 배어있는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 전쟁의 역사가 반영된 곡 답게 괸장히 날카로운 가사가 그러면서도 강한 감수성이 상당히 좋은 곡입니다. 이들은 감수성이 정말 뛰어난 밴드라고 생각해요.

2집 No Need to Argue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앨범 제목에서부터 Ireland가 강렬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한번만 들어보아도 그 서정성과 감수성에 흠뻑 젖어들게 되는군요. 목소리와 곡 분위기가 그렇게 몰고 가는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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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녀석 한테서 전화카드 2장 + 4000원을 주고 사게된 앨범. 자세한 경위는 복잡하지만 어쨌거나 내가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 앨범은 내 손에 들어오게 됐고,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다. 그 때는 음반 한장이 얼마나 비싼지는 몰랐기 때문에 왠지 난 손해보는 기분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 녀석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하여간 이 Zombie는 그 앨범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곡 이라고 할 만 하며 [역사의식+감수성+중독성]을 두루 갖춘 곡이라고 할만하다. 일설에는 자우림이나 주주클럽.. 식의 창법의 원조라고도 한단다.. 믿거나 말거나.

출처 : 9S' LAFI 2nd in Korea

     

     

     

     

     

     
The Cranberries 1989-
크랜베리스(Cranberries)는 신비로운 목소리를 지닌 싱어 돌로레스 오라이어던(Dolores O'Riordan)과 드럼을 연주하는 퍼갤 로울러(Fergal Lawlor), 기타를 치는 노엘 호건(Noel Hogan), 베이스를 치는 마이크 호건(Mike Hogan)으로 구성된 아일랜드의 락 그룹.
근대 문학에서 1970년대 남미의 마술적 상상력의 리얼리즘이 세계를 휩쓸기 전까진 아일랜드는 세계문학의 고대한 봉우리였다.
제임즈 조이스, 예이츠, 존 밀링턴 싱, 버너드 쇼, 오스카 와일드, 새뮤엘 베켓트, 셰무스 히니 등이 모두 아일랜드 출신이다. 이러한 근대 아일랜드 문학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잉글랜드의 정치적 종교적 변방이라는 아일랜드의 시공간적 조건에서 나온다. 근대 이후 잉글랜드의 정치적 종교적 억압은 변방으로서 아일랜드의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대개의 변방은 정치적 경제적 물리력이 부족한 까닭에 그들이 주류에 저항하고 스스로를 위무할 힘을 문학이나 예술에서 찾곤 한다. 아일랜드는 고래의 켈트 문화에 기반한 반골정신과 근대의 역사가 정체한 변방의식으로 근대 아일랜드 문학을 꽃피우는 것이다.
 
문학에서뿐 아니라 치프틴스, 밴 모리슨, 게리 무어, 크리스 드 버그, 시니어드 오커너, U2, 크랜베리스 등 아일랜드의 대중음악 역시 그들의 변방의 풍경과 반골의 심경을 보여준다. 그들은 음악으로 자신의 역사를 노래하고 공연으로 그들의 행동을 실천한다. 치프스틴은 아일랜드 전통 셀틱 음악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전세계에 상기시키고, U2는 잉글랜드 성공회의 폭력으로 "피로 물들은 일요일"의 아일랜드를 노래하고, 시니어드 오커너는 캐톨릭이 국교임에도 불구하고 영국 성공회의 비호를 받는 개신교 집단들이 득세하는 불합리한 현실을 외면하는 교황의 사진을 찢으며 스스로 아일랜드공화군의 지지자임을 당당히 선포한다.
1990년대 크랜베리스의 성공은 여성 보컬리스트 돌로레스 오라이어던이 지닌 목소리의 카리스마에 힘입은 바 크다. 그의 보이스는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처럼 연약하나, 그 어떤 손길도 그 질그릇을 쉽기 만지지 못할만큼 강건하다. 이른 아침 안개 가득한 호수처럼 고요하나 언젠가 곧 바람이 일듯 긴장감이 있다. 깊은 곳에서 낮게 울리는 소리는 온몸을 돌아 목을 거치면 이미 강한 절규가 된다. 부드러우나 강렬하고, 가녀리나 단단하고, 단순하나 신비롭다. 그의 보이스는 락의 역사에서 아주 새로운 경험으로, 공격적인 남성 록커들의 목소리완 다르게 여성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그녀는 거의 모든 노랫말을 자신이 직접 쓴다. 까닭에 그녀의 언어들은 그녀의 목소리에서 체화되는 경험이자 역사이다. 크랜베리스가 사운드를 절제하고 멜로디를 강조하는 까닭은 곧 그녀 노랫말이 지닌 텍스트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그녀의 텍스트는 주로 변방의, 비주류의, 소수자의 역사를 다룬다. 실제로 "Zombie"는 1916년의 아일랜드의 폭동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Icicle Melts" 역시 벨파스트 폭탄 테러로 인한 어린이들의 죽음을 노래하고, "War Child"와 "Bosnia" 같은 곡들은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노래한다.,
U2의 바톤을 이어 아일랜드의 대중음악을 다시 전 세계에 알릴 새로운 록으로 알려졌던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를 처음 봤을땐 보컬의 헤어스타일에 더 시선이 갔다. 그러나  보컬리스트 돌로레스 오리어던(Dolores O'Riordan)의 신비로운 아이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들에게 열광하게 되었다. 크랜베리스의 음악은 안개에 싸여있는 호수처럼 고요하고 신비스러우며 여성적이다. 상처받기 쉬운 영혼을 노래하는 듯한 그들의 음악은 록은 공격적이며 남성스러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바꾸어 버렸다.
사람들은 1980년대 후반 활약했던 그룹 The Smiths의 보컬리스트 Morrisey와 마찬가지로 돌로레스의 목소리는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처럼 연약하며 애절한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고 평한다. 그러나 나무는 그 속에 특유의 내면성과 서정성을 간직하면서도 동시에 식민국민으로서 가졌던 한을 공격성과 비판정신으로 풀어내어 내고 있다고 느낀다.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라임릭(Limerick)촐신인 이들 4인조는 돌로레스의 독톡한 보컬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당신들 음악이나 한번 들려줘 봐."
작고 연약해 보이는, 그러나 당돌했던 돌로레스 오리어던(Dolores O'Riordan)은 오디션을 보러간 날 다른 멤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노엘 호건(Noel Hogan)과 마이크 호건(Mike Hogan), 그리고 퍼걸 롤러(Fergal Lawler)는 밴드의 리드 보컬을 구하고 있었다. 노엘은 잘 완성되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던 곡의 일부를 그녀에게 들려주었으며, 집에 돌아온 돌로레스는 그들을 위해서 몇 곡을 준비한다. 다음날 그녀는 'Linger'라는 곡을 가지고 다시 찾아왔으며 곡을 들은 멤버들은 그녀를 보컬로서 최종 결정한다. 돌로레스는 첫사랑에 대한 노래 'Linger'를 멤버들에게 처음으로 불러주었으나 멤버들은 노래의 가사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은 오로지 저 조그마한 몸에서 어떻게 이런 강력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가졌으며 엄청난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돌로레스의 감명만은 못했다. 그녀는 평생 소원이었던 록밴드의 싱어가 되었다는 사실에 전율했다.
 
독특한 멜로디와 80년대의 팝적인 스타일에 아일랜드의 음악적인 배경까지 가미하여 브릿팝 출현 전의 영국에서 가장 커다란 성공을 거둔 밴드 중의 하나인 크랜베리스(Cranberries)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특유의 날카롭고 힘있는 목소리를 지닌 돌로레스가 리드하는 크랜베리스의 시작은 매우 미미하였으나, 1993년 발라드 'Linger'가 미국 차트에서 성공을 거두자 비로소 영국에서도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돌로레스가 가입한 직후 이들은 데모 테잎을 만들어 아일랜드 전역에서 판매하였다. 원래 크랜베리 쏘 어스(Cranberry Saw U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이들은 이즈음 그룹 이름을 크랜베리스로 줄이고 'Linger'와 'Dreams'의 초기 버전이 실린 또 하나의 데모 테잎을 영국의 레코드 회사로 보낸다. 이러한 일을 하고 있을 때 이들은 여전히 10대 후반의 나이였다.
이들의 데모 테잎은 당장 영국 언론과 레코드 종사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으며 그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 끝에 아일랜드 레코드(Island Records)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리하여 발매한 싱글 'Uncertain'은 제목에서 이미 예언적으로 나타났듯이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으며 이후의 싱글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첫 매니저였던 피어스 길모어(Pearse Gilmore)와의 극한에 이른 갈등까지 더해져 밴드는 거의 해체 직전의 상황에 맞닥뜨려졌다. 그들은 데뷔 앨범을 내기 전 피어스가 자신의 스튜디오를 확장시키기 위해 아일랜드사와 이면 계약을 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피어스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함으로써 거의 해체될 뻔한 위기 상황을 해결하였다. 이때의 위기감을 돌로레스는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나는 밴드에 대한 신념이 있었다. 그러나 음악 산업에 대한 신념은 없었으며 세상에 대한 신념도 잃어버렸다. 난 그 당시 겨우 18살이었으며 정말로 심한 절망감을 느꼈다."
고향에서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던 돌로레스는 어느 날 한 공연에 구경을 가게 된다. 청중의 입장에서 밴드의 연주를 감상하던 돌로레스는 그 밴드가 무대 위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뜻한 바대로 이끌어 가는 모습을 보고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 그녀는 같이 참석했던 친구에게 말한다.
"다른 모든 이들도 하고 있는데 왜 우리라고 못하겠어?"
 이렇게 투쟁은 다시 시작되었고, 돌로레스의 이 말은 나중에 그대로 첫 번째 앨범의 타이틀이 되었다.
새로운 매니저로 러프 트레이드 레코드(Rough Trade Records)의 제프 트래비스(Geoff Travis)를 영입한 이들은 그들의 새로운 프로듀서로서 예전에 더 스미스(The Smiths)와 같이 작업을 한 적이 있는 스테펀 스트리트(Stephen Street)를 고용하여 앨범 제작에 착수하였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작업한 이 앨범은 1993년 라는 타이틀을 달고서 이들의 데뷔 앨범이 되었다. 'Dreams'를 첫 곡으로 싱글커트 하였으나 봄에 발매된 이 앨범은 그리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여름과 가을에 더더(The The)와 스웨이드(Suede)의 오프닝 밴드로서 미국 투어를 시작한 이들은, 이 곳에서 비로소 메인 밴드보다 더 큰 인기를 얻게 된다. 라이브에서의 열정적인 공연으로 미국 팬들은 이들을 기억하기 시작하였으며 MTV에서는 연일 감성적인 발라드 'Linger'를 틀어주었다. 'Linger'는 싱글 차트 8위까지 올라갔으며 이들의 앨범은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하였다. 1993년 말에 귀국한 그들은 고향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다. 그때를 돌로레스는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투어를 떠날 때만 해도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귀국하고 나니 모두들 나를 스타라고 불렀다." 미국에서의 커다란 성공은 이후 영국에서도 이어졌다. 1994년 초 이들은 영국에서도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으며 여름 무렵에는 차트 정상까지 차지하였다.
단발성 히트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그들은 1994년 3월 두 번째 앨범의 녹음 작업에 들어간다. 레코딩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앨범 작업 후 밴드는 스키를 타러 휴가를 떠났다. 그러나 스키 경험이 전무했던 돌로레스는 심한 낙상을 입게 되며 걷지 못할 정도로 무릎을 다치게 된다. 정상을 향해 돌진하던 이들은 돌로레스가 다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모든 스케줄을 취소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 와중에서도 그녀가 한가지 취소하지 않은 것은 바로 결혼이었다. 그녀는 미국에서 듀란 듀란(Duran Duran)과의 투어 도중에 만난 돈 버튼(Don Burton)과 아일랜드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어서 1994년 10월에 발매된 2집은 발매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모았으며 3주만에 1백만 장이 팔려나갔다. 첫 번째 싱글 커트곡인 'Zombie'는 그들의 가장 인기있는 곡이 되었으며 미국에선 싱글로 발매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얼터너티브 라디오 방송에서 가장 많이 들려주는 곡이 되었다. 'Zombie'는 영국 와링턴(Warrington)에서의 폭발 사고에 대한 노래이다.
"이것은 북 아일랜드에 대한 노래가 아니다. 이는 북부의 상황 때문에 죽어간 죄 없는 두 어린이에 대한 노래이다."
라고 돌로레스는 말하고 있다. 미국 투어 중 부모님을 그리워하면서 작곡한 'Ode to My Family'는 국내에서도 드라마에 삽입되는 등 큰 인기를 모았다.
1996년에는 3집을 발매한다. 앨범 발매 후 오스트레일리아 투어에서 밴드는 또 한번의 위기를 맞는다. 열정적인 무대 매너를보여주던 돌로레스가 흥분하여 몸 동작을 과감히 취하다가 또다시 무릎을 다치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남은 일정은 모두 취소되었으며 설상가상으로 피로와 감기까지 겹쳐 미국 투어까지 전부 취소되고 말았다. 게다가 돌로레스가 솔로 활동을 위해 밴드를 떠날 것이라는 악성 루머까지 떠돌았다. 그러나 이 모든 근거 없는 소문들을 부정하면서 이들은 1999년 네 번째 앨범 을 발매하였다. 그전부터 정치적인 색깔을 많이 띠던 이들은 전쟁을 그만두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제목의 앨범을 발매한 것이다. 이전의 사운드보다는 다소 성숙한 듯한 절제된 사운드를 담고 있는 이번 앨범은 여전히 크랜베리스에 대한 믿음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뛰어난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1/10 안재필 (rocksacrifice@gmail.com) / 오이뮤직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